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58화 (159/161)

158화. 히어로가 될 것인가? 빌런이 될 것인가?

동방예의지국.

한국은 예의와 겸손을 너무 따진다고 누가 그랬던가?

이순신의 도발에 인터뷰장이 뒤집어졌다.

“싸가지 이순신이 부활했구만.”

하지만 선을 넘지 않았다.

이순신이 손민흥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기 때문이었다.

손민흥도 특유의 찰칵 세레머니를 하며 응수했다.

“이순신 선수에게 제가 누군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웃으면서 두 선수는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짧은 인터뷰 공방전은 인터넷상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뮌헨과 바르셀로나가 올라갔다던데?”

“그게 뭔 상관이야. 누군가는 이이겠지.”

“맞아! 지금 중요한 건 꿈 FC와 토트넘이라고!”

분데스리가 명문 팀과 프리메라리가 명문 팀이 붙는데도 축구 팬들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21세기 들어서 처음으로 유로파리그의 화제성이 챔피언스리그를 넘어섰다.

***

스페인 3부 리그 마지막 경기가 꿈 FC 홈 구장에서 열렸다.

“이순신 선수의 골!”

“마지막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이순신이 쐐기 골을 넣자 관중들이 모두 일어났다.

남은 경기 시간은 3분.

현재 스코어는 5:0이기 때문에 결과가 뒤집히기는 쉽지 않았다.

삐이이익-

“꿈 FC가 스페인 3부 리그에서 전승 우승을 달성합니다!”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이 박수쳤다.

“멋지다. 꿈 FC.”

“행복했다!”

이순신과 꿈 FC 선수들은 관중들에게 다가갔다.

모두 손을 잡고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3부 리그 전승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으나 2부 리그로 승급할 수 없는 비운의 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팬들은 더욱 힘차게 박수쳤다.

“너네들은 차원이 달랐어.”

상대 팀도 꿈 FC를 향해 박수쳤다.

하지만 성대한 우승파티는 열리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직 유로파리그가 남았다.

“헤이니.”

임청수가 헤이니를 불렀다.

“왜?”

“왜는 반말이고 새끼야! 결승전 때 다치지 마라. 우승파티든, 준우승 파티든 해줄 테니까.”

“물론! 이왕이면 우승파티로!”

헤이니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선수들의 삶은 유로파 결승전에 맞춰졌다.

신자영도 최대한 이순신이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이순신은 애틋한 눈빛으로 신자영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승부는 중요하지 않아. 다치지 마. 경기 끝나고 쓰러지지도 말고.”

신자영이 당부했다.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두 손으로 신자영의 얼굴을 감쌌다.

거칠게 다가가서 부드럽게 키스를 갈겼다.

3일 후.

저녁 9시.

폴란드에 있는 경기장에서 유로파리그 결승전의 막이 올랐다.

“이순신 선수가 이번 시즌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손민흥 선수를 막을 수 있을까요?”

손민흥은 대한민국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25골을 넣어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제안은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 모양이었다.

그의 파트너인 허리케인도 22골로 2위를 차지했다.

아쉽게도 리그 순위는 3위로 마감했지만, 내년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했다.

토트넘의 최후방에는 김재민이 지키고 있었다.

“유로파리그에서 국대 출신이 한 경기에 이렇게 많이 뛰다니…”

축구팬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순신을 비롯해서 손민흥, 임단결, 김혁규, 구멍, 김재민, 이광인 등 7명이나 됐다.

싱가포르 국가대표지만 송희윤까지 치면 그야말로 축구계의 한류 바람이었다.

[충무공이 눈물을 흘립니다.]

이순신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덩치도 큰 양반이…”

충무공은 똑똑히 보았다.

대한한국 축구의 미래를!

향후 10년간은 그 누구도 대한민국을 건드릴 수 없었다.

이번 경기가 그 시발점이 될 것이란 걸!

삐이이익-

“유로파리그 결승전이 시작됐습니다!”

손민흥이 킥오프를 했다.

공을 잡은 토트넘의 주장 허리케인은 침착하게 주변으로 공을 돌렸다.

3-4-3 전술을 쓰는 토트넘의 전술에서 손민흥은 왼쪽으로 이동했다.

조심스럽게 탐색전이 이어졌다.

“탐색전이 왜 필요해? 이쪽으로!”

손민흥이 공을 달라며 손을 흔들었다.

미드필더의 크로스가 정확히 손민흥에게 도착했다.

그의 앞에는 오쿠보가 있었다.

‘손민흥이다.’

침을 꿀꺽 삼키며 오쿠보는 긴장했다.

손민흥은 가볍게 오쿠보를 제쳤다.

“손민흥이 뭐!”

재빨리 하비가 달려왔다.

“손민흥 선수. 벌써 두 명을 제칩니다!”

오늘 손민흥은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임단결이 달려 나왔다!

그걸 본 손민흥이 가볍게 슈팅을 때렸다.

“손민흥 선수의 기습적인 중거리 슛!”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몸을 날려서 막았다.

“온몸을 날려 막아내는 이순신! 저 거리에서는 어림없죠!”

손민흥이 씨익 웃었다.

공은 2선에 있던 허리케인에게 떨어졌다.

그는 옆으로 공을 돌렸다.

오버래핑을 시도한 김재민이 중앙선 근처에서 공을 잡았다.

“흐음,”

반대편에는 꿈 FC 선수들과 토트넘 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는 상태였다.

뻐엉!

김재민이 중앙을 향해 긴 크로스를 올렸다.

엄청난 킥력으로 페널티 에어리어에 있는 허리케인 쪽으로 날아갔다.

“이순신 선수! 먼저 헤딩으로 걷어냅니다!”

재빨리 날아오른 이순신이 먼저 공을 걷어냈다.

“아! 하필이면 공이 손민흥 선수 앞으로 떨어집니다!”

손민흥은 그대로 달려오면서 슛을 때렸다.

“으아악!”

이순신 뒤쪽에 있던 임단결이 달려와서 공을 막았다.

퉁퉁.

공이 앞으로 몇 번 튕기더니, 이번엔 허리케인이 슛을 날렸다.

“허리케인!!!”

그의 슛을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보경풍이 인상 쓰며 몸을 날렸다.

안타깝게도 허리케인의 슛이 좀 더 빨랐다.

퉁!

“아!”

골대를 맞고 공이 밖으로 나갔다.

“아깝습니다! 꼼짝없이 먹힐 골이었는데 이번엔 꿈 FC가 운이 좋았습니다.”

손민흥과 허리케인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진영으로 돌아갔다.

“괜찮아.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물론이지.”

여유로운 토트넘 선수들의 표정과는 달리 꿈 FC 선수들은 긴장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었다.

꿈 FC에서 손민흥과 비슷한 연배는 보경풍과 송희윤 정도였다.

대한민국은 유독 나이에 민감했다.

거기다가 손민흥이 차지하는 대한민국에서의 위상은 그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평소에 꿈 FC를 응원하는 팬들도 대다수 손민흥의 팬인 상황이었다.

존경과 두려움.

두 가지의 감정이 선수들의 몸을 휘감았다.

“쫄지 마!”

이순신이 머리 위로 박수 치며 선수들을 위로했다.

[흑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모두가 위축되었을 때, 흥분한 단 한 사람.

“축구는 너무 재밌어. 그렇지?”

다소 오글거리는 멘트와 광기 어린 웃음을 짓는 이순신이었다.

“물론이오. 순신 시주. 오늘 내가 손민흥 선배를 아주 그냥 발라버리겠소!”

구멍이 각오를 다졌다.

“그래. 우리가 접대 축구를 할 필요는 없어.”

이순신은 먼발치에 있는 손민흥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꼭 이겨서 민흥이 형이 다른 팀으로 가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도록 만들자.”

손민흥이 우승을 해야 내년 시즌에 같은 팀에서 뛴다는 사실은 이순신은 모르고 있었다.

“토트넘 팬들에게는 히어로가 되고, 꿈 FC 팬들에게는 빌런이 되자.”

손민흥도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한마디로 말해서 양 팀 다 이겨야 할 명분이 충분했고, 이겨야만 했다.

서로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을 위해서,

팀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쪽한테 승리의 여신이 손을 들어줄 예정이었다.

“저쪽에서 선빵을 날렸으니 우리도 보답하자!”

보경풍은 전방에 있는 이순신에게 공을 넘겼다.

이순신은 재빨리 임단결에 패스했다.

김재민처럼 먼발치를 바라보던 임단결은 중앙으로 길게 찔러줬다.

“이광인 선수가 헤딩으로 살짝 방향을 바꿉니다!”

전방에 있던 김혁규와 송희윤이 동시에 달렸다!

“공을 잡은 김혁규!”

골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재민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페널티 에어리어에 진입하기 직전!

불과 한걸음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조리스 골키퍼가 나옵니다!”

김혁규가 이를 악물었다.

“각이…”

이대로 빼앗기느니 슈팅을 때리는 게 낫다고 김혁규는 판단했다.

“김혁규 선수의 슛!”

공은 토트넘의 골키퍼 조리스의 손에 맞고 뒤쪽으로 넘어갔다.

공은 독수리가 되어 훨훨 날아갔다!

“아깝습니다! 꿈 FC의 코너킥이 이어집니다!”

김혁규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혁규. 빨리 잊고 코너킥 준비해!”

이순신은 좌절할 틈 따위는 주지 않았다.

“이순신 선수가 벌써 위로 올라왔는데요. 아무래도 두 팀 다 선취골이 중요합니다.”

이광인이 크로스를 올렸다.

[천무가 발동합니다.]

정확히 이순신의 이마에 공이 닿았다!

하지만 그 앞에는 김재민이 있었다.

두 거구가 공중에서 헤딩경합을 벌였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두 선수는 공을 두고 서로 튕겼다.

둘 다 엉덩방아를 찧은 후 재빨리 일어났다.

먼저 발을 뻗은 건 이순신이었다.

“이순신 선수의 슛!”

하지만 이번엔 이순신의 슛이 공중으로 붕 떴다.

“괜찮아요?”

이순신이 김재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툭!

김재민이 이순신의 악수를 거부했다.

경기를 할 때 그는 검투사 그 자체였다.

“이순신 선수와 김재민 선수의 대결도 오늘 볼만하겠는데요!”

TV에는 두 선수의 헤딩경합을 리플레이로 보여줬다.

“너한테만큼은 절대로 안 먹혀.”

공격수 이외의 포지션에게 골을 먹힌다는 건 수비수 입장에서 굴욕일 수 있었다.

‘미션이 하나 더 늘었군.’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한국 최고의 공격수를 틀어막고,

한국 최고의 수비수를 뚫고 골을 넣고 싶었다.

곧바로 토트넘의 반격이 이어졌다.

중앙에서 공을 잡은 손민흥은 사이드로 공을 몰았다.

그의 빠른 스피드를 토트넘 선수들은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측면에서 공을 잡고 구멍과 수비수를 끌어들였다.

그 순간이었다.

그들의 등 뒤에서 허리케인이 나타났다.

“받아!”

손민흥은 구멍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찔러줬다.

“다! 당했다!”

구멍이 재빨리 몸을 틀었지만 이미 늦었다.

다행히 수비 쪽에는 이순신이 버티고 있었다.

“안심이구려.”

하지만 이순신의 생각은 달랐다.

구멍의 등 뒤에서 손민흥이 스프린트를 시작했다.

“구멍! 손민흥 막아!”

이순신의 지시를 들은 구멍은 죽을힘을 다해 손민흥을 쫓아갔다.

그 사이에 이순신은 허리케인 쪽으로 향했다.

허리케인이 떨쳐내려고 했으나 이순신은 침착하게 거리를 유지했다.

“끈질긴 자식.”

허리케인은 몸을 틀어서 개인기를 펼치려고 했지만, 그만 넘어졌다.

이순신이 발을 뻗었다.

그런데 허리케인은 넘어지면서 빈공간으로 공을 찔러줬다.

이순신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손민흥이 공을 잡았다.

꿈 FC의 수비는 7명.

손민흥은 아랑곳하지 않고 슛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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