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최초의 금메달
관중들이 벌떡 일어났다.
“손민흥 선수가 운동장에 들어옵니다!”
해설자가 흥분했다.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손민흥! 손민흥!”
관중들이 월드클래스의 이름을 외쳤다.
출전 여부 자체가 불투명했었기 때문이었다.
“형. 어서 와요!”
이순신과 손민흥이 손뼉을 마주쳤다.
“잘했다. 순신아.”
“완장. 형이 끼셔야죠.”
이순신이 팔에 있는 주장 완장을 벗어주려고 했다.
“아니야. 네가 차고 있어. 난 오늘 조연으로만 활약할 거야.”
손민흥이 극구 사양했다.
이순신도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손민흥이 활짝 웃었다.
전광판을 바라봤다.
아직 경기 시간은 60분이나 넘게 남았다.
‘지지 않을 거 같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결코, 자만심이 아니었다.
확신 그 자체였다.
“민흥이 형이다!”
“형! 괜찮아요?”
“그래. 마지막 경기에 같이 뛸 수 있어서 영광이다.”
“무슨 소리예요. 저희야말로 영광이죠.”
손민흥이 일본 진영을 향해 웃었다.
일본팀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와일드카드로 차출되었지만,
손민흥만큼의 파괴력을 가진 선수는 없었다.
‘비록 정상컨디션이 아니라고 해도 절대로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감기에 걸렸었다고 하는데 옮는 거 아니겠지?’
일본 선수들은 머릿속에는 다양하고 쓸모없는 생각들이 맴돌았다.
일본팀은 공격을 재개했다.
아기자기한 패스 후 오쿠보가 중거리 슛을 날렸다.
“주우현 선수 가볍게 잡아냅니다!”
‘코스, 위력, 타이밍 나쁘지 않았어.’
이순신은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욱일기를 흔드는 관중이 보였다.
‘계속 저 지랄이면 골은 어림도 없지.’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순신아. 받아!”
주우현이 이순신에게 공을 굴려줬다.
공을 잡은 이순신은 일본 진영을 보았다.
‘뭐야? 리턴이 늦는데?’
일본 선수들이 의욕을 잃었는지 어슬렁거리며 진영으로 돌아갔다.
반면, 대한민국의 공격수들은 공을 달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럼 드려야지!”
이순신이 강력하게 롱 볼을 찼다.
공은 중앙부근에 있는 이광인을 지나서 멀리 훨훨 날아갔다.
장승빈과 김혁규 바로 아래에 손민흥이 서 있었다.
“어?”
손민흥도 당황한 눈치였다.
툭!
“손민흥 선수. 가슴으로 트래핑.”
손민흥이 공을 받아낸 후 공이 떨어지자 몸을 틀었다.
뻐엉!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손민흥이 오른발로 슛을 날렸다.
발등에 제대로 걸렸다!
일본 골키퍼는 당황스러웠다.
엄청난 포물선을 그리며 공이 날아왔다.
‘못 막을 공은 아니야!’
일본 골키퍼가 손을 뻗으며, 위로 점프를 뛰었다.
마치 공이 손을 뚫고 지나간 듯했다.
재빨리 뛰었지만, 오히려 독이 됐다.
회전수는 많았지만, 생각보다 공이 느렸다.
손민흥이 들어온 지 39초 만에 골을 넣었다!
“세상에. 들어오자마자 대한민국이 4번째 골을 넣었습니다!”
“와!”
대한민국 선수들이 손민흥에게 달려들었다.
“형! 너무 멋있어요!”
반면, 일본 관중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 미친놈들아! 이러려고 결승전에 올라왔냐?”
“감기 옮을까 봐 공을 피했냐?”
“4:0이 뭐냐!”
“경기 끝나면 다들 할복해!”
홈에서. 그것도 가위. 바위. 보도 져서는 안 될 라이벌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심지어 골도 전부 다 멋있게 들어갔기에 더더욱 울화통이 터졌다.
“스코어는 4:0으로 대한민국이 앞서갑니다.”
오쿠보는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컨디션도 좋았다.
실전 감각에도 문제가 없었다.
멕시코를 잡고 선수단 분위기도 좋았다.
‘도무지 뭐가 문제인 거야!’
경기장 밖에서 문제가 있다는 걸 알 길이 전혀 없었다.
정확히 5분 뒤.
대한민국의 5번째 골이 터졌다.
측면 돌파한 임단결을 순식간에 3명의 수비가 에워쌌다.
임단결은 본능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간만에 잠자고 있던 공격 본능이 발동했다.
수비수의 다리 사이에 공을 찔러 넣고서는 측면을 완전히 박살 냈다.
“임단결 선수! 2명을 돌파하고 그대로 중앙을 향해 전진합니다.”
수비수 하나가 재빨리 임단결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임단결의 빠른 스피드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 일본 수비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만 고꾸라집니다!”
임단결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중앙을 향해 돌파했다.
그의 앞에는 일본 수비수가 버티고 있었다.
주변에서 장승빈과 손민흥이 몰려왔다.
“임단결 선수 손민흥 선수에게 패스합니다!”
이번엔 순식간에 손민흥에게 3명의 선수가 달라붙었다.
“손민흥 선수. 슈팅각도가 전혀 안 보입니다.”
손민흥은 그대로 뒤꿈치 패스를 했다.
“공이 빈 공간으로 향하는데요. 누가 공을 잡을까요?”
공을 잡은 선수는 다름 아닌 임단결이었다.
아까 전에 손민흥에게 패스를 주고, 중앙으로 계속 달렸다.
“손민흥과 임단결의 2:1 패스!”
“임단결 공을 잡았습니다!”
임단결은 그대로 골문 구석으로 공을 때려 넣었다.
“임단결 선수 골!”
“골키퍼가 움직일 수도 없는 강력한 슈팅이었습니다!”
임단결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때는 촉망받던 유망주.
지금은 스페인 4부리그 선수였다.
모두가 그에게 축구 선수로서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임단결이 방금 넣은 골은 그간의 서러움을 한 번에 날려주는 활약이었다.
“단결!”
이순신이 달려와서 임단결을 안아 줬다.
“이건 무효다! 다시 해야 한다!”
일본 팬들은 급기야 현실을 부정했다.
국제대회에서 5:0으로 지고 있는 건 일본축구의 역사에서 흔치 않았다.
더군다나 대한민국과의 대결에서 5:0은 더더욱 말이 안 됐다.
“아. 손민흥 선수가 10분 만에 교체됩니다.”
10분 동안 1골 1도움을 기록한 손민흥은 박수를 받으며 벤치로 돌아갔다.
안태리가 물었다.
“결승전 무대를 밟아본 소감이 어때?”
“고맙습니다. 감독님. 덕분에 한을 풀었습니다.”
그토록 올림픽에 나오고 싶었던 손민흥이었다.
소속팀이 보내주지 않아서 못 나왔다.
선배들이 메달 따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8강에서 약체팀을 만나서 좋아했다.
방심으로 인한 좌절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던 그였다.
심지어 이번 대회에서는 주요한 고비 때마다 출전을 하지 못해서 팀의 에이스라 불리는 게 너무 미안했다.
다행히 결승전에서 무임승차가 아닌 짧지만 굵은 활약을 했기에 한결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삐이이익-
“대한민국이 5:0으로 앞선 채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안태리는 별도의 작전을 지시하지 않았다.
“너희에게 후반전 작전은 딱히 지시할 건 없다. 즐기고 와라. 다만 명심할 건 상대 팀에 대한 예의를 다해라. 설렁설렁하면 바로 빼버린다.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게 너희를 응원하는 팬들을 위한 길이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아직 골을 넣지 못한 장승빈과, 정대건은 꼭 골을 넣으리라고 다짐했다.
“단결이도 넣었는데 나도 한 골 정도는 넣어야지!”
이기지도 공격형 윙백답게 골을 넣겠다는 의지가 강렬했다.
한편, 일본팀 라커룸은 말이 없었다.
쉬는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감독님. 저희 어떡하죠?”
“…”
일본팀 감독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급기야 한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저 후반전에 빼주시면 안 될까요? 더는 못 뛰겠습니다.”
그는 더 이상 망신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국가대표로써 할 소리인가?”
급기야 오쿠보가 화를 냈다.
“어린 녀석이!”
“축구는 나이로 하는 게 아니잖아!”
오쿠보는 화를 냈다.
어릴 때부터 월반을 해왔기에 형들이 무섭지 않았다.
외국에서는 조금만 틈을 보이면 끝이었다.
“모두 조용히 해라.”
침묵을 지키던 감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선수들이 감독의 입을 주목했다.
“후반전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뛰어라. 반칙으로 상대편을 괴롭히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정정당당히 경기에 임해라.”
“고작 그딴 게 작전입니까?”
“그것이 예의다. 나의 작전은…나의 올림픽은 이미 실패했다. 너희들과 국민들의 얼굴을 볼 낯이 없다. 미안하다!”
급기야 감독은 선수들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5:0 이란 스코어.
대한민국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오쿠보와 선수들은 허탈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했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이기지의 어시스트를 받은 장승빈이 골을 넣었다.
10분 후에는 장승빈의 어시스트를 받은 정대건이 헤딩슛을 넣었다.
“7:0…이건 아무래도 말이 안 됩니다. 대한민국 선수들 끝나고 도핑 검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일한 일본의 희망은 단 하나뿐, 몰수패였다.
10분 뒤,
일본팀의 경기력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오쿠보 선수의 슛!”
“아쉽게 빗나갑니다.”
말 그대로 진짜 아쉬웠다.
그것이 일본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하이라이트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욱일기를 들고 경기를 응원하던 일본 관중들이 욱일기를 찢고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다 때려치워!”
“오늘 일본은 죽었다.”
[욱일기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힘내라. 일본!”
“포기하지 마!”
오히려 남아있는 팬들은 큰 점수 차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일본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급기야 한국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돌았다.
“동정 금물!”
이순신이 뒤에서 무섭게 노려봤다.
이순신이 흐트러질 뻔한 팀 분위기를 다잡고, 마침내 후반 25분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공을 잡은 이순신. 달립니다!”
“마땅히 골을 줄 선수가 없나요?”
“하프라인을 넘었습니다.”
“전방에는 수비가 셋이나 있는데…”
“이마저도 제낍니다. 마지막 골키퍼까지 제칩니다!”
무려 80미터 드리블을 한 것도 모자라서 골키퍼까지 제치고 슛을 성공시켰다.
“이순신 선수가 해트트릭을 했습니다.”
“이건 마치 손민흥 선수의 푸스카스 골을 재연했습니다.”
손민흥도 벤치에서 그저 헛웃음을 지었다.
“쟤는 진짜 괴물이다…”
삐이이익-
잠시 후.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그…금메달이다!”
이순신과 선수들은 팔을 번쩍 들고 좋아했다.
벤치에 있는 선수들도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이 새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해설자도 감격에 겨워서 급기야 눈물을 흘렸다.
[충무공이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카이저 코치가 대견스러워합니다.]
[허준이 울음을 꾹 참습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이순신은 노력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이순신은 길고 긴 꿈을 꿨다.
그리고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운수 좋은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