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더워. 죽여줘.”
하비가 난생처음 겪는 더위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이 정도면 뛰기엔 괜찮네.”
송희윤이 씨익 웃었다.
이 열기와 이 습도.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꿈 FC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 참가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왔다.
“저 혓바닥 클리너처럼 생긴 건물이 킹덤타워냐?”
“미친. 크크.”
김혁규의 말에 임단결은 빵 터졌다.
밤이 되면 보랏빛 방패가 되는 킹덤타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의 랜드마크였다.
선수들은 경기가 열릴 킹 파흐드 경기장으로 향했다.
“와- 잔디 상태 실화냐?”
선수들은 잔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승 상금으로 잔디나 좀 갈지.”
선수들의 불평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와. 좋은데?”
이순신이 잔디를 보며 씨익 웃었다.
“신혼이니 모든 게 행복하고 좋아 보이겠지요.”
구멍이 부러운지 입을 삐죽 내밀며 칭얼거렸다.
“옛날 생각나지 않아? 우리가 처음 스페인에 왔을 때.”
그 말에 세찬 FC 출신들은 잠시 회상에 젖었다.
솔직히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은 환경이었다.
헤이니도, 송희윤도 마찬가지였다.
- 좋은 환경에서 좋은 선수가 나온다. -
임청수의 방침으로 꿈 FC는 1부 리그 못지않은 경기장을 갖출 수 있었다.
[흑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선수들의 표정을 보니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어찌 보면 이곳은 꿈 FC의 또 다른 홈구장이 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AT에게 이곳은 너무나 낯선 환경이었다.
며칠 후.
5시쯤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가 열렸다.
첫 경기는 라리가 2위 vs 국왕컵 우승팀.
발렌시아와 꿈 FC의 경기였다.
“광인,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이렇게 서로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다.
총상금 540억.
수페르코파에 참여한 것만으로 4팀은 이 각각 받게 될 상금이 100억 원이 넘었다.
여기서 이기면 150억이 걸린 단판 승부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광인 선수. 오늘 표정이 무섭습니다!”
발렌시아에서 스스로 이적 요청을 한 이광인의 각오는 남달랐다.
“내가 이 팀에 온 가장 큰 이유지.”
평소에는 이순신을 좋아해서 왔다고 했지만,
남들에게 말하지 않은 한 가지.
발렌시아를 향한 복수심이었다.
하지만 이광인의 몸은 무거웠다.
“젠장!”
생각대로 드리블이 되지 않고, 패스가 번번이 막혔다.
“아오! 젠장!”
이광인의 짜증은 주변 선수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오쿠보도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닌지라 위축됐다.
‘저 자식이.’
김혁규는 이광인의 짜증을 참고 있었다.
“패스 달라고 했잖아!”
“야! 네 뒤에 수비가 두 명이나 있는데 어떻게 줘!”
헤이니와 이광인은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 싸웠다.
“하하. 쟤네 뭐야? 같은 팀끼리 싸우네.”
“재밌네. 주먹질까지 하면 진짜 재밌겠다.”
조롱에는 졸부들의 특성이 담겨있었다.
이순신은 경기장에 퍼지는 조롱을 감지했다.
그나마 ‘노이즈 캔슬링’으로 선수들의 멘탈에 영향을 주는 걸 막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이순신이 헤이니와 이광인에게 다가갔다.
퍽!
그러더니 뒤통수를 휘갈겼다!
“순신이 형?”
“퍽킹. 순신! 미쳤어?”
두 선수는 동시에 뒤통수를 잡고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작작 좀 해. 둘 다 나가고 싶어?”
이순신이 매우 무서운 눈빛을 내뿜었다.
그 기세에 막내 형 이광인도, 망나니 헤이니도 움츠렸다.
“상대는 발렌시아야. 우리가 똘똘 뭉쳐도 이길까 말까라고!”
이순신의 말에 이광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내 복수심에 경기를 망칠 뻔했어.’
깨달음을 얻은 이광인의 플레이가 살아났다.
“이광인 선수. 발렌시아 선수들을 유인합니다.”
이광인이 오른쪽을 힐끗 보니 헤이니가 보였다.
“이광인 선수의 패스!”
“헤이니 받는 척하면서 공을 흘려줍니다.”
구멍이 공을 잡았다.
구멍은 그대로 우측에서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임단결에게 공을 넘겼다.
“임단결 선수 달립니다!”
“가야 선수. 따라붙습니다!”
임단결은 폭풍처럼 달렸다.
가야가 바짝 붙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이 자식 생각보다 몸이 단단한데?’
가야는 놀랐다.
작년의 임단결이 아니었다.
1년 동안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결과였다.
몸은 단단해지고, 속도는 더 빨라졌다.
“가야를 따돌린 임단결의 크로스!”
그의 패스는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올라온 이순신에게 향했다!
“김혁규와 송희윤 선수가 수비수를 유인하는 사이에 이순신 선수에게 기회가 옵니다!”
이순신이 몸을 날렸다.
퉁!
[황자포가 진화했습니다.]
[천무가 발동합니다.]
“뭐야?”
발렌시아 골키퍼는 깜짝 놀랐다.
이순신이 헤딩을 했는데 공이 12개로 쪼개지며 자신을 향해서 날아왔다.
발렌시아의 골키퍼는 공이 바닥에 튕겨서 골문으로 들어가는 걸 그대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겠지?’
머리에 닿는 순간 공이 갈라지는 것을.
“미쳤네.”
이순신은 이런 헤딩슛을 계속 쓸 수 있다면, 엄청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발동 조건이 까다로웠다.
[필드골 상황에서만 발동 가능합니다.]
[다이빙 헤딩 시 발동합니다.]
[쿨타임 : 50분]
[헤딩으로 어시스트를 할 경우 쿨타임이 10분 감소합니다.]
쿨타임이 50분이란 뜻은 한 경기에서 한 번, 잘해야 두 번 정도밖에 쓰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다이빙 헤딩을 할 수 있는 상황도 그렇게 많진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어. 축구에서 한 골은 굉장히 중요하니까.’
무엇보다 이순신은 ‘천지현황포’가 진화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서 매우 기뻤다.
‘천자포와 현자 포는 어떤 식으로 진화할까?’
지자 포는 천궁으로,
황자포는 천무로 진화했다.
진화하면서 좋은 점은 반동 효과 자체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무기의 진화는 중요한 거니까.’
어쨌든 이순신의 선취골로 경기장의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무사히 전반전이 끝났다.
이어지는 후반전에서도 꿈 FC의 선전은 계속됐다.
이광인은 마치 필드 위의 마에스트로 같았다.
원하는 곳으로 공을 뿌렸고,
빠져나가기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순간을 빠져나갔으며,
위력적인 중거리 슛으로 발렌시아의 골문을 위협했다.
“아깝습니다!”
이광인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내 웃었다.
“괜찮아!”
복수심은 사라지고 어느새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혁규 형! 나이스!”
“헤이니. 좀만 더 빨리!”
“나이스 캐치! 경풍이 형!”
이순신이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막내 형이 돌아왔네.”
그런 이광인에게 이순신은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이순신 선수의 롱 패스!”
이광인의 선물을 위한 빌드업이 시작됐다.
공을 잡은 헤이니는 측면으로 공을 뿌렸다.
공을 잡은 건 김혁규였다.
“자자! 오라고!”
김혁규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서 돌파를 시도했다.
수비가 냉큼 따라붙자, 다시 헤이니에게 줬다.
“받아. 오쿠보!”
헤이니, 김혁규, 오쿠보는 삼각형을 이루며 패스를 주고받았다.
“가야 선수의 태클!”
가야가 무리한 태클로 공격의 흐름을 끊었다.
“오쿠보. 괜찮아?”
“응.”
오쿠보가 손을 들었다.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가 났다.
“형. 제가 찰게요!”
이광인이 의욕을 보였다.
“그래.”
이순신은 흔쾌히 이광인에게 키커의 자리를 내줬다.
“이광인 선수. 슛!”
발렌시아의 수비수들이 높이 뛰었다.
하지만 이광인의 프리킥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이 자식들, 오늘 슈팅이 왜 이렇게 예리해!”
오히려 꿈 FC에게 오늘 경기는 골 운이 안 따른 편이었다.
그 불운의 여신이 이광인의 슛을 막았다.
“아. 이광인 선수의 슛이 골포스트 상단을 맞고 흘러나옵니다.”
모두가 포기한 순간,
이순신은 자리를 잡았다.
“광인!”
이순신이 흘러나온 공을 머리 뒤로 넘겼다.
헤딩 패스는 이광인을 향해 날아갔다.
‘누가 좋은 위치에 있지?’
이광인이 주변을 살펴보려고 할 때,
“때려!”
이순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우웅.
공이 땅에 닿기 전,
이광인의 발이 움직였다.
“이광인 선수의 발리슛!”
이광인이 찬 슛은 이순신을 향해서 날아갔다.
이순신은 재빨리 허리를 뒤로 숙였다.
“이런!”
이순신 때문에 시야가 차단된 발렌시아의 골키퍼는 몸을 날렸지만,
추가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순신의 패스, 이광인의 멋진 발리슛!”
이광인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그간의 발렌시아에 당한 서러움과 수모를 한 번에 갚았다.
“순신이 형!”
이광인은 제일 먼저 이순신을 향해 달려가서 그를 안았다!
이전에는 필드 반대편에서 이순신과 겨뤄야 했지만,
이제는 같은 필드에서 함께 싸우는 동료였다.
두 사람의 포옹에 기자들은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앞으로 축구 역사에 남을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순신은 이광인의 골을 잘 지켜냈다.
삐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꿈 FC가 발렌시아를 2:0으로 제압하고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결승에 진출합니다!”
꿈 FC가 보여준 경기력은 결코 3부 리그 팀이 아니었다.
“꿈 FC가 1부 리그에서 뛰면 어땠을까?”
축구 팬들의 머릿속에는 상상조차 해서는 안 될 일을 생각했다.
“하지만 꿈 FC는 3부 리그가 최대치잖아. 2부에 진출한다고 해도 많은 문제들이 있어. 선수 수급도 문제고…
핵심 선수들이 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이순신만 해도 내년에 레알에서 뛰기로 했다.
꿈 FC의 이런 활약이라면 주전 대다수가 팀을 떠날 수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
이것 때문에 꿈 FC는 더더욱 뭉칠 수 있었던 것이다.
먼저 결승에 오른 그들은 반대편에서 올라올 바르셀로나와 AT 마드리드의 경기를 지켜봤다.
“바르셀로나 경기를 이런 식으로 직관하다니. 와-”
“고작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우린 레알 마드리드랑 직접 경기도 해봤는걸?”
꿈 FC는 팝콘을 먹으며 경기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입장했다.
“아모르다!”
“페도라!”
“다니엘이다!”
올림픽에서 겨뤘던 선수들이 바르셀로나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메시다!”
메시의 등장에 경기장에 환호성이 퍼졌다.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기립박수까지 펼쳤다.
메시가 자신을 응원하는 관중들을 위해서 손을 흔들었다.
그 뒤로 줄리앙이 등장했다.
“줄리앙이다!”
메시가 없는 동안 바르셀로나의 득점을 책임진 줄리앙도 엄청난 인기였다.
‘당신의 자리는 곧 내가 갖겠어.’
줄리앙은 메시를 보며 다짐했다.
메시는 시선을 느꼈는지 줄리앙을 보며 웃었다.
두 사람은 오늘 경기에서 처음 호흡을 맞춰봤다.
“줄리앙. 잘해보자.”
“알겠어. 공 잡으면 나한테 넘겨. 내가 골을 넣어줄 테니.”
메시는 씨익 웃었다.
후배의 패기가 마음에 들었다.
“아직 나한테 도전하려면 10년은 이르다. 애송아.”
이제는 은퇴를 바라봐야 할 메시였지만 아직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