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24화 (125/161)

124화. 너의 의지를 담아서

[오진성의 염원을 이뤄주시겠습니까?]

[보상 : 오진성의 힐패스 습득]

[힐패스 성공률이 올라갑니다.]

이순신은 처음 보는 유형의 메시지에 당황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염원을 이뤄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어깨에 부담감이 한 가득이란 말이야.’

국민들의 염원,

팬들의 기대,

팀원들의 믿음,

자기 자신과의 약속…

이순신은 어깨에 이미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늘어나면 축구가 재미없는데…’

사명감 때문에 다시 축구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즐겁지 않으면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취미와 특기에 수익성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지만, 부담감까지 안고 가긴 싫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한 골 정도는 넣어줄 수 있으나,

누군가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하지만…

“네가 부탁하지 않아도 국가대표 하려고 했거든!”

“새끼. 역시 너답다.”

오진성이 씨익 웃었다.

[오진성의 힐패스를 습득했습니다.]

이순신은 그의 몫까지 뛰기로 결심했다.

‘네가 팬들에게 선사한 즐거움을 옆에서 내가 똑똑히 보았으니까.’

오진성은 경기 종종 번뜩이는 원터치 힐패스로 꿈 FC에게 많은 기회를 만들어줬다.

이순신은 오진성과 함께 한순간을 떠올렸다.

“오진성의 멋진 패스!”

“우와! 저기서 저런 패스를 그냥 한다고?”

“오진성이니까 가능한 거야!”

“역시 최고의 테크니션!”

그 모습을 본 팬들은 환호했다.

오진성은 그때마다 전율을 느꼈다.

‘그래. 이게 내가 원하는 축구야. 골을 못 넣으면 어때. 우리 팀에는 나 말고 골을 넣어줄 선수들이 많다고.’

어릴 땐 골 욕심이 많았지만,

브라질에서 좌절을 겪고,

골을 넣는 것보다 골을 만드는데 재미가 붙었다.

아름다운 축구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었다.

“순신아. 너라면 꼭 국가대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 그날을 고대한다.”

오진성은 그렇기에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축구를 넘어서 이기는 축구.

이순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다음 날.

오진성은 우선 구단 관계자들과 대화했다.

“정말 이게 최선이니?”

“네.”

“너 아직 젊어. 오라는 팀도 있잖아.”

“제가 경쟁에서 지친 거 같습니다.”

“하-”

임청수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헤이니, 이광인, 오쿠보가 팀에 합류했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누가 봐도 좋은 상황이지만, 단 한 사람!

오진성은 예외였다.

그들에게 도저히 비벼볼 수도 없었다.

다른 팀에서 도전할 수 있었으나 그는 더 큰 도전을 택했다.

“진성아. 사회는 정글이야. 너 뭐할 거야?”

“어부가 될 겁니다.”

임청수는 작은 눈을 껌벅였다.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뭐?”

“저번에 TV 예능을 보다가 어부의 삶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어부? 지금 어부라고 했냐?”

임청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맞습니다.”

“TV가 애를 다 버려 놨구만.”

임청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아무래도 향수병이 도진 거 같은데… 그래! 그게 분명해!’

임청수도 겪어봤기에 확신했다.

그런데 오진성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사실 저희 아버지는 어부 출신이에요.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꿈이기도 하고요. 바다에서의 생활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최근에 오진성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본 해안가를 잊을 수 없었다.

동이 터올 무렵 가장 바쁘게 사는 사람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부터였다.

오진성은 은퇴를 하면 어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끄응…”

임청수는 설득을 포기했다.

오진성의 눈에 담긴 바다를 보았다.

그만큼 진심이었다.

“하긴 네 나이 때는 누가 말해도 말릴 수 없지.”

임청수도 잠시 추억에 잠겼다.

축구 선수를 그만둘 때 주변사람들이 걱정했다.

“무슨 걱정들이 그렇게 많지? 자고로 슈퍼스타 걱정은 하는 게 아닌데? 크큭.”

연예인, 축구 지도자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잘난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가족까지 생기니 할 수 있는 일은 불법적인 일만 아니면 무엇이든 다 했다.

‘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나?’

임청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오진성이 어찌 보면 대견스러웠다.

축구 이후의 삶을 자신보다 더 빠르게 계획하고 그걸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알았다. 진성아. 대신 나중에 놀러 가면 회는 기갈나게 썰어줘야 한다? 나 활어 아니면 안 먹는 거 알지?”

“초장 맛으로 드시는 분이 활어를 찾으시긴…”

“뭐 인마!”

임청수는 웃었다.

이야기를 들은 이에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 용기를 이에로는 높게 평가했다.

10년 이상 열정을 쏟아부은 일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축구계에서는 흔한 일이기도 했다.

별들을 빛내기 위해 많은 선수들이 다른 길을 찾는 걸 숱하게 보았고, 은퇴 이후 전혀 다른 직업을 찾는 것 역시 스페인에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행운을 빈다. 오진성.”

“감사합니다. 감독님.”

오진성과 이에로는 악수하며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동료 선수들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젊은 나이에 동료가 은퇴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열심히들 해라.”

“왜 하필 지금이냐. 좀 더 일찍 말하거나 시즌 끝나고 말했으면 성대하게 파티를 해줬을 텐데.”

“그래서 지금이 제일 적절해. 시끌벅적하면 오히려 아쉬움이 남을 거 같으니까.”

오진성은 의연하게 대답했다.

아마 몇 년이 지나면 이들에게 오진성은 지나간 사람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진성아. 그래도 우리 잊지 마라.”

이순신이 축구공을 건네줬다.

종이가 아닌 축구공에 롤링페이퍼를 적었다.

“잘 모셔 놓을게. 나중에 사업 망하면 이거 팔아서 써야겠다.”

오진성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순신, 이광인, 헤이니, 김혁규, 오쿠보 등 미래에 각각 국대에서 활약할지 모르는 선수들의 친필 사인이었다.

심지어 이에로와 임청수의 사인도 있었다.

특히 이순신의 사인이 있다는 것. 이 축구공의 가치가 앞으로 얼마나 올라갈지는 전혀 예상 불가였다.

“진짜 간다!”

오진성은 뒤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눈물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순신을 비롯한 꿈FC 선수들은 그의 새로운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

3부 리그가 개막했다.

총 40개의 팀이 2개 조로 나뉘어 리그를 치른다.

각조의 우승팀과 플레이오프에서 이긴 1팀은 2부 리그로 승격된다.

그야말로 아마추어에서 진짜 프로가 되는 것이다!

3부 리그에는 익숙한 이름을 가진 팀들이 많았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이뱌, 비야레알 등 알만한 1부 리그 팀들이 포진했다.

물론 이들 뒤에는 B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꿈FC는 공교롭게도 이들과 한 그룹에 묶였다.

“나중에 카스티야랑 못 붙는 게 조금 아쉽네.”

카스티야는 레알 마드리드를 의미했다.

계약 조항 때문에 코파 델 레이와 리그 경기에서 맞붙을 수 없었다.

또한, 이들과 꿈FC는 공통점이 있었다.

설령 우승해도 2부 리그로 승격하지 못한다는 점.

1980년에 코파 델 레이에서 ‘레알’ 매치가 열린 적 있었다.

결과는 1군 팀의 대승.

그 이후로 모양새가 좋지 않았는지 리저브 팀은 코파 델 레이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리저브 팀은 리그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꿈FC의 첫 경기는 데포르티보였다.

창단한 지 무려 100년이 훨씬 넘은 팀이었으며 다수의 우승 경력도 가지고 있는 명문 팀이었다.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거쳐 갔으며, 화끈한 공격축구를 선보였던 그들은 어느새 3부 리그까지 강등됐다.

그들에게도 이번 시즌은 기로에 선 시즌이었다.

잊히냐? 반등하느냐?

그들에게 다행인 점은 스페인 리그에서 핫한 팀 중 하나인 꿈FC와 첫 경기를 치른다는 것이었다.

보강도 많이 했고, 짬밥도 생겼다.

팬들의 눈높이는 1부 리그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불행인 점은 하필 꿈FC를 만났다는 것이다.

“휴. 3부 리그 오랜만이네.”

이광인은 호흡을 내뱉었다.

10대 시절. 발렌시아 B팀 소속으로 3부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뒤 탄탄대로를 밟을 줄 알았다.

하지만 구단은 그를 주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에서 어쩌면 불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공평과 평등은 겉치레일 뿐, 그것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광인은 많은 경기에 뛰기 위해 이곳에 왔다.

꿈FC는 1라운드부터 풀 전력으로 홈에서 데포르티보를 맞이했다.

이에로는 이번 시즌에서도 학익진을 들고 나왔다.

4-2-2-2 전술에서 헤이니, 이광인, 오쿠보가 모두 들어왔다.

“꿈FC의 수비라인은 거의 기존의 선수들이고, 공격라인은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이 많네요.”

최전방에는 송희윤, 처진 스트라이커로 이광인, 그 아래는 오쿠보와 헤이니가 받쳐줬다.

데포르티보 감독은 애써 꼬투리를 잡았다.

“흥. 이름값으로 축구하는 게 아니다. 저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술로 우리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다니! 우리가 누군지 확실히 보여줘라!”

“넵!”

감독의 말대로 데포르티보는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광인 선수의 해트트릭으로 스코어는 6:0으로 앞서갑니다!”

이광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데포르티보 에게는 악몽 같은 스타트였다.

“이런 미친. 저게 말이 돼?”

데포르티보 감독은 어이가 없었다.

3부 리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티키타카였다.

헤이니, 오쿠보, 이광인의 패스 플레이는 절대로 여기에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피지컬은 떨어지는 수준이었는데 그들의 전략은 간단했다.

붙기 전에 공을 돌리는 것.

여기에 활동량이 좋은 송희윤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상대 팀의 체력을 빼놓고, 이순신이 뒤에서 버티고 있었다.

데포르티보가 기록한 유효슈팅은 무려 0개!

과거라 리가 우승을 하든 팀이자 공격축구를 하든 팀이라고는 전혀 상상이 안 되는 결과였다.

더군다나 이 결과는 무려 전반 45분에 이뤄진 것이었다.

후반전을 포함해서 경기는 8:0으로 꿈FC가 승리했다.

이 경기에서 이순신은 0골 0도움으로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보상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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