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11화 (112/161)

111화. 후지산 대폭발

일본팀이 스로인을 준비했다.

이광인은 수비라인까지 내려왔다.

“형. 미안해요.”

이순신에게 사과했다.

자신의 자만심으로 빚어낸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광인아. 일본팀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걸? 그래도 좀 더 자신감 있게 플레이해. ”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오히려 격려했다.

이광인을 감싸던 위축감이 단숨에 사라졌다.

“알겠어요!”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스위치 온.

‘막내 형 모드’로 변한 이광인의 눈빛이 번뜩였다.

일본의 미드필더가 공을 들고 활처럼 몸을 뒤로 젖혔다.

“일본팀의 스로인.”

스로인은 꽤 멀리 날아갔다.

공을 잡은 일본 공격수는 힐끗 골문을 바라봤다.

‘어차피 여기서 드리블을 해봤자 이순신이 달려들게 뻔해. 차라리…’

공격수는 몸을 틀어서 터닝슛을 시도했다.

“그대로 슛!”

꽤 날카로운 슈팅이 수비진을 지나서 주우현에게 향했다.

‘뭐지?’

주우현이 못 막을 슛은 아니었지만,

느낌이 너무 달랐다.

위화감이 들었다.

“주우현 선수. 가볍게 공을 잡아냈습니다.”

일본 공격수는 씨익 웃더니 진영으로 복귀했다.

“순신아. 쟤네들 왜 생각보다 잘하냐?”

“큰 그림을 그린 거 같아요.”

“큰 그림?”

주우현은 이순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본 감독은 벤치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상당히 음흉한 미소였다.

‘도박사들의 분석? 대진 운? 팬들의 비난? 아무래도 좋아.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올림픽 우승을 준비했으니까.’

기존의 일본팀은 사무라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이번 감독이 이끄는 일본팀은 사무라이가 아닌 ‘닌자’였다.

23세 아시안 컵, 평가전에서 그들은 전력을 최대한 숨겼다.

그러면서 상대 팀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고 분석했다.

“이게 축구냐?”

“이따위로 할 거면 때려 쳐!”

그 과정에서 얻는 비난은 충분히 감수했다.

선수단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일본팀 감독은 정신력을 강조했다.

“현재의 비난을 참지 못하면, 승리를 얻을 수 없다. 과정이 힘들고 고될수록, 결과는 달콤하다.”

적당히 못 하는 척하면서 상대의 방심을 유도했다.

특히 온두라스전은 그에게 일생일대의 역작이었다.

승부차기를 흔히 운이라고 말한다.

‘만약 그 운도 지배할 수 있다면?’

선수들은 이 계획을 들었을 때 반발이 심했다.

“그러다 지기라도 하면 모든 걸 잃습니다!”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일본 감독은 단호했다.

“책임은 내가 진다!”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질 거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오쿠보는 답답했다.

스페인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온두라스에서 한 명이 퇴장당할 때는 미치도록 골을 넣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야만 했다.

재밌는 건 감독의 의도대로 온두라스를 승부차기로 이기고 나니까 묘한 신뢰감도 생겼다.

감독의 한쪽 입꼬리는 올라갔다.

‘거 봐. 내가 하란 대로 하니까 되잖아. 크크크.’

선수들은 감독의 운용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

마치 정치인처럼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게 바로 일본 감독이었다.

“그동안 믿고 따라와 줘서 고맙다. 멕시코전에서는 너희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라.”

파앗!

일본팀은 옭아매던 쇠사슬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핸디캡이 없는 일본은 전혀 다른 팀이었다.

일본 감독이 여기서 핸디캡을 해제한 이유는 하나였다.

상대방에게 정보의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다.

예선전과 8강에서 빌빌대던 팀이 갑자기 4강에서?

상대방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라질이든, 영국이든, 스페인이든 어디든 상관없어. 어차피 우리 일본을 얕보고 있을 테니.’

그런데 한국이 결승에 올라왔다.

일본 감독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계획엔 변함이 없다.’

오히려 복수 플롯이 떠올랐다.

23세 이하 대회에서 당한 패배를 갚아줌으로써 압도적인 실력 차로 절망에 빠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였을까?

상대방이 방심하길 바랐지만, 도리어 자신이 방심했다.

세계 강호들을 위해 준비한 계획에 꿩 대신 닭이 걸려들자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골! 골입니다! 전반 10분 만에 대한민국에서 이광인 선수의 멋진 선취골이 나왔습니다.”

일본 감독은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뭐…뭐야?’

“리플레이로 봐도 너무나 아름다운 골입니다!”

전광판에는 이광인의 골 장면이 다시 나왔다.

이광인이 폭풍 같은 드리블로 상대편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들어왔다.

하지만 두 명의 수비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간격을 유지하면서 이광인을 포위했다.

이광인을 도와줄 선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직접 해결하는 수밖에.’

상대 수비수가 공을 커트하려고 다리를 뻗었다.

이광인은 그사이를 단숨에 빠져나갔다.

“여기서 두 명을 제친 이광인 선수의 플레이가 예술이었어요.”

골키퍼가 슈팅 각도를 좁히려고 앞으로 나왔다.

“이광인! 골키퍼를 제칩니다!”

골키퍼가 손을 뻗어서 막으려고 했다.

이광인은 공을 살짝 띄워서 피했다.

상대편 선수들이 각각 페널티 마크 근처와 골대 앞에 서 있었다.

“아- 수비수 뒤에 김혁규 선수가 있긴 하지만, 이건 100% 잘려요.”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보는 아나운서도 도무지 슈팅각도가 보이지 않았다.

이광인이 제친 선수까지 합류해서 일본팀은 삼각형으로 포위했다.

툭!

그 순간이었다.

이광인은 뒤꿈치로 공을 때렸다.

골대 근처에 있던 선수가 재빨리 다리를 뻗었지만 조금 짧았다.

뒤늦게 합류한 수비수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공이 지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떼구르르 구른 공은 그대로 우측 골문 하단에 꽂혔다.

“막내 형. 최고다!”

“역시 이광인!”

“발렌시아 보고 있냐?”

소수의 대한민국 관중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일본 감독은 오쿠보에게 지시했다.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며 말려들지 말란 제스쳐를 보냈다.

이광인이 넣은 선취골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충격적인 골이었다.

경기장에서 단 한 사람.

침착함을 유지한 사람이 있었다.

이순신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일 텐데 놀라면 곤란하지.’

이순신은 자신이 없었다.

절대 질 수 없다는 자신!

둥둥둥.

저 멀리서 일본 응원단의 북소리가 들렸다.

파란 파도 같은 일본 응원단 사이에 빨간 깃발이 휘날렸다.

욱일기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경기에서 이순신은 이 효과를 제대로 보았다.

[충무공이 욱일기를 보고 분노합니다.]

덕분에 대한민국 선수들의 능력치가 상승했다.

이광인이 멋진 골을 넣을 수 있었던 비결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무식한 놈들 덕분에 우리는 많은 전리품을 챙겨가겠어!’

[세컨드 윈드 더블이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자신이 낼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거북선 스킬을 공유합니다.]

일본 선수들이 경기가 안 풀리면 거친 플레이를 할 것을 대비했다.

그런 점에서 고의적인 태클을 반사 시키는 거북선이 최고였다.

“이제 축제를 즐기자!”

이순신의 승리 선언!

이것은 대한민국의 사기를 북돋웠다.

“순신이가 너무 흥분한 거 같은데요?”

코칭 스태프가 우려를 표했다.

“놔둬. 이 흐름이라면 우리도 전혀 질 거 같지 않아. 오히려 지는 게 이상할 정도야.”

안태리는 팔짱을 낀 채 웃으며 지지를 보냈다.

전반 16분.

대한민국의 추가 골이 터졌다.

“이광인 선수의 코너킥!”

이광인이 올린 코너킥은 페널티 에어리어를 지나갔다.

카메라 밖에서 한 선수가 달려오고 있었다.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지자포가 발동합니다.]

이순신은 공을 향해 공중에서 점프했다.

그리고서는 발차기를 하듯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부우우웅.

페널티 에어리어는 8명의 일본팀 선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귓가에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맞으면 죽는다.’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도깨비 슛이 발동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 무서울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공포는 트라우마를 심어줄 수 있었다.

일본 선수들은 그저 시간이 멈춘 채 공이 지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

일본 골키퍼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공이 날아가는 방향과 골키퍼가 몸을 날린 방향은 모두 왼쪽이었다.

슈웅!

강력한 슈팅은 골키퍼의 팔과 머리 사이를 지나 그물을 뚫었다!

심지어 뒤에 있는 일본 회사의 전광판까지 쓰러트렸다.

“우와아아!”

이순신 주변으로 선수들이 몰려왔다.

“이순신 선수. 엄청난 슛입니다. 2:0으로 대한민국이 앞서갑니다. 금메달이…금메달이 눈앞에 보입니다!”

아나운서는 벌써부터 설레발을 쳤다.

고작 전반 16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여기서 끝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 충무공의 분노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기껏 임진왜란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아놨더니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뺏긴 것을 본 그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정상적인 절차였다면 그 역시 그러려니 했을 텐데 그 과정이 매우 비겁했기에 한이 됐다.

그렇다고 총칼을 들고 싸우는 피의 전쟁을 그는 원하지 않았다.

인류가 잘 만든 발명품 중 하나인 스포츠를 통해서 일본을 혼쭐내주고 싶었다.

그 화신으로 선택된 자가 바로 지금의 ‘이순신’이었다.

전반 22분 후.

대한민국의 세 번째 골이 작렬했다!

임단결이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렸다.

브라질의 다니엘이 보여준 크로스를 보는 거 같았다.

잘 날아간 공은 정대건이 헤딩으로 방향을 바꿨다.

공은 중앙에 있던 장승빈에게 날아갔다.

장승빈이 상대편 수비와 위치 선정에서 이겨내고,

달려오는 김혁규에게 헤딩으로 패스했다.

김혁규는 가슴으로 트래핑하려고 했다.

“혁규! 그냥 때려!”

등 뒤에서 이순신이 소리쳤다.

김혁규는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몸을 틀면서 발리슛을 날렸다.

“어?”

일본 선수들 누구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아까 몸을 날리던 일본팀 골키퍼조차도 이번엔 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골입니다! 대한민국이 3:0으로 앞서갑니다!”

“일본이 멕시코를 3:0으로 이겼을 때만 하더라도 뭔가 전력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우연이었나 봅니다!”

“한국 팀 오늘 최고의 컨디션입니다!”

“순신아! 고마워!”

“네가 잘 때린 거지!”

김혁규는 이순신에게 달려가서 포옹했다.

“괜찮습니다. 축구공은 둥급니다. 아직 역전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일본 중계 진은 애써 덤덤하게 위로했다.

그 순간 대한민국에서 선수교체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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