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32화 (133/161)

132화. 내가 차도 돼?

언제까지 임진왜란에 머물 것인가?

더는 화살과 칼로 전쟁을 치르던 시대가 아니었다.

언제 적 충무공이냐고 할 수 있으나 그는 유일무이한 존재이자 전설 그 자체였다.

그가 있었기에 당시 조선은 최고수준의 군사 무기를 갖출 수 있었다.

천궁이 되어 날아가는 이순신의 슛은 그대로 골문에 꽂혔다.

포르투갈의 수비수도, 골키퍼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슛이었다.

“골입니다. 대한민국의 선취골!”

“이순신 선수의 데뷔 골입니다!”

데뷔전에서 데뷔 골은 앞으로의 스타 탄생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이순신은 양손을 착 펼쳤다!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관중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이순신의 이름을 외쳤다.

해설자는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이순신 선수. 대단합니다. 10년 전에 스페인에 귀화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다시는 태극마크를 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군대를 현역으로 갔다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량이 더 늘어났어요!”

“맞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올림픽에서 최초로 대한민국에게 금메달을 안겨줬고, 비공식적이지만 득점왕도 했어요.”

“이순신이 대한민국 축구계를 살리고 있습니다!”

나르가르두는 좌절에 빠졌다.

오늘 이 경기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르가르두. 꼴사납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의 가슴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밀히 말하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조국을 우승에 올려놓고 멋지게 은퇴하고자 했던 그의 계획이 그냥 은퇴를 하는 걸로 땡겨질 수 있었다.

“나르가르두. 고개 들어.”

그를 위로한 건 부주장 무티뉴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팀의 궂은일을 도맡았지만, 누구보다 팀에서 필요한 선수였다.

만 18세의 나이로 포르투갈 대표 팀으로 선발됐었다.

그리하여 역대 포르투갈대표팀 선수 중 나르가르두를 제외하고 최다 출장 2위를 기록했다.

대표 팀에서 그의 별명은 만년 2위였다.

그럼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팀이 먼저였다.

포르투갈 대표 팀에서 절대 폭군으로 군림하는 나르가르두가 가장 신뢰하는 선수이자, 유일하게 믿는 친구였다.

“나 대신 차줄래?”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르가르두가 유로 대회에서 무티뉴에게 승부차기를 대신 차줄 것을 부탁했다.

지난 대회 때 실축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무티뉴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다.

그리고 골을 성공시켰다.

그렇게 두 사람은 포르투갈 대표 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동료였다.

“오히려 내가 놓친 거니까 개의치 말라구.”

무티뉴의 실수가 전혀 아니었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다만 이순신의 슛이 때마침 진화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운이 조금 나빴던 것이지만, 그는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내가 다음번에 꼭 골을 넣겠어.”

“그래. 포르투갈의 주포는 너야. 그리고 너한테는 그게 있잖아.”

“그거? 물론 내 물건이 죽여주긴 하지만 그걸 여기서 꺼낼 순 없잖아.”

“아니. 그거 말고 프리킥.”

나르가르두는 깨달았다.

“너의 호우 세레머니를 볼 수 있길 바란다.”

무티뉴가 나르가르두의 어깨를 두드리고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나르가르두의 눈빛은 비장해졌다.

무티뉴가 말한 프리킥.

그것은 원래 그의 강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약점에 가까웠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팬들은 아무도 그에게 프리킥을 기대하지 않았다.

나르가르두는 제일 먼저 훈련장에 주차했고, 제일 먼저 훈련했다.

그가 프리킥을 차면 팬들은 욕하기 바빴다.

“욕심 좀 그만 부려!”

“너보다 잘 차는 선수들이 널려있어!”

불과 1년 사이에 여론은 뒤바뀌었다.

나르가르두가 프리킥을 차기 위해 깃을 세운 뒤 양발을 벌리고 정면으로 서 있었다.

“오늘도 한 골만!”

“가자! 무회전!”

그의 프리킥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따라 하는 프리킥 동작이 되었다.

프리킥을 얻는 법은 간단했다.

상대편의 수비를 농락하면 됐다.

고작 1골 먹힌 걸로는 포르투갈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르가르두가 있기에 2골이고, 3골이고 되갚아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티뉴가 뒤에서 버텼다.

그를 믿고 나르가르두가 주축이 되어 대한민국 수비진을 흔들었다.

“임단결 선수. 아직 나르가르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네요.”

“치잇!”

“나르가르두 마침내 이순신을 뚫습니다!”

“하지만 슈팅이 너무 약해요. 그대로 골키퍼가 공을 잡습니다.”

나르가르두는 골 욕심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를 이용한 플레이를 했다.

개인과 패스라는 선택지가 생기니 이순신도 세 번 중 한 번쯤은 놓치는 상황이 왔다.

전반 막판에 포르투갈과 나르가르두가 고대했던 순간이 드디어 왔다.

대한민국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나르가르두의 옷을 잡은 것이 심판에게 딱 걸렸다.

골대와의 거리는 35M쯤 됐다.

“나르가르두.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나르가르두가 옷깃을 세우고 양발을 넓게 벌렸다.

“후우.”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는 어디로 찰지 대한민국의 수비벽과 골키퍼의 위치를 파악했다.

‘저기다.’

나르가르두는 골 냄새를 맡았다.

‘간닷!’

나르가르두의 발등에 정확히 공이 닿았다.

그를 세계 최고의 프리킥 키커로 만들어준 무회전 슛이 발동됐다.

공의 회전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선수들은 그저 공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어린 너희들이 막을 수 있는 그런 슛이 아니야.

최고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일찍 나왔고, 누구보다 늦게 집에 가면서 쌓은 내 노력의 결과물이다.’

나르가르두는 차는 순간 직감했다.

이건 골이 확실하다고!

[방패연이 발동했습니다.]

나르가르두는 깜짝 놀랐다.

수비수도, 골키퍼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어떤 미친놈이 공을 향해서 달려갔다.

“이순신 선수. 슬라이딩하면서 발을 뻗습니다!”

“막았습니다!”

공을 골대 상단을 맞추고 밖으로 나갔다.

“엄청난 프리킥과 엄청난 수비가 나왔습니다.”

나르가르두는 어이가 없었다.

‘이걸 막아냈다고? 저 어린 녀석이?’

그는 한숨을 내쉬는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동족이라는 것을.

이윽고 포르투갈의 프리킥이 올라갔다.

임단결은 짜증 냈다.

“젠장. 너무 높잖아.”

그는 공이 페널티 에어리어 쪽으로 날아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포르투갈의 작전은 단 하나.

높은 점프력을 지닌 나르가르두의 헤딩슛이었다.

나르가르두는 점프를 뛰었다.

헤딩 타점, 점프 타이밍, 속도와 거리 이번에도 어김없이 골이라고 예상했다.

‘이건 확실해!’

그의 자신감이 이순신에 의해서 확실하게 막혔다.

“이순신 선수. 나르가르두 선수보다 한 발짝 더 빠르게 높이 뛰어서 공을 클리어해냈습니다!”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10초 남짓이었다.

“이순신 선수. 공을 찹니다!”

어차피 패스를 하는 순간 주심이 휘슬을 불 게 뻔했다.

88M라면 이전에도 넣어본 적이 있던 거리이기도 했다.

이순신은 천궁처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자포를 발동시켰다.

“이순신이 찬 공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데요. 어?”

코스가 제법 괜찮았다.

이대로 휘슬을 불면 주심은 팬들에게 쌍욕을 먹을 게 뻔한 상황이었다.

이순신은 눈을 찌푸렸다.

왠지 하늘을 나는 거북이가 보이는 거 같았다.

퉁!

아쉽게도 공은 골대를 맞고 나갔다.

대한민국의 코너킥 상황이었으나, 주심은 휘슬을 불었다.

“대한민국 vs 포르투갈. 대한민국이 1:0으로 경기를 리드한 채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마지막에 찬 이순신 선수의 슛이 정말 아쉽습니다.”

경기를 본 기자들과 관중들은 생각했다.

전반전만 놓고 MVP를 꼽는다면 누가 뭐라 해도 이순신이었다.

골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나르가르두의 프리킥 골을 슈퍼 세이브로 막아냈고, 멋진 유효슈팅까지 기록했다.

황조 역시 이순신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 볼 좀 찬다?”

황조가 이순신을 향해 칭찬을 날렸다.

“고맙습니다.”

이순신이 고개를 숙이며 답례했다.

공격수 출신인 안태리는 후반에도 공격을 지시했다.

“골을 넣어라!”

안태리 시절과 지금 시절의 공격수는 확실히 달랐다.

과거에는 유럽에 나가도 통할 실력이란 소리를 듣는 선수들이 대표 팀의 주축이었으나,

지금은 유럽에서 자신을 증명한 선수들이 즐비했다.

이는 경험으로 이어졌고,

경험은 전이되어 대한민국은 꽤 강한 팀이 되었다.

감독의 역할은 이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잘 조합하여 결과를 내는 것이었다.

“구멍. 준비해라.”

세세한 전술 지시를 마친 후, 안태리는 후반전 시작과 함께 구멍을 집어넣었다.

“어? 구멍이다!”

구멍은 팬들에게서 인기가 제법 많은 편이었다.

빡빡머리는 트레이드 마크였으며, 반칙을 하고 합장을 하는 것은 짤로 많이 돌아다녔다.

이순신이 구멍을 불렀다.

“구멍.”

구멍이 고개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오? 순신 시주. 나 지금 오줌 매렵소.”

이순신은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었다.

“구멍. 네가 계속 국가대표에서 뛰려면 저 사람 잡아야 된다.”

이순신이 가리킨 사람은 무티뉴였다.

“알겠소이다. 내가 꼭 그를 뛰어넘어보리라.”

딱히 호랑후를 발동하지 않아도 구멍은 마음을 다잡았다.

역시 불심의 힘이었다.

구멍 덕분에 수비가 강화된 대한민국은 좀 더 이순신을 공격적으로 커버할 수 있었다.

이순신이 임단결과 스위칭을 하고 오버래핑을 나가면 구멍이 그 자리를 잘 메꿔줬다.

경기를 할수록 구멍은 성장했다.

“구멍 선수도 오늘 데뷔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때 임단결 선수 치고 나갑니다!”

임단결이 우측에서 오버래핑으로 돌파한 후 크로스를 올렸다.

“이순신이 높게 뜁니다!”

이순신이 달려오면서 헤딩슛을 쐈다.

[황자포가 발동했습니다.]

공을 땅을 튀긴 후 공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한민국 후반 16분. 마침내 역전 골을 성공시킵니다!”

포르투갈은 전의를 잃었다.

그저 버티기를 할 뿐이었다.

급기야 후반 40분에 프리킥을 내주고 말았다.

손민흥, 이광인, 이순신이 누가 찰지를 정하고 있었다.

“순신아. 네가 할래?”

손민흥이 이순신한테 해트트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이순신이 고개를 돌렸다.

이광인은 자기가 차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이순신은 잠시 고민했다.

이광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순신이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광인아 내가 차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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