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오르톨랑
이순신이 없는 꿈 FC는 AS 로마차에 3:0 완패를 당했다.
엘샤라위가 빠른 드리블 돌파로 1골,
프리킥에서 엘도르가 헤딩슛으로 1골,
만치니가 프리킥으로 한 골을 넣었다.
경기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 있어도, 꿈 FC는 소득이 있었다.
“윤광섭 선수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오른쪽 미드필더로 나서서 몇 차례 좋은 크로스를 연결했다.
만약 만치니의 호수비가 아니었다면 1골 정도는 넣을 수 있었다.
“광섭이 대단하다!”
동료들은 윤광섭을 인정해줬다.
“낫 베드.”
헤이니가 이렇게 말했다면, 동료로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패배한 꿈 FC는 웃는데, 정작 AS 로마는 적의 홈구장에서 승리를 쟁취했음에도 웃지 못했다.
“젠장!”
먼 길까지 와서 그들이 들은 건 골 득실에 밀려가자고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전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장승빈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팀의 볼륨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프라이부르크는 정대건의 골이 도화선이 되어 분위기를 지배했다.
심지어 그라스 호퍼는 자책골만 2골을 허용했다.
그러다 보니 최전방에 있던 장승빈도 의욕을 잃었다.
경기가 끝나고 정대건은 장승빈을 위로했다.
“승빈아.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마.”
“5:0이면 끝이지 뭐.”
“우리는 그만큼 절박했으니까.”
정대건의 입에서 뜻밖의 소리가 나오자 장승빈은 살짝 놀랐다.
이것이 리그 최상위 팀의 실력이었다.
팀이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달리면 전혀 다른 팀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역시 유럽으로 오길 잘했어.”
장승빈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이로써 모든 경기가 끝났다.
꿈 FC, 아스날, 레스터시티, 나폴리, 올림피크리옹, AC밀란, 페네르바흐체, 토트넘이 16강에 먼저 안착했다.
탑시드를 배정받은 팀이 대다수 올라갔다.
가장 의외라면 역시 꿈 FC의 16강 진출 확정이었을 것이다.
- 1승이라도 거두면 다행이다.
- 참가에 의의를 두자.
- 유로파 흥행을 위한 이벤트.
- 승점 자판기.
초반에 그들에게 내려진 평가를 뒤집은 것도 모자라서 금전적인 이득도 챙겼다.
조1위와 16강 진출로 230만 유로.
즉 30억 원의 상금을 획득했다.
현재까지 총 누적 상금은 ‘본선 조별리그’와 ‘조별리그 승리 수당’을 포함해서 120억 원이었다.
그야말로 잭팟이었다.
여기에 광고 수익, 스폰서, 중계권, 꿈 FC 인터넷 방송까지 해서 벌어들인 금액은 300억이 넘었다.
임청수의 복권당첨금 50억은 그야말로 마중물이었다.
토트넘의 손민흥은 단짝인 케인과 함께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을 16강에 올려놨다.
프라이부르크를 비롯해서 조별예선 2위를 기록한 팀들이 챔피언스 리그 예선 3위 팀들과 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아니, 저 두 팀은 인간적으로 여기로 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챔피언스 리그에서 넘어온 팀 중 사람들의 눈길이 가는 두 팀이 있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강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이탈리아의 명문 강호 ‘인테르 밀란’이었다.
유로파리그에 1위로 통과한 팀들은 AS 로마가 이변의 희생양이 되어서 좋아했는데,
인테르 밀란의 참전으로 힘든 가시밭길이 예상되었다.
“밀란 더비가 일어나는 것인가?”
한때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온 유럽을 호령하던 두 팀이 현재는 최상위 토너먼트보다 한 단계 낮은 대회에서 만나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대건의 프라이부르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6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나게 됐다.
두 명문 팀의 대결은 2월에 펼쳐질 예정이었다.
꿈 FC의 눈은 또 다른 토너먼트를 준비해야 했다.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스페인 축구 클럽 간의 대항전으로 리그 우승팀과 국왕컵 우승팀이 맞붙는 대회였다.
만약 리그 우승팀과 국왕컵 우승팀이 같으면 국왕컵 준우승팀과 경기를 펼친다.
근래에는 2개 팀에서 총 4개 팀으로 늘어났다.
국왕컵 우승팀인 꿈 FC,
국왕컵 준우승팀 AT 마드리드,
리그 우승팀 바르셀로나,
리그 3위 팀인 발렌시아가 참가했다.
리그 2위는 AT 마드리드였으나, 이미 진출했기 때문에 3위인 발렌시아에 기회가 돌아갔다.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순위는 아쉽게도 4위였다.
그들은 조금 더 멀리 봤다.
이번 시즌에는 리그에 집중하고, 꿈 FC에서 활약하는 자신들의 선수인 이순신, 헤이니, 오쿠보가 활약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현재까지는 플레티스의 회장의 뜻대로 되어가는 중이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16강에 진출했고, 국왕컵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제일 중요한 스페인리그에서도 바르셀로나를 1점 차로 제치고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꿈 FC의 참전으로 격이 다소 떨어지지 않겠냔 우려를 스폰서 측인 사우디 그룹에서 이의를 제기했지만,
유로파리그의 활약을 보고 오히려 그들은 상금을 50억을 더 올렸다.
“꿈 FC가 이번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흥행과 변수가 될 것입니다.”
***
12월 25일.
이순신과 신자영은 첫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눈이다.”
두 사람은 화려하게 불 켜진 도시의 풍경 속에서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과 인간이 만들어낸 건축물의 조화는 예술 그 자체였다.
“예쁘다.”
“네가 더 예뻐.”
이순신은 예쁘다고 말하는 신자영을 보며 말했다.
신이 만든 예술품과 인간이 만든 예술품보다도 신자영의 하얀 피부와 눈빛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
“순신아. 적당히 해라.”
말과는 다르게 신자영은 딱히 싫은 눈빛은 아니었다.
“이순신이다!”
“사인 좀 해주세요!”
이순신을 알아본 팬들이 많이 몰렸다.
이순신은 신자영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좋게 허락을 받은 이순신은 꼬마 팬에게 사인해주고, 같이 사진도 찍어줬다.
“고마워요!”
소년은 벅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팬 미팅이었지만, 이순신은 그 자리에서 10분 동안 팬들에게 사인했다.
이순신이 사인을 해주면서 고개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신자영이 추위에 떨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순신은 마지막 사인을 하고 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일행이 지금 추위에 떨고 있어서요. 사인은 여기까지만 해도 될까요?”
이순신이 공손하게 양해를 구하자 팬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구만!”
“메리 크리스마스. 이순신!”
“수페르코파도 기대할게!”
팬들은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미안. 많이 추웠지?”
“센스 있다?”
신자영은 이순신의 행동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순신은 씨익 웃으며 신자영의 손을 잡고 호텔로 향했다.
***
두 사람은 샤워를 한 뒤, 가운으로 갈아입고 마드리드가 내려다보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건배.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짠.
와인잔의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와인을 마셨다.
“와- 이거 왜 이렇게 독해?”
“포트 와인이니까.”
포트 와인은 일반 와인과는 다르게 도수가 상당히 높았다.
“너! 응큼해! 일부러 포트 와인으로 사 온 거지?”
“그럴 리가! 달달한 와인을 달라고 했더니 가게 주인이 이걸 추천해줬어.”
신자영은 씨익 웃었다.
살짝 취기가 올라온 모습을 보니 이순신은 참을 수 없었다.
“야~갑자기 왜 그래.”
“너무 귀여워서.”
신자영은 이불속으로 도망치고, 이순신은 재빨리 따라붙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이불 속에서 작년 수페르코파 대회 영상을 봤다.
“역시 바르셀로나는 대단해.”
“이번에 레알 마드리드가 안 나오는 게 천만다행인 거 같아.”
“바르셀로나 빼고는 전부 붙어본 팀이긴 해.”
AT 마드리드와 발렌시아는 작년에 국왕컵에서 붙어봤다.
정말 모든 걸 쏟아냈다.
“이순신 선수. 이번에도 이길 수 있습니까?”
신자영이 손 모양을 마이크처럼 만들어서 물었다.
“이번에도 자신 있습니다.”
“너무 거만한 거 아닙니까?”
“변수가 있으니까요!”
“그럼 어디 근거 있는 자신감을 들어볼까요?”
이순신의 손가락 두 개가 신자영의 어깨 위로 걸어갔다.
“간지러워!”
신자영이 앙탈을 부렸다.
이순신은 웃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첫 번째로는 스페인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스페인리그는 많은 중계권료를 얻기 위해서 스폰서를 구했는데 하필이면 사우디 재벌이었다.
돈이 많은 그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를 사우디에서 열라는 조건이었다.
협회는 처음에 난감했지만,
좀 더 많은 팀에게 수익을 안겨주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경기를 열었다.
“즉 모든 팀이 원정 경기를 한다는 뜻이죠!”
“세상에 너무나 놀라운 사실인데요?”
신자영이 과하게 놀랐다.
너무나 얼토당토않은 근거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우리 팀의 전력이 강해졌다는 겁니다!”
이순신은 작년에 AT 마드리드나 발렌시아를 상대했을 때보다 스킬 수가 늘었다.
“축구 스킬만 늘어난 게 아니죠.”
이순신은 순간 뜨끔했다.
이번엔 신자영이 먼저 입술로 덮쳤다.
“연애 스킬도 많이 늘었죠.”
두 사람은 입술을 맞추며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이순신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고 보면 내가 충무공의 가호를 받고 있는 걸 말하면 자영이는 뭐라고 할까?’
이것만큼은 아직 말할 수 없었다.
신자영이 입술을 떼며 물었다.
“또 다른 이유는 없나요?”
이순신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세 번째는 확실한 동기부여입니다.”
무엇보다 이광인과 임단결은 발렌시아와 바르셀로나에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
이순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내 선택이긴 했으나 인생을 꼬이게 한 바르셀로나에 기필코 되갚아주겠습니다!”
이순신이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신자영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부족합니까?”
이순신이 신자영의 어깨를 잡았다.
“몰라.”
그녀는 어깨로 이순신의 손을 떨쳐냈다.
이순신은 그녀가 왜 토라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이유.
‘귀여워. 하지만 이젠 그만 놀려야지. 더 놀렸다간 오늘 밤 길거리에서 자게 될지도 몰라.’
이순신은 신자영의 뺨을 잡고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저에겐 여신이 함께하니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바보!”
신자영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듣고 싶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은 자연스럽게 신자영과 함께 이불을 덮었다.
‘오르톨랑’처럼 앞으로 침대 위에서 벌어질 일을 신도 알아서는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