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27화 (128/161)

127화. 후원칸 해제

‘젠장.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정대건은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내 플레이는 오늘 나쁘지 않았어.’

심지어 유효슈팅도 1개를 기록했다.

정대건이 찬 슛은 꽤 예리했다.

보경풍이 이순신의 슈팅으로 단련되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먹혔을 골이었다.

“대건. 우리가 너무 방심했어.”

닐스가 애써 그를 위로했다.

“아니야. 우리가 방심했다기보단 저 녀석들의 실력이 뛰어난 거야.”

권터는 이번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의 사전에는 결코 방심이란 단어가 없었다.

프랑크부르크 선수들은 서로 자신을 탓했다.

‘아니. 모두 다 내 탓이다.’

감독은 솔직히 꿈FC를 가볍게 봤다.

그렇기에 몇몇 주축 선수들을 빼고는 죄다 어린 선수들로 배치했다.

자만심과 오만함이 부른 충격적인 패배였다.

‘다음은 다를 것이다.’

감독은 굳게 다짐했다.

다음번에 꿈FC 원정에서는 최정예 멤버를 기용할 것이라고!

***

꿈FC는 AS 로마에 이어서 조 2위를 기록했다.

리그 경기에서도 무난하게 승리를 거뒀다.

“우리가 잊어버린 게 있어.”

헤이니가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뭔데? 파티?”

“아니. 지는 법.”

“하하하.”

헤이니와 하비가 배를 잡고 웃었다.

이렇듯 최근에 꿈FC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순신 역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장비칸이라고 할 수 있는 후원칸이 해제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스폰서나 유니폼인 줄 알았는데…”

후원칸은 단순한 장비 칸이 아니었다.

장착할 수 있는 건 유니폼이나 스폰서가 아닌 ‘사람’이었다.

후원칸은 그동안 이순신이 만났던 사람들을 장착할 수 있었다.

[이에로]

[순신. 널 나의 후계자로 삼고 싶다. 내 모든 기술을 너에게 전수해주고 싶다.]

[이에로 감독의 신뢰가 최고치로 상승합니다. 이에로의 모든 능력치가 추가됩니다. 선수 활동 기간 중 최고의 명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선수보단 감독으로서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거 무슨 연애 시뮬레이션도 아니고.’

이순신은 이에로를 장착하고 싶었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마지막 문구는 왠지 미래를 암시하는 듯했다.

‘감독은 아무나 하나.’

이순신은 감독의 길이 얼마나 험하고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선수보단 감독으로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선수로 큰 성공을 한 후 감독으로 더 대박을 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선수로서는 어느 순간 잊히고 은퇴 후 감독으로서 성공한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특히 후자라면 이순신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건 좀 곤란하지. 다른 사람들도 좀 살펴볼까?’

후원칸에 장착할 수 있는 건 이에로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임청수, 신자영, 엄마 등 이순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포함됐다.

심지어 플레티스 회장도 포함됐다.

[축구 선수보다는 방송과 예능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건 거의 연예인의 삶이군.’

이러한 삶도 나쁘지 않다고 이순신은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걸리는 건 ‘축구 선수보다는’ 이 걸렸다.

[축구 관련 사업가로서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플레티스 회장의 후원은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었다.

‘노이즈 캔슬링을 평생 쓴다면 큰 문제는 없겠는데?’

다만 노이즈 캔슬링 스킬은 경기장 밖에서는 적용이 안 됐다.

이순신은 자신을 향한 비난과 악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인망을 얻지 못하는 성공은 의미가 없지.’

[빠른 은퇴 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축구를 전파하게 됩니다.]

‘역시 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이야. 무슨 유희왕 게임도 아니고…’

은퇴 앞에 무언가가 붙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삶 자체도 나쁘지 않았으나, 그러기엔 이순신의 피는 너무나 뜨거웠다.

이순신은 신자영에 관련된 설명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이건 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신자영(에이전트)]

[순신아. 난 널 최고의 축구 선수로 만들어주고 싶어]

[신자영 에이전트의 신뢰가 최고치로 상승합니다. 축구 선수 사상 역대 최고의 이적료를 받고 이적할 겁니다.]

[축구 에이전트로서 신자영과 좋은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합니다.]

“든든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이순신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부와 명예를 가진들 사랑을 갖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근래에는 서로 바빠서 소원해졌지만, 예전에 함께 마셨던 와인의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무슨 이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자영과 함께 마셨기에 맛있었다.

‘아무래도 후원칸에 대해서는 좀 더 기다려봐야겠어.’

섣불리 장착하기 애매한 칸이었다.

물론 자유로이 교체가 되긴 했으나 그로 인해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다.

“당장 능력치를 올려주는 것도 아니니 서두르지 말자. 그리고 내 미래는 내가 개척하는 거니까!”

그 순간이었다.

이순신에게 전화가 왔다.

신자영이었다.

“여보세요?”

이순신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순신아. 잘 지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순신은 알 수 있었다.

신자영이 웃고 있다는 것을.

“순신아?”

“아. 누나.”

“뭐야. 끊어진 줄 알았네. 왜 말이 없어?”

“미안해요. 그런데 누나? 요즘 너무 바쁜 거 아네요? 연락도 뜸하고~”

“얘는 네가 먼저 연락해도 되잖아!”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신자영의 투정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전화하면 안 받던데요. 뭘~”

“미안. 요즘 너무 바쁘긴 해…”

“신경 좀 써 달라구요!”

“알았어. 그런데 바쁘기는 네가 더 바쁘잖아.”

신자영의 말에 이순신은 뜨끔했다.

이순신은 현재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청수는 국가대표에 출연해서 축구 기술을 알려준다거나, 광고와 화보 촬영도 계속됐다.

안티 팬들은 건방 떨지 말고 축구나 하라고 했지만, 이순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팬들이 있어야 선수가 있다.’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서 이순신의 언론 노출빈도는 높아졌다.

여기에 기부와 선행도 많이 했다.

팬들에게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계속 어필했다.

“그러게요. 요즘 얼굴 보기 힘드네요.”

“나도 그게 아쉬워.”

“아쉽다고요?”

“…”

순간 신자영 쪽에서 말이 없어졌다.

“다들 아쉽지. 너네들 요즘 엄청 잘나는 걸 예전처럼 직관할 수 없으니까.”

“쳇. 난 또 다른 뜻이 있는 줄 알았네.”

신자영이 잘 피했고, 이순신이 모른 척 눈감았다.

“그럼 순신아 잘 지내고. 밥 잘 챙겨 먹고…”

“누나두요.”

이순신이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신자영이 돌직구를 날렸다.

“순신아. 우린 무슨 사이야?”

“무…무슨 사이냐니?”

“이제는 뭔가 명확하게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

이순신은 문득 시계를 봤다.

아침 6시.

감성이 충만해질 시간이었다.

“장난 아니고?”

이순신이 낮고 굵은 어조로 물었다.

“장난…”

“장난치지 말고!”

이순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두 사람은 늘 장난을 쳤다.

신자영은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넘기려고 했지만,

이순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너 그런데 지금 반말한 거야?”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는 다음 경기 때 보여줄게.”

“오…순신아. 그것만은 제발.”

신자영은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 역시 이순신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프러포즈를 하길 원하지 않았다.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나름 공인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먼저 물어본 건 누나야.”

이순신은 전화를 끊었다.

달력을 봤다.

다음 경기는 그라스호퍼와 있을 유로파리그였다.

“골. 일단 무슨 일이 있어도 골을 넣는다.”

진부하고 상투적이지만 이순신은 골을 넣겠다고 다짐했다!

***

“순신이 형.”

장승빈이 반갑게 인사했다.

“응. 승빈아.”

“형. 오늘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아니. 없어.”

이순신의 분위기는 다소 경직됐다.

“그럼 다행이구. 오늘 형 제치고 기필코 한 골 넣을 거야!”

장승빈은 의지를 활활 태웠다.

그는 유럽에 진출한 후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급성장했다.

비록 위성구단으로 임대를 온 상태였지만, 자신의 가치를 골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 역시 익숙한 얼굴들이 반대편에 보였다.

“가자!”

휘슬 소리와 함께 장승빈이 드리블을 쳤다.

그라스호퍼는 유럽에서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조직력이 매우 탄탄한 팀이었다.

여기에 장승빈이 크랙 역할을 하니, 현재 스위스 리그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저번 경기에 이어서 코리안 더비가 또 열리고 있습니다!”

해설자도 2연속 코리아 더비가 열리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승빈 시주. 멈추시오!”

구멍이 장승빈을 막아섰다.

장승빈은 속도를 줄이는 척하더니, 그대로 구멍을 제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소!”

구멍이 재빨리 따라붙었지만, 장승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장승빈 선수. 구멍 선수의 수비를 떨쳐냅니다.”

구멍이 뚫리자 하비가 재빨리 엄호했다.

“하비를 떨쳐내는 장승빈!”

장승빈은 하비마저도 떨쳐냈다.

“유럽에 온 뒤로 피지컬이 더 좋아졌습니다.”

장승빈은 웃으면서 측면으로 빠졌다.

아무래도 이순신과의 직접적인 승부는 부담을 느꼈다.

“쉽게는 못 가.”

이번엔 임단결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며 발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임단결의 경험과 장승빈의 자신감이 맞붙었다!

“장승빈이 돌파를 시도합니다!”

임단결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쿵!

“뭐야?”

임단결이 깜짝 놀랐다.

올림픽이 끝나고 불과 한 달 만에 장승빈은 다른 사람이 됐다.

마치 거대한 고목과 부딪힌 느낌이었다.

“장승빈 선수 임단결 선수도 제칩니다!”

스피드 싸움에서도 장승빈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이순신은 힐끗 옆을 봤다.

그라스호퍼의 선수들이 3명이나 올라왔다.

2:4의 불리한 상황.

장승빈이 공을 툭툭 치면서 거리를 좁혔다.

이순신은 자리를 지켰다.

지금 자리를 벗어나면 방패연을 사용한다 해도 상대편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시점에서 믿을 건 보경풍의 선방이었다.

“승빈! 공 내놔!”

그라스호퍼 선수들이 거칠게 소리 질렀다.

“싫어.”

장승빈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의 시선은 꿈FC의 골문을 향했다.

장승빈이 노리는 곳은 좌측 상단 구석이었다.

장승빈은 순식간에 속도를 냈다.

공을 앞으로 툭 밀더니, 그대로 슈팅을 날렸다!

‘저기서 슛을?’

보경풍은 허를 찔렸다.

무엇보다 장승빈의 슈팅도 예전에 봤던 애송이 시절과 달랐다.

철렁.

전반 28분.

장승빈의 선취골로 그라스호퍼가 앞서갔다.

“장승빈 선수의 유로파리그 첫 골이 터졌습니다!”

장승빈이 두 손을 번쩍 들고 좋아했다.

“유럽 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곳에 모인 축구팬들은 장승빈이라는 이름을 똑똑히 기억했다.

1골을 넣은 후 그라스호퍼는 수비태세로 전환했다.

이광인, 헤이니가 열심히 공격 활로를 모색했지만 오늘따라 골 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럴 땐 역시…’

이광인은 저 멀리 달려오는 이순신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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