##16 5. 일행
한 차례 주먹을 휘두른 상태였지만 두 번째 주먹은 쉽사리 휘두르지 못하고 있었다.
‘뭐하는 놈이지? 프로 권투 선수인가?’
강준은 데이브의 자세가 권투라는 것을 이내 알아낼 수 있었다. 데이브가 강준 자신을 만만한 상대로 여기지 않은 것인지 제대로 된 파이트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그런 권투 자세의 데이브에 상당히 곤란하다는 생각을 했다.
맨손 격투에 있어서 권투는 가장 효과적인 타격기 중에 하나였다.
대부분의 종합격투기 선수들은 권투를 기본으로 삼고 있을 정도로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격투 방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권투를 아주 재대로 배운 권투 선수인 듯 보인다는 것이었다.
훅!
강준은 자신의 얼굴을 향해 쇄도해 들어오는 데이브의 주먹에 몸을 뒤로 물러섰다. 강준 자신의 반사신경으로는 도무지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주먹이었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데이브의 주먹이 자신의 눈 앞까지 왔을 때에야 겨우 뒤로 물러서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 데이브의 주먹이 완전히 물러나고 나서야 강준의 몸이 뒤로 물러선 상태였다.
씨익!
강준은 얼떨떨해 하며 데이브를 보았을 때 데이브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지금 날 비웃는 거야?’
강준은 분명히 자신을 비웃는 듯한 데이브의 미소에 이가 갈리는 기분이었다.
상대가 격투기로는 자신보다 위라는 사실은 방금 전의 제대로 된 주먹질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권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잽(Jab)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이번 주먹도 거리를 재보기 위한 주먹일 터였다.
아마도 이대로 데이브의 영역 안에 들어간다면 곤죽이 되어 두들겨 맞는 것은 강준 자신이 될 것이었다.
그 때문에 강준은 데이브로부터 상당히 거리를 떨어트린 것이었다.
“헤이! 노란 원숭이! 겁 먹은 거냐?”
데이브는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는 강준의 실력에 비웃음이 가득한 말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웃고 있던 데이브는 자신의 아래로부터 무언가가 빠르게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서는 기겁을 해야만 했다.
훅!
빠르게 솟구쳐 오르는 것은 정확하게 데이브의 턱을 노리고 날아왔다.
데이브는 강준의 상체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턱을 노리고 날아오는 것에 의아했지만 본능이 맹렬하게 경고를 하는 것에 움찔 몸을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곧바로 보인 것은 발이었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그대로 자신의 턱은 부서져 버렸을 정도로 빠르고 강한 발차기였다.
‘태권도?’
데이브도 그 발차기가 태권도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보았다.
그 것도 스포츠가 된 위력이 약한 태권도가 아니라 ITF 태권도였다. 스포츠가 아니라 실전에서 상대를 죽이기 위해 단련되고 연마된 실전 태권도로 발차기의 위력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제대로 맞았다면 그대로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은 바로 데이브 자신일 터였다.
“으윽!”
그리고 데이브는 곧바로 쇄도해 들어오는 살기가 섞인 주먹에 기겁을 해야만 했다.
방금 전 비웃음을 날리던 것과는 달리 식은 땀이 등줄기를 적시기 시작했다.
‘이 새끼 스포츠 선수가 아니잖아! 갱인가? 아니! 일본의 야꾸자!’
살기가 느껴진다. 아무리 프로 선수라고 할지라도 살기를 뿜어내는 경우는 드물었고 그 살기도 제대로 된 살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동양인은 온 몸으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무리 데이브 자신이 프로 선수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죽여본 듯한 살기를 뿜어내는 상대를 상대로 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제압한다.’
강준은 데이브의 비웃음에 완전히 뚜껑이 열려 버렸다.
데이브의 도발에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강준이었다. 특전사이면서도 미국의 델타포스와 함께 훈련을 했던 강준이었다.
프로 격투가들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인간 병기들이라고 불리는 델타포스의 군인들이었고 그들과 대등할 정도로 인간 흉기였던 강준이었다.
사람을 죽여보지만 않았을 따름이었지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각오와 기술 그리고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강준의 지금 행동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강준의 손은 완전히 쥐어지지 않고 반쯤 쥐어진 채로 데이브의 얼굴을 향해 뻗어 나갔다. 데이브가 그런 강준의 손을 피해내는 듯 했지만 강준은 엄지손가락을 펼치면서 데이브의 눈을 노렸다.
“제기랄!”
데이브는 강준이 자신의 눈과 같은 급소를 노리는 것에 두터운 팔뚝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강준보다 반사신경은 더 뛰어났기에 강준의 손이 얼굴에 도달을 하기 전에 막아낼 수 있었다.
텁!
하지만 강준은 데이브의 팔뚝을 칠 생각 따위는 없다는 듯이 데이브의 팔뚝을 붙잡고서는 그대로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들였다.
퍼억!
데이브는 자신의 배를 강타하는 강준의 무릎에 이를 악물었다.
온 몸의 체중을 제대로 실은 것인지 충격이 상당했다. 평소 단련을 해두지 못했다면 내장이 파열이 될 정도의 타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브는 얼굴을 가린 팔뚝을 풀지 않았다.
강준이 계속적으로 자신의 눈과 같은 급소를 노릴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방심했다.’
상대 또한 자신을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방심을 한 것이 데이브의 패착이었다.
하지만 데이브는 포기를 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반드시 기회는 온다.’
강준의 주먹과 발이 연신 데이브의 온 몸을 두들기고 있는 중이었고 그 공격의 충격 하나하나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컸지만 데이브는 팔뚝 사이로 보이는 강준을 매섭게 노려보며 기회를 잡기 위해 충격을 견디기 시작했다.
‘이 새끼 그냥 프로 선수가 아니잖아! 어디서 막싸움 꽤나 한 놈인데.’
강준은 한방 한방이 강력하면서도 위력적인 공격을 하면서도 악바리같이 견디며 기회를 보는 데이브의 모습에 기가 찼다.
강준은 정말로 데이브를 죽여야 하는지 하는 고민을 해야만 했다.
사실 지금 상태에서 데이브를 죽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급소는 엄청나게 많았고 그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급소라면 데이브가 방어를 하고 있지 않은 낭심을 발로 쳐 버리면 끝이 날 일이었다.
권투에서야 반칙이라고 하지만 강준이 배운 살인기에서 남자의 낭심은 최고의 공격 대상이자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곳이 아니라 관절부분이나 얼굴의 눈이나 코 등 단련이 되지 않는 곳을 위주로 타격을 주고 있는 중이었다.
‘실력은 쓸 만한데.’
문제는 강준이 데이브를 죽여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비록 뚜껑이 열리기는 했지만 데이브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는 강준이였다.
그렇게 한순간이나마 딴 생각을 한 결과는 강준에게 치명적이었다.
‘기회다!’
데이브는 악랄하게 자신만의 급소만을 노리던 강준이 몸을 흐트린다는 느낌과 함께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을 하며 데이브는 자신이 가장 잘 사용하는 기술인 라이트 훅을 강준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데이브의 주먹은 인간의 반사 신경으로 피할 수 있는 성질의 주먹이 아니었다.
최단거리로 빠르게 휘둘러진 데이브의 라이트 훅은 강준의 얼굴을 강타했다.
퍼억!
강준의 머리가 흔들리며 강준의 몸이 비틀거렸다.
‘제길! 얇다.’
데이브는 강준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주먹이 강준의 턱에 정확하게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연신 강준에게 밀리면서 제대로 체중을 싣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주먹이 완전하게 들어가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일반인들이라면 그대로 기절을 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절대 일반인이 아니었다.
어디서 굴러먹은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먹질 하나만큼은 프로급이었다. 당연하게도 주먹을 잘 쓴다는 것은 그만큼 맷집이 있다는 소리였다.
‘이대로 밀어 붙여서 끝장을 내야 해!’
데이브는 뒤로 휘청거리는 강준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대로 제압을 하지 못한다면 다시 당하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의 방심으로 공격을 할 기회조차 찾지 못했던 데이브로서는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은 사절이었다.
철컥!
하지만 그런 데이브는 두 번째 주먹을 강준에게 날리지 못했다.
“씨발! 그냥 죽여 버릴 걸 그랬나.”
“……!”
강준은 머리가 얼얼한 느낌을 받으며 데이브의 눈 앞에 총구를 향하게 하고서는 데이브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