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손민흥이 누구죠?
정인선 씨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 공부하러 갈게.”
그녀의 아들은 눈치를 살폈다.
‘X 됐다…’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갔다.
TV에서는 맨유의 프리 키커가 깔끔하게 골을 넣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유로파리그 4강전 1차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승리였다.
“10억…”
정인선 씨가 넋이 나갔다.
신욱선의 제안이 계속 맴돌았다.
방문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그녀의 아들은 걱정됐다.
‘엄마. 괜찮나?’
망연자실한 목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렸다.
아들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넋이 나간 걸 보니 죄책감이 느껴졌다.
“괜찮아. 엄마. 아직 2차전이 남아있어. 꿈 FC가 2:0으로 이기면 결승에 진출해.”
정인선 씨가 고개를 돌렸다.
아들이 방문을 조금만 열고 빼꼼히 보고 있었다.
“야.”
정인선 씨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달칵.
문이 재빨리 닫혔다.
“에휴. 저 멍청이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그녀는 주방으로 향했다.
찬장을 뒤적뒤적 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소주였다.
콸콸콸.
그녀는 머그컵에 소주를 채웠다.
이거라도 마시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거 같았다.
***
일주일 후.
꿈 FC와 맨유의 2차전이 열렸다.
그 사이에 정인선 씨 모자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관계를 회복했다.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잠시 뒤.
정인선 씨의 얼굴이 해처럼 활짝 피었다.
“아들. 뭐 먹고 싶니?”
“치… 치킨? 카사바 칩에 치즈 볼 추가해서?”
새벽 5시에 문을 연 치킨집이 있을까?
무서운 눈빛으로 그녀는 아들을 째려보았다.
“역시 안 되겠지…?”
“그럴 리가~ 우리 아들 먹고 싶은 거 다 시키렴. 호호호.”
“진짜?”
“그럼~ 축구가 이렇게 재밌는 건 줄 몰랐네.”
그녀의 아들은 재빨리 핸드폰을 켰다.
딱 한 곳!
문을 연 치킨집이 있었다.
개발자 출신인 임상현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치킨 가게였다.
-주문이 접수되었습니다.-
“대박이다!”
임상현이 웃었다.
그는 꿈 FC가 이기길 바라며 새벽에 특별 영업을 했다.
모두 그에게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주말이지만, 새벽에 치킨을 시킨다고?
심지어 질 거 뻔히 아는 경기에?
임상현은 부정적인 자들에게 말했다.
“축구는 뻔하지 않아.”
그는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도 뿌듯하고 멋졌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튀김기의 온도는 올라갔지만,
주문은 없었다.
‘문자가 안 갔나?’
그는 톡 채널을 다시금 확인했다.
자주 이용하는 단골 고객들에게 분명히 메시지가 전달됐다.
“존버는 승리한다!”
그는 묵묵히 기다리며 경기를 봤다.
따르르르릉-
“혹시 지금 배달돼요?”
“됩니다!”
갑자기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꿈 FC의 여정이 완결 임박했기에 팬들은 마지막 순간을 보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했다.
그런데 반전도 아닌 개반전이 일어났다.
꿈 FC가 홈에서 맨유를 3:0으로 앞서고 있었다.
“임단결의 크로스!”
“이순신 선수의 헤딩슛!”
“역시 난세의 영웅입니다!”
“이광인 선수가 수비수를 농락한 뒤 슛을 때립니다!”
“와우! 환상적인 골입니다!”
“싱가포르의 희망. 송희윤도 한 골 추가합니다!”
1차전과는 다르게 2차전은 꿈 FC가 압도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꿈 FC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맨유는 ‘맹구’라고 불릴 만큼 오늘 경기에서 멍청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이순신 선수가 접근하는 게 안 보이나요? 맹구. 아니 맨유 선수들 오늘 플레이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해설자도 이런데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오죽할까?
맨유의 공격수 카사바는 짜증 냈다.
“아니. 도대체 저 자식은 어디서 자꾸 나타나는 거야!”
그는 많은 경험이 있는 우루과이 출신의 노장 공격수였다.
‘아레스한테는 이런 거 못 들었는데…’
특히나 이순신의 언성 히어로에 대해서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었다.
[천궁이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이 강력한 중거리 슛을 때렸다.
“데사르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손 맞고 들어갑니다.”
4 : 0.
정인선 씨의 아들은 치킨을 먹을 자격이 충분했다.
“꿈 FC가 유로파리그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때마침 치킨도 도착했다.
모자는 새벽에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아들. 많이 먹어!”
“엄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괜찮아! 이 정도 능력은 돼.”
정인선 씨는 생각했다.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인 꿈 FC는 누구와 붙어도 이길 거 같았다.
그녀의 아들은 핸드폰을 보다가 소리쳤다.
“와- 대박.”
“왜? 무슨 일인데?”
“이건 빅 매치야!”
흥분된 얼굴을 한 채 아들은 핸드폰을 보여줬다.
정인선 씨도 놀랐다.
반대편에서도 이변이라면 이변이 일어났다.
토트넘이 인터 밀란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유례가 없는 코리아 더비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
신욱선이 다시 정인선 씨를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여긴 어쩐 일로?”
김밥을 말고 있던 정인선 씨가 고개를 돌리며 쳐다봤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정인선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카페로 이동했다.
“무슨 일이시죠?”
정인선 씨가 음료를 마시며 물었다.
신욱선이 수표를 내밀었다.
“일. 십. 백. 천. 만… 일억?”
0을 세던 정인선 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희 업체에서 정인선 씨에게 드리는 돈입니다.”
“네? 왜요?”
“정인선 씨 덕분에 저희 업체가 홍보가 많이 됐거든요. 그에 따른 보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대신 정인선 씨의 이야기를 저희가 홍보자료로 적극 활용해도 될까요?”
“네. 뭐 그러세요.”
돈을 본 순간 정인선 씨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저희 측에서 또 다른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신욱선은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었다.
정인선 씨는 조심스럽게 계약서를 살펴봤다.
“백억? 당신들 미친 거 아니에요?”
엄청난 금액을 보자 정신이 혼미해진 정인선 씨였다.
신욱선이 내민 건 베팅 포기 각서.
다만 금액이 차이가 많이 났다.
준결승전에서 제시한 금액이 10억이라면,
이번엔 100억을 제시했다.
즉 베팅을 포기하면 100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콩닥콩닥.
정인선 씨의 미친 듯이 뛰었다.
진정시키기 위해서 마신 커피가 더욱 심장박동을 촉진시켰다.
“일억을 준 이유가 있군요.”
신욱선은 씨익 웃었다.
그녀의 말대로 일억은 단순히 보상금이 아닌 미끼였다.
사람이란 무언가 받은 게 있으면 호감도가 올라가고,
무장해제를 하는 법이었다.
견물생심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거절합니다.”
“백억이 적으신가요? 그러면 120억까지 드릴 수 있습니다.”
정인선 씨는 빙긋 웃었다.
‘진짜 공부만 빼고 다 잘하는 놈이야.’
그녀의 아들은 이러한 상황을 예측했다.
“업체 측에서 더 큰돈을 제안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난 엄마가 그 제안을 거절했으면 좋겠어!”
신욱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겠습니다…하지만 정말 꿈 FC가 결승전에서 손민흥이 이끄는 토트넘을 이길 수 있으리라고 보시는 건가요?”
손민흥은 현재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리그를 넘어선 월드클래스로 불리고 있었다.
현재 위상은 이순신보다 훨씬 더 위였으니 이렇게 말하는 게 당연했다.
“그건 모르죠. 하지만 축구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법이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단숨에 100억을 거절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축구가 좋아졌어요. 그래서 진심으로 꿈 FC를 응원하려고요.”
“그런 거라면 100억 받고, 응원만 할 수 있지 않나요?”
정인선 씨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건 진짜 응원이 아니죠. 전 기쁨과 슬픔 모두 꿈 FC와 함께할 겁니다. 그럼 바빠서 먼저 일어날게요.”
정인선 씨가 자리를 떴다.
신욱선의 표정이 심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그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고마워요. 덕분에 저도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정인선 씨에게 제안을 하기에 앞서 도박업체와 내기를 했다.
정인선 씨가 과연 100억을 거부할까?
무려 2억짜리 베팅이었다.
적극적으로 권유했음에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 그녀 덕분에 신욱선도 큰돈을 챙길 수 있었다.
***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전문채널도, 방송사도 특별 편성을 할 만큼 관심이 집중됐다.
경기를 3일 정도 앞두고 양 팀의 감독과 대표선수가 나와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꿈 FC 감독 이에로의 옆에는 이순신이,
토트넘 감독 데생 옆에는 손민흥이 앉아 있었다.
“와-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셔터를 연신 눌러대며 대한민국 기자들은 감개무량했다.
“데생 감독님께 먼저 여쭙겠습니다. 결승전 상대가 스페인 3부 리그 팀이라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는데요. 혹시 1.5군을 내보내실 생각입니까?”
싸움을 붙이기 위해선 불을 붙여야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데생 감독은 찬물을 확 끼얹었다.
“꿈 FC는 단순히 3부 리그 팀이 아닙니다. AS로마, 셀틱, 맨유를 꺾고 올라온 강한 팀입니다. 우리는 최대 전력으로 대응할 겁니다.”
지역 라이벌 팀인 아스널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도 꿈 FC를 존중했다.
“이에로 감독님께 묻겠습니다. 토트넘은 강팀입니다. 특별한 대책이 혹시 준비되어있는지요?”
“있습니다.”
“오! 그게 뭔지 혹시 조금이라도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이에로가 이순신의 등을 토닥였다.
“이순신 선수가 대책이자 작전입니다. 토트넘은 이순신 선수만 잘 막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에로가 씨익 웃었다.
평소 팀을 강조하던 이에로의 뜻 있는 도발이었다.
진짜로 토트넘이 이순신만 막는 전략을 가지고 오면,
자연스럽게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가 생긴다.
이순신보다 몸값도 높고 인지도가 높은 팀한테 우리 팀 에이스를 막으면 이긴다고 하는 건?
바꿔 말하면 너네들 다 덤벼도 우리 순신이한텐 안될 거라며 돌려 깠다.
‘이 자식이.’
데생 감독은 겉으로 웃고 있지만, 속으론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좋은 전략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필코 승리로 보답하겠습니다.”
데생 감독도 여유롭게 응수했다.
“이순신 선수에게 여쭙겠습니다. 국가대표 선배이자 주장인 손민흥 선수와 김재민 선수와 대결을 펼치게 됐는데요. 부담감은 없으신지요?”
이순신이 고개를 돌려서 손민흥을 쳐다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먼저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손민흥이 누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