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22화 (123/161)

122화. 혼돈의 트레이드

송희윤은 측면으로 돌아서 중앙 쪽으로 들어갔다.

넓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수비를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흥! 내가 못 쫓아갈 줄 알지?”

하비가 나와서 송희윤을 막아섰다.

송희윤은 최대한 구석으로 몰아갔다.

“그쪽으로 가면 슈팅 각도가 안 나올 텐데?”

“괜한 걱정하지 마.”

하비는 지적질이 기분 나빴다.

굳이 콕 집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송희윤은 볼을 잘 간수하면서 크로스를 올렸다.

“D팀에는 공격수가 없…”

하비는 고개를 돌리다가 깜짝 놀랐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하비는 어이가 없었다.

이순신이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뭐야! 이거 반칙 아냐?”

하비는 불만을 토로했다.

D팀과 E팀이 협력 수비를 하는 것도 모자라고 공격이라니.

엄밀히 말하면 룰 위반은 아니었다.

이순신은 헤딩으로 가볍게 골을 찍어 넣었다.

철렁.

A팀의 그물망이 흔들렸다.

“나이스. 희윤이 형!”

찰싹.

이순신과 송희윤은 하이파이브를 한 뒤 서로 껴안았다.

‘역시 이순신은 놀라워.’

이에로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어시스트는 이번 게임에서 판단 대상은 아니었다.

득점 역시 E팀으로 기록됐다.

그렇기에 팀끼리 연합하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 변수였다.

송희윤 역시 상관없었다.

오히려 기뻐했다.

‘나도 팀에서 필요한 존재가 됐어!’

의외로 소득을 얻은 건 이에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경기에서 중요한 건 송희윤이 팀에 녹아들었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군.’

송희윤은 재빨리 복귀했다.

“자 다음번에는 우리가 골을 넣어보자!”

“좋아. 해보자!”

D팀의 선수들은 의욕을 불태웠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 남짓이었다.

송희윤을 주축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조직력의 승리였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팀이 됐다.

계속 두드렸더니 결과를 냈다.

마침내 D팀도 골을 넣었다.

“우와아!”

후방에서 이순신의 지휘로 양 팀의 수비를 커버하니 남은 인원은 자연스럽게 공격에 나섰다.

“쟤 이름이 뭐라고?”

“송희윤. 싱가포르에서 왔대.”

“싱가포르? 그건 또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야…”

“동남아 어디에 있는 나라라고 들었어.”

“동남아? 세상에!”

1라운드에서 송희윤은 두 골을 넣었다.

E팀의 미드필더가 1골을 추가로 넣으면서 마침내 모든 팀이 득점했다.

삐이이익-

마침내 1라운드가 끝났다.

짝짝짝.

이에로가 박수치며 선수들을 향해 걸어왔다.

“다들 모여라.”

선수들이 그의 앞으로 모였다.

“말했다시피 꼴찌 팀은 벌칙을 받을 것이다.”

선수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2라운드를 진행하기 전에 첫 번째 트레이드를 진행하겠다.”

“트레이드요?”

트레이드란 말에 선수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연습경기에서 트레이드라니…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었다.

이에로는 낮은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말했다.

“각 팀은 상의해서 방출할 선수 두 명을 뽑도록.”

“네?”

이에로가 눈을 부릅떴다.

그만큼 진지하단 뜻이었다.

선수들은 난감했다.

1라운드 동안 같이 발을 맞춘 동료와 갈라서라고?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모르겠다. 나도.”

선수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이에로는 선수들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면서 웃었다.

‘이순신의 말대로군.’

이순신이 이에로에게 제안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될 수도 있고,

함께 했던 동료가 잠시 후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아예 파벌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예상외란 말이지.’

각 팀마다 다른 대응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헤이니는 별생각이 없었다.

어느 팀에 가도 상관없었다.

‘이순신이 있는 E팀은 안 돼. 그러면 싸울 수가 없잖아.’

김혁규는 E팀으로는 가기 싫었다.

이번만큼은 이순신과 같은 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순신이랑 같은 팀 하고 싶다.’

송희윤은 내심 이순신이 있는 팀이나 한국 선수들이 많은 B팀으로 가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눈치작전은 치열했고, 선수들은 선택의 순간이 왔다.

각 팀당 2명씩 선수를 결정했다. 다른 팀으로 가겠다고 자원한 선수도 있었다.

“가위. 바위. 보.”

행운의 여신에게 운명을 맡긴 팀도 있었다.

이쯤 되니 선수들은 마음을 비웠다.

“꼴찌인 D팀은 어느 팀에서 선수를 데려올지 제비뽑기로 결정하면 된다.”

이에로가 검은색 의문의 상자를 내밀었다.

송희윤이 첫 번째로 뽑은 쪽지에는 헤이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A팀의 헤이니는 D팀으로 이동한다.”

“홀리쉣!”

아무 생각 없던 헤이니는 D팀으로 확정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부터 대형 트레이드가 발생했다.

헤이니는 D팀한테만 3골을 넣었다.

“하하하. 헤이니 적당히 넣지 그랬어!”

“아! 젠장!”

헤이니는 손으로 계속 자신의 머리를 빠르게 긁적였다.

다들 헤이니가 겪은 운명의 장난을 보며 낄낄댔다.

계속 트레이드가 발생했다.

선수들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새로운 동료를 맞이하기도 했다.

“어? 송희윤이 E팀으로 가네?”

헤이니와 송희윤이 불편한 상황을 피했다.

“다음은 오쿠보다!”

송희윤, 오쿠보, 구멍은 이순신이 있는 E팀으로 왔다.

선수들의 시선이 E팀으로 향했다.

“어? 이건 좀 곤란한데?”

갑자기 이순신을 주축으로 한 E팀이 최고 전력이 되었다.

“저 팀 너무 센 거 아냐?”

이광인은 김혁규에게 제안했다.

“혁규 형. 1라운드에서 순신이 형이 보여준 대로 연합하면 어때요?”

김혁규는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그거 꽤 좋은 생각인데?”

이광인과 김혁규가 서로 악수했다.

이광인은 C팀과 D팀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다.

“좋아! 타도 이순신!”

이순신은 갸우뚱했다.

“도대체 우리를 왜?”

“하-이놈의 인기란…”

구멍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자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드디어 다들 이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군.”

졸지에 A팀부터 D팀한테까지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28 : 7의 싸움이 됐다.

“얼마든지 오라고!”

각 팀에서는 3명씩 남겨두고 모두 이순신을 향해 공격했다.

“헤이니. 받아!”

B팀의 김혁규가 헤이니에게 패스했다.

“김혁규가 헤이니한테 패스를?”

“둘 다 철천지원수 아냐?”

오월동주라는 말이 있었다.

서로 미워하면서도 공통의 어려움이나 이해에 대해서는 협력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었다.

지금이 딱 그랬다.

이유는 딱 하나!

지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자세히 풀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순신과 함께 훈련하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런데 격차는 더 벌어졌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지…”

더는 재능이란 단어로 퉁 치고 싶지 않았다.

“오호?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순신은 수세에 몰릴수록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충무공이 명량해전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충무공도 마찬가지였다.

300 vs 12.

당시에 수세에 몰리던 상황이었는데 뒤따르는 함선이 없었다.

한참 있다가 아군이 속속 합류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서 수적 불리함을 극복했다.

그리고 세계 해전 사에 길이 남을 전설을 남겼다.

이순신이 이끄는 E팀은 확실히 강했다.

오쿠보와 송희윤이 패스하며 A팀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예상외로 잘 맞았다.

“역시 역습을 하려면 스피드보단 심폐 지구력이지.”

이에로는 송희윤을 보면서 새로운 공격 옵션에 만족했다.

오쿠보 역시 공격형 미드필더뿐만 아니라 윙어로서도 사용가치가 있었다.

빠른 템포로 치고 가는 스타일로 상대의 빈 공간을 노렸다.

“김혁규도 많이 늘었고, 임단결의 오버래핑은 자신감이 붙었군.”

난전 속에서 이에로는 선수들의 장점을 계속 캐치할 수 있었다.

2라운드가 끝날 때쯤 터진 골은 고작 3골뿐이었다.

연합팀이 2골을 넣었다.

E팀은 A팀을 상대로 1골을 추가했다.

“단결아. 많이 늘었다. 대단하다.”

“다 형 덕분이죠.”

이순신과 임단결은 팀은 다르지만 서로 칭찬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드디어 마지막 라운드가 펼쳐졌다.

이순신은 스스로 트레이드를 자청했다.

공교롭게도 김혁규, 이순신, 헤이니가 A 팀에 속했다.

“와- 저 조합은 또 뭔데?”

선수들은 잔뜩 경계했다.

이미 많은 골을 넣은 A팀에 최고의 수비수와 언제든지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들이 포진했다.

“괜찮아! 또 연합하면 돼!”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좀 달랐다.

이광인이 아까처럼 적극적으로 연합전선을 시도하지 않았다.

다른 팀들도 이순신 팀만 견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광인아! 너 이 자식. 배신이냐?”

“배신은 무슨~ 2라운드 연합은 2라운드까지만 유효한 거죠.”

이광인이 씨익 웃었다.

이광인, 오진성, 구멍, 송희윤이 합쳐진 팀도 만만치 않았다.

“진성이형!”

이광인과 오진성이란 테크니션이 만들어내는 패스는 엄청났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일부 선수들은 기교에 넋을 잃었다.

“와. 호흡이 엄청난데?”

“미쳤다. 두 사람의 조합은 창의력 끝판왕이네.”

이광인도 즐거웠고, 오진성도 즐거웠다.

“하- 고민이군.”

오직 단 한 사람.

이에로만큼은 웃을 수 없었다.

‘포지션이 겹쳐도 너무 겹쳐. 그렇다고 오진성을 서브로만 쓰기에도 너무 아깝고…그건 팀과 선수 둘 다 좋지 않아.’

삐이익-

마침내 3라운드가 종료됐다.

선수들은 서로가 서로를 격려했다.

팀이 섞이다 보니 파벌의 구분이 없어졌다.

“축구공으로 친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에로는 처음에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를 지켜보니 이순신이 말한 의미를 알게 됐다.

여기 있는 선수들 대부분 비슷한 기억을 가졌다.

골목에서 공을 따라서 우르르 몰려가던 어린 시절.

처음에는 서먹했어도 다음날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매개체는 축구였다.

그런 동네 축구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했으면 싶었다.

“그러고 보니 스코어가 어떻게 되지? 어느 팀이 이긴 거야?”

“몰라. 그게 뭐가 중요해.”

하비의 말에 오쿠보가 대답했다.

가장 골을 많이 넣은 건 이순신이 마지막에 속한 A팀이었다.

오쿠보의 말대로 그건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모두 고생했다. 즐거웠나?”

“네!”

선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럼 벌칙을 받아야겠지?”

벌칙이란 단어가 나오니 선수들이 긴장했다.

“꼴찌를 한 E팀은 지금부터 열릴 바비큐 파티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는 건 자유다.”

“감독님. 그 말은?”

“그래. 서로 놀아라!”

이에로의 깜짝 이벤트에 선수들은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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