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순수한 힘
‘봉인?’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근 3년여간 충무공의 시스템으로 성장해왔다.
해낼 수 있는 과제를 줬으며,
덕분에 많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봉인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충무공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
“?”
충무공이 대답이 없다?
다른 코치들도 응답이 없었다.
‘버그인가? 여태껏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삐이이익-
이순신이 더는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바르셀로나의 선축이 시작됐고,
그들은 물밀 듯이 꿈 FC 진영을 향해서 달렸다.
최전방에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메시를 대신해서 원톱으로 나선 줄리앙이 있었다.
“이. 순. 신!”
줄리앙은 괴성을 지르며 직진으로 돌파했다.
“내가 있는데 뻔히 가운데로? 빡대가리 시주. 너무하시는구려!”
구멍은 어이가 없었다.
지난 경기에서 아무리 해트트릭을 했다고 하지만,
너무나 거침없이 정면으로 들어왔다.
마치 단기 필마를 하며 1만 대군 앞을 돌진하는 조운 같았다.
“멈추시오! 건방진 시주!”
구멍은 줄리앙을 막아섰다!
쿵!
촤아아악!
구멍이 미끄러지면서 뒤로 밀려났다.
“크흑. 이 힘은 뭡니까!?”
구멍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폴레옹의 사전이 발동합니다.]
오히려 당황한 건 줄리앙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스킬을 쓸 때 발을 갖다 댄 사람은 없었다.
‘이 대머리는 뭐지?’
구멍이 재차 달려들었다.
‘다시 한번 스킬 발동.’
줄리앙은 또다시 나폴레옹의 사전을 발동했다.
구멍이 다리를 뻗었다.
“걸렸…!”
다리에 공이 걸린 줄 알았는데 마치 유령처럼 줄리앙이 지나갔다.
[낮은 확률로 나폴레옹의 사전이 막히기도 합니다.]
그 메시지를 보자 줄리앙은 쓴웃음을 지었다.
‘우연이었군.’
경기 시작한 지 고작 1분이 지났다.
줄리앙은 마침내 페널티 에어리어 밖까지 도달했다.
‘나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다. 이순신!’
이순신과 줄리앙이 마침내 만났다.
“너 뭐야? 나 알아?”
이순신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줄리앙.
잊으려야 잊을 수 없던 이름이었다.
군대 내무반에서 자신에게 현타를 안겨준 사람.
그렇기에 언젠가는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를 모른다고?”
줄리앙은 쉽게 도발에 넘어갔다.
“건방진 자식!”
줄리앙이 자세를 낮췄다.
맹수처럼 재빠르게 몸을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침착하자. 순신아. 시스템이 없어도 넌 잘할 수 있어.’
비록 시스템은 사용할 수 없지만, 그간의 경험이 세포 하나하나에 기억됐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나폴레옹의 사전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어깨로 줄리앙을 막아섰다.
“으으으윽!”
이순신이 이를 악물었다.
“저게 뭐야?”
동료들은 깜짝 놀랐다.
줄리앙이 이순신을 끌면서 앞으로 계속 전진했다.
‘여기서 밀리면 100% 골이다…이럴 때 방패연을 쓸 수만 있었더라면…’
이순신은 내심 아쉬워했다.
“하아앗!”
이순신이 고함을 질렀다.
그 줄리앙조차도 이순신의 피지컬을 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됐어!”
이순신이 재빨리 공을 멀리 찼다.
“됐어!”
삐이이익!
하지만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페널티킥!
이순신 선수가 페널티킥을 내줍니다!”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이어지는 옐로카드.
“와! 줄리앙. 오늘도 경기를 화끈하게 하는구나!”
“줄리앙! 줄리앙!”
경기장에는 줄리앙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괜찮아!”
보경풍이 이순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해줬다.
“형.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그럴 수도 있는 법이죠!”
임단결조차도 이순신을 위로해줬다.
이순신은 그동안 누군가를 위로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위로받는 건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괜찮아. 경풍이 형이 잘 막아줄 거야.’
보경풍이 양팔을 넓게 벌렸다.
삐이이익!
줄리앙은 지체없이 달려가서 슛을 때렸다.
페이크도 필요 없는 정직한 슛.
철렁~!
정확히 왼쪽 골포스트 상단에 꽂혔다.
보경풍이 방향은 예측했으나 워낙 좋은 슛이었기에 막을 순 없었다.
“골입니다! 바르셀로나가 1:0으로 앞서갑니다.”
“안타깝네요. 두 팀의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아무리 컵 대회 우승팀이라고는 하지만, 3부 리그였다.
메시의 몸값으로 꿈 FC 전체를 살 수 있었다.
꿈 FC가 죽을힘을 다해서 번 유로파리그 상금.
역시나 메시의 몸값에 반도 미치지 못했다.
‘어떠냐?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면 넌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내고 싶었지만, 잔 다르크의 손이 줄리앙을 막았다.
[시스템을 발설할 시에는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만약 일반 사람들에게 시스템에 대해서 언급을 하게 되면, 모든 걸 잃게 됐다.
목숨조차도 말이다.
그래서 선수들끼리 누가 시스템을 가졌는지 공유할 수 없었다.
만약 입 밖으로 시스템의 존재를 말할 시에는 가차 없는 처벌이 내려졌다.
심장마비.
총살.
회복하지 못할 부상 등이 일어났던 경기들을 생각해보면,
시스템은 사용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경고했다.
‘쳇. 아쉽군.’
줄리앙은 근질거리는 입을 참았다.
골대 안으로 들어가서 묵묵히 자신이 넣은 공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개…개선장군이다!”
줄리앙의 등 뒤로 개선문이 펼쳐졌다.
뒤에 에펠탑이 보이는 걸 보니 ‘에투알 개선문’이었다.
마치 나폴레옹을 보는 듯했다.
“줄리앙 선수의 저돌적인 드리블로 1:0으로 바르셀로나가 앞서갑니다.”
“오늘 경기는 편안하게 관람하면 될 거 같아요.”
“이순신 선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이순신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충무공의 도움이 없다면 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나?’
끝없는 자괴감이 이순신을 나락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경기가 계속 진행됐다.
바르셀로나의 공격은 여전히 매서웠다.
그 중심에는 줄리앙이 있었다.
“줄리앙 선수. 여유롭게 경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줄리앙뿐만이 아니었다.
아모르와 페도라의 능력도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신 차리자. 순신아.’
이순신은 계속 되뇌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수비를 지휘하고, 몸이 먼저 움직였다.
“꿈 FC.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합니다.”
“아모르 선수가 임단결 선수는 제쳤지만, 보경풍 선수의 벽은 넘지 못했습니다!”
“페도라의 슛! 아쉽게도 골대를 살짝 넘겼습니다.”
“수비수도, 골키퍼도 손을 쓸 수 없는 강력한 슈팅이었어요.”
“꿈 FC의 행운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이순신으로서는 프로에 데뷔한 이후 역대 최악의 순간이기도 했다.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고작 전반 10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벌써 유효슈팅만 3개를 허용했고, 슈팅은 10개나 내줬다.
“이상하다. 왜 그동안 보여준 것과 경기력이 다르지?”
“어제 발렌시아랑 싸우던 팀과는 완전히 다르잖아?”
관중들도 이상함을 눈치챘다.
‘노이즈 캔슬링’이 없으니 이순신은 그들의 비난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선수들도 신경을 쓰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이었다.
“순신이 형! 정신 차려요!”
임단결의 외침에 이순신이 고개를 돌렸다.
‘단결.’
임단결은 이순신 덕분에 미래가 바뀌었다.
원래는 실패한 유망주가 돼야 했지만,
이순신 덕분에 국가대표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순신 시주!”
“순신아!”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동료들이 이순신의 이름을 불렀다.
“순신이 형!”
이광인은 이순신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시스템 따위 없으면 어때.’
이순신의 눈빛이 달라졌다.
저 멀리서 줄리앙이 달려오고 있었다.
‘너는 나를 막을 수 없다.’
줄리앙은 이번에도 자신감 있게 돌파했다.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나폴레옹의 사전’도 발동시켰다.
“줄리앙 선수의 돌파!”
“이순신 선수의 과감한 태클!”
줄리앙은 깜짝 놀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완벽하게 상대를 제칠 수 있는 스킬이 깨졌어!’
[나폴레옹 사전에 불가능은 없지만, 알프스 산을 못 넘은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완벽과 불가능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잔 다르크의 말에 줄리앙은 어리둥절했다.
프랑스는 문학의 나라.
그 뜻을 이해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고, 줄리앙도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은 경기중이었다.
전반 12분.
이순신이 드디어 줄리앙으로부터 공을 빼앗았다.
“이순신 선수의 깔끔한 수비!
곧바로 공격이 이어집니다.”
이순신은 공을 재빨리 구멍에게 줬다.
공을 받은 구멍은 등 뒤에서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눈앞에는 이순신이 달려오고 있었다.
“받으시오. 순신 시주.”
구멍과 2:1 패스를 주고받은 이순신은 그대로 롱킥을 날렸다.
“이순신 선수가 차준 공! 윤광섭 선수가 받습니다.”
윤광섭은 공을 잡고 측면을 미친 듯이 달렸다.
“빠릅니다! 하지만 저래서는 후반전에 뛸 수 있을까요?”
윤광섭은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았다.
전반 45분만 뛰고 나가도 좋으니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는 걸 선택했다.
‘네 마음을 알겠다. 광섭아.’
윤광섭이야말로 어쩌면 꿈 FC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잠재력이 이번 시즌에 방출위기를 극복하면서부터 진가를 발휘했다.
시스템 같은 게 없어도 매일 남아서 훈련했다.
쉬는 날에도 경기를 보면서 분석했고,
연습 때도 남들의 2배는 했다.
결코, 오버페이스가 아니었다.
노력의 성과로 그의 몸이 잠재력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다니엘 선수가 따라붙습니다!”
윤광섭은 옆을 힐끗 쳐다봤다.
전방에는 김혁규와 송희윤이 있었다.
“받아!”
윤광섭이 매일 남아서 훈련한 건 크로스였다.
꿈FC 선수들의 키는 다른 팀에 비해서 큰 편이 아니었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크로스보단 발밑을 노리는 크로스를 더욱 연습했다.
상대 수비수에게 커트 당할 확률이 높았다.
‘동료들을 믿는다.’
윤광섭의 크로스가 김혁규에게 닿았다.
“혁규!”
김혁규는 등 뒤에서 공을 달라는 이순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김혁규 선수! 슛을 시도합니다!”
김혁규가 재빨리 슛 모션을 취했다.
달려오던 바르셀로나 수비수들이 멈칫하고, 몸을 뒤로 돌렸다.
“아! 김혁규 선수의 슛 훼이크!”
김혁규는 슛을 차는 척하면서 달려오는 이순신에게 공을 넘겼다.
“이순신 선수.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공을 받아냅니다!”
이순신이 인사이드로 공을 받았다.
‘고맙다. 혁규!’
이순신은 수비수 이전에 공격수였다.
수비수로 산 시간보다 공격수로 살았던 시간이 더 많았다는 뜻이었다.
“이순신 선수 슛!”
이순신은 지금 순수한 힘으로 바르셀로나의 골문을 뚫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