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5. 일행
어딜 가더라도 안전한 곳 따위는 없었다.
강준 또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를 결정할 수가 없었다.
비틀!
거기에다가 강준은 자신이 부축하고 있는 엘리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데다가 제대로 쉬지도 못해서 탈진 증상까지 온 상태였다.
‘일단 쉴 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강준은 주변을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보았지만 마땅찮게 쉴만한 공간을 볼 수가 없었다.
“하아! 하아!”
결국 강준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안색이 창백해진 엘리를 보고서는 더 이상 쉴 곳을 찾는 것도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이 곳에 앉아서 쉬도록 하지요.”
“아! 예!”
엘리는 강준의 말에 대답과 함께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하아! 하아!”
과도한 체력 손실로 인해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닥일 힘도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한 엘리였다.
“물 좀 드세요.”
강준은 크리스의 가방에서 나온 500ml의 물병을 꺼내어서는 엘리에게 넘겨줬다.
엘리는 자신의 눈 앞에 물이 보이자 다그하게 손을 내밀어서는 강준의 손에서 물병을 낚아채서는 입 앞으로 가져다 대었다.
꿀꺽! 꿀꺽!
그다지 시원한 느낌은 없는 미지근한 물이었지만 엘리의 몸 속으로 들어오는 물 맛은 지금까지 먹었던 그 어떤 물보다도 맛이 있었다.
덥썩!
하지만 그런 물 맛을 마음 껏 즐길 수가 없었다.
“……!”
마시고 있던 물병을 다시 빼앗는 강준의 모습에 엘리는 멍하니 강준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야속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며 서럽기까지 한 감정이 솟구치고 있었다.
강준은 조금 무안한 표정을 짓고서는 입을 열었다.
“물이 이 거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비스켓 밖에 없어서 물 없으면 목이 막힐 듯 싶어서요.”
강준은 엘리에게 비스켓이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네주었다. 이런 정글에서 음식은 습기와 더위로 인해 빠르게 상하게 된다.
결국 건조식품 이외에는 오랜 시간 보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 고…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엘리는 강준이 내민 비스켓을 보며 눈물이 솟구치려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홀로 공포에 떨면서 있었는데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인지 지금에야 깨달은 것이었다.
그렇게 엘리는 눈물 젖은 비스켓을 먹으면서 이제는 안심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후우! 일단 이 여자분을 안심시키기는 한 것 같은데 생존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단 말이야.’
사실 생존에 있어서는 아무런 도움이 아니라 짐 밖에는 되지 않았다.
총이라는 무기까지 나온 이상 이런 곳에서 재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남자들도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ㅇ났다.
강준은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을만한 동료가 그리워지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을 했다.
‘일단 해도 거의 져가니 쉴 수 있게는 만들어 놔야겠지.’
휴식을 취할 만한 곳이 없다면 휴식을 취할만한 곳으로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장비들이 전혀 없는 것이 문제였지만 강준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비교적 날카로운 돌들을 찾아서는 근처의 나뭇잎들을 자르기 시작을 했다.
밤은 소리가 잘 전달되기에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게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열대의 정글 속의 나무 잎들은 상당히 넓고 커서 몇 장만으로도 상당한 면적을 가릴 수 있었다.
그런 강준의 모습에 엘리는 처음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강준이 임시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는 것에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저도 도울게요.”
“아! 피곤하실 텐데.”
강준은 한 눈에 보더라도 힘겨워 보이는데도 무언가 도움이 되려고 하는 엘리에 마음이 들었다.
이런 여자라면 같이 다니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어차피 이 여자는 다음 동료를 만들기 위한 시발점이니까.’
혼자서 동료를 찾는 것보다는 둘이서 다른 동료를 찾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고 둘 보다는 셋이 더 효과적이었다.
이렇게 개개인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집단이라는 것은 적어도 집단 내에서의 싸움에 대한 우려를 감소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집단이 구성되면 그 때부터 현 상황에 대한 타개책들을 찾아내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것도 168 시간이 지나기 전의 문제였다.
죽음의 시간이 다가온다면 집단 내에서는 격렬한 반응들이 생겨날 것이었다.
상대를 죽어야만이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은 집단을 한 순간에 파괴해 버릴 것이었다.
‘과연 내가 잘 선택하고 있는 것인까?’
강준은 자신이 내준 커다란 나뭇잎들을 바닥에 깔고 있는 엘리를 바라보았다.
유사시 강준의 시간이 다되어 갈 때 그녀를 죽인다면 강준은 살 수 있을 것이었다. 아직 사람을 죽여 본 적은 없었지만 몇 년 동안 군대에서 사람을 죽이는 연습을 해 왔던 강준이었다.
‘후우! 일단 그런 나중에 생각하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 속을 온통 헝클어 트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이런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계속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아는 강준은 나뭇잎들을 잘라서는 작은 천막을 만드는 듯이 벽과 지붕을 만들었다.
조잡한 모양에 오랜 시간 있을만한 곳도 아니었지만 이미 해는 져 버렸기에 강준은 마지막 잎사귀로 입구 부분을 막고서는 나뭇잎 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다.
“후우!”
깊은 한숨과 함께 강준의 등에 커다란 나무 줄기가 닿았다.
퇴로가 꽤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준이었지만 어디로 가야 안전한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퇴로는 무의미하다는 것에 결국 커다란 나무들이 한 쪽 면을 막고 있는 곳에 나뭇잎 텐트를 친 상태였다.
그렇게 강준이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자 엘리는 강준을 힐끔거리며 쳐다 보았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강준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을 할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도 아침에 한 남자의 손에 끌려간 다른 이를 떠올린 것이었다.
‘이 사람도 나를 여분의 생명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이제는 어두워져서 강준의 얼굴조차 구분을 할 수 없게 된 상태였다.
강준을 믿는다고 해도 조금씩 싹이 트는 불안함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점점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안함과 공포는 엘리를 공황상태로 빠져들게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옆에 살인마가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이었다.
“비가 오는군.”
“예?”
그렇게 엘리가 불안감에 떨 때 강준에게서 낮 모를 언어가 들려왔다.
두둑!
강준은 조금씩 들리는 빗방울 소리에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빗방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집중 호우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름 주변보다는 높은 곳에 나뭇잎 텐트를 치기는 했지만 물이 많이 온다면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강준이 우려 했던 대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엄청난 양의 비가 하늘에서 쏟아지면서 나뭇잎 텐트를 때리기 시작을 하자 소음에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지 나뭇잎 텐트는 제법 튼튼했던지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거기에다가 빗물도 그리 많이 들어오지는 않아서 강준은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런 때가 더 안전할 거야.’
강준은 이런 폭우가 역설적으로 다른 이들의 움직임을 막아서 자신들이 안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비가 쏟아지는데 움직이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먹은 강준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엘리를 바라보았다.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대충 한 쪽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엘리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다지 넓은 공간은 아니었다. 최대한 엘 리가 강준으로부터 떨어지고자 해도 강준이 손만 뻗어도 닿을 거리였다.
강준은 그런 엘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듯 자신의 호주머니에 달달한 열매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런 조금 뭉개졌네.”
호주머니 안에 있던 열매들은 강준이 움직이는 동안 뭉개진 것이 여럿이었지만 그래도 껍질이 있는 열매들이었기에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다지 맛이 있는 그런 달콤한 열매들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꽤나 달달한 맛이 날 터였다.
“이 거 좀 드셔 보세요.”
흠짓!
어둠 속에서 강준의 손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에 엘리는 흠짓 놀랐다.
무언가 말을 한 것 같았지만 빗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날 죽이려고?’
엘리는 강준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하지만 문제는 강준도 그런 엘리의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 어떻게 먹는지 모르시겠구나.”
강준은 공포에 질려 있는 엘리의 상황도 모르고서는 껍질을 까서는 열매를 꺼내어서 엘리에게로 내밀었다.
“까아!”
다시금 내밀어진 강준의 손에 엘리는 결국 비명을 질렀다.
마침내 자신을 덮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자신을 살려준 강준 또한 크리스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구치려는 엘리였다.
‘역시 남자들은!’
남자들은 전부 짐승이라는 생각에 부르르 몸을 떠는 엘리였다.
그리고 그 때 강준의 손에 엘리 자신의 입을 막으려고 들어왔다.
엘리는 비명을 지르는 자신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금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쑤욱!
하지만 그 때 엘리는 자신의 입 속으로 들어오는 어떤 것에 소그라치게 놀랐다.
‘설마 그 것?’
어둠 속에서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던 엘리는 자신의 입 속으로 들어오는 그 것이 남자의 그 것이라는 생각에 놀랐다. 자신이 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그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이었다.
‘싫어!’
엘리는 무척이나 싫다는 생각과 함께 있는 힘껏 그 것읋 깨물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그냥은 죽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의외로 부드러운 것인지 연약한 것인지 자신의 이빨에 쉽게 잘려져 나갔다.
엘리는 아마 남자가 끔찍한 비명을 지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잘하면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행동이 무척이나 기특하다고 여겼다.
‘응? 달다?’
그렇게 복수를 하 듯이 몇 차례 더 자신의 입 속에 들어온 것을 씹던 엘리는 문듯 남자의 그 것이 무척이나 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남자 그 것은 과일 열매처럼 단 거구나.’
남자의 그 것을 처음 먹어본 엘리로서는 남자의 그 것이 참 달다는 생각에 무심코 꿀꺽 입 속으로 넘겼다.
그리고서는 또 다시 자신의 입 속으로 들어오는 남자의 그 것에 멍해져 버렸다.
‘남자 꺼는 재생 되는 거였어?’
무언가 큰 오해가 생겨버린 엘리였지만 참 맛나게 강준이 준 열매를 먹는 엘리였다.
‘잘 먹네.’
강준은 피로로 인해 엘리가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열매를 까서는 엘리의 입 속에 넣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배가 찬 엘리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나중에 남친 꺼도 먹어 봐야 겠어.’
잠이 빠지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그 것도 먹어 보겠다고 결심을 하는 엘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