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25화 (126/161)

125화. 유로파 조 추첨

이순신이 이번 경기에서 침묵을 지킨 이유는 간단했다.

오진성에게 받은 힐킥 패스를 사용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순신 선수의 감각적인 원터치 패스!”

“이순신 선수 뒤꿈치로 재빨리 옆에 있는 선수에게 공을 넘깁니다!”

축구를 좀 볼 줄 아는 축구팬들은 깜짝 놀랐다.

“이순신이 저런 패스를 할 수 있었나?”

“와- 무슨 힐킥으로 스루패스를 하냐?”

이광인을 비롯한 공격진의 화려함에 묻혔지만, 기록으로만 본다면 진정한 MVP는 이순신이었다.

상대에게 유효슈팅조차 허용하지 않았다는 건 후방에서 수비 조율이 엄청 났다는 증거였다.

심지어 보경풍이 공을 만진 횟수도 전 후반 통틀어서 고작 5번 정도였다.

그마저도 상대편이 무리하게 찬 슛이 골대를 벗어났기에 주어진 골킥 덕분이었다.

0개의 슈팅, 0개의 코너킥, 0개의 프리킥.

그야말로 꿈FC의 수비 자체가 클린 히트였다.

[보상이 발생했습니다.]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와-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인데 보상이 주어진다고?’

이순신은 보상 자체도 마음에 들었다.

[도깨비 방패]

[3부 리그에서 상대 팀의 유효슈팅 0개를 기록했습니다.]

[힐킥으로 상대편 공격을 저지할 확률이 올라갑니다.]

[성공률 : 30%]

‘이거라면 앞으로 어떤 공격수도 날 뚫기가 쉽지 않겠는걸?’

두 번째 경기가 펼쳐졌다.

꿈FC의 질주는 거침없었다.

이순신은 이 경기에서도 트리플 0을 기록했다.

‘2경기 연속은 추가 보상이 안 생기는군.’

이순신은 살짝 아쉬웠다.

이번에도 5:0 대승이었다.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준 꿈FC의 공격에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는 사이에 이순신은 자신에게 새로 생긴 스킬을 더욱 갈고 닦았다.

‘진짜 이름 값하네.’

3부 리그에서 이순신을 뚫을 공격수는 흔치 않았다.

간혹 우연찮게 이순신을 제쳤어도 공은 커트 당했다.

뒤꿈치를 뻗어서 발을 내밀었다.

[도깨비 방패가 발동했습니다.]

툭.

이순신의 수비는 상대편이 소유한 공을 살짝 건드렸다.

이 살짝이 많은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어엇?”

상대편의 스텝이 꼬이기도 했고, 슈팅 타이밍을 빼앗기도 했다.

돌파를 포기하고 슛이나 패스를 시도하는 선수들도 있었는데 이때도 도깨비 방패가 발동했다.

“이순신 선수가 뒷다리를 뻗어서 공을 막아냅니다.”

상대 팀 선수는 꼭 뭐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도깨비 방패구나.’

이순은 씨익 웃었다.

단순히 수비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편의 흐름을 깨버리는 스킬이었다.

무엇보다 수비수가 돋보이는 스킬이기도 했다.

하지만 팬들이 원하는 건 이순신의 화려한 수비가 아니었다.

“이순신. 뭐하냐!”

“벌써 2경기째 침묵이다!”

“내년에 레알 간다고 몸 사리냐?”

그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

이순신의 시원한 중거리 슛이었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야지.’

세 번째 경기에서 이순신은 보다 공격적으로 나섰다.

“김혁규 선수 슛!”

“키퍼 맞고 흘러나온 공.”

“이순신 선수가 달려갑니다.”

“그래도 슛!!!”

“골입니다!”

이순신의 강력한 슛이 상대편의 골망을 흔들었다.

“그렇지! 이거야!”

“이걸 보기 위해 내가 표를 산거라고!”

이순신이 팬들의 환호성을 느꼈다.

이순신까지 공격에 나서자 상대 팀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꿈FC는 압도적인 전력 차로 이번에도 5:0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비록 이번엔 2개의 코너킥을 허용하면서 트리플 0에는 실패했지만, 3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라는 건 변함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압도적인 행보에 팬들은 같은 조에 속해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리저브 팀인 카스티야와 바르셀로나 리저브 팀인 바르셀로나 B팀과의 대결을 기대했다.

세 팀 다 현재 3승 무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골 차이로 꿈FC가 현재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 무엇도 꿈FC를 막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합류해서 조직력에 문제가 있을 거란 생각은 오산이었습니다!”

해설자의 말처럼 오히려 경기를 거듭할수록 꿈FC의 호흡은 척척 맞았다.

애초에 미드필드 진은 중하위권 1부 리그와 견주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이광인, 헤이니, 오쿠보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는 바르셀로나가 추구하는 티키타카를 구현했다.

“3부 리그에서 이런 축구를 볼 수 있을 줄이야…”

이들의 공격 지원을 받은 김혁규와 송희윤은 자연스럽게 많은 골을 넣었다.

한껏 자신감이 붙어서 기량이 상승한 김혁규의 드리블과 뛰어난 활동량을 보이는 송희윤의 신선한 조합은 상대편을 당혹시켰다.

“이 녀석들 기술이 이렇게 좋았나…”

기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숙련되는 법.

‘우리 팀의 구멍, 이순신, 보경풍이 이끄는 수비진보다 강한 팀은 아직 없어.’

김혁규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미 매번 연습경기에서 1부 리그 팀 안 부러운 수비진을 상대로 단련되니 공격진의 능력은 자연스럽게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로 역시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리그에서 우리의 적수가 될 만한 팀은 없다. 그러고 보니 곧 유로파 리그 조 추첨이군.’

선수들이 양민학살을 즐기는 사이,

이에로는 다가올 진짜 전쟁을 준비했다.

***

유로파 리그의 조 추첨이 시작됐다.

선수들은 숙소에 옹기종기 모였다.

“제발 약팀하고 붙었으면 좋겠다.”

“저기 어디 변방의 유럽 팀 같은 애들로만.”

헤이니와 하비가 빌고 또 빌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순신이 핀잔을 줬다.

“쳇. 주장은 너무 진지하다니까!”

“진지해야지. 우리 빼고는 약팀일 리 없잖아.”

“쩝. 그렇긴 하지. 우리만 유일한 3부 리그 팀이니까!”

헤이니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꿈FC는 결코 스페인의 3부 리그 팀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자신들의 활약이 평가절하당하자 얼른 유로파 리그에서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시작한다!”

김혁규가 외쳤다.

이순신은 팔짱을 꼈다.

조별 예선을 치를 32팀 제대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와- 그런데 탑시드는 장난이 아닌데? 저 팀들이 왜 여기에 있냐?”

선수들은 긴장했다.

8개의 팀이 탑시드에 배치됐다.

이탈리아의 명문 팀 AS로마,

영국 프리미어에서 우승권 전력인 아스날,

손민흥이 한때 몸담았던 독일의 레버쿠젠,

히딩크 감독, 대한민국의 레전드 박성지와 현재는 해설과 강원 FC의 단장을 맡고 있는 이표영이 몸담아서 대한민국인들에겐 친숙한 네덜란드의 명문 팀 PSV,

한때 프랑스리그에서 우승을 놓치지 않았던 올림피크 리옹,

스페인 1부 리그에서 노란 잠수함이라고 불리는 비야레알,

우크라이나의 명문 팀 다나모 자그레브,

손민흥이 속한 토트넘이었다.

“우리 챔피언스 리그 나온 거 아니지?”

축구를 해봤다면 한 번쯤은 들어본 팀들이 호명되자 선수들은 긴장했다.

패기 넘치던 헤이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나모가 속한 팀으로 넣어주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구멍이 합장하며 염불을 외웠다.

“우리는 몇 번째 포트지?”

“3번째 포트.”

팀의 레벨은 가장 낮지만, 리그 점수 혜택을 톡톡히 봤다.

“하…제발.”

선수들은 긴장된 마음으로 조 추첨 결과를 지켜봤다.

“저 팀은 왜 2번 포트냐?”

독일의 명문 팀인 프라이부르크가 2번 포트에 배정됐다.

“프라이부르크는 A조입니다.”

“다음은 레스터 시티입니다.”

레스터 시티는 도깨비 팀으로 불리는 팀이자 기적의 팀이었다.

많은 도박사들의 예상을 뒤엎고 깜짝 프리미어 우승을 했다.

그 뒤로 다시 2부 리그로 하락할 줄 알았지만, 여전히 1부 리그에서 관록을 과시하고 있다.

“레스터 시티는 C조입니다.”

레버쿠젠과 한 조가 됐다.

“이러면 AS로마랑 레버쿠젠은 피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다른 팀들보다 유난히 힘들어 보이는 A조와 C조였다.

“난 민흥이 형이 속한 H조도 껄끄러워.”

이순신은 이번 유로파에서 가장 강한 화력을 가진 팀은 토트넘을 꼽았다.

“다음은 3번 포트로 넘어가겠습니다.”

꿈 FC의 순서는 4번째였다.

“그런데 여기도 만만치는 않네.”

“맞아. 자칫하다간 진짜 죽음의 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어.”

3번째 포트에는 스페인의 1부 리그 팀인 레알 소시에다드, 프랑스의 마르세유, 터키의 페네르바흐체, 영국의 웨스트햄이 속했다.

이들의 네임밸류를 뛰어넘는 AC밀란도 여기에 속했다.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3번 포트군요.”

“이거 2번 포트와 통째로 바뀐 게 아닐까요? 하하.”

주최 측도 놀란 모양이었다.

“그럼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AC밀란.”

원래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자주 보이던 팀이었지만, 지난 시즌에 삐끗했다.

그 결과 유로파 리그까지 떨어졌다.

자존심이 상한 그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서 자신들이 결코 이곳에 머물 레벨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줄 셈이었다.

“AC밀란, F조.”

AC밀란과 한 조가 안 된 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군요. A조에서 로마, 프랑크푸르트와 한 조가 되었다면 참 볼만 했을 텐데요. 하하.”

이윽고 여러 팀들이 호명됐다.

이제 남은 팀은 페네르바흐체와 꿈FC만 남았다.

“다음은 페네르바흐체.”

이제 남은 조는 A조와 G조였다.

A조는 로마와 프라이부르크와 붙어야 했고,

G조는 비교적 수월한 다나모 자그레브와 올림피아코스와 붙게 됐다.

“페네르바흐체를 똥통으로…”

구멍이 합장하며 염불을 외웠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까?

“페네르바흐체, G조.”

“이런~썅!”

구멍의 입에서 상스러운 욕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간절히 바라야 되는 것이었을까?

“조 편성 미쳤네. 로마랑 프라이부르크라니…”

“A조는 좋아하고 있을 거야. 스페인 4부 리그랑 한 조가 되었으니까.”

“그렇다면 이번에 최고 죽음의 조는 C조겠군.”

레버쿠젠, 레스터 시티, 마르세유가 포진했다.

세 팀의 전력 자체는 박빙이어서 어느 팀이 올라올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반면 다른 팀들은 1강 혹은 2강이 벌써부터 점쳐졌다.

“그래도 민흥이 형이랑 재민이 형은 16강 거의 확정인 거 아냐?”

그들이 속해있는 토트넘과 페네르바흐체는 꿈FC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한 조에 편성됐다.

“모든 조 추첨이 끝났습니다.”

포트 4번까지 추첨이 끝났다.

“이거 조금 재밌게 됐는데?”

“뭐가?”

김혁규가 물었다.

이순신이 같은 조에 편성된 ‘프라이부르크’와 ‘그라스호퍼’를 가리켰다.

“어? 대건이랑 승빈이가 속한 팀이잖아?”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됐다.

한국축구의 미래들이 유로파 리그에서 한판 붙을 예정이었다.

“재밌겠다!”

이순신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토록 많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고 있다니…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가 밝았다.

충무공도 뿌듯했다.

일주일 후.

꿈FC의 첫 경기 상대는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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