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추가 골을 넣었어야 했다.
두 선수의 포옹은 진한 브로맨스가 무엇인지, 스포츠가 주는 감동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미쳤다!”
그걸 본 관중들의 가슴은 뭉클했다.
대한민국 축구는 늘 궁금했다.
누가 손민흥의 계보를 이을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축구팬들이 생각할 때는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인 이순신이었다.
두 선수가 세레머니를 하고 진영으로 돌아갔다.
삐이이익-
아모르와 페도라가 킥오프를 했다.
소년미 가득했던 아모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모르는 재빠르게 측면으로 향했다.
스페인 미드필더와 패스를 주고받은 그는 대한민국의 측면을 공략했다.
임단결은 빠르게 달라붙었다.
“이번에도 막아주마!”
아모르는 스윽 보더니 자세를 낮췄다.
푸슝!
아모르가 엄청난 스프린터를 보여줬다.
“어딜 도망가!”
임단결도 사력을 다해서 뛰었다.
“임단결과 아모르 선수가 달립니다!”
순간 아모르가 멈췄다.
공을 재빠르게 발바닥으로 빼낸 후 측면을 뚫었다.
“임단결을 제치는 아모르! 하지만 중앙에는 이순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순신이 지역방어를 펼쳤다.
아모르의 움직임을 계산하면서, 오야르와 페도라의 움직임도 살폈다.
그야말로 1:3으로 수비를 하는 중이었다.
“아모르 선수 슛!”
‘이 위치에서?’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아모르가 찬 슈팅은 정확히 골문으로 날아갔다.
주우현이 몸을 날려서 막았다.
“주우현의 펀칭!”
“튕겨져 나온 공. 오야르 선수가 슛을 쏩니다.”
툭!
오야르의 슈팅은 이순신의 발에 맞고 골대 반대 방향으로 나갔다.
“이순신 선수의 슈퍼 세이브!”
“휴.”
이순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야르를 스쳐 지나갔다.
오야르는 생각했다.
‘저 녀석이 나보다 바이아웃이 높게 책정되어있다고?’
2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작년에는 13골 10도움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에게 책정된 몸값은 988억 원.
이순신보다 낮았다.
처음에는 4부 리그의 마케팅인 줄 알았다.
4부 리그지만 우리는 천 억짜리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오야르는 막상 붙어보니 깨달았다.
‘이 녀석은 조만간 빅 리그에 간다. 그것도 나보다 빨리.’
오야르의 몸값이 높게 책정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빅 리그의 타겟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야르는 이번 대회가 끝나면 이순신의 몸값은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 명성은 낮을지 몰라도 이미 실력은 어지간한 국대급이었다.
“이순신. 이순신.”
한국말은 잘 모르지만, 대충 이순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정도는 눈치챘다.
‘실력뿐 아니라, 스타성도 겸비했고…’
오야르는 이를 악물었다.
순순히 항복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스페인 국가대표다.’
무적함대는 아무나 승선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 오야르는 자신이 왜 국가대표에 뽑혔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우선 오야르의 장점은 뛰어난 위치 선정이었다.
그 위치 선정에서 골을 넣는 게 아닌 패스를 뿌려주는 게 그의 스타일이었다.
문제는 번번이 이순신과 이기지 에게 막혔다.
“오야르 선수가 튕겨 나갑니다.”
오야르가 두 손을 내밀며 반칙이 아니냐고 어필했다.
“반칙이 아니냐고 하지만, 정당한 몸싸움이었습니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좋았어. 기지 형!”
“순신이. 사랑해!”
이순신과 이기지는 서로에게 엄지와 하트를 날려줬다.
둘 다 몸싸움에 특화되었다.
‘이 자식들은 카드가 두렵지 않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도 달라붙자 오히려 당황한 건 스페인 선수들이었다.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저런 태클이 가능합니까?”
“미쳤습니다. 제 심장이 남아나질 않아요.”
자칫하면 페널티킥을 허용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순신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수비진은 거침없이 미끄러졌다.
“전반 30분. 대한민국이 경기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광인, 정대건, 손민흥으로 이어지는 공격에 스페인은 정신을 못 차렸다.
“손민흥 슛!”
“정대건 선수의 헤딩슛!”
“아쉽게 빗나갑니다!”
전방에 있는 공격수들이 몸싸움에서 밀리니 점점 플레이가 위축됐다.
“이순신 선수가 공을 잡았습니다.”
이순신은 재빨리 공을 넘겨줬다.
대한민국의 공격진은 손민흥과 장승빈이 휘젓고 다녔다.
“전반 42분. 이순신 선수의 전매특허 중거리 슛!”
[지자포가 발동했습니다.]
40M 지점에서 쏜 슈팅은 스페인 선수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번에도 베드로 선수가 막아냅니다!”
다만 베드로의 신들린 선방으로 추가 실점을 내주진 않았다.
마치 베드로 뒤에 신의 가호가 내려진 듯했다.
삐이이익-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대한민국이 스페인을 1:0으로 앞서고 있습니다.”
“이제 45분만 버티면 대한민국이 오랜만에 4강에 진출합니다!”
중계진은 벌써 설레발 중이었다.
하지만 선수들과 안태리는 매우 아쉬웠다.
‘추가 골을 넣었어야 했어…’
안태리는 앞서고 있었으나 불안했다.
스페인은 강팀이었다.
분명히 이대로 무너질 리가 없었다.
하프타임이 지나자 스페인이 경기장에 입장했다.
전반전에 비해 한결 여유로웠다.
아모르는 다시 웃음을 찾았다.
결국, 안태리가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스페인의 패스가 살아났다.
무리한 슛을 날리지 않았다.
오밀조밀한 삼각형 패스로 점유율을 다시 높여갔다.
삐이이익-
“이기지 선수의 반칙입니다.”
아모르에게 몸싸움을 시도했지만, 이미 공은 페도라에게 넘겨준 상태였다.
공이 없는 선수에게 시도하는 몸싸움은 그저 반칙에 불과했다.
‘이 자식들 달라졌어.’
이순신은 생각했다.
적은 싸움을 포기했다.
하지만 실리를 얻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개인기를 이용한 돌파나 크로스보다는 감각적인 패스와 예상치 못한 슛을 날렸다.
“전반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손민흥한테 패스는 연결됐지만, 안타깝게도 자주 고립됐다.
위력적인 슈팅도, 패스도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민흥이 형을 도와줘야 하는데…’
안태리는 장승빈을 뺐다.
교체선수는 김혁규였다.
“혁규야. 빠르게 휘저어라.”
“알겠습니다.”
김혁규는 안태리의 지시를 받고, 경기장을 이곳저곳 누볐다.
그러다 보니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대한민국!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습니다!”
골대와의 거리는 약 30M.
이순신과 이광인이 프리킥을 찰 준비를 했다.
두 선수 모두 프리킥을 잘 차기 때문에 스페인은 잔뜩 긴장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앞에 스페인과 대한민국 선수들이 몰렸다.
이순신과 이광인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프리킥을 찬 사람은 이광인이었다!
시원하게 왼발로 올린 공은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서 날아갔다.
그곳에 선수들이 모여 있다는 건, 페널티 박스 안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선수들과 스페인 선수들이 재빨리 문전으로 향했다!
스페인 선수와 정대건이 동시에 뛰어올랐다.
“정대건 선수의 헤딩!”
정대건의 머리에 좀 더 빨리 공이 닿았다.
공은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베드로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공이 바닥에 튕깁니다!”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골이 들어갈 확률은 무려 90%!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은 골대를 살짝 벗어났다.
“아! 정대건 선수! 매우 안타깝습니다!”
후반전 들어서 가장 좋은 찬스였지만, 지독하게도 골 운이 따르지 않았다.
‘엄청난 녀석이군.’
페도라는 이광인의 프리킥을 보며 감탄했다.
그는 이광인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유스 대회에서 몇 번 맞붙어본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이레귤러.
또래의 선수들에 비해서 특출났다.
마치 강아지처럼 공이 이광인을 따라다니는 거 같았다.
하지만 축구 선수는 실력만으로 되지 않는 법.
이광인이 자신을 키워준 클럽에 충성을 맹세했건만,
클럽은 이광인의 등에 칼을 꽂았다.
오야르가 말한 마케팅용 선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청소년 월드컵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후,
주가가 한창 높아졌다.
그러나 팀에서는 중용되지 못했다.
‘멍청한 놈. 차라리 귀화를 하지.’
스페인에는 많은 귀화 선수와 이중국적 선수들이 많았다.
이미 장기거주를 통해서 귀화요건을 모두 갖췄지만, 이광인의 선택은 대한민국이었다.
페도라는 잠시나마 이광인과 함께 스페인 대표 팀을 지휘하는 꿈을 꿨다.
‘이루어질 순 없겠지만, 같은 팀에서는 뛰었으면 좋겠다.’
그는 이광인이 발렌시아에서 받은 대접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이광인의 평가가 바뀌기를 바랐다.
그건 먼 미래의 일이지만,
중요한 현재가 바뀌었다.
스페인이 여유로운 척을 했지만, 사실은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이광인의 프리킥은 대한민국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후반 10분 전.
아모르, 오야르, 페도라가 공격했다.
‘우리만 힘든 거 아니야. 상대편도 지쳤을 거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이순신은 지치지 않았다.
“단결아. 달려!”
공은 뺏은 이순신은 임단결한테 패스했다.
그러면 임단결은 미친 듯이 달려갔다.
아모르의 허술한 수비로 임단결을 절대로 막을 수 없었다.
“임단결의 오버래핑에 이은 크로스!”
임단결이 찬 슛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때 한 선수가 달려가고 있었다.
이순신이었다.
‘생각해보면 말이야…’
이순신은 누구보다도 높게 뛰었다.
단순히 높게 뛴 것이 아니었다.
마치 하늘을 날듯이 앞으로 비상했다.
‘몸싸움을 굳이 우리 진영에서만 할 필요는 없잖아.’
경기 막판쯤이 돼서야 이순신은 깨달았다.
공격수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축구는 결국 골을 넣는 게임.
이순신은 자신의 공격 본능을 감출 이유가 없었다.
[황자포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의 머리에 닿은 공은 땅바닥을 찍었다.
“후읍!”
당황한 베드로가 재빨리 다리를 오므렸다.
하지만 그 전에 이순신의 헤딩슛은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빠르게 땅바닥을 찍고 골문을 흔들었다.
“이건 치명적입니다! 남은 시간은 3분! 추가 시간까지 해봐야 4분 남짓! 대한민국 무조건 버텨야 합니다!”
해설자가 광분했다.
몇몇 스페인 선수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았다.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봤을 때 동점을 만들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부족했다.
“아냐. 할 수 있어!”
아모르가 박수치며 형들을 위로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지만, 임단결의 태클에 온몸이 공중에 붕 떴다.
삐이이익-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합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았다.
첫 골을 넣고 기록한 유효슈팅만 무려 7개였다.
그만큼 가슴 졸이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스페인도 골 운이 안 따랐던 건 마찬가지였다.
아모르와 페도라는 굳어진 얼굴을 하고, 대한민국 진영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