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IN&OUT
이에로가 결심을 굳혔다.
“알겠습니다. 당신들의 뜻이 그러하니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라면 무조건 뽑겠소.”
“감사합니다. 다만 구단 시설에도 투자할 금액은 남겨주셔야 합니다!”
“역시 빈틈이 없군요. 임 단장.”
임청수는 선수영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구단설비 투자였다.
홈경기의 이점을 잘 살리고 싶었다.
기존에 쓰던 좁은 라커룸은 원정팀 선수들에게 주고,
공간이 넉넉한 라커룸.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 시설.
선수들의 회복을 도와줄 푹신한 침대.
식단을 책임질 영양사와 스트레칭을 도와줄 물리치료사도 전격 고용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데까지 가봅시다!”
세 사람은 의지를 다졌다.
***
입단 테스트가 시작됐다.
“와…장난 아닌데?”
기존의 꿈FC 선수들은 긴장했다.
팀을 나눠서 청백전을 진행했다.
안타깝게도 4~5부 리그의 선수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3부 리그 이상의 선수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던 중 입단 테스트에서 눈에 띄는 공격수를 발견했다.
“저 선수는 한국인인가?”
“글쎄. 처음 보는 선순데?”
이에로도 그 선수를 주목했다.
“저 선수는 프로 생활을 좀 해본 거 같군. 이전에 어디서 뛰었나?”
“음. 싱가포르 국가대표네요.”
이에로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싱가포르?”
“네. 최근에 귀화했으며, 이전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이에로가 지켜본 선수는 송희윤이었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선수였다.
대한민국에서 볼을 찬 시간보다, 싱가포르에서 볼을 찬 시간이 더 많았다.
그는 한국에서 빛을 보지 못했으나, 축구를 포기할 순 없었다.
동남아 리그의 수준은 낮은 편이었으나, 열정은 K리그 이상이었다.
처음에는 멸시와 차별로 힘들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 없어. 난 축구로 돈 벌어야 한다고. 여기서 꼭 살아남는다!’
송희윤은 이를 악물었다.
뚝심으로 이겨내고 마침내 싱가포르 국가대표가 됐다.
한 나라의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굉장히 영예로운 일이었다.
송희윤은 축구에 진심이었다.
기회를 준 싱가포르란 나라에 상당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열정만큼 인프라와 실력이 따르지 않았다.
싱가포르 1부 리그의 실력은 현실적으로 스페인 4부 리그쯤 됐다.
‘더 높은 리그로 올라가야 해.’
그러던 차에 꿈FC의 이순신을 보게 됐다.
‘대한민국이 올림픽에서 우승했다고? 한국을 떠난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송희윤은 깜짝 놀랐다.
어찌 보면 비슷한 선택.
공통점도 많았다.
어린 나이에 병역의무를 마쳤고,
현재는 포지션도 변경했다.
‘나도 죽을힘을 다해서 열심히 했는데 저 녀석이랑 나랑 왜 이렇게 차이가 나지?’
자신도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백한 차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재능? 운?
중요한 건 인내심이었다.
‘저 녀석은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았구나.’
가정형편이 어려웠기에 하루라도 빨리 프로 무대에 진출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모교 은사가 도움을 줬다.
그의 재능은 공격수로 변경하면서 피어났다.
폭넓은 활동량과 기술로 팀에 능력을 보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했다.
‘한국에서는 공격수로 살아남기 힘들어.’
해외파에게 주어지는 최우선 기회.
자신도 해외파지만, 격이 달랐다.
용의 발톱에 낀 때가 되기보다는 자신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싱가포르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 그가 올림픽에서 이순신을 본 뒤 생각을 바꿨다.
이제는 조국인 싱가포르를 위해서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고 싶었다.
더불어 싱가포르에도 타이틀을 하나 선사하고 싶었다.
무려 한 나라의 국가대표지만 입단 테스트를 보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동료 선수들은 격을 떨어트린다며 비웃었지만,
멸시와 조롱에 무너질 송희윤이 아니었다.
그는 더 강해지고 싶었다.
그 열정은 왕성한 활동량으로 보여줬다.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뛰어갔다.
“기본기도 탄탄하고 무엇보다 활동량이 뛰어나.”
이에로가 구상한 학익진에 매우 걸맞은 선수였다.
공격수가 쉼 없이 움직이면서 상대의 수비 진영을 흔들어주길 바랐다.
이에로는 흡족했다.
“임 단장. 이번 시즌이 끝나고도 꿈FC를 유지할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저 선수는 임대가 아니라 영입을 하는 게 좋겠소.”
이에로는 임청수에게 영입을 요청했다.
성실하고 독기가 있는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무려 3년 계약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수준 높은 축구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정말입니까?”
“그래. 열심히 경험을 쌓아서 이제는 너의 조국 싱가포르 전력에 보탬이 돼라.”
송희윤은 가슴이 뭉클했다.
무엇보다 한때 전설이라 불리던 임청수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잘 해봐라!”
임청수는 송희윤의 어깨를 토닥였다.
테스트로 윙백 2명, 센터백 1명, 수비형 미드필더 1명, 공격수 1명, 윙어 1명. 총 6명을 추가로 선발했다.
모두 임대로 계약을 마쳤다.
그 외 한국 국적을 가진 복수 국적의 유망주들도 있었으나 이에로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팬들은 매우 아쉬웠다.
몇몇 열성 팬은 욕을 했다.
“왜 안 뽑는 거야?”
“영상 보니까 개 쩔던데! 싱가포르에서 뛰는 애보다 훨씬 낫지 않아?”
“꿈FC 취지를 생각해라!”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이에로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선발 철학은 명확했다.
“단순히 대한민국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와 여론의 포장에 속아서 선발하지 않겠다.”
이러한 감독의 철학이 밝혀지자 오히려 한국 팬들의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오죽하면 이래서 외국 감독을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테스트를 본 선수 중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출신도 있었다.
어느덧 30대가 된 잊힌 유망주 ‘석준형’은 고심되는 선수였다.
“키가 크다는 건 장점이란 말이지.”
피지컬은 여전히 우월했다.
연습경기에서 진행된 이순신과의 제공권 싸움에서 철저히 농락당했다.
스피드와 파워가 젊은 시절 같지 않았다.
그는 땅을 치고 아쉬움을 달랬다.
어쩔 수 없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었다.
그날 저녁.
테스트가 종료됐다.
꿈FC 구단 진의 회의가 열렸다.
말도 안 되는 선수가 이적 제의를 했다.
“하- 얘는 또 왜 오는 거랍니까?”
임청수조차도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신자영도 의아했다.
“그렇다고 다른 팀 주기에는 너무 깝고…”
그 시점에서 한 선수가 꿈FC 입단을 타진했다.
오쿠보와 헤이니의 이슈를 뛰어넘었다.
다음 날.
이광인은 꿈FC 사무실을 방문했다.
“광인아. 너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뒤로 오라는 팀 많지 않았냐?”
“네.”
“1부 리그 팀도 있었지?”
“그렇죠.”
19세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젊은 유망주는 올림픽 금메달이란 이력이 추가됐다.
여기에 대한민국 선수들의 발목을 잡는 병역문제도 해결됐다.
다른 나라 1부 리그와 스페인 하부리그에서 이적 제의가 쏟아졌다.
그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이광인이 택한 건 꿈 FC였다.
“설마 너도 이순신 때문이냐?”
“하- 왜 하필 그런 약속을 해서는…”
이광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예의상 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1부 리그 하위 팀으로 가봐야 유로파는 못 나가보잖아요. 발렌시아는…하-”
그는 두 번째 한숨을 내뱉었다.
발렌시아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준 은인 같은 팀이었다.
그런데 그를 기용할 생각은 없었다.
벤치를 지키느니 떠나기로 결심했다.
발렌시아는 올림픽 이후 주가가 올라간 이광인을 쉽게 내어주고 싶진 않았다.
이광인은 계속 이적을 거부했다.
이때 속이 타는 건 오히려 발렌시아였다.
결국, 상호 합의하에 계약은 해지됐다.
“그래도 1부 리그가 나았을 텐데…”
“저도 순신이 형처럼 이곳에서 더욱더 성장하고 싶습니다.”
이광인의 의지는 너무나 확고했다.
임청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여기가 무슨 기회의 땅이냐고…”
“재기 전문팀이라고 불리긴 합니다.”
신자영이 거들었다.
꿈FC 출신 선수들이 잘 될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의 의지를 환경으로 받쳐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겠다.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계약을 하자.”
이적료 0원.
계약 기간은 2년.
연봉은 5억 원 수준이었다.
이순신을 제외한 팀 내 최고의 연봉이었다.
이광인은 며칠 후 꿈FC 선수들과 인사를 나눴다.
“잘 부탁드립니다.”
“광인아. 너도 미쳤냐?”
김혁규는 어이가 없었다.
“순신이 형 곁에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 거 같거든요.”
이광인이 씨익 웃었다.
김혁규나 임단결은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그건 그렇지.”
“막내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순신이 너스레를 떨었다.
“저야 말로요. 장군님.”
***
임청수, 강대범, 신자영, 이에로가 모였다.
이광인을 영입한 꿈 FC는 큰 고민에 빠졌다.
“그야말로 폭풍 영입을 했군요.”
“예전엔 진성이 혼자 고군분투 했는데, 올해는 좀 편하게 가겠는걸요? 껄껄껄.”
강대범이 웃었다.
“오쿠보, 헤이니, 이광인, 그리고 기존의 오진성까지…공격형 미드필더 자원이 넘칩니다…”
“광인이와 오쿠보는 윙어로도 활용할 수 있겠죠.”
임청수가 맞받아쳤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단장님.”
이에로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담겼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내년에 최소 더블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꼭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해주십시오.”
임청수의 뜻은 확고했다.
당초 3~4명 수준으로 영입하고자 했지만,
놓치기 싫은 선수들이 너무 맞은 참사였다.
이번에 신규로 합류한 선수만 무려 10명쯤 됐다.
이에로도 이런 경우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그가 넘어야 할 시련이었다.
“혹시 내보낼 선수는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이적 제안을 받았다던가? 방출을 생각한다던가?”
“방출이요?”
임청수, 강대범, 신자영은 깜짝 놀랐다.
세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굴 내보내는 것이 좋을까?
제일 먼저 임청수가 입을 열었다.
“누구도 내보내지 않습니다.”
임청수의 뜻은 단호했다.
현재 꿈 FC에는 2군까지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선수단 규모는 대략 35명이었다.
이에로의 말은 허를 찔렀다.
“오히려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지 못할 수 있소.”
“아-”
임청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