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16화 (117/161)

116화. 계약 완료

이순신은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전투에서 흥분하면 지는 겁니다.]

[카이저 코치가 만류합니다.]

[허준이 우황청심환을 꺼냅니다.]

이것 역시 플레티스의 시험이었다.

이순신이란 선수가 얼마나 정신력이 강한지 보고 싶었다.

“저희 팀의 낭만을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순신은 일단 웃어넘겼다.

‘제법인데?’

플레티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순신에 대한 호감도가 +1정도 올라갔다.

적어도 협상 테이블을 걷어찰 바보는 아니었다.

이순신은 이제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1000억을 받고 레알 마드리드로 바로 이적할 것인가?

200억을 받고 꿈FC에서 시즌을 치른 후 이적할 것인가?

플레티스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물건은 제값을 치러야 한다.’

당장 가지고 싶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정당한 값을 치르는 건 그의 신념이었다.

다른 팀들은 이순신의 몸값을 깎으려고만 했으나,

레알 마드리드는 충분히 성의를 보였다.

이순신에게 주어진 다른 선택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다만 ‘조건 1’이 너무나 강력했다.

그렇기에 선수가 낭만에 빠져서 내년에 온다고 한들 플레티스와 레일이 손해 볼 건 없었다.

200억 원은 구단 관계자들이 책정한 가치였다.

내년에 이순신이 이적해서 주전으로 자리 잡는다면 200억 원의 몸값은 정말 싼 금액이었다.

그들이 계산해본 결과 유니폼과 광고 수익, 중계권료만 해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다른 팀들은 그만한 계산을 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협상은 레알 마드리드가 한발 앞섰다.

그들은 몇 가지 옵션을 더 제공했다.

플레티스는 거금을 주고서라도 당장이라도 쓰고 싶었고,

경영진은 한 푼이라도 더 깎고 싶은 욕심이 낳은 결과였다.

“고민이 많은 거 같군. 선택의 도움을 줄 옵션을 제시하도록 하지요.”

임대 영입의 세부조항이 공개됐다.

1. 이순신의 연봉은 꿈 FC 측에서 100% 지급한다.

2. 해당 선수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나설 수 없다.

3. 임대 기간 동안 A매치에 차출될 시 레알 마드리드 측의 조건을 따른다.

4. 초상권은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한다.

5. 부상을 당해서 내년 시즌에 합류할 수 없다면 계약은 파기되고, 계약금의 5배를 불어내야 한다.

‘이건…’

신자영은 기겁했다.

누가 봐도 불공정 계약이었다.

“회장님. 이 조건은 저희가 너무 불리한 거 같습니다. 조건을 조율할 수 없을까요?”

“더 좋은 선택지가 있지 않습니까?”

조건1을 두고 한 말이었다.

“윽.”

신자영은 반박할 수 없었다.

이순신이 입을 열었다.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알겠소. 하지만 오래는 줄 수 없소.”

이순신은 눈을 감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선택지는 뻔했다.

누가 봐도 모두가 행복한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냥 엎어버려?’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는 길이었다.

‘본질로 돌아가 보자.’

이순신은 왜 이적을 하려고 하는가 부터 시작됐다.

가장 큰 이유는 엄마였다.

‘엄마는 나를 위해서 많은 희생을 했고, 병까지 얻었어. 이젠 내가 엄마를 지켜줄 차례야.’

일을 하지 않고도 편하게 지내기 위해선 지금보다도 많은 돈이 필요했다.

내년이 아닌 바로 지금 당장!

그렇다면 어쨌든 지금보다 연봉을 많이 주기로 한 곳으로 가는 게 맞았다.

‘꿈 FC, 자영 누나, 엄마, 그리고 나 모두가 행복해지는 건 확실히 1번이다…’

단순히 이기적인 마음을 앞세우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왜 자꾸 꿈FC가 눈에 밟히는 걸까?

‘이곳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임청수는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의 전 재산을 걸었다.

이유는 대한민국 축구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돈을 벌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꿈 FC를 인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직 이에로 감독님한테도 배울 게 더 많아.’

레전드 선수가 육성을 잘하리란 법은 없지만,

적어도 이순신에게 이에로는 최고의 멘토이자 감독이었다.

‘나는 할 만큼 하지 않았나?’

내가 없었다면 꿈FC는 과연 이 자리까지 올라왔을까?

그것은 참으로 거만한 마음이란 생각이 들자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게 결코 아니니까.’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혁규와 같이 함께 오랫동안 뛴 동료들이 없었다면 케미스트리가 전혀 발휘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로를 영입한 사람은 임청수가 아니던가?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실전 감각이었다.

꿈FC는 ‘유로파 리그’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등 많은 경기를 앞뒀다.

여기에 코파 델 레이 등 거의 1부 리그 중위권 팀과 맞먹는 경기 스케줄이었다.

1부 리그의 중위권 팀,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아틀렉티코 마드리드와의 대결을 기다렸다.

즉 실전 감각을 쌓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자꾸 의구심이 들어…’

엄마를 핑계로 사실은 진작부터 이적하고 싶었던 게 아닌지.

충무공이 준 시스템이 없어도 재기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

올림픽에서 열댓 명이 넘는 선수의 병역문제 해결에 기여했으니 할 만큼은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

즉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물질적인 욕심이 생겨나는 거 아닐까?

‘레알에서도 축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들을 안고서 하는 축구가 과연 행복할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었다.

돈으로 시작하고 돈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팬이었다.

‘응원해주는 사람들…’

이순신은 무엇을 위해서 축구를 해왔는가?

돌이켜보면 자신을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왜 자꾸 그때가 생각나지?’

이순신은 성공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버리고 스페인 귀화를 택했던 그 날이 떠올랐다.

그 이후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자신의 미래는 지옥 밑의 지옥으로 추락했다.

‘내가 그때 가장 중요시했던 건…’

마침내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결정했습니다. 회장님.”

“말해보시오.”

플레티스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의 발자취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순신의 결정은 조건 2번이었다.

도리어 놀란 건 플레티스였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요?”

“물론입니다. 회장님의 배려로 전 꿈FC에서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해줄 기회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순신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플레티스가 두 손을 들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다.

축구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순신은 계약서에 사인했다.

내년부터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가 될 예정이었다.

“저희 측 보도 자료는 저희가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맘대로 하시오.”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못 가진 아이처럼 플레티스는 삐쳤다.

다만 유니폼을 입고,

포토타임을 가질 때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

1년 후에는 어쨌든 자기 사람이 될 테니까.

***

레알 마드리드 홈페이지에 오피셜이 떴다.

- 이순신 내년 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 합류.-

- 한국인 최초로 레알 마드리드 입단. -

새벽에 뜬 기사.

축구팬들은 합성이겠거니 싶었다.

“야 일어나봐. 대박 사건 터졌어!”

이순신의 이적이 많은 축구팬들의 아침참을 깨웠다.

인터넷 댓글 창도 당연히 난리가 났다.

ㄴ 미친 거 아니야? 이거 꿈 아니지?

ㄴ 이순신이 해냈다.

ㄴ 예전에 바르셀로나에서 방출당한 그 찐따 같은 이순신 맞아?

ㄴ 왜 내 가슴이 웅장해지냐!

ㄴ 수비수가 빅 클럽 진출한 건 처음인데 와- 응원한다.

무려 스포츠 뉴스에도 나왔다.

“스페인 3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순신 선수가…”

뮤튜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순신. 당신이 모르는 30tmi-

-이순신이 레알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 관심이 1000억을 거부한 이야기로 옮겨졌다.

그 과정에서 의리와 효.

두 가지를 챙긴 이순신은 축구계의 로맨티시스트가 됐다.

***

꿈FC 훈련장.

이순신은 계속 동료들에게 욕을 먹었다.

“멍청이.”

“머저리.”

“1000억은 거부하기엔 너무나 큰돈 아니냐?”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들 좋아하고 있었다.

이순신 없이 큰 경기들을 치르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좋으면서 싫은 척하는 건 선수들뿐만 아니었다.

“순신아. 2000억을 벌게 해준다면서 고작 200억? 그것도 자영이 수수료 떼고, 네 연봉 떼면 남는 게 없다!”

“죄송합니다.”

옆에 있던 신자영이 대신 사과했다.

“자영 씨. 인생 한 방이야. 그치?”

신자영은 이번 이적으로 20억 원을 수당으로 받게 됐다.

그중에서 10억을 구단에 기부했다.

“단장님. 왜 우리 에이전트 기를 죽이고 그래요?”

이순신이 달려왔다.

“순신아. 도와줘!”

신자영이 앙탈을 부렸다.

“그래도 감독님. 자영이 누나가 구단에 기부도 하고, 계약 옵션은 잘 챙겼잖아요!”

신자영은 계약할 때 한 가지 옵션을 추가했다.

지금 조건에서 계약 기간은 2년이었다.

이때 레알 마드리드가 재계약을 하거나 선수를 이적시킬 때 20%의 금액이 꿈FC에 지급되기로 했다.

플레티스는 의외로 쉽게 수락했다.

“어머니는 아쉬워하지 않으셔?”

임청수가 물었다.

“전혀요.”

엄마는 오히려 아들이 1000억을 거부한 걸 좋아했다.

“의왼데?”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아시는 분이니까요.”

이순신이 누구보다 축구를 좋아하는 걸 엄마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 때문에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면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마음이 불편한 것보단 몸이 불편한 게 나았다.

“고맙다. 순신아.”

임청수는 이순신이 대견했다.

“고마울 게 뭐 있어요. 솔직히 3000억을 줬으면 선택했을 텐데 저희가 함께 한 시간과 이번 시즌에 만들어갈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지 플레티스 회장 덕분에 알게 된 걸요.”

선수들은 역시 이순신답다고 생각했다.

당장 K리그 계약서를 걷어차고 제일 먼저 꿈FC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게 이순신이었다.

그가 손익만 따지는 사람이었다면, 동료들은 이순신을 믿고 따라오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많은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 선수 보강이 절실했다.

다행히 작년보다 양질의 선수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때 의외의 선수가 꿈FC에 합류했다.

일본의 유망주.

오쿠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