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28화 (129/161)

128화. 이순신의 고백

“공이 이순신 선수를 향해서 날아갑니다!”

이광인의 크로스는 정확했다.

이순신은 자리를 잡았다.

골대와의 거리는 35M.

슛을 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 순간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들었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공에 대한 집중력을 놓지 않았다.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반 정도 비틀었다.

“이순신 선수! 저 자세에서 설마 슛을 날리나요?”

[천자포가 발동했습니다.]

뻥-

마치 대포소리 같았다.

그만큼 이순신의 발등에 제대로 맞았다.

공은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그라스호퍼의 골키퍼는 장승빈이 넣은 귀중한 골을 지켜낼 능력이 없었다.

그저 공이 빗나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슈우우웅.

“아…안 돼!”

골키퍼가 몸을 날렸다.

우측에 꽂히는 엄청난 슛!

몸을 날려도 막을 수 없는 골이었다.

“골입니다! 꿈FC가 곧바로 따라붙습니다!”

이순신은 카메라를 향해서 뛰어갔다.

평소 재미있는 세레머니를 하기 때문에 팬들도 기대가 컸다.

이순신은 카메라에게 자신을 따라서 오라고 가리켰다.

그가 향한 곳은 벤치였다.

“오! 순신!”

이에로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줄 알았다.

양팔을 활짝 벌렸지만,

이순신은 무심하게도 지나갔다.

“허허.”

이에로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순신은 윤광섭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윤광섭에게 건네받은 것을 이순신은 카메라 앞에 펼쳤다.

“세상에 이순신 선수! 프러포즈를 한 걸까요?”

카메라는 백금반지를 비췄다.

관중들도 깜짝 놀라서 모두 일어났다.

“세상에! 이게 지금 무슨 일이야?”

놀란 건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순신이 여자 친구 있었어?”

심지어 꿈FC 선수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이순신은 씨익 웃더니, 반지 함을 닫고 다시 필드로 돌아갔다.

그를 제외하고 필드 위에서 웃는 선수는 없었다.

그라스호퍼 선수들은 심지어 기분이 나빴다.

“감히 우리를 프러포즈 대상으로 이용해?”

“AS 로마였다면 골도 못 넣을 녀석이…우리가 만만하다 이거지?”

삐이익!

장승빈의 킥오프로 그라스호퍼의 공격이 시작됐다.

“아아!”

꿈FC 선수들은 아직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거 본의 아니게 팀킬을 해버렸네.”

이순신은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정신 차려! 집중 안 해?”

[호랑후가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전방을 향해 고함쳤다.

‘아. 맞다. 우리 지금 경기 중이었지.’

그제야 선수들이 정신을 차렸다.

“장승빈 선수. 거침없이 달립니다!”

하지만 장승빈은 어느새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도달했다.

“승빈이 유럽 오더니 실력이 확 늘었는데?”

“형. 오늘 경기에서 뭔가 준비한 듯한데 미리 미안하다고 할게.”

“왜?”

“오늘 우리가 이겨서 분위기 망칠 테니까.”

장승빈이 비릿하게 웃었다.

전체적인 기세가 꿈FC로 넘어갔다.

강하게 나가서 쫄지 않았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순신의 눈앞에는 그저 미니핀이 짖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동물이 지지 않기 위해 외치는 목소리.

“오늘은 누구도 날 막을 수 없어.”

고백을 마친 이순신은 후련했다.

자신의 진심을 카메라 너머로 충분히 전했다고 생각했다.

“흥! 형만 주인공 하라는 법 있어!”

장승빈이 저돌적인 돌파를 시도했다.

“와라!”

순간, 충무공이 아닌 중2병에 빙의된 이순신이 다리를 뻗었다.

쿵!

두 사람의 발등이 동시에 공을 때렸다.

“으윽!”

장승빈은 힘에서 이순신한테 밀렸다.

이순신은 공을 잡고 빌드업을 시작했다.

“이순신 선수가 직접 드리블을 치고 나갑니다.”

이순신이 힐끗 옆을 봤다.

측면에서 임단결이 함께 달렸다.

전방에서는 구멍이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임단결, 구멍으로 패스가 이어진 후 이순신이 중앙선을 넘었다.

공을 빼앗기면 바로 상대방에게 역습을 허용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오쿠보, 이광인, 김혁규가 전방에서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설령 이순신이 공을 빼앗긴다고 해도 상대편은 바로 빌드업이 불가능했다.

“광인!”

이순신은 앞에 있는 이광인에게 패스했다.

공을 잡은 이광인은 다시 리턴 패스를 하고, 이순신은 오쿠보에게 힐패스를 했다.

“어어?”

오쿠보가 살짝 당황했지만, 공을 잡고 무사히 김혁규에게 전달했다.

“김혁규 선수 골키퍼와 1:1입니다. 그대로 슛!”

안타깝게도 공을 골대를 맞고 나갔다.

“혁규! 아쉽다!”

이순신은 멀리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위로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공방전이 이어졌다.

“장승빈 선수 슛!”

“몸을 날리는 이순신의 발에 맞고 옆으로 나갑니다.”

“아. 주심이 시계를 보는데요.”

전반전이 1:1로 끝났다.

선수들은 빠르게 이순신에게 몰렸다.

“어떻게 된 것이오?”

“일단 라커룸으로 들어가자.”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은 구멍과 하비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커룸에서는 전혀 전술을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순신 시주. 어떻게 된 일이오?”

“형. 진짜 고백한 거 맞아?”

“누군데?”

이순신에게 폭풍 질문이 쏟아졌다.

“비밀이야.”

이순신의 짧고 굵게 대답했다.

답답한 선수들은 주먹으로 가슴을 팍팍 때렸다!

“아오! 진짜!”

“장난해!”

“윤광섭! 넌 알고 있지? 누구야!”

“나도 몰라. 그냥 순신이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이에로는 시계를 봤다.

‘이제 제지해야겠군. 더 지체했다간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어.’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호랑이 울음소리 같은 음성이 들렸다.

“일단 경기에 집중하자. 우리가 이 정도에 흔들릴 정도로 나약한 팀은 아니잖아?”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그래. 일단 경기에 집중하자.”

선수들은 멘탈을 다시 잡았다.

‘이제는 경기장뿐만 아니라 라커룸에서도 강력한 리더쉽을 선보이는군.’

이에로는 감탄했다.

“이제 후반전 전략을 이야기하겠다.”

이에로는 우선 윤광섭을 헤이니와 교체했다.

오쿠보는 송희윤과 교체됐다.

“최전방에는 김혁규와 송희윤이 호흡을 맞춘다.”

이에로가 학익진을 발동시켰다.

그라스호퍼 선수들은 생전 처음 보는 전술에 당황했다.

“4-2-2-2? 2-2-2-2-2? 저게 도대체 무슨 전술이야.”

“어렵게 생각하지 마. 오히려 중앙이 비어있는 전술이니까.”

그라스호퍼 선수들은 가운데로 진입했다.

그러자 측면을 넓게 벌린 꿈FC 선수들이 가운데로 조여들었다.

순식간에 미드필더와 단절된 그라스호퍼 공격수들은 당황했다.

“이순신 선수의 커트.”

공을 잡은 이순신은 최후방에서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광섭아!”

이순신의 롱패스가 정확하게 도착했다.

‘보여줘야 해. 나를 증명해야 한다고!’

윤광섭은 침을 꼴깍 삼켰다.

“윤광섭 선수 측면을 뚫고 있습니다.”

그라스호퍼 선수가 따라붙으려고 할 때,

윤광섭이 속도를 올렸다.

“윤광섭 선수! 순간 가속으로 상대편 수비를 떨쳐냅니다!”

“오늘 컨디션 좋은데요?”

단순히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

역대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이제 들러리는 그만하고 싶어!’

윤광섭은 언제나 남아서 연습했다.

단 한 번.

기회가 온다면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측면을 뚫은 윤광섭은 중앙에 침투하는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윤광섭 선수의 크로스!”

다소 낮게 휘어져 들어가는 크로스였다.

이순신은 가볍게 발을 툭 갖다 댔다.

역동작에 걸린 상대편 골키퍼는 대응할 수 없었다.

철렁.

“이순신 선수의 골!”

“꿈FC가 2:1로 앞서갑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스위스 1부 리그 팀이 스페인 3부 리그 팀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라스호퍼는 리그에서 뛰는 최정예 멤버들이 모두 출동한 상태입니다.”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라스호퍼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들 실력은 진짜다.”

“특히 저쪽 팀 주장은 괴물이야. 우리랑 다른 이레귤러라고!”

그라스호퍼한테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포기하지 말라고!”

이적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장승빈은 패기를 보였다!

어떻게든 뚫어보려고도 했다.

현재 위치에서 슛 각도가 나오지 않으면, 기꺼이 동료에게 패스했다.

하지만 전의를 잃은 그라스호퍼의 선수들의 슈팅에는 의지가 담겨있지 않았다.

그런 슛을 보경풍이 막지 못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경기가 끝날 때쯤 꿈FC는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꿈FC가 마지막 공격을 할 거 같은데요.”

이순신과 이광인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이광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고,

이광인이 발 구르기를 시도했다.

“이광인이 공을 스쳐 지나갑니다!”

뒤따르던 이순신이 슛을 날렸다.

[비격진천뢰가 발동했습니다.]

[성공률 : 100%]

이 한 방에 모든 확률을 쏟아부은 이순신의 프리킥이 실패할 리가 없었다.

심지어 용이 날아가는 듯했다.

그라스호퍼 골키퍼는 식은땀을 흘리며 공을 주시했다.

“드래곤?”

그 역시 날아오는 것이 공이 아니라 용으로 보였다.

몸을 날리고 싶었지만,

공포가 다리를 지배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두 눈뿐이었다.

“고올! 이순신 선수가 프리킥을 성공시키면서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이순신이 동료들과 얼싸안고 좋아했다.

삐이이익-

“이순신 선수의 골과 동시에 경기가 끝났습니다!”

“경기 MOM은 정해졌다고 봐야죠?”

해설자들의 예상대로 경기 MOM은 이순신이었다.

이벤트부터 경기 내용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였다.

이순신은 결국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

경기가 끝났지만,

TV 너머의 시청자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이순신의 입으로 오늘 이벤트에 얽힌 히스토리를 듣고 싶었다.

미모의 여자 아나운서는 이순신에게 물었다.

“오늘 경기 대단했습니다. 해트트릭도 하셨고요.”

“감사합니다.”

이순신이 웃으며 대답했다.

곧바로 아나운서의 질문이 이어졌다.

“ 하지만 우리가 듣고 싶은 건 그게 아닌 거 아시죠? 첫 골을 넣은 후 보여준 세레머니에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이순신은 ‘올 것이 왔구나!’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입니다!”

아나운서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오늘 세레머니가 참으로 독특했습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엄청난 화제고요.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준비했는데 만약 오늘 골을 넣지 못했으면 어쩔 뻔했나요?”

이순신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믿음은 기적을 만듭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전 오늘 골을 넣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혹시 일부러 그라스호퍼를 노리고 계획하신 게 아닌가요?”

“아니요. 공교롭게도 타이밍이 그렇게 됐을 뿐입니다. 상대가 AS 로마라고 해도 전 골을 넣었을 겁니다!”

이순신의 당당한 태도에 사람들은 전율을 느꼈다.

“순신아…”

세레머니의 주인공인 신자영은 양손으로 자신의 팔을 어루만지며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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