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브라질의 엄청난 실력
올림픽 4강전이 시작됐다.
백호를 연상시키는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대한민국과 브라질 하면 떠오르는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섰다.
“양 팀의 주장 앞으로.”
주심이 선축과 골대를 정하기 위해 각 팀의 주장들을 불렀다.
이순신과 다니엘이 기념사진을 찍은 후 주심 쪽으로 가볍게 뛰어왔다.
‘브라질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리빙 레전드. 다니엘.’
이순신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악수했다.
다니엘은 이순신의 어깨를 토닥이며 훈훈한 장면이 연출됐다.
“양 팀 다 수비수가 주장을 맡고 있군요.”
“그렇습니다. 손민흥 선수가 나오지 못하는 게 참 아쉽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대패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캐스터는 시작부터 대한민국의 패배를 예견했다.
당장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하하. 그래도 기적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아나운서가 땀을 닦으며 얼른 수습했다.
사실…
팬들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감을 얻었다.
에이스의 부재는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고,
충격 그 자체였다.
어디 보통 에이스였나?
국가대표 팀의 주장이자,
해외에서 국위 선양을 하는 선수가 아니었나?
“손민흥이 못 나와서 아쉽군.”
다니엘이 악수하며 위로했다.
이순신은 그 안에 담긴 동정심을 느꼈다.
“손민흥이 나오든, 안 나오든 결과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
다니엘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순신이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면서 씨익 웃었다.
“축구는 이름값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오늘 이길 겁니다.”
생각보다 자신감이 훨씬 넘치는 이순신의 태도에 다니엘은 놀랐다.
“와우- 어린 선수가 상당히 유머러스 하구만. 그럼 어디 승부차기까지 잘 버텨보게.”
다니엘이 씨익 웃었다.
띠이잉-
이순신과 다니엘은 공중에서 하염없이 돌던 동전을 바라보았다.
심판이 던진 동전의 선택권은 다니엘에게 돌아갔다.
그는 선축과 오른쪽 진영을 먼저 선택했다.
‘스페인을 이기고 올라와서 기세가 오른 건 좋지만, 아무래도 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겠군.’
다니엘은 결코 대한민국 팀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평가했을 뿐이었다.
삐이이익-
최전방에 있는 안드라지가 인사이드로 파울루에게 가볍게 공을 건넸다.
최후방 수비라인에 있는 다니엘은 여유롭게 지켜봤다.
‘공격은 어린 친구들에게 맡겨보고 상대 팀 주장이 말한 자신감의 근거를 한 번 볼까?’
브라질 공격 3인방은 이날을 기다렸다.
세 사람의 눈빛은 대한민국의 공격수들과 미드필더진을 넘어 센터백 라인에서 진두지휘하는 이순신에게 향했다.
‘이번엔 안 진다!’
바로 오늘이 이순신에게 복수하는 날이었다.
현재 브라질 축구팀은 많은 유망주를 배출한 세대였다.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의 이력만 봐도 화려했다.
대다수의 선수들은 영국, 독일, 프랑스 1부 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몸값은 말할 것도 없었다.
“브라질 초반부터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4-3-3을 기반으로 한 브라질의 공격은 매서웠다.
공격수를 세 명 두는 스리톱 전술은 양쪽에 윙어를 세우고 최전방에 스트라이커를 세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의 선수는 달랐다.
최전방에 선 안드라지를 비롯해서 선발된 멤버들이 윙어와 스트라이커를 모두 뛸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안드라지 선수가 측면으로 빠집니다!”
“파울루 선수가 어느덧 최전방으로 왔습니다!”
브라질 최전방에 선 세 명의 선수들은 최전방에서만큼은 포지션의 구애를 받지 않았다.
측면에서 파울루는 수비수 2명을 끌어낸 후 근처에 있는 안드라지에게 스루패스를 했다.
부드럽게 공을 받은 안드라지에게 이순신이 붙었다.
“얘는 내가 맡을 테니까 다른 선수를 놓치지 마!”
이순신의 외침에 대한민국 선수들은 자리를 지켰다.
“안드라지 선수. 수비를 앞에 두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안드라지는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플레이를 즐겼다.
“정면 돌파다!”
안드라지가 중앙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순신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안드라지가 몸을 흔들며 개인기를 펼쳤다.
이순신은 현혹되지 않았다.
침착하게 기회를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따라붙었다.
안드라지가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멈췄다.
슈팅을 때리기에는 다소 모호했다.
그럼에도 안드라지는 슛을 때렸다!
“안드라지의 슛!”
“주우현이 가볍게 잡아냅니다!”
주우현이 전방에 있는 선수들을 향해서 공을 길게 찼다.
“젠장!”
안드라지가 땅을 걷어차고 수비로 복귀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
이순신이 그를 위로했다.
“뭐?”
“우리 팀에 너랑 비슷한 플레이를 펼치지만, 상위호환이 있어서 대응할 수 있었어.”
안드라지는 그 말을 듣자 누군지 단박에 알아챘다.
손민흥이었다.
플레이 스타일은 비슷했으나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따라잡을 수준이 전혀 아니었다.
안드라지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경기장에 없는 선수와 비교를 당하니 열 받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래도 너희는 오늘 우릴 이기기 힘들 거다. 우리는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다니엘도 있다고.”
대표 팀에서 다니엘의 신망은 두터운 편이었다.
패기가 넘치는 젊은 선수들에게도 다니엘은 존경의 대상 그 자체였다.
“저번 친선 대회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전력이 강해졌다고!”
안드라지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일종의 기 싸움이었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이순신이 여유롭게 받아쳤다.
“우와와!”
갑작스럽게 내지르는 팬들의 환호에 안드라지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도 있었지.”
안드라지는 깜짝 놀랐다.
“이광인 선수가 브라질 선수들을 유인합니다.”
이광인이 웃으며 브라질 선수들을 농락했다.
안드라지는 그가 누군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3년 전.
20세 이하 청소년축구 대회에서 그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적당히 준수한 활약을 했으며, 적당히 브라질다운 축구를 했다.
덕분에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결승전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우승해본 적 없는 나라 둘이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중 하나가 대한민국이었다.
아쉽게도 팀은 준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회 MVP는 그에게 돌아갔다.
20세 이하지만 2살이나 어린 나이로 팀을 이끌었던 이광인이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안드라지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차세대 메시라고 불리며 최고의 재능으로 주목받았지만,
성인 무대는 달랐다.
“감독은 왜 이광인 선수를 기용하지 않는 걸까요?”
그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메시만큼 피지컬을 극복할 수 있는 재능까지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세상의 평가는 냉정했다.
조숙하지만 어린 선수라는 점을 잊은 채 이광인은 서서히 잊힌 유망주 루트를 밟아갔다.
하지만 토너먼트를 통해서 이광인은 부활했다.
현재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기 힘들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예전에 보여줬던 미친 재능이 거의 회복되었다.
“공을 받은 정대건. 브라질 선수를 앞에 두고 전혀 겁먹지 않고 있습니다.”
- 만약 이광인이 출전했던 19세 이하 청소년축구대표 팀에 정대건이 있었으면 진짜로 우승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
축구팬들에게 계속 회자되는 이야기 중 하나였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번 대회에서 이광인과 정대건은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가 독일의 1부 리그에 스카웃 됐다는 뉴스가 떴을 때 대한민국 축구계는 깜짝 놀랐다.
“정대건이 누군데?”
단순히 1부 리그 팀도 아닌 무려 독일 최정상 팀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그곳에서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완벽한 해피엔딩이었겠지만, 아쉽게도 중위권 팀으로 이적했다.
그런데도 뮌헨에서 배운 게 있는지 중위권 팀에서 활약하는 데 부족함은 없었다.
“뮌헨의 눈은 틀리지 않았어.”
정대건은 뛰어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필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장점을 활용하여 브라질 수비수들을 괴롭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네가 강해질 때 우리는 놀고 있던 게 아니야. 나랑 혁규랑 단결이도 스페인 리그에서 경험을 쌓았고, 다들 열심히 노력했어.”
이것이 이순신이 브라질을 이길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감이었다.
‘넌 4부 리그에서 뛰고 있었잖아!’
안드라지가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또 다른 4부 리그 선수인 김혁규도 오늘 날아다녔다.
“김혁규 선수. 옛 생각이 나는 걸까요? 오늘따라 드리블에 자신감이 붙었어요!”
“브라질 선수들을 만나니 고향에 돌아온 느낌일 거예요. 지방 사람이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사투리를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갑자기 동향 사람을 만나서 사투리를 들으면 생각나는 것처럼 김혁규 선수가 잃어버린 드리블을 찾았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은 깜짝 놀랐다.
“김혁규가 저렇게 잘했나?”
김혁규의 드리블은 오늘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나 죽여줬다!
팬들은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 대표 팀이 수비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강 vs 강!
맞불을 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안태리 감독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그러게…어떻게 우리나라가 브라질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나갈 수 있겠어?”
“대충 한 골 빠르게 넣고 걸어 잠그려는 걸까?”
“그럴 거면 진작 걸어 잠그고, 역습 전술을 펼친 다음에 승부차기를 노려야지!”
기자들은 기사 제목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 안태리 감독, 무모한 전술로 브라질에게 대패…
- 에이스 손민흥의 부재. 넘을 수 없는 세계의 벽…
- 안 “3.4위전에 총력을 다 해서 동메달을 꼭 따갈 것.”
정말 기자들의 생각대로일까?
경기를 뛰는 브라질 선수들이 이 기사를 봤으면 욕부터 했을 것이다.
특히 산전수전 다 겪은 다니엘은 대한민국이 약한 팀이 아니라는 걸 단숨에 깨달았다.
‘공격력이 뛰어나고 빠른 편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앞에 두고 과감히 개인기를 시도하는 자신감은 뭐지?’
아무리 그가 착해도,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김혁규 선수가 드리블 돌파를 시도합니다!”
김혁규의 앞에 다니엘이 있었다.
“자 붙어 보자고요!”
김혁규는 공을 툭툭 치며 돌파를 시도했다.
전방에는 장승빈과 이광인이 뛰어 들어갔다.
‘다니엘만 제치면 슈팅 기회가 온다!’
김혁규가 왼쪽으로 돌파를 시도했다.
촤아아악!
다니엘이 슬라이딩태클로 김혁규의 공을 깔끔하게 빼냈다.
“다니엘 선수의 깔끔한 태클!”
“윽!”
김혁규가 재빨리 목을 안으로 감아서 부상을 피했다.
그사이에 다니엘의 시선은 대한민국 쪽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의 수비 복귀가 생각보다 늦었다.
심지어 우왕좌왕했다.
반면, 브라질의 공격진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늘 해왔던 약속된 플레이였다.
‘역습 찬스다!’
그대로 다니엘은 공을 가지고 총알처럼 튀어 나가서 순식간에 하프라인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