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21화 (122/161)

121화. 다수 연합이 꼴 보기 싫어.

공은 그대로 골문 구석으로 정확히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뭐야…’

보경풍은 황당했다.

그동안 여러 번 이순신의 공을 잡아봤다.

작년에는 월드 클래스로 불리는 선수들의 슛도 여러 번 막아냈다.

보경풍은 지금이라도 국가대표 3번 골키퍼나 K리그에서 충분히 통할만 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이순신의 슛은 결이 달랐다.

‘이것이 경험의 차이인가?’

어느덧 30대를 바라보는 보경풍이었다.

순발력이 작년보다 살짝 떨어지긴 했어도 주전을 꿰차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아직도 K리그에서 통할만 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순신의 실력은 올림픽 경기에서 경기를 치를수록 더더욱 성장해서 돌아왔다.

‘최초로 스페인 3부 리그 출신의 국가대표가 탄생하는 건가? 이순신. 넌 도대체 어디까지 더 성장할 거냐.’

이순신은 씨익 웃으며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순신아. 진심이냐?”

김혁규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하지. 이건 컴페티션 이니까.”

이순신이 과거의 유행어를 인용하며 장난스레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김혁규는 활활 타올랐다.

“알았어. 우리도 제대로 한다!”

김혁규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조기 축구회 이후로 이순신과 얼마 만에 상대 팀으로 겨뤄보는 것인가?

‘계속 같은 팀에서 뛸 줄 알았는데…’

오랫동안 함께 해서 그런지 다른 팀이 되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올림픽에도 같이 뛰었기 때문에 동료애가 누구보다 끈끈했다.

그런 그에게도 요즘 문득 현실 타격이 왔다.

‘순신이는 내년에 레알 마드리드도 간다. 그렇다면 나는?’

자신에게도 몇몇 오퍼가 왔었다.

스페인 2부 리그와 K리그 팀이었다.

연봉 문제도 있었지만, 이 팀에 남은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이순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로 서로의 골대를 향해 골을 노리는 상황이 생겼다.

“어쩌면 이건 내년 시즌의 예고편일 수도 있겠네.”

김혁규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올림픽 대표 선발과 금메달을 결코 자신의 최고 커리어로 찍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축구만 다시 해도 만족한다는 꿈은 이룬지 오래다.

새로운 목표는 유럽 5대 리그라 불리는 곳에서 1부 리그 선수가 되는 것,

나아가서는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국가대표팀 발탁을 꿈꿨다.

김혁규는 역시 착실히 넥스트 레벨로 진입했다.

데구르르.

그 순간 또 하나의 공이 필드로 투입됐다.

‘경기장에 두 개의 공이 돌아다닌 다라…’

이순신을 비롯한 선수들은 긴장했다.

가뜩이나 경기장도 좁았다.

시선은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다들 B팀을 바라봤다.

B팀은 두 개의 공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팀들은 수비 위치를 잡았다.

김혁규는 공 하나를 오진성에게 툭 찼다.

“진성아. 난 이순신이 있는 쪽으로 달릴게.”

“그럼 난 이광인이 있는 곳으로.”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각자 말했던 진영으로 드리블을 시도했다.

그들을 도와줄 한 명의 선수들이 각각 따라붙었다.

“쟤네 바보 아냐? 축구 센스라고는 1도 없는데?”

헤이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7명밖에 없는데 2명씩 나가면 결국 수비수는 빡빡이 혼자서 하는 거나 다름없잖아?’

그의 말대로 B팀은 보경풍, 구멍, 수비수 한 명만 남았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지.’

헤이니의 시선은 빠르게 움직였다.

김혁규와 오진성을 번갈아 가면서 봤다.

수비보다는 공격이 더 문제였다.

2명이서 7명을 뚫는 건 쉽지 않았다.

“혁규. 진짜로 두 명이서 여길 뚫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물론이지. 내 속도라면 가능해.”

“드루와!”

이순신이 웃으면서 손을 까닥거렸다.

오진성도 별반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이 자식. 생각보다 단단하잖아?’

이광인과 몸을 맞대고 기회를 엿보던 오진성은 깜짝 놀랐다.

근육을 응축 시켰다는 게 뭔지 단박에 이해됐다.

오진성은 벗어나기 위해 개인기를 펼쳤다.

이광인이 방심하는 사이 왼쪽으로 빠져나왔다.

‘됐어!’

그러자 이번엔 오쿠보가 붙었다.

‘이 자식도 역시 만만치 않네.’

유럽 팀들은 일본 선수들을 예전처럼 단순히 유니폼을 팔기 위해 영입하지 않았다.

실력과 가능성을 보고 뽑았다.

비록 결승전에서 한국 팀에게 대패를 당하긴 했어도, 오쿠보의 실력은 여전히 뛰어났다.

같은 팀인 구멍조차도 체념했다.

‘아아. 두 마리의 토끼를 쫓다가 둘 다 놓쳤구려. 나무아미타불.’

‘욕심쟁이들. 아까 공을 다른 데로 올리는 게 정답이었어.’

헤이니의 말대로 무리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었다.

“간다. 이순신!”

예상대로 김혁규는 무리한 드리블로 이순신을 제쳤지만, 이어진 슈팅을 너무나도 쉽게 E팀의 골키퍼 손에 잡혔다.

“혁규. 아깝지 않았어.”

이순신이 엄지를 척 올렸다.

일부러 공간을 내주고, 무리한 슈팅을 하게끔 놔둬서 체력을 소모시켰다.

“젠장.”

김혁규는 고개를 돌려 오진성 쪽을 바라봤다.

오진성과 윤광섭은 2:1 패스를 시도했다.

툭!

C팀의 수비수에 의해 너무도 쉽게 공을 커트 당했다.

수비수는 재빨리 이광인에게 공을 건넸다.

“자. 가자!”

공을 잡은 이광인이 외쳤다.

이광인과 오쿠보는 B팀을 향해서 역습을 시도했다.

공격 4명에 수비가 2명인 상황이었다.

“멈추시오!”

구멍이 손을 내밀어 ‘정지선’에 빙의해보려고 했다.

“뭐라는 거야?”

안타깝게도 오쿠보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그가 할 수 있는 단어는 몇 개 안 됐다.

‘김치’,‘이순신’,‘이광인’,‘축구’,‘안녕하세요’,‘독도’, ‘한국 땅’

이 정도였다.

오쿠보는 인사이드로 이광인에게 패스를 찔렀다.

“와 패스 미쳤다.”

다른 팀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두 테크니션이 만드는 합은 하모니 같았다.

공을 잡은 이광인은 신난 표정으로 골대를 향해 드리블을 쳤다.

“저 패스는 우리 팀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이에로도 흡족하게 바라봤다.

눈앞에서 직관 중인 구멍은 예외였다.

“젠장! 어린 노무 시키들이!”

이광인이 로빙패스로 구멍의 머리를 살짝 넘겨서 오쿠보에게 전달했다.

오쿠보는 부드럽게 받자마자 원터치로 다시 이광인에게 공을 넘겼다.

구멍이 너무나 쉽게 뚫리자 인상을 팍 썼다!

그때 무언가가 빠르게 구멍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야? 대포알 같은 게 방금 지나간 거 같은데…전쟁 났나?’

구멍은 너무 놀라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이순신은 멀리서 지켜보더니 그대로 중거리 슛을 날렸다.

[천자포가 발동했습니다.]

보경풍이 아무리 빨라도 이광인과 이순신을 동시에 막는 건 무리였다.

이순신이 찬 슛은 이광인보다 먼저 도착할 거 같았다.

‘이순신의 공이 빗나가길 바라고, 이광인의 드리블을 막는 게 당연하지만…’

문제는 이순신이 찬 슛의 코스가 너무 좋았다.

‘이대로 놔두면 이순신이 찬 슛은 100% 들어가고, 이광인과 1:1 대결에서 지게 된다면…’

결국, 2골을 헌납하고 3골이나 허용하게 되는 것이었다.

‘쳇. 마음에 들지 않아.’

보경풍은 이순신의 슛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행히 손끝으로 걷어낼 수 있었다.

“미안해요.”

어느새 골문까지 온 이광인이 가볍게 차 넣은 공을 막지 못했다.

보경풍이 주먹으로 땅을 후려쳤다.

“예~!”

이광인과 오쿠보가 하이파이브했다.

10분 사이에 두 골이 터졌다.

골이 터지면 선수는 심장이 뛴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잖아?”

“그러게. B팀이 구멍이었네.”

“고인 물을 걸러내자!”

그 모습을 보자 김혁규는 팀원들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골을 못 넣고 뺏기는 바람에…”

“아니야. 나도 순간 당황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어.”

“자책하지 마시오. 잘못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앞으로 그걸 안하면 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구멍의 합장에 B팀은 평온함을 얻었다.

그때 코치들이 세 번째 공을 던졌다.

공을 잡은 구멍이 말했다.

“이 새끼들. 다 뒤졌어!”

구멍이 공 3개를 C팀, D팀, E팀을 향해 대포처럼 갈겼다.

필드에 3개의 공이 돌아다니자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됐다.

“다 뒤지는 겁니다! 아미타불!”

구멍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다.

더는 골을 먹히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남은 시간은 이제 3분 정도.

선수들은 한 골이라도 더 넣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헤이니가 이끄는 A팀은 패스와 개인기로 오밀조밀한 축구를 구사했다.

다만 마무리를 지어줄 선수가 없었다.

C팀과 D팀은 막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골이 쉽게 터지지 않았다. 헤이니는 다른 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경풍과 구멍이 지키는 B팀이나 이순신이 지키는 E팀의 수비는 단단했다.

마치 철갑을 두른 거북선 같았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인데…’

이광인과 오쿠보는 1골을 넣은 상태라서 그런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무리하게 체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송희윤이 속한 D팀은 계속 역습을 시도했지만,

호흡이 맞지 않았다.

‘공격수가 아깝네. 팀원들이 받쳐주지 못하니.’

헤이니는 결단을 내렸다.

‘하나만 노린다!’

최약체인 D팀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목표가 명확해지니 성과가 보였다.

하비가 1골 헤이니가 2골을 넣었다.

‘역시 저기가 낫겠지?’

‘우리도 저쪽으로 가자!’

그러다 보니 B팀, C팀도 D팀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한 골대를 향해 두 개의 공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수비는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골키퍼는 한 명뿐이기 때문에 더더욱 집중력을 요했다.

‘아-’

시간이 지나자 D팀 선수들은 절망했다.

다른 팀들에게 너무나 많은 골을 헌납했다.

유일하게 골을 못 넣은 팀이기도 했다.

‘이러다가 방출당하는 거 아니야?’

D팀의 선수들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보여준 거라고는 골을 먹히는 모습뿐이었다.

현재 스코어는 A팀 5골 3실점, B팀 3골 2실점, C팀 4골 1실점, D팀 0골 7실점, E팀 1골 0실점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5분.

가만히 지켜보던 이순신은 화가 났다.

특히 이 사태를 주도한 헤이니의 깐족은 참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헤이니가 D팀의 수비수를 제치고 슛을 넣으려던 찰나였다.

송희윤의 표정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이대로 슈…웃?”

이순신이 나타나서 헤이니의 앞을 막아섰다.

“이순신이 왜 여기서 나와?”

E팀의 이순신이 헤이니의 공을 빼앗았다.

그러더니 송희윤에게 공을 넘겼다.

“뭐지?”

“뛰어!”

이순신의 명령에 송희윤은 움찔하더니 달렸다.

송희윤을 슬쩍 보니 A팀이 비어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공격을 나가느라고 지쳐있었다.

송희윤은 지체하지 않고 A팀 골문을 향해서 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