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결혼하러 갑니다.
이순신이 회심의 추가 골을 넣었다.
“꿈FC가 2:1로 역전에 성공합니다!”
AS 로마의 팬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마치 그때와 같아!”
오래전 월드컵에서 안태리가 골든골을 넣고 반지의 제왕이 된 이후.
또 다른 한국인이 이탈리아에 악몽을 선사했다.
이순신은 골을 넣고 그대로 경기장에 엎어졌다.
뛰어갈 힘도, 환호할 힘도 남지 않았다.
그저 잠시만 쉬고 싶을 뿐이었다.
“순신아!”
팀 동료들이 뛰어와서 이순신을 덮쳤다.
“해냈다고. 너라면 해낼 줄 알았다고!”
그만큼 절실했고, 다들 이순신이라면 경기의 흐름을 바꿔 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졸려…”
눈이 스르르 감길 때쯤,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순신아!”
이런 건 아니었다.
“아직 경기 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심판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이순신은 눈을 번쩍 떴다.
“가자. 아직 경기 끝나지 않았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수비라인을 정비했다.
더는 선수 교체를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10:11로 싸우게 된다면?
결과는 단숨에 바뀔 수 있었다.
축구란 그런 스포츠였다.
‘한 골을 더 먹힌다고 지진 않아.’
하지만…
유로파는 매우 잔인한 토너먼트였다.
조 1위는 16강에 진출하지만,
조 2위는 챔피언스 리그 3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운이 좋다면 1부 리그 중위권 팀을 만날 수도 있지만,
재수가 없다면 레알 마드리드나 리버풀 같은 강팀과 만날 수도 있었다.
현재 두 팀의 승점은 같았고,
꿈FC가 골 득실에서도 앞섰다.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버텨!”
으득.
이순신의 고함에 꿈FC 선수들은 이를 악물었다.
“달려!”
엘샤라위가 치고 나갔다.
모든 힘을 쏟아부어서 개인기를 펼쳤다.
선수들과 2:1 패스를 한 후 마지막 구멍을 제치려는 순간,
“나무아미타불.”
구멍이 반칙으로 엘샤라위의 움직임을 끊었다.
부처님이 도우셨는지 옐로카드조차도 받지 않았다.
AS 로마는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심지어 위치도 좋았다.
페널티 에어리어 밖.
직접 프리킥으로 넣기에도 충분한 거리였다.
“AS 로마의 마지막 프리킥이자 마지막 공격이 될 거 같습니다.”
이순신이 상대편 진영을 바라보았다.
만치니뿐만 아니라 파르라시우도 꿈FC 진영으로 들어왔다.
AS 로마의 미드필더가 프리킥을 올렸다.
공은 엘샤라위를 지나서 엘도르에게로 향했다.
뻔한 수였지만, 가장 확실한 공격카드였다.
심지어 그는 이순신과의 경합에서도 이겨본 적이 있었으니까.
“이순신과 엘도르가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입니다.”
서로의 어깨와 팔로 상대가 뛰어오르지 못하도록 치열하게 교차했다.
“으아!”
우즈베키스탄 특급 공격수 엘도르는 이순신의 저지를 뚫고 이를 악물고 높이 뛰었다.
“안 돼!”
꿈FC 선수들은 엘도르의 팔에 눌린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시선은 엘도르에게 향했다.
퉁!
공이 제대로 이마에 맞았다.
“엘도르의 헤딩슛!”
이순신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수류탄을 막듯이 튀어 땅에 튕긴 헤딩슛을 막아냈다.
착지한 엘도르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미친. 저걸 막아?”
비록 군대에서 훈련할 때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순신은 교육을 받아서 잘 알고 있었다.
튕긴 공을 잡지 못하면 꿈FC의 멘탈이 터져버린다는 것을!
“으윽.”
하지만 축구공의 부피가 커서 이순신은 몸을 옆으로 뉘었다.
다다닷!
누군가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엘샤라위가 루즈볼을 노립니다!”
그는 발을 힘껏 뒤로 젖혔다.
이순신이 재빨리 등을 보이며 공을 지켰다.
삐이이익-
엘샤라위의 발이 이순신의 등을 때리기 전에 가까스로 멈췄다.
“경기 끝났습니다! 꿈 FC가 역전 골을 잘 지켜내어 조 선두를 달성했습니다!”
“휴-”
이순신은 공을 잡았다.
경기가 끝났기 때문에 손으로 공을 만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매우 지친 상태였다.
심신의 안정이 필요했다.
“순신이 형. 끝났어요! 우리가 이겼다고요.”
임단결이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AS 로마는 그들이 이긴 팀 중에서 가장 네임밸류가 높았던 팀이었다.
원래는 챔피언스 리그를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팀이 어쩌다가 유로파에 나와서 꿈FC의 앞길을 막을 뻔했다.
“순신아. 수고했다.”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던 보경풍이 손을 내밀어서 이순신을 일으키고자 했다.
“괜찮아.”
이순신은 스스로 일어났다.
왠지 보경풍의 손을 잡는 순간 마음이 약해져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형, 괜찮아요? 부축해드릴까요?”
이순신이 손을 내저었다.
방송국은 이순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몸이 안 좋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괜찮으세요?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나운서가 걱정을 할 만큼 이순신의 안색은 창백했다.
[5분 뒤 깊은 잠에 빠집니다.]
‘상태창도 그동안 업그레이드가 많이 됐네. 이제는 준비할 시간도 주고.’
이순신은 피식 웃었다.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쉽지만 그들은 오늘 첫 골을 넣은 김혁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저요?”
“네. 오늘 유로파리그에서 첫 골을 넣으셨는데요. 기분이 어떠신지요?”
“조…좋아요.”
김혁규가 잔뜩 얼어붙은 채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편, 이순신은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고 조용히 먼저 경기장 밖을 빠져나갔다.
선수들이 지나가는 복도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3분 뒤 깊은 잠에 빠집니다.]
‘조금만 더 가면 라커룸이야.’
이순신은 여기서 쓰러지는 거보단 라커룸에서 조용히 자는 걸 선택했다.
그 순간이었다.
“순신아.”
어두운 복도에서 신자영이 뛰어왔다.
그것은 빛 그 자체였다.
“누나.”
이순신이 웃었다.
그저 웃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좋았다.
“괜찮아? 어디 아픈 거 아냐?”
“응. 조금 피곤할 뿐이야.”
[2분 뒤 깊은 잠에 빠집니다.]
신자영은 깜짝 놀랐다.
이순신은 결전을 치르고 나면 꼭 쓰러졌다.
“너 설마 또?”
치열한 경기를 하고 나서 찾아오는 깊은 기면증.
신자영은 매우 걱정됐다.
이순신을 꼬옥 안아줬다.
“가자. 근처에 호텔 잡아놨어.”
이순신에게 거기까지 갈 체력이 없었다.
“누나. 내일 데이트 안 잊었지?”
“그게 문제야?”
신자영은 답답했다.
“응. 피자 먹으러 가자. 여긴 이탈리아니까.”
“알았으니까 얼른 가서 쉬자.”
신자영이 이순신의 손을 잡았다.
스르르르.
잠이 들어야 했는데 이상했다.
이순신의 정신이 점점 맑아졌다.
“누나. 나 좀 이상해.”
“왜 그러는데?”
“나 왜 안 졸리지?”
“무슨 소리야.”
신자영은 이순신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진짜로 아까와는 다르게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다.
다만 이순신의 상태가 좀 멍했다.
이순신은 눈앞에 발생한 보상을 살펴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여신의 축복]
[이탈리아 리그 세리에 A 리그 팀을 격파했습니다.]
[당신의 플레이에 감동받은 성모마리아가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은 당신에게 축복이 되어 나태의 악마를 물리칩니다.]
[발동 조건 : 경기가 끝난 후 5분 안에 여신의 축복을 받을시 빠른 체력 회복,]
‘여신?’
이순신은 신자영을 쳐다보았다.
“예쁘긴 하지.”
이순신은 신자영의 손을 잡았다.
“순신아?”
갑작스러운 행동에 신자영은 당혹스러웠다.
“고마워. 나의 여신.”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미…미쳤나 봐!”
신자영이 두 주먹으로 이순신의 가슴을 팍 밀쳤다.
나태의 악마.
이쪽 계열의 종교에서는 7 대죄, 혹은 7대 악으로 불렸다.
모든 걸 쏟아붓고 회복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었지만, 사실 이 순간은 이순신에게 곤욕이었다.
자는 동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잠에 빠져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충무공이 끊임없이 그를 다독였다.
이순신에게는 나름 리스크가 컸던 세컨드 윈드.
스팀 팩이 있었지만, 자주 나오는 보상이 아니었다.
최근에는 세컨드 윈드 더블을 쓸 정도로 강한 상대를 만난 적이 없었기에 부작용에 대해서 무감각해졌었다.
그래서 봉인한 기술이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신자영과 함께라면 언제든지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 함께 있고 싶었다.
“순신아. 너 여기서 뭐 하냐?”
“자영이 누나?”
이순신이 고개를 돌리니 꿈 FC 선수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 깜박했다.”
“누나. 너무하네! 순신이만 챙기네.”
“우리도 누나 고객이라고요!”
“아니. 상태가 좋지 않은 거 같아서 걱정돼서.”
“누나 나도 여기 다쳤는데.”
헤이니가 경기 중에 살짝 까진 걸 보여주며 엄살을 피웠다.
이순신이 신자영의 손을 잡았다.
“오! 주장. 박력 있는데?”
“세상에. 둘이 설마 사귀어요?”
신자영이 당황하는 사이, 이순신이 말했다.
“응. 우리 사귀어.”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이 커지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요?”
“맞아. 너 저번에 올림픽에서 안 사귄다며?”
“그렇게 됐다. 혁규야.”
이순신이 싱긋 웃었다.
“배신자!”
김혁규는 울컥했다!
이순신이 신자영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형. 어디 가요?”
임단결이 물었다.
“결혼하러.”
이순신의 충격 선언에 선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래도 오늘 승리를 하고 단단히 미친 거 같소.”
구멍이 혀를 끌끌 찼다.
제일 놀란 건 신자영이었다.
“너 왜 항상 이렇게 제멋대로야?”
거리로 나온 신자영이 이순신의 손을 뿌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 집중됐다.
“누나. 나 진지해.”
“그거랑 지금 상황이랑 뭔 상관인데?”
신자영도 이번만큼은 단단히 화가 났다.
“자영아. 나 아까 네가 없었다면 쓰러졌을 거야.”
이순신이 갑자기 누나가 아니라 이름을 불렀다.
“하- 계속 말해봐.”
신자영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며 일단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오늘 경기 너무 힘들었어. 그저 난 눈을 감고 싶었는데 좋은 향기가 났어.”
이순신은 아까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네 품에 안겼을 때 포근했어. 그리고 정신이 맑아졌어.”
신자영도 아까 상황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돌렸다.
“정신이 든 순간 생각났어. 이 사람하고 평생 함께해야겠다고. 넌 나한테 여신이니까.”
다소 오글거리는 말에 신자영은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지잉-
그 순간이었다.
성당의 종소리가 들으니, 그 오글거림도 어느새 울림으로 변했다.
신자영은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축구복을 입고, 땀에 젖은 그의 모습은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는 할 순 없었다.
하지만 반지도, 꽃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진심만 가지고 자신에게 고백했다.
그래서 그런지 신자영의 가슴은 무언가 벅차올랐다.
신자영은 그 순간 소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