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올림픽의 불문율
- 대한민국 올림픽 결승진출! 은메달 확보!
대한민국 언론은 난리가 났다.
정확히 말하면 역대 올림픽 중 최대의 이변이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흑흑.”
동탄에 사는 김성범 할아버지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큭.
그 순간 그에게 심장마비가 찾아왔다.
하지만 웃으면서 승천했다.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했으니 그는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재밌는 건 일본의 반응이었다.
“결승전 상대가 대한민국이라고?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분명 뇌물을 먹였을 거야.”
“우리는 왜 이순신 같은 선수가 없는가?”
“손민흥이 없는데 브라질을 이겼다니…무서운 놈들.”
“결승전은 진검 승부. 결국, 웃는 건 우리 일본이다!”
“일어나라. 사무라이들이여! 호랑이를 베어 버려랏!”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국가끼리의 대결.
그것도 한일전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일본은 비장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개최국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의 것이었다.
세계는 일본보다 대한민국을 주목했다.
“예선전부터 독일, 스페인, 브라질을 꺾고 올라왔다며?”
“와- 일본은 완전히 꿀 빨았던데…”
“진정한 축구팬이라면 사실 예상된 결과일 것이다. 한국에는 이순신이 있으니까.”
“손민흥의 부재를 잘 메꿔줬다.”
“결승에서 손민흥이 돌아오면 대한민국은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겠군.”
일본은 나름대로 준결승전에서 멕시코를 3:0으로 이기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의 경기력은 좋지 않았다.
특히 8강전에서 붙은 온두라스는 졸전 중의 졸전이었다.
전후반 스코어 0:0.
유효슈팅은 양 팀 모두 합쳐서 1개.
오쿠보는 답답해서 가슴을 무려 5번이나 쳤다.
연장전에서는 온두라스 선수가 한 명 퇴장당했다.
“일본의 기회입니다!”
오쿠보가 열심히 뛰었지만,
행운은 노력한 자의 것.
90분 내내 노력하지 않은 일본에게 골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치러서 올라왔다. 일본 팬들의 기대감도 사라졌다.
준결승전까지 넣은 일본의 골은 고작 4골이었다.
차라리 4강전에서 멕시코에 지길 간절히 바랐다.
“제발 1:0 정도로만 졌으면…”
그런데 멕시코전에서 일본의 포텐이 폭발했다.
멕시코 자체가 일본을 우습게 보다가 큰코다친 것도 있지만, 그들이 자랑하는 스시타카가 제대로 폭발했다.
결승전에서 브라질한테 진다 해도, 개최국 빨이라곤 해도, 은메달은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대한민국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도박사들은 올림픽 결승전을 앞두고 내기를 했다.
강호를 꺾고 올라왔지만 험난한 일정을 치른 대한민국이냐,
개최국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일본이냐!
도박사들의 예측으론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딸 확률은 7:3 정도로 높았다.
그들이 개최국의 이점을 뒤로한 채 대한민국을 고른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이순신이 대한민국에 있기 때문이었다!
7:3이란 저 수치도 손민흥이 빠진 수치였다.
손민흥을 포함한 수치였다면 8:2였다.
그만큼 일본이 대한민국을 이길 확률은 매우 낮았다.
일본 언론은 애써 담담했다.
설레발을 치는 것보단, 오히려 대한민국이 자아도취에 빠져서 방심하길 바랐다.
그래야 역전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그중에서도 이순신은 마왕으로 취급했다.
이순신을 그만큼 비중 높게 다루며, 경계대상 1호에 올렸다.
올림픽을 통해서 이순신의 인지도가 급격히 올랐다.
- 4부 리그 선수의 기적.
- 수비수가 팀을 구하다.
- 골 넣는 수비수 등장.
- 상식을 파괴하는 선수.
- 올림픽 이후 그의 행선지는 어디로?
- 이미 레알 마드리드와 접촉 중?
- 레알 마드리드 회장의 선물을 받은 이순신?
- 세컨드 찬스 재방송 결정!
- 이미 군대도 다녀온 준비된 해외 리거
- 이순신 국가대표 승선은 언제쯤?
언론은 온통 이순신에 대한 기사들로 가득했다.
“와- 순신이 좋겠네?”
최대한 뉴스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던 상황이었다.
핸드폰을 켜기 겁이 났다.
아예 안태리는 이순신에게 관련 기사를 보여주지 말도록 선수단에 지시했다.
그런다고 관심이 없어진 건 전혀 아니었다.
문제는 선수단 밖이 아니라 내부였다.
올림픽 숙소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웨덴 여자 배구 선수인 에바와 라스는 단짝이었다.
그녀들은 숙소 침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올림픽 동메달을 땄다.
폐막식을 참여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숙소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이번에 축구에서 괜찮은 애가 하나 있다며?”
“아 그 대한민국에서 키 큰 애?”
“걔 신더 아이디 뭐야?”
“없던데? 안 깐 거 같아.”
“벌써 찾아봤어? 대단해!”
신더는 데이팅 어플이었다.
선수들은 선수촌 밖에 나가는 것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혈기왕성한 젊은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겠는가?
‘연애’였다.
그래서 선수촌 안에서 데이트를 하기 위해 이러한 어플과 콘돔은 필수였다.
에바와 라스는 이순신의 연락처가 없자 매우 아쉬워했다.
“아쉽다. 즐기고 싶었는데.”
라스는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아예 숙소로 찾아가 볼까?”
“와- 너 천재 아니야?”
두 선수는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원피스는 너무 속이 보이는 거 같으니 운동복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가자!”
“잠깐만 입술만 좀 바르고!”
라스는 입술에 립스틱을 발랐다.
“됐어. 가자!”
두 사람은 한껏 색기를 뿜어대며 대한민국 대표 팀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아. 가슴 떨려.”
에바는 두 손으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에바. 그런데 우리 왜 숨어 있어야 해?”
“이래야 더 재밌잖아.”
에바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벽 뒤에 숨어서 지나가는 선수들을 유심히 보았다.
“이순신이 누굴까?”
“동양인이라고 했으니까 당연히 검은 머리겠고.”
“키 크고 잘생긴 애라고 했는데.”
두 사람의 눈동자는 요리조리 쉼 없이 굴러갔다.
“에바. 쟤는 어때?”
“키는 큰데 잘 생김과는 거리가 멀지 않아?”
“그럼 쟤는?”
“아직 결승전이 남았다고 들었어. 목에 걸린 건 동메달이야.”
“아이참. 쟤는?”
“키가 너무 작아.”
“아. 오늘은 포기해야 되나 봐.”
에바와 라스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순신아. 얼른 가자.”
두 사람은 동시에 속으로 ‘순신’이라고 외쳤다.
고개를 돌려서 소리가 난 쪽을 냉큼 바라봤다.
이순신과 혁규가 밥을 먹으러 나왔다.
“쟤가 분명해!”
“내 생각도 그래!”
에바가 손으로 정확히 가리켰다.
두 사람은 비장하게 손을 잡았다.
“가보자!”
에바와 라스는 재빨리 이순신에게 다가왔다.
“저기!”
이순신과 김혁규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죠?”
“너 이순신 맞지?”
에바가 영어로 물었다.
이순신도 능숙한 영어로 대답했다.
“와- 발음도 멋있네.”
“고마워.”
비슷한 또래였던 그들은 편히 말을 했다.
그러다가 불쑥 핸드폰을 내밀었다.
“혹시 연락처 알려줄 수 있어?”
김혁규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것이 말로만 들었던 올림픽 숙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그?’
맙소사.
김혁규는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연락처를 왜?”
“그냥.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이따가 너희 숙소로 놀러 가도 돼?”
에바와 라스가 눈웃음을 지었다.
이순신은 잠시 고민했다.
“이건 내 연락처야.”
김혁규가 먼저 그들에게 연락처를 알려줬다.
“고마워! 나중에 연락할게. 이순신. 너는?”
에바와 라스가 큰 눈으로 이순신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미안해. 여자 친구가 이런 거 싫어해서. 또한 우리는 결승전을 앞두고 있어서 집중해야 해. 그럼 이만.”
이순신이 손을 내저으면서 거절했다.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그녀들이 이순신의 옷자락을 잡았다.
배구 선수의 악력은 매서웠다.
에바와 라스는 약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이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었다.
“그게 뭐? 나도 남자친구 있어.”
“난 남편이 있어.”
“어차피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아무도 몰라.”
“맞아. 올림픽의 불문율이잖아.”
“오우.”
그들의 파격적인 선언에 이순신과 김혁규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순신이가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김혁규는 이순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이순신이 재차 거절했다.
매우 단호했다.
에바와 라스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껏 올림픽 숙소에서 헌팅이 실패한 건 처음이었다.
“아하! 생각해보니 걔네도 그랬지.”
에바는 무언가 깨달았다. 얼마 전에 함께 즐겼던 미국 수영 선수들이 생각났다.
“그럼 이따가 우리 숙소로 놀러 올래?”
“별다른 뜻은 없고, 그냥 축구 선수는 어떻게 운동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너희 나라에 대해서도 좀 알아가고 싶어.”
“무엇보다 너에 대해서 흥미가 점점 생기네.”
그들은 숙소 키를 이순신에게 넘겼다.
그리고 귀에 속삭였다.
“기다릴게.”
두 사람은 해맑게 웃으면서 왔던 곳으로 뛰어갔다.
괜히 뒤를 돌아보더니 이순신과 김혁규한테 손으로 뽀뽀를 날렸다.
두 사람은 멍하니 한동안 멍하니 쳐다봤다.
김혁규가 팔꿈치로 이순신의 옆구리를 찔렀다.
“스페인 애들만 화끈한 줄 알았는데, 스웨덴 애들도 장난 아니다. 그치?”
“으…응.”
“순신아. 이따가 숙소로 갈 거야?”
“응?”
“걔네들이 오라고 했잖아. 어차피 이제 메달도 따서 면제도 받았겠다. 사실상 결승전은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잖아?”
그 순간이었다.
이순신은 플라스틱으로 된 숙소 키를 구기더니 근처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
“순신아!”
“혁규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순신은 무심하게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와- 너무한 거 아니냐! 너 말고 걔네들. 동방예의지국에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이순신은 걸음을 멈췄다.
“혁규야.”
이순신이 진지한 눈빛으로 김혁규를 쳐다봤다.
“2등 하려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선수는 없어.”
이순신이 정색하며 말했다.
김혁규는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시 내 친구 순신이. 최고다!”
“혁규. 아까 진심으로 아까워했던 거 같은데?”
“그럴 리가 있냐! 널 시험해본 거야. 사실 나도 이제부터 선수 생활 시작인데 다른 데다가 정력을 쏟으면 안 될 일이지! 하하핫!”
김혁규는 사실 조금 아쉬웠다.
“그런데 너 진짜 여자 친구 있어?”
“…”
이순신이 침묵했다.
이순신과 김혁규는 티격태격하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누군가 다소 충격적인 표정으로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