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19화 (120/161)

119화. 주장의 무게

K리그와 스페인 리그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서 나왔다.

대다수의 유럽 리그 팀은 25명 안팎에서 선수를 운용했다.

경기 수가 많은 상위 리그의 팀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아도 30명을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선수 수급이 필요하다면 유소년팀이나 2군에서 불렀다.

그만큼 주전 경쟁은 치열했다.

그 결과 경기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경기에 뛰지도 않는 선수한테 주마다 몇억씩 줄 순 없었다.

선수 입장에서도 억 단위의 주급을 계속 받고자 한다면 한 경기라도 더 많이 뛰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차 없이 정리되는 것이 프로의 세계였다.

임청수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죠. 경기에 뛰기 위해 온 선수들이었죠…”

‘기회의 배분’이라는 명목하에 뛰지 못한다면 이곳에 온 의미가 퇴색됐다.

오히려 실력이 퇴보할 수 있었다.

“꿈FC는 기존에 20명 안팎으로 로스터를 유지했죠.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소.”

임청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또 당첨금만으로는 한 시즌 운영하기 빠듯한 돈이었다.

4부 리그 때는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걸 보고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서는 숨통을 틔워주고 싶단 생각이 강했다.

K리그도 이 정도 규모의 선수들을 유지하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에로의 대답은 그간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차라리 모자란 편이 더 나았다.

혹사 위험을 안고 가지만, 경험과 선수단 운영 측면에서는 손해 볼 게 없었다.

20명은 적었고, 35명은 많았다.

“그렇다면…”

임청수가 머뭇거렸다.

몇몇 선수들이 떠올랐지만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프로에서 오랜 생활을 했지만, 40대에 접어든 이후 갱년기가 왔는지 눈물이 많아졌다.

이에로가 단숨에 해결책을 제시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윤광섭, 오진성, 조문돈의 기량은 이제 꿈FC에서 뛰기엔 조금 아쉽습니다.”

“아-”

임청수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 말을 직접 들으니 심정은 착잡해졌다.

덜컹.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다들 세찬 FC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이었는데…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번에 뽑은 선수들은 인지도는 떨어지더라도 실력은 더 뛰어났다.

“광섭이는 그래도 팬이 많으니까 구단 재정과 팬 확보에 도움이 됩니다!”

“오히려 5부 리그에서 뛸 때가 더 많았던 걸로 압니다.

축구 선수로서 커리어를 쌓아갈수록 안타깝게도 팬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예전에 아이돌 시절의 팬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고 축구 선수로써 그를 응원하는 팬들만 남았죠.”

“으윽.”

윤광섭에 대한 임청수의 실드가 박살 났다.

그는 화제를 재빨리 돌렸다.

“문돈이는 팀에 헌신하는 유형입니다.”

“잘 알죠. 팀이 없을 때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했고요. 안타깝게도 언어적인 부분이 많이 아쉽습니다.”

조문돈은 어느 정도 회화가 가능했지만, 자신의 의사를 완전히 표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진성이는 실력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임청수는 오진성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압니다. 하지만 꿈FC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는 가장 핫한 자리이기도 하죠.”

오진성은 가장 안타까운 상태였다.

해당 포지션에 대체할 선수들이 즐비했다.

더 젊고, 빠르고,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

이들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지컬적으로 보완이 필요했다.

‘진성이가 웨이트 훈련을 더 열심히 했어도…’

하지만 근육이 잘 붙지 않는 마른 체질이었다.

같은 시각 어디선가 누군가의 한숨이 들려왔다.

‘하, 미치겠구만.’

오진성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탄했다.

어릴 때부터 천재라고 불렸지만, 세상에는 매년 천재들이 나왔다.

‘내 재능은 딱 여기까진가?’

오진성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지난 시즌부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애써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동료들이 올림픽 대표 팀에 선발되는 걸 보면서 속으로는 가장 많이 착잡했던 게 오진성이었다.

***

선수들 사이에도 갑작스럽게 늘어난 인원들 때문에 당황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정치가 생기는 법이었다.

어느덧 자연스럽게 파벌이 생겼다.

“오늘 훈련 끝나고 파티 갈 사람?”

“나!나!”

헤이니는 그야말로 핵인싸였다.

레알 마드리드, 도르트문트라는 이름값은 부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익숙한 외국계 선수들은 헤이니를 많이 따랐다.

“쟤네들 너무 빠졌네.”

어느덧 팀에서 경력이 가장 오래된 김혁규는 헤이니가 팀 분위기를 헤친다고 생각했다.

김혁규도 노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훈련 기간 중에는 아니었다.

올림픽 대표가 되니까 국가대표라는 욕심이 생겼다.

임단결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다시 잡은 기회인가?

임단결도 팀 분위기가 좀 더 단합이 되고 진지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가 좀 그렇지 않아?”

“너도 그렇게 느꼈어?”

“응. 그런데 순신이 형은 어디 있나?”

이광인이나 오쿠보는 파벌에 별 관심이 없었다.

“광인! 이따가 파티 안 갈래?”

“주중에는 안 놀아.”

이광인과 오쿠보는 헤이니 그룹이 제안한 파티를 거절했다.

“그냥 놀자는 게 아니야. 이게 다 팀워크를 다지자는 거지.”

“응. 네 뜻은 이해해. 난 너처럼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서 조금 더 연습해야 하거든.”

“하긴… 대신 주말에는 같이 가자고!”

“응. 리그 우승 확정되면 신나게 놀자고.”

헤이니는 씨익 웃으며 친구들과 파티를 즐겼다.

“광인아. 훈련 끝나고 좀 더 연습할래?”

이번엔 김혁규가 이광인을 불렀다.

이광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거절했다.

“괜찮아요. 형. 오늘 훈련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올해는 뛰어야 할 경기수도 많잖아.”

“그래서 체력을 최대한 비축해놔야죠. 히힛.”

김혁규는 반박하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연습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그럼 푹 쉬어.”

“네. 형!”

이광인은 오쿠보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파벌 속에서 다들 공통적인 목표가 있었다.

이순신하고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

팀의 핵심 선수였기 때문이다.

“순신아. 밥 먹으러 가자.”

“헤이~ 순신. 이따가 파티 어때? 내가 잘 아는 클럽이 있어.”

“형- 끝나고 운동 좀만 더 하다 가실래요?”

이순신을 두고 파벌들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이순신이 어느 한 곳에 속하는 그 순간이 팀의 컬러와 분위기가 되는 것이었다.

‘팀 분위기가 아주 그냥 개판이네.’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매년 팀은 새로웠다.

‘도대체 한 팀에서 어떻게 10년씩 주장을 했던 거야.’

이순신은 토티처럼 전설로 불리던 선수들이 떠올랐다.

이것이 대표 팀의 주장과 리그 팀의 주장이 가진 무게의 큰 차이였다.

리그 팀은 대표 팀처럼 단기 목적을 위해 뭉친 것이 아니기에 주장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했다.

미성년자도 아니고 성인들이었다.

개인의 자율성과 선수의 인권이 존중해야 했다.

이순신은 다인종, 다국가로 이루어진 팀을 융화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됐다.

직책이 부여됐을 뿐,

직급이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팀이 준 프로,

나아가서는 프로직전의 상태였기에 개인 성향과 욕심이 강해졌다.

‘그냥 다 까버릴까?’

이순신은 가능했다.

카리스마도 있고, 실력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내년에 레알 마드리드로 가면 통하지 않을 것이다.

플레티스 회장이 처음에 이순신을 영입을 주저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주장 놀이에 심취하면 일반 팀원이 됐을 때 박탈감이 올 수 있었다.

팀에서는 주장인데 대표 팀에서는 팀원이 돼야 하는 상황.

대표 팀에서는 주장인데 소속팀에서는 일원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들은 늘 공존했다.

영국 팀이 최고의 스쿼드를 보여주고 망한 이유는 팀에 빛나는 선수들이 많았다.

특히 중원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할 선수들이 싸웠다.

이는 경기력에서 드러났다.

수많은 대회를 나갔지만,

두 명의 캡틴이 같이 뛸 때는 단 하나의 우승 트로피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게임에서는 최고 전력인데…”

당시의 축구게임 팬들에게 영국은 슈퍼스타가 가득한 인기 팀이었다.

현실에서 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울화통이 치미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축구는 절대로 혼자서 할 수 없는 운동이었다.

재능 있는 선수의 역할도 중요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자신의 재능을 빛낼 수 있는 팀이었다.

몇몇 오만한 선수들은 그 재능도 팀이 살려준 건데도 자신이 잘해서인 줄 아는 선수들도 많았다.

단체 경기는 그런 점들이 참 피곤하고 어려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비록 내년에 떠날 사람이지만 이순신의 목표는 유종의 미였다.

이 팀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유로파도 우승컵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개판인 모래알은 그저 바람에 흩날릴 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는 어디론가 향했다.

똑똑똑.

이순신이 감독실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감독님.”

“무슨 일이지?”

이에로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요즘 팀 분위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휴-”

이순신의 말을 듣자 이에로는 자동으로 한숨이 나왔다.

“안 그래도 요즘 몇몇 문제점들이 눈에 보이더군. 난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고.”

“그러셨군요. 그래서 선수단 화합을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합니다.”

이에로는 귀를 쫑긋했다.

“화합이라…일단 말이라도 들어볼까?”

이순신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했다.

이에로는 씨익 웃었다.

“재밌겠네.”

***

꿈FC 연습구장에 선수들이 모였다.

“아. 모처럼 휴일인데 연습이라니…너무 한 거 아니야?”

“곧 리그가 코앞이야. 늦게 들어왔으면 하루라도 손발을 더 맞춰봐야지.”

“너희가 나한테만 맞추면 돼.”

헤이니와 김혁규가 서로 눈을 보며 부라렸다.

“너 조심해라. 그러다 변사체 될 수 있어.”

“축구로는 안 되니까 주먹질이냐? 그런데 내가 주먹질도 너보단 나을 거 같은데?”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감독과 이순신이 등장했다.

“모처럼 휴일인데 모이라고 해서 미안하다. 혹시 불만 있는 사람?”

감독의 말에 외국계 선수들이 손을 들려다가 이순신이 째려보자 내렸다.

“좋아. 불만은 없는 걸로 알고 오늘은 가볍게 놀아보자.”

“뭐하면서요?”

헤이니가 들떴다.

“축구.”

“아-”

이순신의 대답에 그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자. 일단 골대부터 가져오자!”

“이미 골대는 세팅됐는데 무슨 소립니까?”

“오늘 할 축구는 골대가 아주 많이 필요하거든.”

골대를 가져오자고?

선수들은 처음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빨리빨리 움직여!”

영차영차-

코치들의 지휘 아래 선수들은 합심해서 골대를 옮겼다.

“이게 대체 무슨?”

선수들은 어리둥절했다.

경기장 반만 한 크기에 골대 5개가 오각형으로 배치됐다.

“지금부터 7:7 경기를 하겠다.”

“네?”

선수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랐다.

“느슨한 너희들에게 긴장감을 줄 필요가 생겼다.”

긴장감이란 단어를 들은 선수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지금부터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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