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13화 (114/161)

113화. 운수 좋은 날

도쿄 국립 경기장에서 올림픽 폐회식이 열렸다.

14일간 펼쳐진 순간들이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이 순간을 즐길 자격이 충분했다.

올림픽기가 내려왔다.

“하계 올림픽 폐회를 선언합니다.”

위원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4년 뒤여 펼쳐질 차기 올림픽 개최 장소도 소개됐다.

뒤이어 축하 공연이 펼쳐졌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도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음. 언제 끝나냐?”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순신이는 괜찮을까?”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 중 이순신만이 없었다.

이순신은 현재 한국에 간 상태였다.

결승전이 끝나고 3일 만에 이순신은 깨어났다.

“아- 잘 잤다.”

이순신은 상당히 개운했다.

“얼마만의 푹 잔 꿀잠인가?”

손민흥은 시즌 준비를 위해서 먼저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방에는 혼자 있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핸드폰을 켜는 것이었다.

수많은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떴다.

“난리 났네. 난리 났어.”

모든 메시지 중에서 이순신이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엄마의 메시지였다.

-우리 아들 파이팅.-

준결승전을 앞두고 온 짧은 메시지가 전부였다.

그다음으로 확인한 건 신자영의 메시지였다.

“우리 에이전트님. 일 잘하고 계신가 볼까?”

상당히 많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순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서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뚜르르-

신호음이 이어졌다.

“제발 좀 받아라.”

이순신은 점점 불안해지고, 초조해졌다.

“여보세요?”

“누나!”

“어. 순신아…이제 깨어난 거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순신은 신자영이 전화를 받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이순신은 혼자서 비행기를 탔다.

인천에서 도쿄까지는 2시간 반 정도 걸렸다.

이순신은 창문을 바라봤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압이 어쩌고, 상공이 어쩌고 하는 건 눈에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저 혹시 이순신 선수?”

이순신이 고개를 돌렸다.

“맞네! 혹시 사인 좀 해주실 수 있나요?”

“…”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사인이나 해주고 앉아있고 싶지 않았다.

“여기요.”

“감…감사합니다. 혹시 사진도 같이 찍어도 되나요?”

“죄송합니다.”

이순신은 사진 요청은 거절했다.

사인에는 감정을 담을 수 없지만, 사진에는 아무래도 감정이 실리기 때문이었다.

지금 기분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순신은 차라리 눈을 감았다.

‘자고 있다면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겠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잠시 후 인천 공항에 도착합니다.”

뜬 눈으로 빛을 차단당한 채 1시간이나 있다는 건 꽤 고욕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순신은 모자를 푹 눌러썼다.

기자들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괜한 관심으로 목적지에 늦어지는 것이 싫었다.

“순신아. 여기야.”

신자영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피곤하지? 밥은 먹었어?”

“생각 없어요. 일단 빨리 병원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이순신의 초조함을 본 신자영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래. 알았어.”

이순신은 신자영을 따라서 주차장으로 갔다.

“목적지를 설정해주세요.”

신자영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목적지로 향했다.

이순신은 턱을 괴고 창문만 바라봤다.

신자영은 괜히 눈치가 보였다.

음악을 틀까 했지만, 이순신의 표정이 너무 무서웠기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 누나. 음악 틀고 싶으면 트셔도 돼요. 괜히 나 때문에.”

“아냐. 순신아. 나 음악 안 좋아해. 하하!”

신자영이 어색하게 분위기를 받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아무 말이 없었다.

4시간 뒤.

그들은 수원에 도착했다.

수원에는 큰 병원이 무려 3개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휴.”

차에서 내린 이순신은 긴장됐다.

“순신아 괜찮아. 별일 없어.”

신자영이 이순신의 손을 잡고 안심시켰다.

“고마워요…”

이순신은 지그시 신자영을 바라봤다.

그녀의 말은 위로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은 잠시 후 병실에 도착했다.

6인실.

그곳에 이순신의 엄마가 있었다.

“엄마. 저 왔어요.”

“순신이 왔니?”

이순신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가끔씩 영상통화는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영상통화를 거부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을 것이다.

“밥은 드셨어요?”

“응. 잘 먹고 있어. 너는?”

“저야 늘 잘 먹고 있죠.”

“어머. 이게 누구야? 늘 말하던 그 축구 선수 아들인가 보네?”

엄마의 병실 친구가 호들갑을 떨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예의도 바르네. 옆에 있는 처자는 애인인가? 낯이 익은데.”

“아…”

이순신은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살짝 난감했다.

“직장동료입니다.”

신자영이 빠르게 선을 그었다.

“아하. 그렇구만. 난 산책 다녀올 테니 편하게 이야기들 나눠!”

아줌마는 손을 흔들더니 밖으로 나갔다.

“여기 안 불편하세요? 1인실로 가시지.”

“거긴 심심하잖아. 그냥 여기가 좋아. 불편하기는 해도 심심하진 않으니까.”

‘나란 놈은 도대체…’

이순신은 본의 아니게 엄마를 외롭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 때문에 경력단절이 안 됐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나갔을 것이다.

이제야 효도를 좀 해볼까 했는데 유방암이었다.

건강검진을 통해서 발견했다.

다행히 2기였다.

“엄마. 그런데 왜 숨기셨어요. 진작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너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엄마는 다 그래. 그래도 네가 보내준 돈 덕분에 치료하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어. 그걸로 족하다.”

“하-”

이순신은 엄마의 말을 들으니 자신이 아직도 어린애란 생각이 들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포근해지는 말투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자영 씨가 많이 도와줬어.”

이순신이 신자영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뭘. 당연히 에이전트의 일이기도 하니까.”

“누나도 바쁠 텐데.”

“말했잖아. 에이전트의 일이라고~”

신자영은 쑥스러운지 굳이 에이전트를 두 번이나 강조했다.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몸보신 잘하셔야죠!”

“딱히 먹고 싶은 거 없는데. 그냥 네 얼굴만 봐도 좋구나.”

엄마는 웃었다.

그 미소가 이순신의 심금을 울렸다.

그동안과는 조금 다르게 살 필요성을 느꼈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늦은 밤.

이순신과 신자영은 벤치에 앉았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이순신은 말없이 외투를 건네줬다.

“고마워. 순신아.”

“아녜요. 제가 더 고마워요. 저 없을 때 누나 아니었으면 엄마 상태가 더 나빠졌을 게 뻔하니…”

신자영이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이순신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 거야.’

신자영은 이순신이 측은해졌다.

아버지가 없다고 들었다.

만약 엄마가 돌아가셨다면 이순신은 혼자가 되는 것이었다.

[허준이 원기 회복에 좋은 한약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이 옆을 쳐다봤다.

콜록거리며 허준이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무언가 결심한 듯했다.

“누나. 저 내년에 꿈FC에서 못 뛸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이적이라니?”

신자영은 깜짝 놀랐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이순신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돈 때문에요.”

“돈?”

신자영은 깜짝 놀랐다.

이순신이 돈 때문에 이적하겠다는 건 의외였다.

그동안 20억 많게는 100억짜리 오퍼가 있었다.

이순신은 그 모든 걸 다 거절했었다.

“먹고 살만큼은 충분해요. 전 여기서 뛰는 게 제일 마음이 편해요.”

이렇게 말했던 이순신이 이적을 결심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엄마 때문이니?”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돈을 좀 더 많이 벌어야겠어요. 그래야 엄마를 좀 더 편하게 살게 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

“…”

신자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순신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누나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저도 홧김에 선택한 거 아니에요. 어차피 한 차원 더 높은 곳에서 축구를 하는 게 저나, 대표 팀을 위해서 좋기도 할 거 같고요.”

[충무공이 씁쓸해합니다.]

그도 이순신이 축구를 하면서 행복하길 바랐다.

차근차근 그 행복을 찾아가며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그의 낙이었다.

“동료들 대신에 가족을 택한 거구나.”

“…”

이번엔 이순신이 말이 없었다.

“순신아. 난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존중할게. 다만 후회는 없었으면 좋겠어.”

“어떻게 후회가 없겠어요. 그냥 내가 선택한 길에 최선을 다할 뿐인 거죠.”

“으이그. 이거 은근히 애 늙은이라니깐. 정말 23살 맞아? 군대를 일찍 갔다 와서 철이 빨리 든 건가?”

“아- 애 취급하지 말라고요.”

신자영이 이순신의 볼을 꼬집었다.

이순신은 부끄러운지 그녀의 손을 툭 치웠다.

“알았어. 순신아. 내가 좋은 팀으로 알아볼게.”

신자영도 결심은 굳힌 듯했다.

이순신이 구단 측의 배려로 특별 휴가를 받았다.

한국에 있는 동안 엄마를 간호했다.

매일 맛있는 것을 사다주고, 말동무가 되어줬다.

그동안 서먹했던 관계가 서서히 녹아내렸다.

신자영은 이순신의 새로운 팀을 위해 여러 곳에 문의하며 알아봤다.

사실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현재 이순신 주가는 최고였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차기 대한민국 국가대표 발탁이 유력했으며, 스페인에서 인지도가 꽤 높았다. 젊은 나이, 뛰어난 피지컬, 한국 선수들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군 문제도 진작 해결했다.

유일한 단점은 현재 이순신의 리그 성적뿐이었다.

수비수임에도 득점왕을 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지만, 리그의 수준이 낮았다.

객관성이 다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10억 정도면 어떻소?”

“연봉 20억 정도면 괜찮겠소?”

“우린 많은 돈을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선수에게도 1부 리그에서 뛸 수 있는 영광을 드리죠.”

신자영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팀에서 엄청난 제안을 해왔다.

“정말입니까?”

협상 테이블에 앉은 구단의 관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자영은 다음날 이순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누나? 일은 잘되고 있어요?”

“응. 예상보다 빨리 스페인으로 와야겠어.”

“왜요?”

“당연히 계약 때문이지. 이쪽 구단에서 너에게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차이가 너무 커서…”

“거기가 어딘데요?”

“레알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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