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54화 (155/161)

154화. 예토 전생

“칙쇼.”

평소에 순하기로 유명했던 타케히로가 욕을 내뱉었다.

‘타케히로가 욕을?’

그 모습을 본 같은 팀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일본어라서 알아들을 순 없지만,

억양 상 욕이 분명했다.

“쟤네 뭐라고 하는 거 같은데?”

“몰라. 무시해.”

이순신은 주장 완장 효과로 ‘노이즈 캔슬링’을 공유했다.

[노이즈 캔슬링이 발동 중입니다.]

짝짝짝.

팀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머리 위로 박수쳤다.

이순신의 행동에 꿈 FC는 승리의 의지를 다졌다.

한편,

아스널 선수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순신이 획득한 트로피 효과도 있었지만,

아스널이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쟤네들 이번에 1부 리그 승격 팀이 아니라 아직 3부 리그 팀이 맞다는 거지?”

아스널 선수들의 시선은 저 멀리 있는 이순신에게 향했다.

구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신 시주. 쟤네들이 노려보는 거 같소.”

몸을 돌려 구멍이 말했다.

하프라인 밖에서도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오만한 걸까? 아니면 학습능력이라는 것이 없는 것일까?’

뭐가 됐든 이순신은 상관없었다.

단순히 1골을 지켜서 이길 생각은 없었다.

“계속 넣고, 또 넣고, 또 넣자!”

이순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의지가 꿈 FC에게 전해졌다!

삐이익-

이제부터 진짜 아스널의 축구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저건?”

가느다랗게 눈을 뜨며 이순신은 그들의 전술 변화를 눈치챘다.

현재 아스널의 전 감독인 벵거가 정착시킨 ‘벵거볼’이 펼쳐졌다.

벵거 감독은 롱볼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쳤던 EPL에서 새로운 전술을 보여줬다.

마치 이에로의 학익진처럼!

‘벵거볼은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전술이지.’

이순신은 만약 감독이 된다면 벵거 볼 같은 만화 축구를 해보고 싶었다.

또한, 프랑스 출신 감독답게 아름다움의 미학을 가진 전술이었다.

‘아름다움이란 뭘까?’

아름다움의 기준은 결코, 한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팬들과 평론가들은 끊임없이 벵거볼을 정의해보고자 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아스널의 오버래핑!”

아스널의 측면 수비수가 롱패스가 아닌 짧은 패스로 전방에 있는 미드필더에게 공을 넘겼다.

“공을 잡은 아스널. 다시 횡으로 패스!”

단순히 공을 주고 끝이 아니었다.

미드필더에게 다양한 옵션을 주고자 수비수와 공격수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전방에 있던 꿈 FC가 움직이려고 할 때,

이순신이 소리쳤다.

“현혹되지 마!”

아스널의 움직임은 소용돌이 같았다.

한 번 빠지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구멍의 가슴에서 의심이란 괴물이 자라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이순신은 적절한 대처법을 선수들에게 말했다.

“공을 가진 선수보다 공을 가지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에 더 주목해!”

최후방에서 이순신이 소리쳤다.

두두다다.

소용돌이 속에서 마치 말들이 튀어나오는 거 같았다.

“아스널이 점점 공격을 조여갑니다!”

빠르게, 빈 공간으로,

정확하게 아스널의 패스가 이어졌다.

꿈 FC가 대응하지도 못한 채 아스널은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아스널의 크로스.”

“그대로 슛!”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아스널 공격수가 발리슛을 쐈다.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의 다리에 맞고 높게 솟아올랐다.

공을 주시하던 보경풍이 가볍게 잡아냈다.

“가자!”

“멈춰!”

이순신이 손을 내밀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스로인을 하려던 보경풍도 멈칫했다.

빠른 역습 후 아스널의 선수들은 빠르게 복귀했다.

어쭙잖은 역습을 해봐야 도리어 다시 역습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서 하프라인 너머에 있는 타케히로를 바라봤다.

‘이게 저 녀석의 능력?’

[충무공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타케히로가 사용한 스킬은 ‘예토 전생’이었다.

[예토 전생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쿨타임 20분]

타케히로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기껏 벵거 볼을 사용했더니…’

타케히로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신의 위치인 센터백 라인으로 돌아갔다.

아스널 진영을 바라보며 해설자가 말했다.

“방금 우리가 뭘 본 걸까요?”

도리어 아스널 선수들이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벤치에서 지켜보던 감독도 깜짝 놀랐다.

그는 근래에 벵거볼을 연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만에 아스널다운 축구를 보여줬네요!”

“그래. 이게 아스널다운 축구다!”

“아스널. 파이팅!”

근래에 아스널은 지지 않는 축구를 했다.

그런 팀에게 지쳐있던 팬들의 심장이 뜨거워졌다.

‘그래도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어.’

타케히로가 씨익 웃었다.

어쨌든 분위기 반전에는 성공했다.

아스널이 벵거볼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타케히로의 ‘예토 전생’ 덕분이었다.

이 스킬은 팀이 최전성기에 펼쳤던 최고의 전술을 잠시나마 펼칠 수 있었다.

마치 죽은 자를 되살리는 강령술 같았다.

비록 트로피와 멀어지면서 점점 최악의 전술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지만,

아스널의 부흥기를 이끈 최고의 전술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스널. 힘내자!’

타케히로도 이순신처럼 후방에서 선수들을 격려했다.

“조용한 타케히로가?”

아스널 동료들은 놀랐다.

그만큼 타케히로는 이기고 싶었다.

경기는 점점 치열해졌다.

두 팀의 미드필더에는 테크니션들이 즐비했다.

기술과 패스의 향연은 팬들을 즐겁게 했다.

이광인과 오쿠보가 측면에서 상대편을 흔들었다.

아스널의 측면 수비수들과 수비형 미드필더는 슬라이딩 태클이 아닌 커트로 곧바로 역습을 시도했다.

아스널의 공격수가 하비와 구멍 사이로 빠져나왔다.

“아스널의 쓰루 패스!”

중앙에 있던 또 다른 아스널 공격수는 원터치로 공을 앞으로 튕겨 낸 후 달렸다.

“이순신 선수가 따라붙습니다!”

“보경풍도 나오면서 거리를 좁힙니다!”

태클을 시도하려던 이순신은 얼른 다리를 접었다.

‘저번에 줄리앙과 시합했을 때처럼 스킬 하나를 봉인 당한 기분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함대는 무적입니다. 다만, 영국 팀 선수들에게 사용 시 부상 얻거나 카드를 받게 될 수 있습니다.]

높은 태클 적중률을 선보이는 ‘스페인 함대’지만 역사의 전례로 발목이 잡혔다.

‘칫. 페널티킥을 내줄 수 없지.’

아스널의 영국 출신의 공격수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골키퍼까지 제치려는 걸까요?”

흥분한 해설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하지만 아스널 공격수의 드리블이 다소 길었다.

골대는 비었지만,

슈팅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아스널의 칩슛!”

아스널 공격수가 찬 슛은 포물선을 그리며,

골라인 밖으로 나갔다.

“아쉽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던 타케히로가 머리를 붙잡았다.

“우리도 할 수 있어!”

오쿠보가 소리쳤다.

곧바로 꿈 FC의 반격이 시작됐다.

선수들이 오쿠보의 움직임에 맞추어 같이 위로 올라갔다.

아스널의 수비수가 전방에서 접근했다.

오쿠보가 힐끗 쳐다봤다.

“난 지나갈 수 없어도, 내 크로스는 지나가야겠어!”

측면을 돌파하던 오쿠보가 길게 크로스를 올렸다.

최전방에서 달리던 송희윤의 머리를 넘어갔다.

반대편에서 쇄도하던 이광인은 공을 한 번 잡아냈다.

“이광인 선수 노마크!”

아스널의 수비수들이 재빨리 수비 진영을 정비했다.

이광인은 김혁규를 향해서 낮고 빠르게 크로스를 올렸다.

퉁!

공은 아스널 수비수의 몸에 맞고 김혁규에게 닿았다.

튕겨져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김혁규가 머뭇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타케히로가 뒤에서 발을 높게 차올렸다!

“타케히로! 멋지게 공을 걷어냅니다!”

김혁규가 고개를 돌렸다.

“어? 언제 여기에 있었지?”

김혁규가 달려올 때 타케히로는 분명히 임단결 쪽에 있었다.

“괜찮아. 혁규 형!”

이광인이 김혁규를 위로했다.

“고마워!”

김혁규도 손을 흔들었다.

실제로 그의 움직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몸에 맞은 공이 상대편으로 넘어가자 아스널의 수비진이 더 우왕좌왕했다.

“오늘따라 아스널의 공격이 매우 매끄럽습니다.”

벵거볼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아스널은 짧은 패스를 중심으로 한 경기 운영을 했다.

“받아!”

“앗! 타케히로! 언제 저기까지 올라온 거죠?”

아스널의 중심에는 타케히로가 있었다.

이광인이 드리블을 칠 때도,

중앙에서 헤이니가 패스를 찔러 넣어 줄 때도,

오쿠보가 분명 제쳤는데 어느새 자신의 앞에는 타케히로가 있었다.

“역시 타케히로. 일본에서 온 닌자다운 움직임입니다.”

활발한 활동량을 펼치며 그는 그라운드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 결과.

아스널은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이순신은 답답했다.

“뭐지? 왜 저걸 못 보지?”

영상으로 볼 때 분명히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주긴 했다.

그러나 당황할 정도로 빠르거나 날카롭지는 않았다.

전반전 5분이 남은 시점, 이순신은 공을 툭툭 치며 앞으로 나갔다.

“이순신 선수. 측면에 있는 오쿠보에게 크로스!”

…를 하는 척했다.

경기 초반에 보여줬던 현무 때문에 아스널은 긴장했다.

몸을 움츠리며 잔뜩 쫀 상대편을 잠시나마 속였다.

이순신은 그대로 드리블을 쳤다.

“이순신 선수의 돌파!”

이순신이 움직이자 선수들은 약속된 움직임을 펼쳤다.

이광인과 오쿠보가 좌우로 빠지고,

헤이니는 측면에서 이순신을 보좌했다.

만약 상대에게 공을 빼앗길 것을 대비해서 구멍도 전진 수비를 펼쳤다.

“어?”

그 순간이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이순신도 당황했다.

페널티 에어리어에 있어야 할 타케히로가 밖에 나와서 자신을 견제했다.

‘왜 안 보였지?’

이순신은 힐끗 옆을 봤다.

공을 달라고 헤이니가 손짓했다.

두 사람의 2:1 패스가 이어졌다.

공을 잡은 이순신은 재빨리 김혁규에게 공을 건넸다.

“김혁규의 슛!”

“타케히로의 슬라이딩 태클!”

“발에 맞고 공이 나갑니다!”

타케히로가 일어나면서 옷을 툭툭 털었다.

“휴~”

한숨을 내쉰 타케히로는 이순신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피식 웃었다.

이순신도 같이 웃었다.

“진짜 스킬은 이거였구나.”

이순신은 공격진이 타케히로에게 왜 당했는지 알게 됐다.

[돌발 퀘스트 발생]

[영국 프리미어리그 4위권 이내의 강팀에게 홈&어웨이 승리를 거두세요.]

[보상 : 언성 히어로]

‘타케히로는 닌자가 아니었어. 언성 히어로였어.’

언성 히어로.

눈에 띄지 않는 선수를 의미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활약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에 띄지 않지만,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에게 주는 칭호였다.

타케히로가 사용하는 언성 히어로는 은신에 가까웠다.

이 스킬을 사용하면 상대편은 타케히로가 태클이나 슛, 몸에 공이 닿아야 존재가 드러났다.

“재밌는 스킬이네.”

이순신은 이 스킬이 매우 탐이 났다.

진짜 저격수가 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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