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골든타임
수많은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이순신이 쓰러졌다!
“순신이 또 저러네?”
“간만에 기절할 정도로 열심히 하긴 했지.”
안타깝게도 꿈 FC 선수들은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으어어.”
이순신의 호흡이 가빠졌다.
‘이 자식들아. 이번엔 진짜라고!’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다다닥!
“다들 꺼져!”
저 멀리서 줄리앙이 심각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아. 줄리앙 선수. 이순신 선수에게 급하게 달려갑니다.”
줄리앙이 이순신의 몸을 흔들었다.
그런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허준이 매우 놀랍니다.]
허준은 재빨리 침을 놓았다.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는 것을 잠시 늦춥니다.]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늦출 수는 있어도, 회복할 수는 없었다.
허준조차도 당황스러웠다.
“어?”
그 상황을 지켜보던 이광인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들 것!”
이광인이 벤치에 사인을 보냈다.
시상식을 준비하던 대회 관계자들도,
꿈 FC 선수들도,
바르셀로나 선수들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후웁! 후웁!”
유일하게 줄리앙만이 이순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CPR.
즉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
이 응급처치는 보통의 응급처치가 아니었다.
[잔 다르크가 신성력을 발동합니다.]
무려 신의 가호가 담긴 신성력이었다.
[허준이 팔다리를 주물러 줍니다.]
허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혈액순환이 잘되도록 열심히 발 마시지를 해줬다.
인체의 오장육부는 발과 연결되어있기에 심장과 폐에 관련된 혈을 자극했다.
“으윽.”
드디어 이순신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됐다!”
땀을 뻘뻘 흘리는 줄리앙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찰싹!
한숨 돌린 허준과 잔 다르크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깜박깜박.
이순신이 눈을 깜빡였다.
시야가 선명해졌다.
이순신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고…고마워.”
이순신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
그날 밤.
바르셀로나 숙소에서는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줄리앙. 잘했어!”
“와- 빠른 상황 판단력 보소! 앞으로 골문 앞에서도 기대할게!”
줄리앙은 악당에서 영웅이 되었다.
언더독의 반란과 더불어 빠른 대처로 사람의 목숨을 구한 줄리앙.
축구계에서는 전설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더불어 의인상까지 받았다.
“뭘. 너네들도 쓰러지면 내가 나중에 구해줄게.”
“야! 그런 일은 없어야지!”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기겁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3부 리그 팀한테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팀 분위기는 상당히 훈훈했다.
이게 다 줄리앙 덕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빨리 대처할 수 있었던 거야?”
아모르의 질문에 줄리앙의 미소가 씁쓸해졌다.
그에게는 동생이 있었다.
이름은 캐서린.
발레리나를 꿈꾸던 금발의 예쁜 여동생이었지만,
줄리앙이 15살인가 17살 때쯤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것도 줄리앙이 보는 앞에서…
“캐서린!”
줄리앙의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순간이지만, 그럴수록 처절하게 심장에 파묻히는 기억이었다.
연말이라 구급대의 출동이 늦었다.
결국, 골든 타임을 놓쳐버렸다.
“응급처치만 했어도…”
무심코 내뱉은 구급대원의 말은 줄리앙의 가슴에 깊게 박혔다.
그 뒤,
따로 응급처치를 배워뒀다.
그라운드에서 써보는 건 실제로 처음이었다.
[그동안의 쌓은 악명을 모두 잃었는데도 상관없습니까?]
잔 다르크가 줄리앙에게 물었다.
“상관없어.”
줄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잔 다르크는 줄리앙의 변화가 놀라웠다.
줄리앙의 커리어가 좋아질수록 악명이 높아졌다.
축구 선수가 아닌 악마를 키우는 거 같은 죄책감.
성녀로 불렸던 그녀는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잔 다르크는 심각하게 자신이 준 능력의 회수도 고려했다.
그런데 줄리앙이 먼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이순신을 살릴 수 있는 스킬 아무거나!”
그라운드에서 선수를 살린다?
처음이었다.
대다수의 선수들의 시스템으로 경기 결과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사용했는데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스킬을 사용하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신성력 : 그라운드에서 쓰러진 동료를 살리기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악명이 높다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잔 다르크는 줄리앙에게 약관을 설명해줬다.
“상관없다고!”
악명을 잃는다는 것은 악명으로 얻은 신체적 능력치와 카리스마를 잃는다는 것과 같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기량 저하로 바르셀로나에서 방출될 수도 있는 상황!
줄리앙은 그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야경을 보며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 때 메시가 나타났다.
“여기 있었군.”
“메시 선배? 가서 더 즐기시지 않고?”
“즐길 만큼은 즐겼어. 그것보다 이것 좀 보라고.”
메시가 무언가를 보여줬다.
이순신의 인터뷰였다.
줄리앙은 화면에 집중했다.
“이순신 선수. 우선 몸은 괜찮으신지 묻고 싶군요.”
“줄리앙 선수의 빠른 응급처치 덕분에 큰 화를 모면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순신이 웃으면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마치 줄리앙에게 직접 말하는 거 같았다.
“훗.”
줄리앙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다행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를 잡는 이변을 보여주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기적이죠. 선수들이 모두 열심히 뛰어줬고, 상대가 바르셀로나라고 해서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거 같습니다.”
기자의 짓궂은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오늘 승리는 노력인가요? 운인가요?”
이에 이순신도 잘 대처했다.
“운이라고 해두죠. 다음에 만나면 실력으로 이길 수 있도록 저희는 계속 실력을 키울 겁니다.”
기자가 원하는 답을 들려줌과 동시에 바르셀로나와 언제든지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자 팬들은 열광했다.
“건방진 자식.”
줄리앙의 말과는 다르게 그 역시 이순신과의 재대결을 기대하고 있었다.
“국왕컵에서 다시 만나면 기필코 잡아주자.”
“녀석이 레알 마드리드로 가면 그때는 진짜 전쟁이 되겠네요.”
메시와 줄리앙은 의지를 다졌다.
오늘 겨우 한 번 졌을 뿐이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또 진다면, 그건 운이 아니라 실력이란 걸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메시는 줄리앙의 어깨를 두드린 후 다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잔 다르크가 묻습니다.]
[그동안 쌓은 악명이 사라진 거 아깝지 않은지?]
“다시 하면 돼. 이순신처럼.”
이순신은 축구 선수로서 근 2년이란 시간을 잃었다.
줄리앙은 결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번엔 아모르가 줄리앙을 불렀다.
“줄리앙.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데?”
“인터뷰?”
줄리앙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들은 호텔 로비로 가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을 알아본 팬들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줄리앙도 웃으면서 화답했다.
빠른 응급처치, 동생의 사연, 오늘의 경기 등에 관해서 줄리앙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끝으로 이순신 선수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없으십니까?”
줄리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서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제 축구 인생에서 평생 라이벌은 이순신입니다.
그렇기에 그를 두 번이나 잃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불사조 같은 선수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음번엔 그에게 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악마의 재능이라 불리는 선수치고는 너무나 건전한 선언이었다.
‘개종이라도 한 건가?’
오죽하면 기자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
줄리앙은 그날 이후로 달라졌다.
악명은 사라졌지만,
감각은 몸에 일부 남아 있었는지 바르셀로나의 주전 공격수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축구계의 악동 하나가 사라졌지만,
그래도 팬들은 실력이 더 늘어난 줄리앙의 플레이에 환호를 보냈다.
***
다음날.
꿈 FC 숙소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순신아!”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스페인에 있어야 할 신자영이 왜 여기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자영아. 여긴 왜?”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너무나 예뻤다.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또 쓰러졌다며?”
“긴장이 풀려서 그런 듯?”
“긴장이 풀렸다고 심정지가 오진 않아! 내가 다치지 말라고 했지?”
이순신은 머리를 긁적였다.
거친 경기 속에서 백태클을 당하고도 멀쩡했으나,
갑작스러운 심장마비가 발목을 잡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자영의 얼굴은 슬픔과 화남이 가득했다.
‘걱정 많이 했구나.’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지금 웃어?”
“그런데 스페인에서 여기 오는 비행기가 있었어? 푯값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이순신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지금 비행기 푯값이 문제야? 난 네가 더 걱정됐다고!”
신자영이 진심으로 화를 냈다.
‘아. 젠장. 토라진 모습도 이렇게 귀여우면 어쩌자는 거지.’
이순신은 문득 동료들을 보았다.
지금의 모습을 본 동료들은 속으로 똑같은 생각을 했다.
‘쓰바. 조낸 부럽네.’
반면, 이순신은 불타는 질투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눈길이 너무나 뜨거운 나머지,
이순신은 조용히 신자영을 안아주었다.
선수들의 질투는 더 심해졌다.
신자영이 무언가 생각난 듯 이순신의 품에서 잠시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자기야. 어머니한테 전화라도 좀 해라.”
“아-”
이순신은 신자영과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전화하기가 겁났다.
대한민국에서 ‘결혼 = 축의금 회수’였다.
그런 좋은 기회를 날렸기 때문에 약간의 죄책감이 있었다.
이순신은 말 나온 김에 전화를 걸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의 시차는 6시간.
지금 대한민국은 저녁이었다.
“여보세요?”
“엄마. 오랜만이에요.”
“그래. 몸은 괜찮고? 자영이랑 싸우진 않고?”
이순신은 따뜻한 목소리를 듣더니, 가슴이 울컥했다.
“전화 자주 못 드려서 미안해요.”
“괜찮다. 난 너만 건강하면 됐다.”
“나중에 한국 가면 꼭 연락드릴게요.”
“그래. 미리 연락해라. 엄마 요즘 놀러 다니느라고 정신없으니까. 호호.”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지리산이고, 제주도고, 강화도고 순신의 엄마는 돈 걱정 없이 인생을 즐겼다.
그동안 못했던 효도를 이순신은 지금에서야 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는 아예 스페인으로 놀러 온다고도 했다.
전화를 마친 후 이순신은 신자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고마워.”
“응?”
“네가 없었다면 난 되게 공허했을 거야. 그리고 엄마도 잘 챙겨줘서 고맙고.”
“아오. 닭살!”
신자영은 손으로 팔을 부볐다.
그 순간이었다.
이순신이 신자영에게 키스를 갈겼다.
그것도 목구멍 깊숙이…
첫 키스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짜릿하고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