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성인군자세요?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도 몰려왔다.
스페인의 미래들이 한국 진영으로 온 이유는 하나였다.
유니폼 교환.
월드클래스인 손민흥의 유니폼을 노리는 스페인 선수들이 많았다.
그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손민흥은 쓰윽 관중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유니폼 주세요!”
“제가 갖고 싶어요!
그는 선수들보다는 축구를 보러 온 아이들에게 선물로 줘서 꿈을 키우게 하고 싶었다.
‘쟤가 좋겠어!’
대한민국 팀의 레플리카를 입은 여자아이가 눈에 손민흥의 눈에 띄었다.
손민흥이 주섬주섬 유니폼을 벗었다.
여자아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나 주는 건가?’
아이는 손민흥과 눈이 마주쳤다.
손민흥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선 곱게 접어서 여자아이한테 던져줬다.
“고마워요! 오빠!”
여자아이는 감격에 겨워했다.
잘생기고 멋있으면 오빠라고 했던가?
삼촌뻘이지만, 오빠라는 소리를 들으니 손민흥은 기분이 좋아졌다.
“젠장. 나도 저 꼬맹이처럼 귀여웠어야 했어.”
몇몇 스페인 선수들은 머리를 뜯으며 아쉬워했다.
“아, 내가 가지고 싶었는데.”
“됐어. 나중에 또 보면 그때 바꾸면 되지. 우리가 축구를 계속하는 한 말이야!”
“그래도 오늘 저 팀은 굉장히 잘 싸웠어. 그치?”
“인정하기 싫지만, 그건 사실이지. 오히려 아르헨티나전보다 더 힘들었어.”
스페인 선수들은 진심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선수들을 격려했다.
무엇보다 한국 선수들의 실력 그 자체를 인정해줬다.
대한민국 팀은 스페인이 먼저 다가오자 깜짝 놀랐지만,
이 순간을 즐겼다.
아모르가 유니폼을 벗었다.
바르셀로나의 미래로 불리는 그가 유니폼을 교환하고 싶은 선수는 임단결이었다.
“정말 나랑?”
임단결은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 사람이 뜬금없이 다가오니까 당황스러웠다.
“너 수비 잘하더라. 이순신은 예상했지만, 너의 실력은 예상 밖이었거든. 정말 지독하리만큼 끔찍했어!”
임단결은 자기보다 어린 동생에게 칭찬을 들었지만, 가슴이 벅차올랐다.
비록 자신이 축구 경력은 좀 더 오래됐을지언정 수비수로 전향한 건 고작 2년도 안 됐다.
그런데 아모르의 칭찬을 들었다.
늘 가슴속에 가지고 있던 불안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제 내 이름은 알아?”
아모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당겨?”
임단결은 씨익 웃었다.
두 사람은 유니폼을 교환한 뒤 포옹했다.
묵었던 앙금이 싹 씻겼다.
페도라는 그 옆을 지나갔다.
그의 시선은 이광인에게 향했다.
“광인. 프리킥 아까웠다.”
그는 자신과 같은 포지션인 이광인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싸우자는 뜻이 아니었다.
남자들의 우정을 확인하는 용도였다.
툭.
이광인도 주먹을 내밀어서 부딪쳤다.
“너도 엄청 잘 하더라.”
“리그에서 보자. 그리고 언젠간 같이 바르샤에서 뛰어보자.”
페도라는 이광인의 운은 몰라도 재능만큼은 인정했다.
단순히 립 서비스가 아니었다.
관중석에서는 스카우터들이 바빠졌다.
“발렌시아는 왜 이광인을 쓰지 않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당장 가서 보고해야겠어. 겉으로 보면 피지컬이 약점처럼 보이지만, 포지션에서는 전혀 약점이 아니야.”
이번 경기로 저평가된 이광인의 가치가 올라갔다.
만약 메달을 따게 된다면, 이광인의 가치는 더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중들은 인사하는 스페인 선수들에게 박수를 쳤다.
수많은 슈팅 중에 한 골이라도 들어갔으면 경기 양상은 좀 달라졌을 것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스페인의 탈락을 매우 아쉬워했다.
“아 이제 페도라를 못 보는 건가?”
올림픽에서 ‘기대되는 선수 순위 1’의 아쉬운 퇴장이었다.
하지만 팬들의 마음은 갈대인 법.
새로운 선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순신이었다.
“순신. 나랑 유니폼 교환하자!”
이순신의 유니폼을 얻으려는 선수도 많았다.
그와 별개로 이순신과 같은 팀에서 뛰고 싶어 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순신. 우승해야 해. 그래서 우리 팀에서 같이 뛰자!”
“무슨 소리야. 우리 팀에서 같이 뛸 거거든!”
이순신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 팀에서 안 뛸 거야.’
이순신은 이적할 생각이 없었다.
그에겐 확고한 꿈이 있었다.
꿈FC와 함께 유로파 리그에서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페도라와 아모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중에 한 팀에서 뛰었으면 좋겠다.”
“바르샤에서 뛸 일은 평생 없어.”
이순신은 웃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오히려 너네가 꿈FC에 올 생각 없어? 이적 자금은 없지만, 임대라면 가능할 거 같은데.”
“너무해!”
아모르는 얼굴을 울먹였다.
페도라도 씨익 웃었다.
“2년 후에 월드컵에서 보자. 스페인 국가대표는 올림픽 대표 팀에 비해서 몇 배는 더 강해.”
“크흑.”
이순신은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저 녀석 말대로 대한민국 대표 팀이 이길 가능성은…’
이순신은 잠시 계산했다.
그러더니 씨익 웃었다.
“내가 국가대표 팀에 들어가면 우리 팀도 몇 배는 더 강해져.”
이순신이 근거 있는 자신감을 보였다.
페도라는 움찔했다.
이순신의 기세에 살짝 눌렸다.
“그래. 나중에 보자! 요번 코파 델 레이에서는 보지 말고!”
페도라는 손을 흔들며 떠났다.
“순신아! 팬들한테 인사하자.”
손민흥이 손짓하며 불렀다.
“넵!”
이순신을 비롯한 선수들은 경기장에 찾아와 목이 쉬도록 응원해준 관중들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관중들은 멋진 경기를 보여준 선수들에게 박수로 화답했다.
***
다음 날.
안태리는 선수들에게 자유 시간을 줬다.
“이 자식들 미쳤네.”
안태리는 놀란 이유는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건이. 막아!”
“뭐 하는 거야! 거기서 공격수를 놓치면 안 되지!”
“기지 형. 달려!”
“순신아. 살살해!”
이들이 타오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오전에 어제 열린 브라질과 영국의 경기를 봤기 때문이었다.
우승 후보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두 팀의 대결.
화면으로 봐도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브라질이 4강에 진출합니다.”
경기 결과는 브라질이 3:0으로 승리했다.
여전히 안드라지, 파울루, 헤이니는 잘했다.
차기 브라질 대표 팀을 이끌 공격진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이들이 마음껏 상대 진영에서 날뛸 수 있도록, 후방에서 와일드카드로 뽑힌 선수들이 뒤를 받쳐줬다.
“저게 정말 국가대표 5순위 골키퍼라고?”
브라질의 골키퍼는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공격수에 비해서 주목을 덜 받는 포지션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브라질은 놀랍게도 무실점을 기록했다.
최후방에서 멜루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주우현과 같은 이유로 뽑힌 선수였다.
분명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는 필요했다.
하지만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 안정감은 아직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저런 선수가 왜 대표 팀에 안 뽑힌 거지.”
“안 뽑힌 게 아니라 5순위라고. 그 앞에 있는 선수들이 더 괴물인 거지.”
“브라질 리그에서 뛰고 있어서 경기 영상도 별로 없어.”
대한민국에서도 생소한 선수였다.
“어? 나 저 선수 알아!”
김혁규가 말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네가 어떻게 알아?’
이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유튜브에서 무언가를 찾아서 보여줬다.
“이거다!”
잠시 뒤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미친. 경기를 앞두고 핸드폰을 해?”
놀랍게도 멜루는 경기 시작 직전까지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은 ‘수치스러운 골키퍼’ 였다.
“이건 아니지.”
“차라리 우리한테 잘 된 거 아냐? SNS에 미친 골키퍼라면 우리가 골을 넣을 확률이 더 있다는 거잖아?”
“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없어.”
김혁규가 다른 영상을 틀었다.
멜루는 다음 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해명해야만 했다.
“당신들이 느낀 분노는 자동차에서 핸드폰을 보는 것과 같은 분노일 것입니다.”
그의 말에 팬들은 어이가 없었다.
사실은 이랬다.
운전 중 핸드폰 사용이 사고율이 높은 것을 알리기 위한 공익광고였다.
“개반전이네.”
임단결은 입을 틀어막았다.
실제로 여론도 울돌목의 물살처럼 완전히 뒤바뀌었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광고제에서 수상까지 거머쥐었다.
“골키퍼가 개념이 충만해. 와- 이건 너무 새로운 유형의 선순데?”
왠지 저 선수에게 골을 넣고도 욕먹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랑 와일드카드가 비슷하네.”
브라질 역시 와일드카드를 골키퍼와 윙백에 투자했다.
“그래도 애들 노는 데서 다니엘은 좀 반칙 아닌가 싶은데…”
영국과의 경기에서 2어시스트를 기록한 다니엘을 보고 대한민국 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그야말로 포지션의 개념을 깨버린 선수였다.
축구계의 ‘폴 매카트니’.
그 자체였다.
당시 베이스는 그저 기타를 받쳐주는 악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폴 매카트니는 베이스로 충분히 주연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다니엘이 딱 그랬다.
윙백이라는 포지션 자체가 참으로 애매한 위치였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포지션이었다.
다니엘은 측면의 지배자였다.
“바르셀로나에서 메시가 막히면 다니엘이 뚫으면 됩니다!”
그만큼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잘했다.
그가 올리는 크로스는 새벽 배송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다니엘. 37살에 바르셀로나와 연봉 400만 원 계약!”
처음에 기자들이 잘못 본 줄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400억은 좀.”
“아니야. 400만 원이라고!”
“주급이?”
“연봉이!”
기자들은 눈을 부비고 다시 봤다.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었다!
“대체 왜?”
“이 정도면 주급이 거의 4만 원 꼴이잖아?”
“우리 조카가 밖에 나가서 토마토 주스를 팔아도 그거보단 많이 벌어!”
다니엘은 바보인가?
아니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선수가 바보일 리가 절대로 없었다.
자폐증을 앓지도 않았으며,
지능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생각과 의지로 말했다.
“전 바르셀로나의 재정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꺼이 헌신하겠습니다.”
기자들은 다니엘의 발언이 놀라웠다.
“브라질 선수들은 다 돈 밝히는 거 아니었어?”
브라질 선수들의 이미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이 축구였다.
그렇기에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과시욕과 사치가 심했다.
비싼 자동차를 타고, 미녀를 만나고, 클럽에서 돈을 물 쓰듯이 썼다.
그렇기에 선수 생명이 짧았다.
아무리 외계인이라고 불려도 재능의 빛은 오래 빛나지 못했다.
오히려 추락할 때 날개가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그런 점에서 다니엘은 다른 선수들과 분명히 달랐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3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량을 유지했다.
결코, 돈을 위해서 축구를 하는 게 아니었다.
한 기자가 다니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축구를 하나요?”
다니엘은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