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53화 (154/161)

153화. 명량 해전

레알 마드리드가 내세운 건 단 하나.

우. 승.

“리그든, 컵대회든, 유로파리그든 단 하나의 우승 트로피를 커리어에 추가해 주십시오.”

“팀이 우승하지 못한다고 해서 제 가치가 그렇게까지 떨어지는 건 아닐 텐데요?”

손민흥은 몸값 깎을 핑계라고 생각했다.

“물론이죠. 하지만 레알 마드리에게 필요한 건 경험입니다.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또 우승을 하는 법이니까요.”

손민흥의 표정은 굳어졌다.

사실 두 개의 우승기록이 존재했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올림픽 금메달이 있었지만, 두 대회는 모두 23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대회였다.

그렇기에 프로의 성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렇기에 레알 마드리드는 두 개의 트로피를 우승경력으로 치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 관계자는 말을 이어갔다.

“물론 부상 없이 지금 기량만 유지해준다면 영입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측정된 1000억은 지불할 수 없죠. 그보단 많이 깎일 겁니다.”

손민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축구는 결국 팀플레이.

아무리 멋진 골을 넣었어도, 팀 성적이 더 중요시됐다.

손민흥은 생각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토트넘에서는 그보다 낮은 가격에 보낼 생각이 없겠지만,

자본주의 법칙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이적료야 어차피 구단이 받을 돈, 연봉을 올리고, 우승 트로피를 든다면 선수 개인에게 더 이득이었다.

손민흥 스스로에게도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서도 좋은 조건이었다.

손민흥은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내년부터 이순신 선수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뛴다고 하던데, 그러면 비유럽 쿼터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희의 플랜은 손민흥, 주니오르, 이순신. 이 세 선수를 비유럽 쿼터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손민흥은 가슴이 울컥했다.

보통 남미 선수들을 위해서 비유럽쿼터를 사용하는데 그걸 아시아 선수 두 명을 포함해서 세운다?

‘이래선 열심히 할 수밖에 없잖아…’

손민흥은 각오를 다지며 한때는 자신의 소속팀이었던 레버쿠젠과의 경기에 임했다.

1차전에서는 0:0 으로 비겼기 때문에 토트넘으로선 승리가 절실했다.

“오늘 손민흥 선수의 컨디션이 좋습니다!”

“어게인 선수가 오늘은 서포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손민흥 선수! 전 소속팀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찰칵.

손민흥이 팬들을 향해서 손으로 만든 카메라를 들었다.

개인의 커리어, 팀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유로파리그 우승컵이 꼭 필요했다.

***

어느덧 4월달이 되었다.

유로파리그는 8강전을 앞두고 있었다.

꿈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테르 밀란, 올림피크 리옹, 아스널, 벤피카, AC 밀란, 토트넘이 8강에 올랐다.

8강에 오른 팀들의 표적은 꿈 FC와 벤피카였다.

“꿈 FC와 벤피카를 잡고 4강에 오를 팀은 누구?”

이러한 뉴스를 보자 이순신은 분개했다.

“아니. 우리가 돈 내고 올라왔나? 아직도 우리가 만만한가?”

“진정해. 순신아.”

쪽!

신자영이 이순신의 볼에 뽀뽀했다.

이순신의 감정은 살짝 누그러들었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핸드폰으로 유로파 관련 뉴스를 보고 있었다.

“어느 팀이랑 붙고 싶어?”

“신자영?”

밤새 붙어있고서도 부족한지, 이순신의 본심이 툭 튀어나왔다!

“야!”

신자영은 부끄러운지 이순신의 팔뚝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농담하지 말고 진지하게!”

이순신은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래도 역시 그 팀이랑 붙고 싶어.”

이순신이 원한 팀은 토트넘이었다.

***

8강전 대진표가 나왔다.

신자영은 연습장 한쪽에 크게 붙어있었다.

그만큼 팀에서도 유로파를 중요하게 여겼다.

토트넘 vs 벤피카.

꿈 FC vs 아스널.

올림피크 리옹 vs 인테르 밀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AC밀란.

이순신은 대진표를 보고 흐뭇했다.

그가 원한 팀은 토트넘과 벤피카를 제외한 모든 팀이었다.

토트넘은 결승전에서 붙고 싶었다.

반면, 전력이 약한 벤피카와 붙어서 이긴다면,

또 평가절하될 수 있었다.

이순신은 각 리그에서 잘 나가고 있는 팀들과 붙어서 꿈 FC의 실력을 제대로 증명해보고 싶었다.

“얼떨결에 꿈 FC가 스페인리그의 희망이 되었네?”

김혁규의 말대로였다.

꿈 FC가 어느덧 유로파에서 마지막 남은 스페인리그 팀이 됐다.

스페인축구협회도 마찬가지였다.

챔피언스리그에서 아직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남아있긴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8강전에서 두 팀이 또 만났다.

둘 중 하나는 떨어진다는 소리였다.

결국, 진심을 다해서 꿈 FC의 선전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꿈 FC. 파이팅!”

“스페인 축구의 자랑!”

처음에 출전을 반대했던 이들의 응원 덕분에 꿈 FC의 위상이 한층 더 올라갔다.

[트로피 : 스페인의 희망을 획득했습니다.]

[스페인 이외의 지역에서 경기를 치를 시 능력치가 약간 상승합니다.]

이순신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트로피 효과에 깜짝 놀랐다.

“뭐야? 개꿀!”

***

벚꽃이 만발할 무렵.

꿈 FC와 아스널의 경기가 런던에서 펼쳐졌다.

아스널의 현재 리그 순위는 5위, 컵 대회는 일찌감치 탈락했고, 그들에게도 남은 트로피의 희망은 유로파였다.

지금은 우승권 전력에서 멀어졌다.

한때는 1부 리그에서 무패우승의 신화를 이룬 대단한 전력을 가진 팀이었다.

특히 이번 시즌에 그들이 영입한 일본의 센터백 타케히로는 이순신과 좋은 매치업이 되었다.

이순신이 수비수지만 화려한 플레이로 주목을 받았다면,

타케히로는 폭발적인 화려함은 없지만 공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수였다.

김재민이 이제 빅리그에 진출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타키히로는 그전에 먼저 유럽에서 센터백과 윙백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묵묵히 그들 뒤에서 응원하는 충무공과 미치후사의 대리전!

임진왜란의 재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다.]

[흥. 네놈도.]

명량해전이란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건 충무공이었다.

미치후사는 10배가 넘는 압도적인 병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패배했다.

‘이렇게 불타는 충무공은 처음 보네.’

이순신이 고개를 돌려서 오쿠보를 봤다.

오늘 선발 출전한 오쿠보는 스트레칭을 하는 중이었다.

‘일본 측에서는 시스템을 사용하는 게 오쿠보일 줄 알았는데…’

오쿠보와 눈이 마주친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잘하자! 간바레!”

“으라차차! 순신 형!”

두 선수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응원했다.

이순신의 시선은 저 멀리 있는 타키히로에게 향했다.

그의 등 번호는 9번.

보통은 공격수가 다는 번호지만, 그는 두 가지의 선입견을 한 번에 깨고 싶었다.

아스널은 아시아 선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만큼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스널에서 9번이란 등 번호는 저주라고 불릴 만큼 끝이 좋지 않았다.

한때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라고 불리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는데 일조했던 박시탈도 이곳에서 커리어로우를 찍었다.

“충무공 때문인가? 가만히 있어도 전투력이 끓어오른다.”

정작 타케히로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전쟁이다!]

하지만 그의 후원자라고 할 수 있는 미치후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타케히로도 공격성을 가지게 되길 바랐다.

임진왜란 때 해적왕이라 불리며 조선 침공의 선봉에 섰고,

명량에서 자신이 탄 대장선이 난파당해서 죽었기에 이번만큼은 꼭 이기고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타케히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삐이익-

마침내 유로파리그 8강 1차전이 시작됐다.

영국 신사들이지만 공격은 야만적으로 이루어졌다.

초장부터 기를 죽일 요량이었다.

꿈 FC를 향해 연신 중거리 슛을 쏘아댔다.

하지만 이순신과 보경풍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정밀타격이 아닌 공갈포가 계속되자 도리어 아스널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가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순신의 발끝에서 빌드업이 시작됐다.

이순신이 드리블을 치면서 수비라인을 벌렸다.

“단결!”

이순신이 임단결에게 공을 건넸다.

아스널의 수비가 붙자,

임단결은 가까이에 있는 오쿠보에게 공을 넘겼다.

그는 재빠르게 공을 다시 임단결에게 넘겼다.

“스페인 팀답게 삼각형을 이룬 티키타카가 인상적이네요.”

“그동안의 전술과는 사뭇 다릅니다.”

아스널은 젊고 빠른 팀이었다.

기존의 롱패스를 기반으로 한 전개는 자칫 역습을 내줄 수 있었다.

이에로는 철저히 중원 싸움에서 승부를 보고자 했다.

이순신은 하프라인 근처에서 닻을 내렸다.

“이 뒤로는 아무도 못 지나간다!”

이순신의 선언에 공격수들은 든든했다.

임단결에서 이광인으로 이어진 패스를 타케히로가 먼저 걷어냈다.

그 공은 이순신에게 날아갔다.

공이 떨어지기 전에 이순신의 발등에 먼저 닿았다.

[천자포가 발동했습니다.]

[천자포가 ‘현무’로 진화합니다.]

[현무가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찬 슛은 차가운 얼음 비수가 되어 아스널의 골대를 향해서 날아갔다.

공이 타케히로의 얼굴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마치 심장이 얼어버릴 거 같은 심정이었다.

“이순신 선수의 기습적인 중거리 슛!”

퉁!

공은 골키퍼의 손에 맞고 튕겨 나왔다.

“코스는 좋았으나 골로 연결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데요!”

‘현무는 단순한 슈팅이 아니지.’

사방신의 현무는 물, 얼음, 겨울을 상징했다.

[빙결진 효과가 발동합니다.]

[50%의 확률로 상대 팀 선수들의 반응 속도가 느려집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순신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공이 날아간 그라운드 위에 반경 20M 크기로 새겨진 현무의 형상!

상대편 골키퍼와 타케히로를 포함해서 여러 선수들의 머리 위에 얼음 아이콘이 표시됐다.

[상대 선수 4명이 빙결진에 갇혔습니다. 현무의 쿨타임이 해제됩니다.]

현무는 한 번 사용하면 20분의 쿨타임이 존재했다.

그런데 빙결진에 걸린 선수가 4명이 넘으면 바로 초기화가 가능했다.

[국왕의 축포 효과가 발동합니다.]

[슛 성공률이 누적됩니다.]

골로 이어지지 않아도 골찬스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이순신은 매우 흡족했다.

이순신이 기뻐하는 사이에 공을 잡은 이광인이 가볍게 골문 안쪽으로 공을 차 넣었다.

“골입니다!”

“꿈 FC가 1:0으로 아스널 홈구장에 비수를 꽂아 넣었습니다!”

엄청난 야유가 꿈 FC를 향해 쏟아졌다.

“이 새끼들아! 꺼져!”

“우우.”

구구궁.

관중들 야유가 지진을 만들었다.

런던에 위치한 그들의 경기장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 순간이었다.

[끌끌끌. 바로 그거야.]

만족스러운 듯 미즈후사가 웃었다.

얼어붙은 타케히로의 심장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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