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52화 (153/161)

152화. 비운의 선수

“대단한 슛입니다.”

“임단결 선수는 평소에서도 이순신 선수가 멘토라고 말했는데요. 역시 그 멘토에 그 멘티답군요!”

“맞습니다. 가장 공격적인 수비 듀오입니다!”

꿈 FC 5 : 0 지로나.

그야말로 완승이었다.

지로나 선수들은 전광판에 새겨진 스코어가 믿기지 않았다.

‘우리가 졌다고? 이렇게 큰 점수 차로?’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 찼다.

이번 시즌에서 2부 리그 우승을 한 뒤 멋지게 1부 리그로 컴백하고자 했다.

현재까지 순탄했던 그들의 계획에 꿈 FC는 찬물을 끼얹었다.

팬들도 깜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순신이 빠졌는데도 꿈 FC의 전력이 이렇게 강하다니…”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한동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이그노도 차라리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럴 리가 없지. 하하… 그는 허망한 웃음을 지었다.”

이 놀라운 경기력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순신.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와, 이건 대박인데? 단순히 빙의나 스킬 공유보다 훨씬 효율적이야.’

이순신은 즐거움을 감출 수 없었다.

교체되어 벤치로 들어갔을 때도 주장 완장 효과는 발동했다.

그는 교체되어 나올 때 이광인에게 완장을 넘겼다.

[팀의 신뢰가 최대치에 달했습니다.]

[주장 완장 효과가 유지됩니다.]

이미 팀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기에, 형식적인 절차는 의미가 없었다.

[노이즈 캔슬링이 유지됩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벤치에 있음에도 꿈 FC가 계속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우승한 뒤 새로운 트로피를 얻었다.

[트로피 : 에스파냐의 왕]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우승했습니다.]

[벤치에서 자신의 능력치와 스킬을 필드에서 뛰고 있는 동료들에게 공유할 수 있습니다.]

[스킬이 발동하는 동안 체력은 계속 소모됩니다.]

이 능력 덕분에 임단결은 이순신과 거의 똑같은 슛을 찰 수 있었다.

‘보너스도 대박이지.’

이순신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득점왕과 MVP를 차지했다.

원래는 한 명의 선수에게만 스탯이나 스킬을 공유할 수 있었다.

[추가 효과로 최대 3명까지 스탯과 스킬이 공유 가능합니다.]

이순신은 아낌없이 공유했다.

‘천궁’은 임단결에게,

자신의 ‘스탯’은 구멍에게,

‘방패연’은 보경풍에게 공유했다.

‘그래도 체력 소모가 꽤 상당해.’

만약 농구나 아이스하키처럼 교체가 자유로운 운동이었다면, 다시 필드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축구라 다행이었다.

한 번 교체되면 다시 필드로 들어갈 일이 없었다.

‘벤치에서 나도 할 수 있는 게 생겼어!’

평소에 벤치에서 할 수 있는 건 응원밖에 없었다.

마음만은 함께 한다고 했으나, 진짜 마음만 함께 해야 했던 지난날들이 생각났다.

자신이 빠지면 팀 전력이 약해지는 부담감을 덜어냈다.

장기기증의 순간처럼,

산란을 끝낸 연어처럼,

자신의 능력을 벤치에서도 나눌 수 있다는 게 기뻤다.

벤치에서도 그는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됐다.

“순신이 형! 봤어요?”

저 멀리서 임단결이 달려왔다.

“그래. 봤다!”

이순신은 달려오는 임단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줬다.

이광인도 해맑은 얼굴로 달려왔다.

“순신이 형!”

“역시 막내 형답게 리딩을 잘하는데?”

이광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팀의 일원이 될 때와 주축이 될 때 능력치 편차가 큰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 차이를 줄이는 게 그의 가장 큰 과제였다.

“광인아. 간만에 주장 달아 보니까 어때?”

“역시 체질이더라구요. 하하.”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자신감을 어느 정도 회복한 거 같아서 다행이다.’

공격에서 풀리지 않을 때는 이광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풀어줘야 한다고 이순신은 생각했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꿈 FC는 성장했다.

“다음은 무조건 꿈 FC에 걸어야겠어.”

이그노 역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하지만…

다음 경기는 안타깝게도 레알 마드리드였다.

그리고 이순신이 풀타임을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패배했다.

***

유로파리그에선 조별예선 2위 팀들과 챔피언스리그 3위 팀들의 단판 승부가 펼쳐졌다.

치열한 경기 끝에 유로파 16강전에 참가할 팀들이 가려졌다.

선수들은 모여서 조 추첨 결과를 지켜봤다.

“시작한다. 제발 약팀이 걸렸으면!”

하지만 이순신은 조 추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얼마 전에 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를 되짚어 보고 있었다.

꿈 FC 0 : 3 레알 마드리드.

모구단과 위성구단의 맞대결로 팬들의 관심을 일으켰다.

“주니오르!”

특히나 헤이니의 의지가 가장 타올랐다.

비슷한 연배의 라이벌 주니오르를 꺾어야만 자신도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헤이니! 침착해!”

헤이니는 악마에 빙의가 되었는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평소와 다르게 무리한 드리블과 슈팅을 남발했다.

결국, 그것이 화를 불러일으켰다.

“헤이니 선수! 자살골이라뇨!”

이순신이 재빨리 방패연을 썼지만, 막아낼 순 없었다.

이에로는 헤이니를 교체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후 꿈 FC는 역습으로 맞섰지만,

레알 마드리드가 엄청난 팀플레이를 발휘했다.

결국, 헤이니의 자살골이 시발점이 되었다.

다운된 팀 분위기는 경기의 승패를 뒤집지 못했다.

이순신은 분투했다.

‘흑호랑이’를 아무리 써도 소용없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꺾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젠장.’

이순신은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는가?’라고 물었다.

아니었다.

그 역시 사람이었다.

‘내년부터 같은 팀이 될 거라서 그런가? 아무리 힘을 끌어모아도 힘을 낼 수가 없어…’

특히 컨디션이 좋은 주니오르와 벤제마를 동시에 막는 건 너무나 어려웠다.

둘 중 하나는 완벽하게 막을 수 있지만, 다른 선수들이 아직 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스템보다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어…’

씁쓸함이 이순신의 입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더욱더 놀라운 일은 8강전에서 발생했다.

엘 클라시코.

8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만났다.

결과는

바르셀로나 2 : 0 레알 마드리드.

각성한 줄리앙의 활약이 엄청났다.

이순신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상성.

꿈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는 흡사 가위바위보와 같은 관계였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이순신은 남은 전력을 유로파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조별예선을 1위로 통과해서 얻은 보상을 사용했다.

-16강전 팀 선택권-

이순신은 반대편 시드를 살펴봤다.

플레이오프를 거치고 올라온 8팀은 셀틱, 레버쿠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테르 밀란, 아약스, 벤피카, 보르도, 비야레알이었다.

“감독님. 저희가 어느 팀과 붙어야 유리할까요?”

고개를 돌려 이에로에게 물었다.

“전력상으로는 가장 떨어지는 팀은 있지만, 방심할 수 있는 팀은 없다.”

이에로는 자칫 자만심을 갖거나, 혹은 부담감을 가질 수 있기에 신중하게 대답했다.

“보르도면 황조 선배가 있는 팀 아냐?”

“맨유랑 인테르는 왜 여깄냐고!”

이순신은 선수들의 반응을 살폈다.

이왕이면 가장 많은 선수들이 원하는 팀을 선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의견은 천차만별이었다.

최대한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강팀을 고를 것인가?

지더라도 후회 없는 강한 팀을 만날 것인가?

“첫 번째 시드는 꿈 FC입니다.”

선수들은 화면에 집중했다.

‘나의 선택은…’

이순신은 붙고 싶은 팀을 선택했다.

그 팀은 그나마 전력이 가장 떨어지는 스코틀랜드의 셀틱이었다.

“꿈 FC와 셀틱이 16강전에 맞붙습니다.”

“우와!”

꿈 FC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에로 감독도 씨익 웃었다.

맨유나 인테르 밀란보다는 확실히 괜찮았다.

“아깐 맨유랑 붙고 싶다고 했지만, 그건 8강에서 붙으면 되지!”

헤이니가 넉살을 부렸다.

16강전 제1경기.

꿈 FC vs 셀틱.

16강전 제2경기.

아스널 vs 아약스.

16강전 제3경기.

레스터시티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6강전 제4경기.

나폴리 vs 벤피카.

16강전 제5경기.

올림피크리옹 vs 보르도

16강전 제6경기.

AC밀란 vs 비야레알

16강전 제7경기.

페네르바흐체 vs 인터 밀란.

16강전 제8경기.

토트넘 vs 레버쿠젠.

……이 확정되었다.

“이렇게 보니까 만만한 경기가 없네.”

“그러게. 이변이 없는 한 8강전에서는 챔피언스리그 못지않겠어.”

챔피언스리그라는 단어를 듣자 선수들은 타오르기 시작했다.

국가대표라면 월드컵, 클럽 대표라면 챔피언스리그를 뛰고 싶었으니까.

***

“꿈 FC가 셀틱을 꺾고 가장 먼저 8강에 진출했습니다!”

“이순신 선수가 해당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네요!”

‘올해는 남다를 것이다.’

현재 토트넘은 리그에서 3위를 달리고 있다.

고질적인 수비 문제를 해결했다.

대한민국에서 괴물 센터백이라고 불리던 김재민을 300억을 주고 영입했다.

그는 페네르바흐체에서 뛰다가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이적 당시에는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토트넘은 센터백 보강을 위해 가장 먼저 문의했던 게 이순신이었다.

어찌 보면 자기는 그런 이순신의 대용으로 영입된 상태였다.

‘실력으로 증명해주겠어.’

김재민은 리그 데뷔 때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강력한 수비와 몸싸움,

엄청난 킥력,

피지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로 데뷔 골도 넣었다.

토트넘 팬들에게 이순신을 영입하지 못한 아쉬움을 떨쳐주기에 충분한 활약이었다.

전방에 손민흥, 후방에 김재민이 지키고 있는 토트넘은 단숨에 우승 전력권이 됐다.

그럼에도 팬들은 살짝 아쉬워했다.

“이순신이 아닌 김재민이었으면 어땠을까?”

“이순신과 김재민이 동시에 영입됐으면 지금 리그 선두였겠는데?”

김재민은 자존심이 강한 선수였다.

‘이번 유로파에서 만나기만 하면 발라주지.’

의지를 다지며 자신이 더 뛰어난 선수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것은 손민흥도 마찬가지였다.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후배의 활약이 대단히 기뻤다.

그동안 유럽에서 대한민국 선수로 혼자 고군분투하는 게 외로웠는데 이순신의 활약은 그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됐다.

“토트넘이 레버쿠젠과 경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손민흥 선수도 이제 트로피가 필요하죠!”

손민흥의 각오도 남달랐다.

현재 세계 최고의 측면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난 몇 년 동안 매 시즌 20골씩 넣는 최고의 공격수.

이런 공격수가 17살에 데뷔하여 어느덧 3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우승 트로피가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됐다.

팀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파트너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주전 공격수이자,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어게인이었다.

그나마 올해는 보상이라도 받은 듯,

레알 마드리드에서 오퍼가 왔다.

“손민흥 선수. 당신의 활약을 줄곧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의례적인 관심표현일 수 있지만, 손민흥은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년에 저희 팀에서 함께 뛰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진짜로 나를?

구체적인 계약서가 에이전시를 통해서 오갔다.

이적료는 1000억 원 수준.

이순신 몸값의 5배가 넘었다.

성사되면 아시아 선수 중에서도 최고 기록이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

그들이 내세운 조건을 듣자 손민흥은 어이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