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은퇴
운동 후 먹는 고기와 술은 최고의 조합이었다.
“감사합니다!”
“야! 맥주 가져와!”
신나게 삼바 춤을 추면서 맥주 먹을 생각에 헤이니가 들떴다.
“참고로 술은 안 된다.”
툭.
그 말을 들은 헤이니는 들고 있던 고기를 떨궜다.
“술이 없는 파티가 어디 있어!”
좌절하는 헤이니를 챙겨준 건 다름 아닌 김혁규였다.
“됐고, 이거나 먹어라.”
김혁규는 자신의 고기를 헤이니에게 조금 나눠줬다.
헤이니는 엄지를 세우며 칭찬했다.
“고마워. 너 좋은 놈이었구나.”
헤이니는 김혁규를 향해서 엄지를 내밀었다.
“뭘. 미우나 고우나 일단 우린 한 팀이니까.”
두 사람은 그간의 견제와 앙금을 풀었다.
생각보다 잘 맞는 구석도 많았다.
무엇보다 축구에 대해서 진심이었다.
“우리 국가대표가 돼서 마주 보고 싸우면 진짜 재밌겠다.”
김혁규와 헤이니가 동상이몽을 펼쳤다.
***
며칠 후.
연습이 끝난 후 이순신은 주변을 살폈다.
“그래도 예전보단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
김혁규와 헤이니가 훈련이 끝난 후 어깨동무를 하며 물을 마시러 갔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두 사람이 친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같은 언어를 쓸 수 있다는 점.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니,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됐다.
두 사람이 친해지니 파벌 자체도 일단락됐다.
끼리끼리 모여 다니는 거까진 막을 순 없었으나,
리그 개막일이 다가올수록 선수들의 관심은 한 곳으로 모아졌다.
축구 선수에게 리그는 한 해 농사이자 평생 농사나 다름없었다.
그 전에 몇몇이 팀을 떠나게 됐다.
제일 먼저 팀을 떠나게 된 것은 조문돈이었다.
“쩝. 어쩔 수 없잖아. 군대가 날 부르니까!”
늙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조문돈은 이제 20대 중반이 됐다.
축구를 하면서 군 복무를 하고 싶다면, 국내 무대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도 축하해. K리그라니!”
조문돈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에게 이적 제안을 한 팀은 이번에 승격한 수원 FC였다.
리그에서 5위를 차지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리그 3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서 K리그 10위 팀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쳤다.
K2 리그에서 2위를 했던 팀은 11위 팀에게 패배하여 승격에 실패했다.
반면, 수원 FC에게는 기적이 일어났다.
“수원 FC가 승격에 성공합니다!”
강 플레이오프에서 행운의 프리킥 골을 성공시켰다.
이 한 골을 잘 지켜서 가까스로 이기고 올라왔다.
같은 연고지를 둔 ‘수원 사성’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과감하게 영입을 했다.
해외에서 뛰던 이우승도 수원 FC에 영입됐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여리고 쑥스러운 성격을 감추기 위해 늘 화를 냈던 조문돈이라는 걸 선수들은 잘 알고 있었다.
“세찬 FC가 아니었다면, 꿈 FC가 아니었다면 전 지금쯤 조폭 똘마니나 하고 있었겠죠. 흑흑.”
진심이 느껴졌다.
“으어엉! 으어엉!”
하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헤이니도 그 사연을 듣더니 엉엉 울었다.
“야. 너 왜 그래?”
이순신이 물었다.
“나보다 축구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큰 부상을 입고 축구를 포기했어.
그 뒤론 마약 밀매 조직에 들어가서 마약을 운반하다가 그만 총에 맞아 죽었거든.”
“그게 몇 살 땐데?”
“17살.”
“…”
헤이니의 말에 선수들은 숙연해졌다.
이들에게 축구란 이런 것이었다.
태어난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동아줄이었다.
다음 날.
윤광섭은 면담했다.
“광섭아. 요즘 어떠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프로에서는 열심히 하는 걸로는 부족한 거 알지?”
“…”
윤광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방출통보인가?’
인기도 예전 같지 않았고, 실력은 정체기였다.
“광섭아. 너한테 이적 제안이 왔는데 한 번 볼래?”
임청수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스페인 3부 리그 팀 두 곳과 한국의 K3리그였다.
“아직 K3는 승강제가 없죠?”
신자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생각해보고 알려줘도 된다.”
“단장님.”
윤광섭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전 팀에 남겠습니다.”
윤광섭의 입장은 단호했다.
“광섭아. 여기에 네 자리가 없을 수 있어.”
신자영도 그가 이적하길 바랐다.
“아이돌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윤광섭의 눈이 살짝 빨개졌다.
옛날에 아이돌을 하려고 개고생했던 게 생각났다.
“저는요. 경쟁에 익숙해요. 그러니까 남아서 경쟁할 겁니다.”
임청수는 고개를 돌려서 카메라를 끄라고 지시했다.
PD가 카메라를 끄려는 순간,
이에로가 입을 열었다.
“알았다. 꼭 살아남길 바란다.”
이에로가 일어나서 윤광섭의 어깨를 토닥였다.
윤광섭은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갔다.
“이해할 수 없군요. 실력이 미달이라고 말한 건 감독입니다.”
“아직 치매에 걸리지 않았소. 매우 잘 알고 있답니다.”
이에로가 여유롭게 받아쳤다.
“그럼 도대체 왜죠? 이유나 들어봅시다.”
“이미 한 분야에서 프로를 찍은 사람입니다. 그 점을 높이 사고 싶소.”
‘프로’라는 타이틀을 손쉽게 딸 수 있는 분야는 어디에도 없었다.
노력, 운, 실력이 갖춰야 프로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윤광섭은 그런 세계에서 정점을 찍었다.
지금은 전혀 다른 분야를 도전하는 중이었다.
이에로는 여전히 그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재능은 평범하나 이번 시즌만큼은 포텐셜이 터질 거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이에로의 말에 사실 임청수나 신자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윤광섭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즌만큼은 윤광섭이 무언가를 해 내주길 바랐다.
윤광섭의 현재 위치는 4번째 옵션이었다.
주전이 부상을 당해서 후보 선수가 뛰고, 그 후보 선수가 부상을 당하고 그 선수가 또 부상을 당해야만 윤광섭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 자리는 김혁규도 뛸 수 있었고, 오쿠보나 이광인도 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윤광섭은 묵묵히 훈련을 이어갔다.
“내게 부족한 건 피지컬이야!”
먹고, 마시고, 운동했다.
축구 선수로 살기로 결심할 때부터 외모는 포기했지만, 마지막 선은 넘지 않았다.
“광섭아 머리가 뭐야?”
“내가 밀었어.”
“그런데 눈썹도 밀 필요가 있었을까?”
“시원하고 좋은데?”
윤광섭은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고 훈련장에 나타났다.
“광섭 시주. 머리빨이었구려…”
윤광섭은 씨익 웃었다.
구멍의 팩트 미사일에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조문돈이 없어진 지금 가장 강력한 인상을 가진 건 윤광섭이었다.
헤이니나 오쿠보도 윤광섭을 볼 때마다 움찔움찔했다.
며칠 후 같은 포지션에서 1명이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나이스!’
윤광섭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경쟁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웃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어색하네. 승부욕에 불타는 내 모습.”
하지만 여기서 선비인 척할 수 없었다.
‘주전이 된다. 잃어버린 내 자리를 기필코 되찾을 것이다!’
윤광섭은 현재 자신의 실력과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목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했다.
음악방송 1위 할 때보다도 경기에 뛰는 것.
꿈FC의 주전 미드필더가 되는 걸 더더욱 원했다.
***
리그 개막이 마침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에로의 의견대로 선수단의 규모는 축소됐다.
35명의 선수들 중 이제 남은 건 29명 정도였다.
아직도 몇 명이 더 나가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중에서 선수들은 유독 한 선수가 차가운 기운은 풍겼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오진성이었다.
그에게 금기어는 이적, 임대 등이었다.
이미 다른 팀에게 이적 제의를 받았다.
심지어 2부 리그 팀에서도 오진성을 원했다.
하지만 오진성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적을 한 조문돈의 선택도,
남아서 경쟁을 하기로 결심한 윤광섭의 선택도 모두 존중했다.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
오진성을 고개를 돌려서 경쟁자들을 살펴봤다.
헤이니, 이광인, 오쿠보는 모두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그렇다면 포지션 변경이 답일까?’
하지만 준족이 아닌 자신이 기존의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떨어졌다.
공격수를 하기에는 골 결정력도 부족했다.
‘이곳에서 나를 포기하고 남는 게 과연 옳은가?’
물론 임단결처럼 포지션 변경에 성공해서 올림픽 대표까지 올라간 사례도 있었다.
‘여기까지인가…’
오진성이 내린 결론은 은퇴였다.
그날 밤.
오진성은 우선 이순신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놨다.
이야기를 들은 이순신은 착잡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어때?”
“오랫동안 심사숙고하고 내린 결론이야. 내 결심은 변함없어.”
단호한 대답과는 다르게 얼굴에는 착잡함이 가득했다.
“그래도 은퇴는 아닌 거 같아. 난 네가 좀 더 선수로 뛰면 좋겠어.”
이순신이 한 번 더 설득했다.
“우리 나이 때에 이 정도 돈을 벌기도 힘들겠지. 그런데 난 돈 때문에 축구하는 거 아니거든. 끝이 명확하게 보이는데 어떻게 계속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겠어?”
“…”
“순신아. 난 벤치에 앉아서 너네들이 바르셀로나랑 치열하게 싸우는 거 못 보겠다. 어쩌면 벤치에 못 앉을 수도 있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진짜 이해가 안 된다니까?”
“이 선택을 하기까지 내가 얼마나 고민했겠냐!”
급기야 오진성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심지어 울먹거렸다.
“난 여기까지야. 순신아.”
“감독님은 뭐라셔?”
“아직 이야기 안 했어. 내일 말하기 전에 너한테 먼저 말하고 싶었다.”
“왜?”
“너랑 뛰는 동안 가장 즐거웠고, 곁에서 기적을 같이 경험했으니까.
나보다 어린 애들이 치고 올라오는 거 보니까 난 국대는 절대 못 해.
씨발. 나도 어릴 때 재능 있다는 소리 듣고 자랐는데 언제부터 성장이 멈춘 건지…”
예체능 계열에서 누구나 겪는 일이었다.
칭찬으로 입문해서 통곡의 벽을 겪은 뒤 스스로 그만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했다.
이때부터 희망 고문의 시작이었다.
버티면 된다고 하지만, 버틴다고 능사는 아니었다.
주변의 시선이 괴롭고,
재능이 차이가 느껴지면,
가장 괴로운 건 결국 본인이었다.
“잘 부탁한다. 순신아. 내 꿈 네가 꼭 이뤄줘. 국가대표…꼭 되라고.”
오진성이 손을 내밀었다.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
눈앞에 메시지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