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37화 (138/161)

137화. 성녀의 후원

일주일 후.

“죄송합니다.”

이순신이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꿈FC 훈련장에 돌아왔다.

무조건 본인이 잘못했기에 머리부터 숙였다.

“하-너 이 새끼 진짜!”

선수 시절에 많은 이슈를 몰고 다녔던 임청수는 단단히 화가 났다.

자신이 아무리 악동이나, 풍운아로 불렸어도 이순신의 행동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요즘 애들은 상상을 뛰어넘어.”

임청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순신은 그렇다고 쳐도, 자영이 넌 도대체 왜?”

“죄송합니다…”

신자영도 별다른 변명은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둘이 언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임청수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런저런 추억을 쌓다 보니 그만…”

“아이고!”

임청수는 엄청난 두통이 몰려왔다.

그 모습을 보자 이순신은 난감했다.

그는 미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당연한 걸 선심 쓰듯이 말하지 마라. 뒤지기 전에!”

임청수가 계속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어떻게 ‘이순신을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일 날까?’ 생각 중이었다.

“순신아.”

“네.”

“내가 살다 살다가 너 같은 놈은 처음 봤어. 경기 끝나고 사라지는 애들은 봤는데, 경기 끝나고 결혼하고 온 놈은 네가 첨이다.

다시 생각해도 겁나 어이가 없네.”

임청수가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것도 우리를 초대하지 않고 둘이서만 결혼식을 올렸다고? 어머님은 아시냐?”

“자영이가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이 미친놈아. 속 터지니까 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임청수가 폭발했다.

순간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화를 가라앉힌 후 임청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신아.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아냐?”

“제가 거만한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그건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아.”

“그럼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200만 조회수가 나올 수 있는 콘텐츠가 날아갔기 때문이다.”

“네?”

“아깝다. 아까워.”

이순신과 신자영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단장 왜 저래?”

“나도 잘 몰라.”

두 사람은 속삭이듯 말했다.

“다 들린다.”

‘계속 말씀하십쇼!“

이순신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임청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두 사람의 스캔들은 내 개인방송에서 해명하자!”

“단장님…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저희의 결혼이 고작 개인방송 콘텐츠 거리라뇨.”

신자영이 볼멘소리로 물었다.

“순신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알고, 사내 연애는 그렇게 안 된다고 말렸지만, 사랑을 어떻게 말릴 수 있나? 난 이미 용서했다.”

“와- 대인배. 역시 단장님!”

이순신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실 임청수는 고작 콘텐츠 각을 놓쳐서 이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이순신에게 신혼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이없고 화가 많이 났다.

일주일이 지난 후 이순신과 신자영의 밝은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약간은 누그러들었다.

그렇다고 이런 일이 발생하면 팀 기강에도 문제가 생길 터.

최소한 한 달간은 주급 정지란 조처할 생각이었다.

유럽의 축구 선수는 회사원과는 다르게 보통 주급으로 받는데 그 액수가 직장인의 몇 배에서 몇십 배였다.

1~2주 만 주급을 정지당해도 개인으로서는 몇천만 원에서 몇억 원의 손해가 나는 것이었다.

“대신 모든 시즌이 종료가 되면 경기장에서 뒤풀이 겸 피로연을 열도록! 다 너희를 축복해줄 사람들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간 이순신이 팀에 대해서 해왔던 일이 있기에 큰 해프닝이지만,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니까.

결국, 그동안의 신뢰를 어느 정도 쌓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순신과 신자영은 훈련장으로 갔다.

“아- 동료들 볼 낯이 없는데.”

아무리 이순신이라도 경영진과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순신아. 그냥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

신자영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이순신은 토했을지도 모른다.

“알았어. 자영아.”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어차피 넘어 가야 할 일.

자신이 잘못한 건 확실하게 인정하면 그들도 용서해줄 거라 생각했다.

“감독님 및 코칭스태프, 그리고 동료 여러분 잘 지내셨습니까?”

이순신이 그라운드로 오자 다들 잠깐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군.’

이순신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외쳤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순신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조용했다.

아무도 이순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1분.

2분.

이순신은 계속 그 자세를 유지했다.

‘아. 허리 아파.’

꿈FC에게는 올해 큰 목표가 있었다.

유로파 우승, 수페르코파컵 우승, 국왕컵 2연패, 3부 리그 우승 등 이뤄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주장이 나서서 사고를 치다니.

비록 우승한다고 해도 승격조차 못할 팀이지만,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는 분위기를 이순신이 망쳐버린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나?’

이에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순신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네. 하지만 내년에 팀을 떠나는 게 확정되었다고 해서 이런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앞으로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팀에 헌신하겠습니다.”

툭.

툭.

이순신 앞에 수많은 축구화가 떨어졌다.

“얘들아. 앞으로 이순신이 한 달 동안 축구화 닦아준대!”

“이야. 몸값이 얼만데 축구화를 닦아줘? 완전 땡큐해. 하하.”

“순신이 형. 나를 버리고 어떻게 자영이 누나랑 결혼할 수 있어요? 너무해.”

이순신이 고개를 들었다.

동료들이 웃고 있었다.

“옛날부터 또라인줄 알았지만, 신계 또라이가 된 걸 축하하오. 순신 시주!”

동료들이 몰려와서 이순신의 등과 머리를 두드렸다.

“결혼 축하해.”

“나중에 축의금 달라고 하면 죽는다!”

“판타스틱해. 순신!”

한국 선수, 비 한국 선수 가릴 거 없이 이순신을 격하게 축하해줬다.

특히 헤이니가 가장 즐거워했다.

“순신, 다시 봤어!”

유교 보이인 줄 알았는데 이런 사고를 치니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하하…그래…”

이순신은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웃고 있는 이에로를 발견했다.

현재 꿈FC는 유로파리그에서 조 선두를 달렸다.

여기서 승리한다면 16강 진출에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었다.

이순신이 이탈한 일주일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팀의 분위기도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이순신의 행동은 어이없음을 넘어서 박수쳐줄 정도였다.

오히려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을 줬다.

팽팽한 긴장감에 곧 끊어질 거 같았는데 잠시 느슨함을 줘서 다시 당길 힘을 줬다.

또한, 선수들은 말과는 다르게 이순신에게 축의금을 모아서 줬다.

“잘 살아라. 순신아.”

김혁규가 대표로 이순신에게 전해줬다.

“혁규야. 미안하다.”

“뭐가?”

이순신은 김혁규가 신자영을 좋아했던 걸 기억했다.

예전에 신자영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이순신은 부정했다.

“너도 자영이 좋아했던 거 아냐?”

“아, 괜찮아. 난 축구랑 결혼했으니까.”

김혁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잘 살아라. 이 새꺄!”

김혁규가 이순신의 가슴을 팍 치고, 숙소로 달려갔다.

이순신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꿈FC 훈련에 참가했다.

“순신. 체력이 더 좋아졌는데?”

“이상하구려. 그럴 리가 없는데…다리가 풀려야 정신인데 말이지요.”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충무공이 이순신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카이저 코치가 두 사람을 축복합니다.]

[허준이 자양강장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후원자들도 진심으로 응원해줬다.

‘그래도 내게 가장 큰 후원자는 역시 자영이지.’

이순신은 관중석 쪽을 바라보았다.

선글라스를 쓴 신자영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오히려 빠르게 정신적인 안정을 찾음으로써 이순신은 더더욱 견고해졌다.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충무공은 전운을 감지했다.

***

이순신이 앞으로의 경기를 대비해서 열심히 훈련하는 동안,

어디선가에서 훈련하는 선수가 있었다.

“AS 로마와 꿈FC의 경기는 어마어마했지.”

그는 AS 로마와 꿈FC의 경기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프랑스 국가대표 공격수이자, 이번에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줄리앙이었다.

“순신은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은발의 까만 피부를 가진 이 선수는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유일하게 인정했던 라이벌이 부활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줄리앙은 청소년 세계 축구대회에서 만난 이순신을 잊지 못했다.

20세 대회였지만, 18살에 프랑스 대표에 선발될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그곳에서 널 처음 만났지.”

그러나 최연소 참가자는 16살인 대한민국의 이순신이었다.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프랑스는 이순신이 속한 대한민국을 맞이하여 5:4로 가까스로 이겼다.

“비록 우리 팀이 이기긴 했지만, 난 그 경기에서 1어시스트, 넌 해트트릭을 해버렸지.”

이순신은 당시에 세 경기밖에 뛰지 않았지만, 예선전에서 8골이나 넣었다.

줄리앙은 결승전까지 뛰어서 기어이 7골을 넣었다.

MVP와 팀 우승은 줄리앙이 차지했다.

그러나 만족할 수 없었다.

득점왕은 이순신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치욕감을 잊을 수 없었지.”

자신이 만약 대한민국 팀 선수였다면,

그런 활약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은 환경이 좋을 뿐,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천재는 이순신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좌절에 빠져서 축구를 그만둬야 하나 싶을 때쯤.

그의 눈앞에는 메시지가 발생했다.

[프랑스 축구를 위기에서 구할 생각이 있습니까?]

줄리앙은 당황스러웠다.

“이게 뭐야?”

무엇보다 프랑스 축구가 위기라니?

역대급 최고의 팀이자 황금세대로 불리고 있는데 위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 헛소리야.”

줄리앙은 메시지 창에 손을 갖다 댔다.

그 순간이었다.

줄리앙의 눈앞에 너무나 많은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영국한테 5:0으로 지다니. 이건 말도 안 돼!”

한국과 일본만큼 역사적으로 앙숙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영국과 프랑스였다.

섬과 내륙.

장미전쟁 때부터 이어진 앙금이 쉽사리 풀릴 리가 없었다.

줄리앙은 딱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내가.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싶다!”

[프랑스의 수호성인 성녀이자 오를레앙의 처녀,

잔 다르크가 당신을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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