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00화 (101/161)

100화. 바르셀로나 vs 바로셀로나

“그게 뭐야. 순신아? 씁! 혼자만 알지 말고!”

김혁규가 도끼눈을 치켜들었다.

“열심히 하자. 축구를 사랑하자. 축구공의 목소리를 들어봐. 이러면 너 변사체 된다.”

이기지의 말에 갑자기 장르가 느와르로 바뀌었다.

이순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른 선수들은 한 경기를 보고 파악했지만, 이순신은 이미 시뮬레이션을 사용해서 여러 번 사용해서 파악했다.

“스페인 공격수들은 확실히 빨라요. 그런데 피지컬이 받쳐주지 않는 거 같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이광인이 씨익 웃었다.

그제야 이해했다.

“경기화면을 다시 돌려보자.”

손민흥에 말에 영상을 처음으로 돌렸다.

확실히 이순신이 말한 대로였다.

스포츠에서 신체적인 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어도, 키를 늘리는 건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체적인 능력을 극복한 메시가 대단한 것이고, 신체적인 능력을 극대화한 즐라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래. 맞아. 내가 찾은 것도 그거야.”

영국 프리미어는 다른 리그보다 거칠기로 유명했다.

손민흥이 영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서 근육을 늘리는 거였다.

“거칠게 다뤄라.”

손민흥이 말했다.

그렇다고 반칙을 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면 기회는 온다.”

기회라는 말에 선수들은 이를 꽉 깨물었다.

“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축구와 인생의 공통점이라면 몇 번의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

토너먼트는 참으로 잔인한 규칙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그 앞에 있던 모든 것을 무너트렸다.

“축구도 야구처럼 했으면 좋겠다.”

일본이 야구만큼은 어떻게든 우승시키고 싶어서 만든 이 토너먼트는 어쩌면 지금 축구대표팀에 가장 필요한 제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축구의 토너먼트는 더욱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마침내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8강전의 날이 밝았다.

약간 덥긴 했지만, 뛰기엔 좋은 날씨였다.

“좋았어.”

손민흥은 점프를 뛰었다.

통증은 전혀 없었다.

부상에서 말끔히 회복됐다.

그는 이순신에게 고마웠다.

‘이대로만 잘 성장한다면 차기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될 수도 있겠어.’

이집트전에서 팀을 잘 이끌어줬기 때문이었다.

손민흥은 실력에 비해서 유독 트로피와 인연이 없었다.

특히나 올림픽은 그에게 애증의 대상이자 이번 대회가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만큼은 꼭.’

후배들이 앞길과 개인의 명예.

그는 두 가지의 토끼를 모두 잡아보자고 다짐했다.

양 팀 선수들은 각자의 진영에서 공을 차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상당히 볼만하겠는데요?”

“그렇습니다. 특히 양 팀 다 스페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많아서 중앙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됩니다.”

해설자와 캐스터가 꺼진 카메라 앞에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건넸다.

손민흥을 중심으로 해서 이광인, 이순신, 주우현으로 이어지는 스타팅 멤버는 곧바로 국가대표팀으로 이식하고 싶을 정도로 든든했다.

경기장에서 가장 활발한 건 양 팀 통틀어 가장 어린 아모르였다.

그는 토끼처럼 이곳저곳을 뛰다가 한국 대표 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옆에 있는 동료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페도라. 쟤가 올라야?”

페도라가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은 가볍게 볼 트레핑을 하고 있었다.

“와- 나 실제로는 처음 봐.”

“나도 그래. 덩치가 미쳤네. 확실히 코치들이 아까워할 만해.”

올라는 이순신이 스페인 귀화를 한다고 했을 때 사용했던 이름이었다.

그때보다 좀 더 체격이 다부졌다.

이순신에 비하면 두 사람은 완전히 멸치 수준이었다.

‘젠장.’

아모르와 페도라는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두 사람이 열등감을 느낀 포인트는 단순히 피지컬 때문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코치들이 계속 이순신을 언급하는 게 짜증 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코치들이 하는 대화를 듣게 됐다.

-올해는 하나같이 쓸만한 녀석들이 없어. 대충 한두 명 빼고는 다 방출될 거 같다. 휴.-

-그러고 보니 올라는 요즘 뭐한데?-

-올라가 진짜 아깝긴 했지.-

-타고나기는 최곤데 운이 없었어.-

-그치. 내가 볼 땐 자신감 부족 아니었을까 싶어.-

-그런 선수가 어디 한 둘인가?-

-그래도 난 아직 그만한 재능을 보진 못했어. 아모르가 바르셀로나의 미래라고 불려도 올라에겐 안 될걸?-

-하하하. 이 친구들 소식이 매우 늦는군. 올라는 이미 스페인에 복귀했다고.-

-진짜? 그 정도 재능이면 최소한 셀타비고나 마요르카 같은 팀에는 들어갔겠지?-

-아니. 지금은 5부리그에서 뛰고 있다는군.-

-미친 거 아냐?-

아모르와 페도라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올라가 누구길래?’

그들이 올라가 이순신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올림픽에 참가하고부터였다.

꿈FC가 국왕컵에서 우승했을 때 그들은 근처 클럽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진즉에 탈락했기에 관심 밖이었다.

훗날 꿈FC가 유로파 리그 출전으로 시끄러울 때도 딱히 관심은 없었다.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팀? 그런데 외국인도 꽤 많네?

이 정도일 뿐이었다.

“방심하지 말자. 코치들이 인정한 역대급 재능이니까.”

“물론이지. 하지만 최고는 결국 우리가 될 거야. 우린 올라가 해내지 못한 바르셀로나 1군 주전 맴버라고.”

바르셀로나 1군이라면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그래도 경기전에 인사라도 해둘까?”

“그러자.”

두 사람은 씨익 웃었다.

아모르와 페도라는 한국팀 진영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올라!”

그들은 손을 흔들며 해맑게 이순신을 불렀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미 그 이름은 버린 지 오래.

이순신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뭐야. 우리 지금 무시당한 거 맞지?”

아모르는 살짝 화가 치밀었다.

페도라는 잠시 생각했다.

“순신!”

그제야 이순신이 고개를 돌렸다.

“쟤네들이 날 왜 부르지?”

“일단 가 봐. 뭐라고 하는지 듣고 와.”

손민흥이 이순신의 등을 토닥였다.

“알겠습니다.”

이순신이 아모르와 페도라를 향해 걸어갔다.

“무슨 일이지?”

“와- 유창한 에스파냐어.”

“반가워. 우리도 바르샤 출신이야. 하도 코치들한테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인사나 하러 왔다.”

페도라가 손을 내밀었다.

이순신도 손을 내밀었다.

분위기는 아직까지 훈훈했다.

“나중에 시간 되면 누캄프에 놀러와. 아니지. 아예 약속을 잡자. 올림픽 끝나고 보자.”

“우리가 잘 아는 클럽이 있거든. 같이 놀자!”

“클럽은 딱히 관심이 없어서.”

이순신은 단박에 거절했다.

“너무하네!”

그들은 여유롭게 이순신과 대화를 이어갔다.

“쟤도 스페인에서 뛰지?”

두 사람은 이순신 등 뒤에 있는 이광인을 발견했다.

“응. 부를까?”

“아냐. 됐어.”

두 사람은 딱히 이광인과 인사를 하지 않았다.

같은 리그에서 뛰고 있긴 하지만 친분이 없었다.

“아모르!”

저 멀리서 임단결이 달려왔다.

정작 아모르는 갸우뚱했다.

“누구지?”

“나야. 단결.”

아모르는 씨익 웃었다.

“만나서 반가워. 사인은 경기 끝나고 해줄게.”

아모르와 페도라는 웃으며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순간 임단결의 얼굴이 붉어졌다.

철저한 개무시.

자존심이 살짝 뭉개졌다.

다행히 주변에 다른 선수들이 없었다.

아모르는 어릴 적 임단결과 잠깐 뛴 적은 있지만, 정작 그는 임단결을 기억하지 못했다.

SNS 맞팔을 맺어준 것도 아모르는 누캄프에서 찍은 훈련 사진만 있으면 다 맺어줬다.

그런 임단결을 이순신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오히려 선수들의 질투 섞인 반응이 더 민망하게 만들었다.

“어얼~ 바르샤끼리 다 해 먹는 건가요?”

“이거 바르셀로나 출신 아니면 서러워서 살겠나!”

선수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농담을 던졌다.

임단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임단결을 위로해주는 건 이순신이었다.

“단결아. 오늘 네가 누군지 확실히 새겨주면 돼.”

이순신의 말에 임단결은 가슴이 불타올랐다.

***

삐이익-

스페인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4-3-3 전술을 쓰는 스페인은 최전방에 준수한 공격수가 배치됐다.

그의 역할은 골을 직접적으로 노리기보다는 좌우에 있는 아모르와 오야르에게 공을 배급하는 포스트 플레이였다.

오야르와 아모르.

두 선수 모두 스피드가 상당히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특히 아모르는 신이 났다.

“달리자!”

툭툭.

아모르는 공을 치고 나갔다.

그는 폭발적인 스피드로 치고 달리기를 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달리기는 윙어로서 준수한 편이지만, 그는 동료와의 연계를 더더욱 즐겼다.

그래서 더더욱 무서운 존재였다.

“아모르. 페도라와 2:1 패스!”

아모르와 페도라는 패스를 주고받은 후 대한민국의 수비를 가볍게 제쳤다.

하지만 임단결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 아까 봤던 선수구나.”

임단결이 눈을 부릅떴다.

‘너만큼은 내가 꼭 막는다!’

임단결이 찐득하게 붙었다.

“남자가 붙는 거 별론데.”

아모르는 임단결의 수비를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모르 선수. 순간적으로 치고 나갑니다!”

“아-”

임단결이 순간 집중력을 잃고 아모르의 움직임을 놓쳤다.

쿵!

“어?”

아모르가 놀랐다.

어깨에 엄청난 충격이 진동했다.

거대한 덤프트럭이 와서 치고 간 줄 알았다.

“임단결 선수를 도와주러 온 이순신 선수가 아모르를 밀어냅니다!”

아모르의 몸이 옆으로 퉁겨졌다.

너무나도 깔끔한 차징이었다.

“단결아. 정신 차리자!”

이순신이 낮은 어조로 말했다.

“아. 넵!”

임단결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와- 대단해!”

아모르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왜 코치들이 그토록 이순신을 칭찬했는지 알 거 같았다.

“야!”

임단결이 아모르를 불렀다.

“임단결. 내 이름이다. 외워둬라.”

아모르는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 이순신에게 향했다.

스페인의 스로인 공격이 이어졌고, 아모르와 페도라가 서로 공을 주고받았다.

티키타카.

“역시 패스는 죽인단 말이야.”

안태리는 벤치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삼각형 패스 플레이는 역시 스페인이 근본이었다.

아모르에서 페도라.

페도라에서 전방 공격수.

다시 아모르로 이어지는 패스.

수비수를 등지고 서 있는 아모르는 슛을 날렸다!

“아모르 선수의 슛이 골포스트 상단을 때립니다!”

아모르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스페인으로서는 매우 아쉬운 기회였다.

하지만 이순신과 손민흥은 확신이 들었다.

‘거칠게 밀어붙이면 기회가 온다.’

서로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대한민국의 골킥이 이어졌다.

주우현은 전방에 있는 이순신에게 패스했다.

“이순신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패스할 곳을 찾고 있는데요!”

이순신의 눈에 공을 달라는 손짓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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