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무너지는 스페인 함대
이순신이 공을 차기 위해서 깊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후으읍!”
발 구르기를 한 후 슛 자세를 취했다!
오른발의 후면 사슬이 팽팽해졌다.
“이순신 선수의 롱킥!”
휘익!
이순신의 발등에 닿은 공은 엄청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관중들은 그 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허공을 가르며 도착한 공은 이광인에게 향했다.
“이광인 선수의 트래핑!”
그는 가슴으로 부드럽게 공을 받아냈다.
그러자 상대편 선수 2명이 재빠르게 달라붙었다.
“순식간에 수비에게 둘러싸인 이광인 선수. 주변에 패스할 곳이 없어요!”
이광인은 씨익 웃었다.
상관없었다.
‘이런 건 하루 이틀도 아니지.’
이광인의 피지컬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릴 때 해외 유소년팀에서 뛰며 깨달은 건 피지컬의 중요성이었다.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지언정, 적응에는 한계가 없었다.
작지만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바로 이광인이었다.
메시처럼 무게중심이 낮고, 시야가 넓었다.
다만 메시와 다른 점은 드리블러이기보단 패스 마스터를 자신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엄밀히 말하면 메시보다는 ‘사비’에 가까운 선수였다.
어그로를 끌되, 쓸데없는 충돌을 피해서 부상의 위험도를 낮추는 것이 이광인의 생존법이었다.
“이광인 선수. 여유롭게 수비를 떨쳐냅니다!”
이광인은 재빨리 요리조리 몸을 흔들며 발바닥으로 공을 긁었다.
특유의 탈압박으로 수비수를 떼어냈다.
그러자 공간이 펼쳐졌다.
“이광인 드리블을 치고 들어갑니다.”
“다시 달라붙는 스페인!”
이광인이 빠르게 멈칫했다.
역동작에 당한 수비수들 사이에 틈이 보였고, 그 사이에 대한민국 선수가 보였다.
“대한민국의 선수 하나가 달려갑니다!”
그는 정대건이였다.
이광인의 패스를 받은 정대건은 곧바로 발 바깥쪽을 이용해서 손민흥에게 원터치 패스를 찔러줬다.
“손민흥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손민흥이 공을 잡자 스페인 선수들이 긴장했다.
주변에 대한민국 선수들이 많아서 패스해도 됐고,
직접 슈팅도 되는 거리였다.
특히 지금의 위치는 슛 성공률이 가장 높은 ‘손민흥 존’이었다.
“쏘니에게 슈팅 기회를 주지 마!”
스페인 수비수가 소리쳤다.
무적의 스페인 함대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명실상부한 월드 클래스의 위엄이었다!
“손민흥 선수 아웃 프론트로 감아 찹니다!”
공은 수비수를 가로질러서 골문 우측 상단으로 향했다.
“베드로 골키퍼! 가까스로 쳐냅니다!”
“코너킥이 이어집니다!”
손민흥이 애꿎은 잔디를 걷어찼다.
좋은 슈팅이었으나 살짝 휘어짐이 아쉬웠다.
‘괜찮아. 아직 우리한테는 기회가 있어.’
이어지는 손민흥의 코너킥은 상대 수비수가 먼저 발을 뻗어서 걷어냈다.
데구르르르.
빈 공간으로 공이 굴러갔다.
“빠르게 달려와서 재차 슛을 날리는 대한민국!”
오버래핑을 한 이기지가 공을 잡아서 곧바로 슛을 때렸지만,
“아- 대한민국! 아쉬운 공격이었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결코 운으로 올라온 팀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짝짝짝.
손민흥이 머리 위로 박수치며 선수들을 위로했다.
“좋았어. 지금처럼 기회를 만들자!”
‘우리도 스페인도 플레이 스타일은 비슷하다. 누가 먼저 체력이 떨어지느냐, 집중력이 떨어지느냐의 싸움이다!’
이순신은 침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이후 스페인은 맹공을 퍼부었다.
흐름은 스페인의 것이었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아모르와 페도라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보여주자. 스페인 함대의 실력을!’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는 대한민국 수비수를 괴롭혔다.
아모르가 측면을 뚫고, 페도라가 공격을 조율했다.
“페도라 선수가 침착하게 공을 뿌립니다! 어린 선수지만 정말 대단해요!”
그의 시선은 남달랐다.
예를 들어 를 보여주면 보통은 느낌표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느낌표라고요?”
하지만 페도라는 물음표라고 대답했다.
평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프론트, 사이드, 퍼스펙티브 등 다양한 뷰로 바라볼 수 있었기에 뛰어난 패스연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우리 편이 슛을 쏘기 좋은 위치에 있다!’
그의 생각을 실현시켜줄 무기는 패스였으며,
완성은 오야르에게 맡겼다.
“오야르 선수의 위협적인 슈팅!”
“아! 이순신 선수가 몸을 날려서 막아냅니다!”
최종적으로는 이순신에게 막혔다.
하지만 표정에는 분함이나, 억울함이 없었다.
이순신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녀석들. 기존에 싸운 팀들과는 다르다.’
특히 이순신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스페인은 ‘방심’하지 않았다.
무리하게 슛을 때리지도 않고, 보다 정교한 연계를 시도했다.
“대한민국은 약한 팀이 아니니까 무리하게 돌파를 시도하지 마!”
대한민국은 수비에 치중했다.
공을 빼앗아도 역습 찬스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공격에서도 무엇을 할 수가 없었다.
이순신은 아까의 롱패스 이후로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스페인의 일대일 방어보단 지역방어에 치중했다.
그들의 전략은 여태껏 이순신이 보여준 후방 빌드업을 막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수비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췄지만, 그의 진가는 공격과 슈팅에서 발휘된다.”
스페인 감독은 이순신이 중거리 슛을 쏠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강팀이 방심을 안 하니, 이것 또한 답답하구만.’
사실 어이가 없는 상황이긴 했다.
이순신 자신도, 이순신이 속한 팀도 언제나 무시 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손민흥과 함께 경계대상 1순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손민흥이 넣고, 이순신이 막는다.-
앞으로 그가 한국축구를 위기에서 구하고,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선 겪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아직 기회는 있으니까.’
이순신은 무리하게 공격에 나서지 않았다.
스페인은 속도가 빠른 팀.
역습을 허용하게 되면 골을 먹힐 가능성이 너무나도 컸다.
그저 그들의 체력이 떨어지길 기다릴 뿐이었다.
“스페인이 점유율을 64%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밀리는 경기 양상이 이어졌다.
간혹 장승빈, 손민흥 등이 슛을 쐈지만, 유효슈팅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오. 답답해!”
답답한 건 경기를 뛰는 선수들도,
안태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대한민국의 작전이었다.
전반 30분이 지났을 시점부터 스페인의 공격이 무뎌졌다.
스페인 함대에 난 조그마한 구멍에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자, 아모르가 짜증 냈다.
“됐다!”
스페인의 공격은 불협화음이 이어졌다.
아모르, 오야르, 페도라의 타이밍이 살짝 어긋났다.
“됐어!”
안태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젠장!”
아모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천재라 불려도 아직 어린 선수였다.
천성적으로 타고났던가, 세상에 대한 이치를 깨닫지 않는 이상 어린애 같은 성품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17살 아모르 파티. 바르샤 1군 계약.-
심지어 젊은 나이에 성공의 맛을 보고 세속에 찌든 그는 현실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왜 안 뚫리는 거야!”
“…”
임단결은 깔끔한 태클로 아모르가 가진 공을 밖으로 내보냈다.
‘아직도 날 안 보네.’
임단결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누군지 알 때까지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보여줄 생각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페도라의 공격을 이순신이 차단하는 중이었다.
페도라가 화려한 개인기로 돌파를 시도했지만, 이순신은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휴-”
페도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되지?’
컨디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피로도는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한창 주가를 올리며 뛰어난 유망주로 평가받는 그였지만, 잦은 차출로 체력이 점차 떨어졌다.
본인은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체. 력. 소. 모.
혹사당한 상태에 점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배터리 메모리 현상이었다.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하지 않고, 70~80% 정도만 충전하는 상태가 잦아지면,
완충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충전해도 70~80%를 최대치로 인식하는 현상이었다.
더군다나 아르헨티나 전에서 생긴 후유증을 1~2경기 만에 회복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순신 선수! 페도라 선수를 밀착 마크합니다!”
이순신이 페도라를 거칠게 다뤘다.
“페도라 선수 안간힘을 써보지만, 이순신 선수가 한 발짝 빠릅니다. 역부족입니다.”
페도라의 체격으로는 맞붙어봐야 이순신에게 번번이 밀렸다.
속도의 차이로 극복하고자 했지만,
이순신에게 속도, 힘 모두 밀렸다.
‘왜 내가 여기서 엘 클라시코 같은 긴장감을 느끼는 거지?’
페도라와 아모르는 그렇게 4부 리그 선수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두 선수는 무리한 공격을 시도했다.
“여기야. 패스!”
오야르가 빈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도라는 직접 돌파를 선택했다.
촤아아악!
이순신이 미끄러지면서 슬라이딩태클로 공을 뺏었다.
“이순신 선수 달립니다!”
이순신이 상대편 진영에 있는 골대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고.’
스페인 중앙미드필더진이 이순신을 포위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우직하게 두 선수를 뚫고 지나갔다.
무적함대라 불리던 스페인이 거북선이란 철갑선에 부딪혀서 침몰 직전이었다.
“이순신 선수. 단숨에 두 명을 제쳤습니다!”
전방에 있던 이광인과 이순신의 눈빛이 마주쳤다.
이순신이 짧게 패스를 건넸다.
다급한 스페인 수비수가 재빨리 이광인에게 따라붙었다.
“하나. 둘. 셋…”
이광인은 침착하게 상대편의 보폭을 세었다.
툭!
상대편의 키를 훌쩍 넘기는 로빙패스.
수비수가 재빨리 몸을 돌렸지만,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
바로 뒤에서 이순신이 서 있었다.
“멋진 패스가 나왔습니다! 이순신 선수가 공을 받았는데요. 슛을 쏠까요?”
이순신이 발을 뒤로 젖혔다.
“슛이다!”
스페인 선수들은 잔뜩 긴장했다.
골키퍼인 베드로도 이순신이 강력한 중거리 슛을 자주 날린다는 걸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
‘오늘 저 녀석이 한 번도 슈팅을 때리지 않았단 말이지.’
이순신의 발이 공에 닿기 직전 멈췄다!
스페인 선수들이 움찔했다.
완벽한 슛 페이크 동작이었다.
“아. 젠장!”
스페인 선수들의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순신은 전방을 향해 패스했다.
장승빈이 아닌 손민흥을 향한 패스였다!
“손민흥 선수 헤딩슛!”
툭!
‘아…’
베드로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손민흥이 너무나 좋은 위치에 서 있었다.
아주 살짝 방향을 틀어서 이마에 맞은 공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선제골! 대한민국이 선제골을 넣습니다!”
“우와아아! 믿고 있었다고!”
손민흥의 골이 관중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는 두 손가락을 사용해서 관중들을 향해 찰칵 세레머니를 펼쳤다.
그리고 달려오는 선수들 사이에서 이순신을 발견했다.
“재밌는 녀석. 나이스 패스였다.”
“나이스 마무리였습니다!”
손민흥과 이순신은 서로 찰칵 찍더니,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