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51화 (152/161)

151화. 임단결이 천궁을?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영광도 잠시뿐.

꿈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축구선수에게 일상은 연습과 경기였다.

꿈 FC는 스페인으로 돌아온 후 코파 델 레이.

즉, 두 번째 국왕컵을 준비했다.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 참여한 후 ‘지로나’와의 16강전을 앞두고 있었다.

32강전에서는 돌풍을 일으키며 올라온 4부 리그 팀을 만났었다.

“꿈FC는 자비가 없군요!”

4부 리그 팀은 운동장에서 무릎을 꿇고 좌절했다.

“김혁규 선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이번 경기에서 MVP에 뽑혔습니다!”

“아- 개운하다!”

김혁규는 씨익 웃었다.

돌풍을 잠재우고 마음 편하게 사우디아라비아로 꿈 FC는 날아갔었다.

***

연습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누구나 다 열심히 하는 건 아니었다.

“혁규 형! 받아!”

낮고 빠르게 빈 공간으로 공을 차 줬다.

‘아?’

김혁규는 뛸 생각을 하지 않고, 잠시 공을 바라보다가 뛰어갔다.

당연히 놓칠 수밖에 없었다.

공은 골라인 밖으로 벗어났다.

“아- 미안.”

김혁규는 능글맞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나선 주변에 있던 헤이니와 장난을 쳤다.

이광인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좀 더 열심히 뛰지…’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김혁규뿐만 아니라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다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다.

‘난 좀 더 잘하고 싶은데.’

이광인은 좋은 활약을 보여서 발렌시아,

나아가서는 대표 팀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되찾고 싶었다.

그러나 꿈 FC는 아니었다.

혈전을 치른 덕에 긴장이 풀렸다.

무엇보다 동기부여가 부족했다.

또다시 우승을 해도 내년에 유로파리그에 참여할 수 없었다.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스폰서도 이번 대회에서 끝이었다.

협회에서 새로운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틀어진다면 올해처럼 막대한 상금을 기대할 수 없었다.

임청수와 강대범은 특별보너스로 이미 선수와 구단 관계자들에게 보너스로 2억씩 쏜 상태였다.

그것이 동기부여가 될 줄 알았는데 도리어 선수들에게 독이 되었다.

“정신 차려! 아직 리그도 남았고, 대회도 많이 남았어!”

참을 만큼 참았던 이순신이 연습 중에 고함을 질렀다.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흑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혁규. 똑바로 하자. 안 그러면 내가 더 속상해.”

“미안.”

아까 이광인에게 사과했을 때와 태도가 사뭇 달랐다.

이순신이 연습할 때 화를 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 이순신이 화를 낼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다들 트로피 하나에 만족할 거야?”

그 말에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축구선수가 높은 연봉을 받고 싶다면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좋은 성적과 커리어 관리였다.

꿈 FC가 대우가 좋은 편이긴 하지만, 다들 여기에 안주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의 목표는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1군 무대였다.

심지어 ‘몸값 뻥튀기’나 ‘주급 도둑’ 같은 취업 사기꾼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역시 트로피였다!

설령, 당장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커리어가 좋은 선수에게 구단은 희망을 품는다.

언젠가는 터지겠지,

우리라면 그 재능을 살려줄 수 있겠지.

리그에서 득점왕을 했어도,

아무리 합작 골을 많이 넣었어도,

메이저 대회 우승컵이 없다 소용없었다.

축구는 결국 팀플레이다.

개인의 기록도 결국 팀이 만들어주기 때문이었다.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 득점왕을 보유하고 있어도 우승 트로피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이는 한 전설적인 선수가 자신의 팀 후배들에게 한 말이었다.

선수들은 그 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린 구단에 이미 많은 돈을 벌어다 줬잖아. 그러니 이제부터 즐기는 축구를 하면 안 돼?”

헤이니의 말에 이순신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돼.”

“즐기라고. 순신! 성적에 목을 매면 안 된다고!”

“아직 즐길 순간은 아니야.”

이순신도 기본적으로 축구는 즐겨야 한다는 게 방침이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분위기가 다소 험악해지자 이에로가 나섰다.

“이순신의 말이 맞다.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필요한 건 트로피지. 돈이 아니다. 트로피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젊은 선수들은 반박했다.

“하지만 상위구단은 엄청난 연봉과 이적료를 써서 우승을 차지하잖아요!”

“단순히 돈만 쓴다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할 수 있다면 난 축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에 선수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졌다.

“돈을 많이 쓰는 구단이 우승을 하는 게 아니라 더 간절한 구단이 우승하는 것이다.”

“우승을 원하지 않는 구단은 없습니다! 다들 간절하지만, 구단 자금의 규모는 어쩔 수 없잖아요.”

이에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렇게 멍청한 놈이 어떻게 우리 팀에 있는지 모르겠군.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본을 쓰는 게 무엇이 잘못됐지? 정해진 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경험과 커리어에서 이에로를 찍어누를 수 있는 사람은 꿈 FC에서 거의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젊은 선수는 바로 사과했다.

이에로는 선수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괜찮다. 실수를 빠르게 파악하고 다음부터는 안 그러면 된다. 그럼 다시 연습을 시작하자.”

“넵!”

선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다시 자신들의 포지션으로 돌아가서 연습을 시작하려고 할 때,

“순신!”

이에로가 이순신을 불렀다.

“왜 그러시죠?”

이에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너는 나중에 감독을 해도 성공할 수 있을 거 같다.”

“칭찬 감사합니다.”

“고맙다. 네 덕분에 나도 우승 청부사가 되어가고 있다.”

“아닙니다. 다 감독님이 잘해주셔서 그런 거죠.”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보상이 발동했다.

[언성이 Lv.4에 도달했습니다.]

[감독이 필드뿐만 아니라 훈련장 내에서도 당신을 신뢰합니다.]

[팀이 바뀌면 언성 레벨이 하락합니다.]

[해당 감독이 팀을 맡으면 언성 레벨이 유지됩니다.]

이순신은 약간 아쉬웠다.

‘만약 레알 마드리드였다면 그대로 유지가 됐을…’

그 순간, 이순신의 머릿속으로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만약 꿈 FC가 올해도 좋은 성적을 내면 1부 리그 팀들이 이에로 감독님을 가만둘까?’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트래블을 달성하십시오.(1/3)]

[리그 우승, 국왕컵, 유로파리그,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중 3개 대회에서 우승]

[보상 : 당신이 원하는 감독과 한 팀에서 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이순신에게는 최고의 보상이었다.

‘일단 1개의 트로피는 확보했어. 이대로라면 리그 우승도 크게 어려운 건 아니야. 그렇다면 국왕컵과 유로파리그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따내야 해.’

둘 다 쉬운 목표는 아니었다.

토너먼트는 항상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양쪽 대회 모두 최고의 팀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해내야 해!’

이순신은 연습 경기를 뛰면서 의지를 불태웠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축구를 계속하고 싶어.’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까지 얻은 이순신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축구 선수로서 욕심을 조금 더 내 보고 싶었다.

‘차붐이나 마라도나를 뛰어넘는 전설이 될 거야.’

이순신의 의지가 선수들에게도 전해졌다.

‘역시 순신이가 분위기 메이커야.’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신자영은 흐뭇했다.

김혁규도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연습 경기에 임했다.

***

국왕컵 16강전이 시작됐다.

양 팀의 선수들이 경기에 입장했다.

지로나는 16강에 진출한 유일한 2부 리그 팀이었다.

특출난 선수는 없지만,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으로 토너먼트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지로나라… 승호 형 복수를 해줄 수 있겠어.”

천승호와 함께 한때 바르샤 동기였던 임단결은 유독 불타올랐다.

또한, 2부 리그와 3부 리그의 1위 간의 맞대결이라서 나름 화제성도 있었다.

“그래도 지로나가 좀 더 유리하지 않겠어?”

“당연하지. 약팀은 강팀과 싸운 뒤에 오는 후유증이 오래가니까.”

많은 전문가들은 지로나의 승리를 예측했다.

스페인의 도박사인 이그노도 지로나한테 무려 100억을 베팅했다!

“꿈 FC가 상승세이긴 하지만, 2부와 3부 리그의 차이, 경험의 차이도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지. 후훗.”

이 정도까지는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그에게는 믿고 있는 고급정보가 있었다.

“이순신이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쓰러졌던 건 건강 이상, 그렇다면 출전하지 않겠지.”

훗날,

그는 정보를 준 사람을 평생 원망했다.

무려 1억짜리 정보가 찌라시가 됐으니까…

이순신은 선발명단에 들어 있었다.

“이순신 선수. 프리킥 골!”

“이순신 선수의 중거리 슛!”

“골입니다. 지로나 선수들이 전혀 반응하지 못합니다!”

“이광인이 올려준 코너킥!”

“이순신 선수의 헤딩골!”

“정말 위치선정이 좋네요!”

이그노의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분명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전반 30분에만 해트트릭을 기록한 이순신은 후반전에 교체됐다.

그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 신이시여. 저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내려주셨군요.”

그가 생각하기에 이순신은 꿈 FC 전력의 95%였다.

즉, 이순신이 없다면 평범한 3부 리그 팀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숭배한 신은 악마라도 되는 것일까?

희망의 빛이 아니라 희망 고문이었다.

그의 심장은 아까보다 더 빨리 뛰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놀랍게도 이순신이 빠진 꿈 FC는 후반전에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광인 선수의 패스!”

“윤광섭이 받아서 치고 올라갑니다!”

“그대로 크로스!”

“송희윤. 헤딩슛!”

“꿈 FC! 추가 골을 넣습니다!”

홈구장에서 3부 리그 팀한테 4:0으로 지고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은 지로나 팬들은 악몽을 꾸는 듯했다.

“안 돼!”

이그노의 심장이 100M 달리기를 한 것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지로나의 슛!”

힘없는 슛은 보경풍이 지키고 있는 골문을 뚫을 수 없었다.

“임단결 선수의 오버래핑!”

4: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 공격적으로 나오는 꿈 FC에 당황한 건 지로나였다.

임단결이 빠른 스피드에 지로나 선수들은 힘없이 흩날렸다.

“임단결 선수 벌써 40M 드리블입니다!”

임단결이 측면에서 방향을 틀어서 중앙으로 향했다.

그야말로 미친 드리블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그의 몸놀림은 가벼웠다.

그동안 이순신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그 역시 최고의 윙백으로 가는 루트를 타고 있었다.

골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순신이 형이라면 여기서 슛을 날렸겠지?’

임단결은 과감하게 슛을 때렸다.

“기습적인 중거리 슛!”

[천궁이 발동합니다.]

상대편 골키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슈팅력을 가진 선수가 꿈 FC에 또 있었다고?’

최선을 다해서 손을 뻗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임단결이 찬 슛은 그대로 골문 구석으로 꽂혔다.

당연히 상대편 골키퍼는 막을 수 없었다.

그가 찬 슛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이순신의 천궁’과 똑같은 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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