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국가대표 선발
다른 경기장에서는 빅매치가 벌어졌다.
AS 로마와 프랑크 부르크가 각 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승부를 벌였다.
손민흥의 토트넘은 레알 베티스와 경기를 벌였다.
나름 각 리그에서 중상위권에 위치한 팀들이었다.
‘아무나 이겼겠지.’
현재 시청자들의 관심사는 이순신의 고백 스토리였다.
“해트트릭도 준비한 이벤트인가요?”
“그것이야말로 마음먹는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동료들이 도와줘야 가능한 것이라 제가 오늘 해트트릭을 할 거란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순신의 겸손한 말투에 사람들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잠깐. 이순신은 공격수가 아니라 수비수잖아!’
이순신의 시대에 살고 있는 축구팬들이 흔히 겪는 일이었다.
너무나 골을 잘 넣었기에 종종 그를 공격수로 착각하기 일쑤였다.
큰 의미는 없지만, 현재 이순신은 유로파리그 득점 순위 1위였다!
기자들은 이를 이용해서 조회수를 올렸다.
“초반에 경기력이 좋지 않은 건 이벤트 준비를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감독님과 선수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열심히 뛰었고,
경기를 보러와 주신 팬분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아나운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잘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인터뷰를 보고 있는 시청자 여러분도 가장 궁금하실 내용 같은데요.
오늘 반지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스포츠 기자들이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이순신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심장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반지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비밀입니다.
그녀는 연예인은 아니기에 그녀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오. 씨-”
순간 아나운서가 생방송 중에 욕을 하는 방송사고를 저질렀다.
하지만 모두들 그걸 방송사고라 생각하지 않고 본인들의 마음의 소리라고 생각했다.
기자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노력일보’의 기자는 하마터면 값비싼 노트북을 던질 뻔했다.
쨍그랑!
‘미친…’
‘동수일보’의 한 기자는 진짜로 노트북을 던져버렸다.
“아. 젠장! 내가 왜 그랬지!”
기자들은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이순신의 인터뷰는 어느덧 막바지에 돌입했다.
“그분이 이순신 선수의 고백을 받아줄까요?”
이순신은 호흡을 길게 들이마셨다.
“난 내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이제 확답을 듣고 싶습니다.”
아나운서는 재빨리 추가 질문을 했다.
“이왕이면 유로파에서 우승한 후에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우승은 팀의 몫입니다. 거기서 제 개인사를 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부담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만약 오늘 패배했다면, 혹은 골을 못 넣었다면 우리는 이벤트를 못 봤을까요?”
“아닙니다. 설령 오늘 패배하고 골을 못 넣었더라도 SNS에 올릴 예정이었습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표현이었으니까요.”
“이상으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아나운서가 인사한 후 인터뷰가 종료됐다.
***
경기장 사무실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신자영의 얼굴은 빨개졌다.
대한민국 스포츠 란은 벌써부터 난리가 났다.
‘얘는 그냥 말로 해도 되는데 왜 이렇게…’
그녀는 이런 공개적인 프러포즈가 부담스러웠다.
아나운서의 일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집중되는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특히 아나운서의 이미지는 재벌가의 시집을 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라는 말 자체도 기분 나빴다.
많은 젊은 기업인들이 그녀에게 대쉬를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녀가 과감하게 그만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었다.
당연히 이런 공개적인 프러포즈도 역시 부담스러웠다.
그러면서 마음을 정리했다.
‘순신이는 역시 아직 어려…’
아직은 자랑하고 싶은 나이.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나이라고 생각했다.
‘빛나는 별과 시들어가는 꽃은 어울리지 않을 거야.’
이순신에겐 더 좋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순간이었다.
신자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순신이…’
신자영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마지막 전화통화라고 생각했다.
‘누나 봤어?’
‘어땠어?’
들뜬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누나. 미안.”
신자영은 충격이었다.
이순신이 사과부터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너 왜 나한테 부담 주는데?”
오히려 신자영이 투정을 부렸다.
“정말 부담이야?”
사실 부담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순신의 사과로 진심을 알았다.
단순히 장난으로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니…”
그렇기에 신자영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이란 존재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럼 내일 만나.”
이순신의 계속된 공격에 신자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뭐. 내일?”
내일은 신자영의 휴무일이었다.
이순신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응. 얼굴 보고 대답 듣고 싶어. 그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야경도 보고 싶어.”
신자영은 순간 두근거렸다.
자기보다 어린 녀석이 자신을 소녀로 만들었으니까.
‘내가 누난데 휘둘리면 곤란해.’
신자영은 단호하게 나갔다.
“뭐? 그건 좀 곤란해!”
상대는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기에 휘둘리기 싫었다.
“그럼 지금 보던가.”
“지금?”
“밖으로 나와 봐.”
신자영은 깜짝 놀라며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순신이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수…순신아?”
이순신은 크고 넓은 손으로 신자영의 양 볼을 붙잡았다.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박았다.
신자영이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이순신은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신자영 역시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이순신이 뿜어대는 페로몬을 더는 견뎌낼 수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녀가 이순신의 가슴을 살며시 밀쳐냈다.
“하. 순신아…”
이순신이 숨을 몰아쉬며 신자영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기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야…”
이순신은 신자영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
꿈FC는 리그에 복귀했다.
프랑크 부르크와 그라스호퍼와의 경기를 통해서 꿈FC는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다.
그들에 비하면 미안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다른 3부 리그의 팀들은 수준이 낮았다.
“이순신 선수의 슛!”
“골입니다!”
현재 꿈FC의 성적은 10승 0패 32골, 7실점이었다.
“꿈FC가 스페인리그에서 새로운 전설을 쓰고 있습니다!”
32골 중 이순신이 넣은 골은 무려 10골이었다.
득점 2위와의 차이도 5골이나 났다.
“그 무엇도 이순신과 꿈FC를 막을 수 없습니다. 누가 과연 이순신을 막을 수 있을까요?”
그라운드 안에서 이순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라운드 밖에서는 있었다.
신자영이었다.
이순신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우리 사귀는 거 당분간 비밀로 하면 안 될까?”
부끄러움이 많은 신자영이 먼저 요청했다.
“알았어.”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신자영과의 우려와는 다르게 이순신은 배려라는 걸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신자영의 주요 업무는 협상이었다.
행여나 이것이 빌미가 되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남들 몰래 데이트를 즐겨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사내 연애가 더 쉬웠다.
기자들도 선수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스치듯 지나가며 서로의 손을 잠깐 잡았다.
다른 사람이 모르게 눈빛을 교환하는 건 스릴 있었다.
“신자영 에이전트님. 잠시 면담 가능할까요?”
“그러시죠.”
오히려 면담이라는 빌미로 신자영과 단둘이 사무실에 있을 시간이 많았다.
비록 차를 마실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애틋했다.
또한 이들의 사랑을 지지하는 이가 있었다.
[충무공이 두 사람을 인정합니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충무공은 속일 수 없었다.
오히려 이순신이 신자영과 단둘이 있을 때 방해하지 못하도록 도와줬다.
이순신이 선택한 후원의 효과 때문이기도 했다.
[신자영(연인)]
[순신아. 평생을 너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신자영과 함께하는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당신의 2세 중 하나는 당신을 뛰어넘는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충무공 일행이 당신의 연애를 적극 도와줄 것입니다.]
이순신은 신자영과 함께 할 수 있는 미래를 후원칸에 장착했다.
그 효과는 이순신의 멘탈 케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추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누나. 나 이번에 한국 가.”
“어? 이번에 국가대표에 뽑혔지? 축하해!”
이순신은 꿈에도 그리던 국가대표가 되었다.
대표 팀 감독이 된 안태리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지만,
유럽에서 맹활약하는 선수를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치지 말고.”
“알았어. 자영아.”
나이 차이가 있지만, 연인이 된 순간 두 사람의 호칭에는 다소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기 싫다. 나랑 같이 가면 안 돼?”
“나도 그러고 싶지만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너도 한국에 가면 해야 할 일이 많잖아!”
이순신은 피식 웃었다.
한국에 입국하면 찍어야 할 광고가 3개나 됐다.
치킨, 의류, 샴푸 광고였다.
전부 신자영이 따왔다.
신자영 덕분에 통장의 잔고와 인지도는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보다 일주일 정도 일찍 먼저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순신이 없어도 꿈FC는 강했다.
비록 많은 스코어를 내진 못했지만, 무실점으로 승리해서 이순신을 안심시켰다.
***
이순신이 한국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안태리였다.
“감독님. 국가대표 감독 되신 거 축하합니다.”
“축하는 무슨. 일이 너무 커지고 있다…”
안태리가 이순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연예인과 일반인의 중간인 연반인의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과 함께 기적의 순간을 만들어냈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자 그의 인생도 크게 바뀌었다.
곧 있을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기존의 감독은 포르투갈 출신이었는데 인내심이 없는 협회가 능력이 발휘되기도 전에 경질시켰다.
“언제까지 땜방을 하려는지…”
안태리는 처음에 감독직을 고사했다.
하지만 협회의 요청은 매우 간곡했다.
새로운 감독을 선임할 때까지 월드컵 예선전을 맡아달라고 하니 안태리도 거절하지 못했다.
“태리 형. 좀 부탁해!”
“알았다. 원표야…”
안태리는 차마 2002년 월드컵 동기이자 지금은 협회 부회장이 된 이원표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도 솔직히 좋으시잖아요.”
“순신아. 네가 내 위치라면 첫 경기 상대를 보고 그런 말이 나올까?”
이순신의 데뷔전 상대는 포르투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