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타임 오버
세계 최고수준의 골키퍼라고 할지언정,
동료들의 의지와 믿음이 담긴 슛을 막는 건 쉽지 않았다.
그것도 불과 5M 거리라면 더더욱 말이 안 됐다.
야신이 살아온다고 한들 반응할 수 없는 슛.
시스템을 잠시 사용하지 못해도, 이순신에게는 피지컬이라는 훌륭한 재능이 남아 있었다.
이순신의 슛은 골키퍼가 눈을 질끈 감게 만들 만큼 강력한 위력을 바탕으로 골대 구석에 제대로 꽂혔다!
“꿈 FC의 역습이 성공했습니다!”
“역시 이순신 선수! 꿈 FC가 멋진 골을 선사합니다!”
“관중들이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스코어는 1:1이 됩니다!”
관중들은 이순신의 이름을 외쳤다.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은 이 순간을 즐겼다.
시스템은 없어도 그간 고생해서 얻은 경험이 있었다.
좌절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력과 의지가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을 함께 나눴던 동료들이 있었다.
이순신은 이미 월드클래스의 반열에 올랐다!
“역시 꿈 FC의 경기는 골이 터지든, 안 터지든 매우 화끈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오늘 경기를 예상해보자면 왠지 많은 득점이 예상됩니다.”
이순신은 팀을 진두지휘했다.
“단결아. 너무 붙지 말고 그냥 따라붙어!”
이순신은 수비 위치를 조율했다.
페도라의 크로스가 중앙에 있는 줄리앙에게 향했다.
그는 이순신을 등지고 서 있었다.
피지컬 자체는 이순신이 훨씬 좋았다.
그렇기에 거대한 나무와 마주치는 느낌이었다.
“줄리앙 선수. 이순신을 제치고 곧바로 슛!”
이순신이 발을 뻗었지만, 줄리앙의 슛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힘없이 날아가는 공은 보경풍에게 쉽사리 잡히고 말았다.
“보경풍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줄리앙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러더니 슬쩍 이순신을 노려봤다.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시스템을 쓰지도 못하는데 이 정도라고? 여유로운 척하지 마!’
줄리앙은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후웁.”
심호흡하며 화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녀석은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도 굳이 시스템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와서 줄리앙은 양심에 찔리는 듯했다.
[잔 다르크가 고개를 도리도리 돌립니다.]
전쟁에서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는 도리어 자신의 목을 찌르게 되는 무서운 짓이었다.
지금 줄리앙에게 필요한 것은 오만함을 버리고,
자신이 펼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이순신에게 맞서야만 했다.
전반 20분까지 경기는 소강상태에 진입했다.
다니엘이 전방을 향해 길게 찔러준 패스는 최전방에 있는 줄리앙에게 향했다.
다만 다소 멀었고, 좀 더 가까이 있는 이순신이 헤딩으로 걷어냈다.
“페도라!”
줄리앙이 소리쳤다.
흘러나온 세컨드 볼을 잡았다.
구멍이 재빨리 미끄러지면서 태클을 시도했지만,
페도라의 접기 수준은 월드 클래스였다.
“그대로 페도라의 슛!”
다소 거리가 있는 중거리 슛이었고,
골은 골대를 빗나갔다.
꿈FC에도 기회는 찾아왔다.
송희윤이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프리킥을 얻어냈다.
“형이 차실래요?”
“아니. 광인아. 오늘은 네가 프리킥을 전담하도록 해.”
이순신은 이광인에게 중책을 맡겼다.
“알겠어요!”
이광인은 자신감 있게 바르셀로나의 골대를 향해서 프리킥을 날렸다.
골키퍼가 몸을 날려서 잡아냈다.
“꿈 FC. 아쉬워할 틈이 없어요! 바르셀로나 골키퍼가 공을 던집니다!”
바르셀로나는 재빨리 빌드업을 시작했다.
다니엘은 공을 받아서 중앙에 있는 미드필더에게 공을 전해줬다.
“헤딩으로 방향을 틉니다.”
측면으로 자리를 이동한 아모르를 향해 공을 넘겼다.
아모르를 막기 위해 하비가 다가갔다.
“아모르 선수의 급정지!”
아모르는 공을 멈추고 수비와의 거리를 벌인 뒤,
전방을 향해 스루패스를 찔러줬다!
공은 대지를 가르며 시원하게 중앙에 있는 줄리앙을 향해 뻗어 나갔다.
“줄리앙 선수! 뒷공간을 파고듭니다!”
이순신의 파트너 센터백은 줄리앙을 잡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보경풍. 나와!”
이순신은 자신이 쫓아갈 수 없는 거리이기에 소리 질렀다.
마치 빙의를 쓴 것처럼 보경풍은 재빨리 튀어나왔다.
페널티 에어리어 밖까지 나온 보경풍은 줄리앙의 공을 걷어냈다!
“보경풍 선수의 나이스 판단!”
보경풍은 이순신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순신이 덕분에 막을 수 있었어.’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던 찰나에 이순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경풍은 주저 없이 앞으로 튀어 나갔고, 덕분에 멋진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번 골을 실패한 줄리앙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10분밖에 남지 않았어.’
저번 경기에서 얻은 봉인의 효과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9분.
8분.
시간이 지날수록 줄리앙은 초조했다.
반면, 이순신은 출소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그런데 오히려 기회는 꿈 FC에게 찾아왔다.
구멍이 띄운 공을 김혁규가 받아냈다.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에서 바르셀로나의 뒷공간을 침투한 그는 왼쪽 대각선으로 달렸다.
바르셀로나 수비수들이 재빠르게 일자 수비를 펼쳤다.
“광섭! 받아!”
김혁규는 센터백 너머에 프리 상태로 있는 윤광섭에게 공을 띄웠다.
센터백과 좌측 풀백이 윤광섭을 향해 뛰어갔다.
‘가슴으로 트래핑을 하다간 분명히 뺏길 거야.’
윤광섭은 키를 이용해서 곧바로 골문 쪽으로 헤딩했다.
공은 바운드가 된 후 튀어 올랐다.
바르셀로나의 수비수와 꿈 FC의 송희윤이 날아올랐다.
“송희윤의 헤딩슛!”
공은 송희윤의 이마를 스치고, 골문으로 향했다.
바르셀로나의 수비수가 다리를 뻗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들어갔습니다!”
“꿈 FC가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역전에 성공합니다!”
송희윤은 그물에 걸려서 나오지 못했다.
재빨리 동료들이 달려가서 송희윤을 구해줬다.
‘시스템을 쓰고도 지고 있다고?’
줄리앙은 먼발치에서 자신의 팀이 골을 허용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치트키를 써도 이순신을 이길 수 없단 말인가?’
축구 선수로서 프랑스에서 태어난 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보다 약간은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환경 자체가 달랐으니까.
다만 피지컬은 별개의 문제였다.
줄리앙은 국가대표에 뽑힐만한 실력이지만, 세계 정점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멘탈적인 부분이 그랬다.
시스템을 얻고 난 이후부터는 그 누구도 자신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이순신은 달랐다.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충무공이 미래를 보여준 것도 있었지만, 선택은 이순신이 했다.
한국 축구를 살리기 위해 공격수 포지션을 포기했다.
팀 내에서 궂은일을 마다치 않았으며, 상대를 이기기 위해 시스템을 극한까지 활용했다.
숙련도?
물론 중요한 부분이긴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겸손’이었다.
이순신은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 능력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큰 재앙을 맞이했을지도 몰라.’
이순신은 늘 이렇게 생각했다.
심지어 이 능력을 동료들과 나누었다.
일부 스킬을 공유하기도 했으며, 선수들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평범한 선수가 되거나,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 선수들을 갱생시켜서 어느새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중요한 자원으로 성장시켰다.
반면, 줄리앙은 달랐다.
절대 군주.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면 가차 없이 버렸다.
그의 플레이는 이기적이었지만, 결과를 확실하게 냈다.
축구의 세계에서 공은 둥글기 때문에 정답은 없었다.
다만, 위기에 몰렸을 때 그간 행했던 선은 행운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었다.
줄리앙은 그런 면에서 아직 부족한 선수였다.
봉인 해제 5분 전.
줄리앙과 바르셀로나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마침내 전반 30분이 되었다.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
[….]
‘아, 정신없어!’
이순신은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메시지창과 UI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보고 싶었습니다. 충무공.”
[충무공의 얼굴이 빨개집니다.]
[충무공이 감격하고 있습니다.]
[카이저 코치가 목을 풉니다.]
[충무공이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꿈 FC가 공격하고 있기에 망정이었지,
하마터면 한 골을 헌납할 수 있었다.
충무공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이순신이 의아함을 느낄 때쯤,
[충무공이 상황파악을 모두 끝냈습니다.]
[시스템이 봉인된 동안 무실점으로 버티기 미션을 실패했습니다.]
“뭐 어쩔 수 있나. 상대가 바르셀로나인데.”
이순신은 살짝 아쉬웠다.
시스템을 사용해도 무실점으로 막을 수 없는 게 바르셀로나였으니까.
[봉인된 동안 리드하기 미션을 성공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메시아 타임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10분 동안 능력의 최대치가 발휘됩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효과 발동)]
[1경기 1회 발동]
[세컨드 윈드 더블과 중첩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스팀팩을 3개 받았습니다.]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필사즉생 필생즉사’는 지고 있는 그 순간,
처절함이 선을 넘었을 때 발동하는 스킬이었다.
그 이후에는 다음날에 훈련을 못 할 정도로 데미지가 있는 스킬.
조건도 꽤나 까다로워서 사용한 적이 5번도 안 되는데 그걸 아무 때나 10분 동안 발휘시킬 수 있다니.
‘설마 날아다니는 건 아니겠지.’
이순신은 오히려 겁이 났다.
다양한 스킬들을 중첩해서 쓰게 된다면, 그야말로 축구의 신이라 불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오랜만에 스팀팩이 나왔다.
지금처럼 신자영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면 사용해도 나쁘지 않았다.
그만큼 귀한 아이템이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가 리드하고 있으니까 굳이 두 개 다 지금 쓸 필요는 없겠지?’
그 순간이었다.
‘이러면 스코어가 앞서고 있는 게 의미가 없는걸?’
현재 스코어는 2:1.
하지만 이순신은 자신이 했던 말을 번복하고 싶었다.
최대한 모든 스킬과 아이템을 지금 몰아서 써야 하나 싶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선수 교체가 있습니다.”
줄리앙은 필드 안에서 메시가 몸을 푸는 걸 봤다.
‘아마도 나랑 교체하겠지.’
경기 초반에 골을 넣은 것 빼고는 너무나 저조한 활약이었다.
심지어 포지션도 겹쳤다.
자신감을 잃은 상태에서 메시라면 안심하고 맡겨두고 나갈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서 이순신을 쳐다봤다.
‘졌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줄리앙은 깜짝 놀랐다.
교체 선수는 자신이 아니었다.
“메시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부상으로 이번 경기에 출전이 불투명했던 축구의 신이 웃으며 경기장에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