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99화 (100/161)

99화. 아는 맛이 무섭다.

대한민국의 8강 상대는 무적함대라 불리는 스페인이었다.

여기서 이긴 팀이 브라질과 영국의 승자와 4강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분명 조1 위를 한 건 우린데 왜 조 2위로 진출한 거 같냐?”

“이럴 거면 이집트랑 비기는 게 나았던 거 같아.”

정대건과 장승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나도 그렇다. 졌지만 진 기분이 이런 걸까?”

주장인 손민흥도 착잡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조 1위 보상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온두라스와 멕시코가 조 1위로 통과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8강에서 온두라스를 만나면 지난 대회에서 당한 빚을 갚아줄 요량이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우리는 즐길 수 없다.”

손민흥의 말에 선수단의 분위기가 무거웠다.

와일드카드 세 명과 이순신을 제외하고는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에게는 추억이겠지만, 대한민국에는 인생 게임 그 자체였다.

런던 올림픽 때 일이었다.

8강전 상대가 개최국인 영국을 만났을 때 대한민국은 좌절했다.

영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가 모두 모인 완전체였다.

그만큼 우승 의지가 강렬했다.

그런데 이게 웬 열?

대한민국이 선제골을 넣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경기를 지배하는 건 영국이었다.

선제골을 넣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한민국은 페널티킥을 내줬다.

영국 관중들조차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야유를 보냈다.

한 골은 내줬지만, 두 번째 페널티킥은 막아냈다.

대한민국은 승부차기 끝에 영국을 잡아내고 4강전에서 브라질에게 졌다.

그리고 3.4위전에서 일본을 잡고 아름다운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때의 군 면제 받은 선수 중 일부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기여했다.

선수들에겐 인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스페인이라서 다행입니다.”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어린 선수들이라도 스페인은 스페인인데 그는 두려움이 없었다.

-대한민국 축구를 위기에서 구하라!-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었다.

건방짐? 자신감?

손민흥은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 말인즉슨 자신 있다는 거야?”

“그건 해봐야 알지만, 다른 나라보다 스페인이라면 저희가 잘 알죠.”

이순신이 자신감을 가질만했다.

최근에 스페인에서 뛴 시간만 2년, 그들의 템포, 사고방식은 너무나 익숙했다.

또한, 올림픽 대표 팀에는 이순신 한 명만 있는 게 아니었다.

“네. 그렇습니다. 저도 국왕컵에서 1부 리그 상대로 골을 넣어봤습니다!”

김혁규가 손을 들었다.

“저도 오래 살아봐서 잘 알아요!”

임단결도 손을 들었다.

“저도요!”

심지어 이광인은 1부 리그 팀에서 뛰고 있었다.

손민흥은 씨익 웃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자신이 은퇴하면 대한민국 대표 팀의 전력은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감이 넘치고 패기 있는 후배들을 보니 든든했다.

이들보다 스페인을 잘 아는 대한민국 선수는 적어도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해볼 만하겠는데?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 팀은 역대 최고의 팀이라는 것을!

“자 뭣들하고 있어? 인생 경기 준비하자.”

손민흥의 주도하에 선수들은 스페인에 대해서 분석했다.

선수들은 다 같이 모여서 스페인의 경기를 다시 분석했다.

“예선 1경기는 이란이다.”

“이란이면 쉽게 이겼겠네.”

대한민국에게도 이란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김혁규의 예상대로였다.

스페인은 이란을 4:0으로 이겼다.

“고작 4:0? 점수 차가 더 날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그 중심에는 3골을 넣은 ‘아모르파티’가 있었다.

아모르는 아프리카 태생이었지만, 스페인 국적을 취득했다.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으로서 바르셀로나 최연소 데뷔 골, 최연소 멀티 골, 챔피언스리그 최연소 득점, 스페인 국가대표 최연소 기록 등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녀석이 엄청나네.”

“플레이가 이우승하고 비슷한 거 같은데? 단결에 네 생각은 어때?”

“우승이 형보단 조금 더 크네요. 그런데 저 쟤랑 친해요. SNS 맞팔이에요.”

임단결이 핸드폰을 꺼내서 보여줬다.

“이 자식아! 지금 맞팔인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기지의 말에 임단결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모르…꽤나 골치 아프겠어요.”

“순신이의 피지컬과 녀석의 스피드 대결이 펼쳐지겠군.”

“난 순신이 형이 이긴다에 한 표! 저 형이 덩치에 비해서 진짜 빨라!”

장승빈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뭐? 덩치에 비해서?”

이순신이 장승빈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조심하자. 전형적인 천재형이라 시합에서는 어떤 포텐을 터트릴지 예상이 전혀 안 되니까.”

“그래도 광인이가 더 낫죠!”

이광인은 순신의 칭찬을 듣자 기분이 좋아졌다.

이란의 플레이에는 힘이 없었다.

비록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이순신의 눈에는 아직 대한민국에 당한 충격적인 패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아모르만 조심해서 될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이란에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흐름을 끊은 건 다름 아닌 골키퍼 베드로였다.

동물적인 반사 신경으로 이란의 골을 막아냈다.

무엇보다 그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세 번째 골키퍼이기도 했다.

비록 나이는 어릴지언정 언제라도 No. 1 골키퍼가 될 준비가 되어있었다.

또한, 빌드업이 뛰어나서 전방에 있는 공격수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데 능숙했다.

다만, 근래에는 기대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복이 상당히 심한 편이었는데 이란전에서는 스페인 수문장의 위엄을 여실히 보여줬다.

경기를 보면 볼수록 대표 팀 선수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 외에도 잘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정말 저게 23살짜리 선수들이 맞는가?

“쟤네 와일드카드가 10장 있는 거 아냐?”

주우현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만큼 스페인의 공격력은 엄청났고, 축구는 노련했다.

마치 대항해시대에 활약하는 무적의 스페인 함대를 보는 듯했다.

“주현이 형. 중거리 슛 먹히면 바로 멘탈 털리겠는데?”

“이 자식들아! 절대 아니라고 말 못 하겠다!”

주우현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싶었다.

“그런데 온두라스가 아르헨티나랑 비긴 거 실화야?”

“오히려 이쪽 경기를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상식적으로는 엄청난 전력 차이가 있는 두 나라였다.

선수들은 의외의 결과를 낸 온두라스의 경기가 궁금했다.

“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어떻게 0:0을 기록한 거지? 미쳤네.”

월드컵에서 이란은 침대 축구를 펼쳤어도 메시에게 골을 허용했다.

손민흥도 그동안의 경험을 미루어 비추어보면 최소 1골은 허용할 각오를 해야 했다.

그 어려운 걸 온두라스가 해냈다.

물론 위기가 몇 번 있었지만, 행운의 여신은 결국 온두라스의 편을 들어줬다.

“이래서 팀워크가 중요한 거다. 온두라스에는 스타플레이어가 없지만, 팀이 똘똘 뭉쳤으니까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거야.”

“알겠습니다!”

손민흥은 지난날 올림픽에서 온두라스에게 패배하여 4강 진출을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결코 얕볼 수 없었다.

“일본도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노력해야겠네.”

“최고의 시나리오 중 하난데.”

다른 나라에는 다 져도 일본엔 지면 안 된다는 이 세대에게도 통했다.

두 번째 매치는 스페인 vs 아르헨티나였다.

“볼만하겠어! 누가 팝콘 좀 가져와 봐!”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경기였다.

이름만 들어도 우승 후보인 두 나라였다.

아르헨티나로서는 꼭 승리가 필요했다.

결승전이라고 생각하고 최정예를 내보냈다.

“골이 엄청 터졌네요?”

“화끈해서 보기 좋네.”

현재까지 스코어는 무려 4:4였다.

한 골을 먹히면 곧바로 동점 골을 넣었고, 역전 골을 넣으면 곧바로 따라잡았다.

초반에 안정적인 선방을 보여줬던 베드로가 3실점을 넘어가니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기의 종지부를 찍은 건 오야르와 페도라였다.

겉늙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그는 엄연한 23살의 공격수였다.

하지만 플레이는 33살의 공격수처럼 노련했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고 있는 그는 스페인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불렸다.

특히 그의 장점은 탁월한 위치선정이었다.

윙어이면서도 골을 자주 넣었기 때문에 내버려 둔다면 대한민국은 큰 낭패를 볼 게 불 보듯 뻔했다.

여기에 아모르와 함께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페도라는 요주의 인물 1순위였다.

페도라도 아직 20살이 안 된 어린 선수였다.

그런데도 바르셀로나 1군에서 뛴다는 건 재능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는 뜻이었다.

“스페인의 모든 공격의 중심에는 이 녀석이 있다.”

그렇기에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기대되는 선수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이광인은 그의 영상을 보자 침을 삼켰다.

같은 테크니션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과 나의 차이가 뭘까?’

이광인은 경기장에서 빨리 맞붙어 보고 싶었다.

2번째 경기가 끝난 시점에 스페인은 2승으로 승점 6점, 아르헨티나는 1무 1패로 승점 1점. 조 3위를 기록했다.

온두라스는 이란을 1:0으로 잡으며 단숨에 조 2위로 올랐다.

마지막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이란을 꼭 잡아야만 했다.

“3전 전패는 안 된다!”

하지만 이란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스페인전에서 힘을 다 쏟은 아르헨티나와 결국 0:0으로 비겼다.

여기에 온두라스가 스페인을 1:0으로 이기는 파란을 일으켰다.

얼떨결에 온두라스가 2승 1무로 조1위가 됐다.

“와씨- 어떻게 잡은 거야?”

대한민국 선수들은 눈이 뒤집혔다.

하지만 실상은 온두라스가 잘했다기보다는 스페인이 못했다.

“스페인은 어차피 진출 확정해서 그런지 주전을 다 쉬게 했네.”

“그 말인즉슨 8강전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나온다는 뜻이고.”

아무래도 아르헨티나전의 여파가 있었다.

아모르와 페도라는 어린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팀에서 1군으로 뛸 정도로 중용됐다.

하지만 그 선수들의 체력이 온전하다면 그것은 분명 도핑이었다.

소식 팀의 요청이 있기도 해서 감독은 그들에게 3번째 경기에서 휴식을 준 것이다.

“민흥이 형. 우리가 정말 스페인을 이길 수 있을까요?”

장승빈이 물었다.

“당연하지. 너네도 충분히 잘해!”

손민흥이 주장답게 팀원들을 다독였다.

선수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반반씩 섞였다.

“경기 보니까 어때? 강점도 있지만, 의외로 약점도 분명한 팀이다.”

손민흥은 해법을 찾은 듯했다.

“뭔데요?”

“스스로 생각해봐!”

답답해 미치겠다 싶은 선수들의 표정을 보며 손흥민은 재미난 듯 웃었다.

“저도 발견했습니다!”

“그래?”

모두의 시선이 이순신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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