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30화 (131/161)

130화. 이번에도 노쇼?

포르투갈과 인연?

굳이 따지자면 악연에 가까웠다.

“포르투갈은 우리한테 왜 그런 데니?”

“험험.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안태리의 성토에 이순신은 헛기침이 나왔다.

2002년 전설을 쓴 대한민국 대표 팀의 차기 사령탑은 포르투갈 출신의 감독이었다. 테크니션을 주로 활용하는 그의 축구 전술 자체는 꽤 재밌었다.

다만, 눈높이가 높아진 시점이었으며,

져서는 안 될 팀들에게 져 버리니 경질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 뒤 20년 만에 뽑힌 감독의 고향도 포르투갈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악연은 재작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이 시대 최고의 득점왕인 나르가르두 때문이었다.

이번 포르투갈 대표 팀 명단에 그가 포함되어 있었다.

***

나르가르두는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의 명문 팀에 뛰면서 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한 이 시대의 리빙 레전드였다.

대한민국에서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도 있었다.

나르가르두를 줄여서 날두 형이라고 불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그는 대한민국 팬 지분의 99.1%를 잃고 말았다.

이른바 ‘나르가르두 노쇼 사건.’

그 이후로 그의 별명은 날두 형에서 날강두로 변했다.

친선 경기를 위해 포르투갈 대표 팀이 입국했다.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을 거 같았던 나르가르두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르가르두!!!”

그의 모습을 보자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다가 트라우마가 살아난 팬도 있었다.

“내 돈! 내 시간! 내 추억! 날강두@*#(*@#아!”

쾅쾅쾅!

대중의 관심이 아직도 많은 거 보니 그의 스타성은 아직도 유효했다.

당시 출전에 대해서 별다른 해명조차 하지 않았던 그가 이번엔 인터뷰에 응했다.

“2년 전, 노쇼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일주 일보의 유신언 기자는 매운맛으로 시작했다.

“미안합니다. 됐죠?”

질문을 한 기자가 오히려 벙쪘다.

사과를 하긴 했는데 뭔가 찜찜했다.

애초에 이걸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 사건에 대해서 전혀 미안함이 없으시다는 뜻이죠?”

“그게 내 잘못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유감스럽게도 나르가르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때 노쇼 사건.

그의 잘못만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대회를 주최했던 주관사,

갑질을 부렸던 당시 소속팀인 유벤투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축구협회가 만들어낸 삼박자였다.

누구 하나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르가르두에게 충분한 핑곗거리를 만들어 준 것.

그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엄밀히 말하면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그래도 괘씸죄는 용서받을 수 없었다.

그의 라이벌이었던 메시와 대처방법이 너무나 달랐다.

당시 한국과 스페인의 수교 60주년 기념으로 K리그 올스타와 FC 바르셀로나와의 친선전이 열렸다.

축구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시작 전부터 바르셀로나의 감독이 김을 빼버렸다.

“메시와 다니엘은 출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한 마디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환불 사태를 일으켰으며 6만 명이나 모일 수 있는 경기장에는 고작 3만 명의 팬들만 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는 출전했다.

비록 15분이었음에도 2골 1도움을 뛰며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무리한 스케줄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였음에도 프로의 자세를 보였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팬들은 포르투갈과의 친선전을 상당히 벼르고 있었다.

“끝으로 질문을 하나만 더 받고, 인터뷰를 끝내겠습니다. 시차 적응하느라고 너무 피곤하거든요.”

웃음과 여유로 인터뷰를 일관하던 나르가르두에게 누군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순신 선수를 뚫고, 골을 넣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그 질문이 상당히 불쾌했는지, 나르가르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누구요?”

“이순신 선수요.”

“그게 누군데요?”

기자들은 생각했다.

‘월척이로구나.’

나르가르두가 마침내 미끼를 물었다.

“이순신 선수는 현재 대한민국에 떠오르는 수비수로서 스페인 3부 리그에 속한 꿈FC에서 뛰고 있습니다.”

나르가르두가 통역을 듣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잠깐만요. 지금 3부 리그 선수를 상대로 골을 넣을 수 있냐고 물은 겁니까?”

스페인 1부 리그에서도 매년 50골을 넣었던 나르가르두에게 3부 리그 선수를 상대로 골을 넣을 수 있냐는 건 크나큰 실례였다.

“흐흐흐. 나르가르두 빡친 거 봐라. 꼬시다.”

하지만 팬들은 일그러지는 나르가르두의 얼굴을 보며 즐거워했다.

“이순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번 경기에서 기필코 그를 제치고 골을 넣겠습니다.”

나르가르두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치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

다음 날.

이순신은 마지막 광고 촬영을 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촬영을 무사히 끝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순신이 스텝들을 향해 인사했다.

“이순신 선수. 모델해도 되겠어요. 기럭지가 남달라. 단순히 긴 게 아니라 비율도 좋아.”

CF 감독은 이순신에게 따봉을 보냈다.

“하하. 뭘요.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르가르두가 화가 단단히 났던데…”

“왜요?”

“어? 아직 기사 못 봤어요?”

“네. 아침부터 촬영이 있어서요.”

“허허. 이거 좀 봐봐요.”

촬영감독은 인터넷 기사를 보여줬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순신도 어이가 없었다.

그저 가볍게 뛰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어느덧 분위기는 한일전 못지않았다.

-이순신vs나르가르두-

“아니. 민흥이 형이 있는데 왜 제가 메인이에요?”

이순신조차도 어찌 된 영문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신자영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신자영이 자초지종을 설명해줬다.

“이래서 내가 기레기들을 안 좋아한다니까.”

단순한 친선 경기가 어느새 전쟁 분위기로 바뀌었다.

경기는 이틀이나 남았는데 매일 스포츠 뉴스에 자신의 얼굴이 나왔다.

“좋겠다. 순신아.”

“부러워요. 순신이 형.”

“다들 이순신을 따르라!”

“그만 하세요!”

이순신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현재 한국 축구의 최전방을 책임지고 있는 손민흥,

영국에서 뛰고 있는 황찬희,

프랑스 무대에서 많은 골을 넣고 있는 황조.

독일에서 뛰고 있는 정대건과 이상재.

이순신과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임단결, 이광인, 그리고 구멍이 처음으로 대표 팀에 발탁됐다.

터키에서 뛰고 있는 김재민과 최강의 센터백 듀오를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부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2002년이나 2010년 이후로 최고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이었다.

A매치만 180번을 뛴 나르가르두는 여전히 건재했고, 무티뉴가 부주장으로서 나르가르두를 보좌했다.

그 외 멤버들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팀에 뛰고 있었다.

화려한 네임밸류에 비해서는 월드컵 성적은 매우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르가르두와 무티뉴는 이미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화려한 네임밸류에 비해 실속이 없다고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 경기는 대한민국의 홈그라운드.

충분히 해볼 만한 상태였다.

“나르가르두 형. 그만 좀 해!”

“닥쳐!”

나르가르두에게는 이제 단순한 친선 경기가 아니었다.

꼭 이겨야 하는 팀이었다.

그냥 이겨서도 안 되고 대승을 거둘 예정이었다.

“난 나르가르두야! 그런데 이런 취급을 받다니. 경기 날 너희들에게 악몽을 선사해주겠어!”

자기관리의 끝판왕 나르가르두의 소식이 전해지자, 축구팬들은 흥미진진하게 경기 당일을 기다렸다.

***

마침내 결전의 데뷔 날이 다가왔다.

서울 경기장에 6만 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대한민국 vs 포르투갈의 친선 경기가 곧 시작됩니다.”

응원도 후끈 달아올랐다.

“관중석에 붉은 유니폼 보이십니까?”

마치 옛날에 대한민국 vs 미국의 월드컵 경기를 보는 듯했다.

“예상대로 나르가르두 선수는 선발로 나섰네요.”

“대한민국도 이순신을 선발로 내보냈고요.”

언론은 철저하게 떠오르는 스타와 정점을 찍은 스타의 대결 구도로 몰아갔다.

동시에 손민흥에 대한 기대치를 낮춤으로써 그의 부담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와- 떨린다.”

이순신은 경기장 복도에서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달린 엠블럼을 확인했다.

[충무공이 감격합니다.]

이순신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시는 이 옷을 입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올림픽 대표 팀과 같은 유니폼이지만,

그 무게감이 사뭇 달랐다.

‘대참사를 막기 위해 이제부터 시작이다.’

충무공이 보여준 미래를 이순신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이순신의 선택이 스노우볼이 되어서 정해진 역사가 바뀌고 있었다.

최고의 공격진을 뒷받침해줄 수비의 리더 이순신.

이순신이 아니었으면 일찍 은퇴해버리고 유소년 코치가 댔을 수도 있었던 임단결이 오른쪽 풀백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팀 이거 괜찮은 거냐? 스페인 3부 리그 선수들이 3명이나 뽑혀서 그런지, 폼이 좀 안 난다.”

한 선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축구를 이름으로 해?”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손민흥이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래도 역사상 이런 적은 처음이라 나도 당혹스럽다.”

손민흥이 생각해도 너무나 웃긴 상황이었다.

“축구는 역시 인맥이지.”

프랑스 리그에서 뛰고 있는 황조가 웃으며 말했다.

그가 일본에서 뛰고 있을 때,

아시안게임에 와일드카드로 발탁됐다.

선발 때부터 많은 욕을 먹더니, 급기야 감독이 인맥으로 뽑았다고 실토했다.

스포츠팬은 인맥, 학연, 지연에 치를 떨었다.

그랬던 그가 좋은 활약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자 여론은 바뀌었다.

-역시 축구는 인맥이지.-

황조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안태리가 있었기에 3부 리그 팀에서 4명이나 뽑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발 라인업에 3명이나 꿈FC 소속이라니…

아무리 올림픽 우승이 주역들이라고 하지만,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포르투갈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쏘니다.”

쏘니는 손민흥의 별명이었다.

그만큼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모두 손민흥을 알았다.

“저기 쟨가 보다.”

그들은 키가 큰 수비수를 주목했다.

이순신이었다.

“선수 마케팅은 일본이 잘하는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도 이렇게 잘할 줄 몰랐는걸?”

“하하하.”

포르투갈 선수들은 쏘니가 있어도 대한민국 팀의 전력이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다.

“방심하지 마라. 그러다가 피구 선배도 탈탈 털렸어.”

부주장인 무티뉴가 선수들의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피구는 나르가르두 이전에 포르투갈 하면 바로 연상되는 슈퍼스타였다.

그랬던 그가 한국의 무명 풀백에게 탈탈 털린 건 아직도 회자가 되고 있다.

“선수는 경기장에서 말한다. 정말 저 수비수가 저쪽의 미래인지는 지켜보자고.”

“알겠습니다.”

호랑후급의 언변을 가진 무티뉴 덕분에 포르투갈 선수들은 사뭇 진지해졌다.

잠시 후.

이 모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경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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