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연장전
로마의 한 성당.
신부는 저녁 미사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때 문을 벌컥 열고 한 커플이 들어왔다.
“그날을 잊을 수 없지. 내 평생 가장 특이한 커플을 본 날이었으니까.”
신부는 훗날 숨이 넘어가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 커플을 잊지 못했다.
“결혼하러 왔습니다. 신부님. 주례를 서주실 수 있나요?”
검은색 머리를 가진 동양인 커플은 심심찮게 많이 왔다.
여기까지는 간혹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축구복을 입고, 축구화를 신은 채 나타난 신랑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뭐라고요? 제가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남자는 스페인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허허. 이것 참.”
신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스페인어도 할 줄 몰랐다.
“왜 못 알아먹지?”
남자는 이해가 안 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한민국, 중국, 일본, 홍콩, 대만 사람이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말이 통할 거란 착각을 한 것과 같았다.
“죄송합니다. 신부님.”
그나마 여자 쪽은 약간의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았지만,
의사소통을 하기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영어 번역이 가능한 신부를 데려왔다.
젊은 신부인 시저는 신랑을 보더니 놀랐다.
“오 마이 갓! 이순신 선수 아닙니까!”
시저는 신랑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봤다.
“신부님. 이분이 누구냐면요.”
시저의 설명을 들은 그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데 여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저희를 축복해주십시오.”
이순신이 말했다.
신부가 되물었다.
“그럼 지금 두 분이 여기서 결혼을 하겠다는 겁니까?”
“네.”
“아니요.”
신부는 다시 한번 놀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여기까지 와서 서로 다른 대답을 하다니.
“하하. 두 분.”
신부는 땀을 삐질 흘렸다.
“잠시만 시간을 좀 주실 수 있나요?”
이순신은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는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여기까지 와서 왜 그래.”
“나 지금 화나려고 해. 왜 계속 제멋대로인데? 누구 맘대로 갑자기 결혼이야?”
“음. 역시 소설 속에 나온 두오모 성당으로 갈 걸 그랬나. 그렇지만 거긴 여기서 꽤 먼데.”
이순신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
신자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부와 시저는 화들짝 놀랐다.
“신부님. 여기서 또 한 커플이 깨져서 나가는 걸까요?”
시저의 말에 인자한 표정을 짓던 신부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 성당은 유명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뜨거운 밤을 보낸 커플이 깨져서 나가기 부지기수였다.
소문이 나자 신부에게 축복을 구하러 온 사람은 없었다.
근처에는 많은 성당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순신이 고른 곳이 이곳이었다.
훗날 시저가 이 성당을 물려받은 이후로는 이미지가 바뀌었다.
이곳에서 결혼을 하면 백년해로하기로 유명한 성당이 됐다.
“신부님 어떡하죠? 지금이라도 내보내는 게 저 둘을 위해서 좋지 않을까요?”
“지켜보세. 모든 건 성모님의 뜻이니.”
신부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제발 저 커플은 깨지지 말라고.
‘아니. 그런데 솔직히 저렇게 입고 청혼하고 귀싸대기 안 맞은 게 다행이지. 여기까지 온 여자가 보살이네. 보살.’
신부는 자기도 모르게 ‘아미타불’을 외쳤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게 싫다며? 그래서 조용한 곳에서 결혼식을 하자고 데리고 온 거야.”
“그렇다고 이건 아니지!”
신자영은 이순신과 대화할수록 더더욱 화가 났다.
그녀가 생각했던 프러포즈는 진심으로 소박했다.
그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꽃다발만 줘도 승낙했을 것이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어.’
이러한 성격은 결혼하면 고생할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방어기제가 발휘됐다.
“미안해.”
이순신이 진심을 담아서 사과했다.
단 3음절.
거인의 서글픈 눈망울과 진심이 담긴 음성이 신자영의 마음을 빠르게 녹였다.
“내 생각만 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았어.”
“참 나-”
신자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땀에 쩔은 머리, 땀 냄새가 풀풀 나는데도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락.
신자영이 이순신을 감싸 안았다.
“앞으로 또 미안할 짓 하면 죽는다.”
신자영은 마지막 음절의 음을 오리며, 이순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고마워. 자영아. 앞으로 내가 잘할게.”
이순신이 신자영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두근두근.
이순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심장이 굉장히 빨리 뛰네. 부끄러워하기는.’
귀여웠다.
‘덩치만 컸지 애기네’
입에서 입으로 말이 오가진 않았지만,
심장과 머리로 많은 것을 대화할 수 있었다.
서로의 체취를 맡으며, 교감했다.
노을빛이 그들을 비췄다.
따스함이 온몸에 파고들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거 같았다.
“험험.”
신부는 헛기침을 하며 좋은 분위기에 제동을 걸었다.
“아. 죄송합니다. 신부님. 그럼 주례를 서주실 수 있나요?”
“그거야 어렵지 않죠. 다만 문제가 있소. 언약에는 증인이 필요한데 여기엔…”
성당 안에는 네 사람뿐이었다.
“제가 신랑 측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시저가 손을 들고 자청했다.
“대신 있다가 사인 좀 부탁합니다. 아니 그 유니폼 부탁합니다.”
“유니폼에 사인해서 드리겠습니다!”
이순신과 시저는 악수하며 씨익 웃었다.
문제는 신자영 쪽이었다.
신 앞에서 맹세를 하기 위해선 절차가 필요한 법.
신부는 얼렁뚱땅 넘어가기 싫었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신부가 신자영에게 물었다.
“신자영입니다.”
“나의 이름은 카사노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친구입니다.”
카사노 신부가 눈을 찡긋했다.
“네!”
신자영도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렇다면 언약의 맹세를 진행하지요.”
한국에 있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려면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교리를 받아야 하고,
교리반 전 과정을 이수해야 하며,
성경 필사는 기본이었다.
고해성사를 한 후 세례명을 정해야 하며,
신부님 면담,
대부, 대모를 데려온 후 세례식을 치른다.
이러한 과정을 몇 달 동안 거친 뒤에야 비로소 결혼을 할 수 있는데 어차피 이렇게 해도 이혼할 사람은 이혼하는 게 신의 뜻이었다.
융통성이 있는 카사노 신부는 절차는 간략하게, 축복은 확실하게 했다.
“이로써 두 사람이 부부가 됨을 선언합니다.”
축복의 기도가 끝난 뒤 이순신과 신자영은 눈을 뜨고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오늘부터 다시 1일이네.”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맞췄다.
반지나 화려한 예식장이 사랑을 증명해주지 않는다.
신자영의 손을 잡은 이순신의 따뜻한 체온이 더 확실한 증거였다.
두 사람은 성당 밖을 나왔다.
날씨가 참 좋았다.
“이제 우리 어디 가지?”
밖으로 나오니까 신자영은 급격히 현실감이 밀려왔다.
“호텔.”
“응?”
신자영이 당황했다.
후읍. 후읍.
그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물었다.
“순신아. 너무 진도가 빠른 거 아니야? 나 오늘 너무 당혹스러워.”
“누나. 아니 자영이 네가 호텔 잡아놨다며.”
“아-”
이순신의 팩트 폭격에 신자영은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우리 이제 부부잖아.”
‘야!’
‘부부’라는 말에 신자영은 당혹스러웠다.
“생각해보면 되게 좋지 않아? 우리 신혼여행을 이탈리아로 온 거잖아. 알고 보니 자기는 천재?”
“야! 하지마!”
신자영이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비록 도심 한가운데 있는 숙소를 잡긴 했으나 나쁘지 않았다.
“가자. 자기야.”
이순신이 웃으며 신자영의 손을 잡고 달렸다.
일단은 달렸다.
“야! 너 어딘지 알고 가는 거야?”
“몰라. 그냥 일단 달리고 싶어.”
이순신과 신자영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얼른 가서 씻고 싶어.”
“야~! 너 진짜 나 자꾸 부끄럽게 만들래!”
이순신의 의도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시저에게 유니폼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비록 그가 축구복이 잘 어울리긴 해도 이제는 벗을 때였다.
“어서 오십시오.”
호텔리어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은 호텔로 체크인을 했다.
호텔직원이 이순신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호텔은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숙박비가 비싼 것이었다.
비밀 보장!
이순신과 신자영은 키를 받아서 호텔로 갔다.
체크인을 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둘만의 시간이 되었다.
“자영아. 사랑해.”
“나도.”
이순신이 유니폼을 벗어 재꼈다.
탄탄한 근육이 보였다.
강렬한 페로몬이 풍겼다.
땀에 찌든 냄새가 아닌 바다 냄새가 났다.
“아-”
신자영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인간은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면 감탄을 하는 동물이었다.
이순신의 상체를 보니 손이 절로 갔다.
탄탄한 근육 탓도 있지만,
오늘 경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부딪히고, 긁힌 상처.
신자영은 치유해주고 싶었다.
“읍.”
신자영의 입술이 가슴에 닿자 이순신은 당황했다.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신자영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놔뒀다.
그녀는 이순신의 심장을 계속 간지럽혔다.
신자영은 앞머리가 흘러내리자 잠시 입을 떼고 귀 뒤로 넘겼다.
“누나.”
이순신이 키스하려고 하자,
신자영이 검지로 입술을 막았다.
“누나라고 하지 마. 앞으론 자영이라고만 해.”
신자영의 투정이 너무나 귀여워 이순신은 참을 수 없었다.
이순신은 그대로 신자영을 안아서 침대로 데려갔다.
“꺄아앗!”
침대 위에 눕혀지자 신자영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순신의 연장전이 침대 위 이불속에서 펼쳐졌다.
“간지러워!”
“히-가만있어 봐!”
누군가를 이기기 위함이 아닌 즐기는 경기 그 자체를 하고 있었다.
***
아침에 먼저 잠에서 깬 건 신자영이였다.
꿈같은 하룻밤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이순신이 자고 있었다.
“내가 이 어린것하고 무슨 짓을 한 건지. 그것도 술에 취한 것도 아닌 맨정신으로…”
금세 깨달았다.
“아, 결혼했지.”
그녀는 자는 이순신의 볼에 입을 맞췄다.
이순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었다.
신자영은 프론트에 전화를 걸었다.
“네. 가볍게 입을 옷 하고요. 조식 준비해주세요.”
신자영은 주문을 마친 후 샤워하러 들어갔다.
쏴아아-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나오니 어느새 이순신이 서 있었다.
가운만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신자영은 얼굴이 붉어졌다.
“자영아. 어제 너무 좋았어.”
“너 누나한테!”
“왜. 앞으로 자영이라고만 부르라며?”
신자영은 쑥스러운지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순신도 씨익 웃으면서 따라 들어갔다.
“하지 마~!”
“할 건데?”
“야~ 거긴 만지지 마.”
“…”
두 사람의 연장 후반전이 아침부터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