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98화 (99/161)

98화. 아쉬운 경기

삐이이익-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관중들이 모두 일어났다.

공이 페널티에어리어 안에 있을 때 사고가 터졌다.

독일 선수가 회심의 슛을 찼을 때,

이순신과 함께 센터백 라인에 섰던 수비수가 움츠렸다.

그런데 하필 맞은 곳이 영 좋지 못했다.

엉덩이를 가린 못된 손바닥에 공이 닿았다.

“아 한국 수비수 손에 공이 닿았습니다. 페널티킥을 허용합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기에 선수들도, 관중들도 멍했다.

로드 버튼이 있다면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실전.

결코, 게임이 아니었다.

“미…미안해.”

동료 센터백은 머리를 부여잡고 자책했다.

이순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아-”

경기장에는 아쉬워하는 볼멘소리가 가득했다.

많은 비난이 해당 선수에게 쏟아졌다.

다 이긴 경기를 자신의 실수로 놓칠 위기에 처했기에 너무나 괴로워했다.

‘주장 완장만 있었다면 노이즈 캔슬링을 발동시킬 텐데…’

이순신은 괜히 비어있는 팔뚝을 어루만졌다.

“후웁.”

“너만 믿는다!”

동료들의 응원을 듬뿍 받은 독일 선수는 페널티킥을 차기 위해 공을 내려놨다.

이순신은 간절히 빌었다.

‘제발…’

주우현은 이번 경기에서 몇 차례나 슈퍼 세이브를 보여줬다.

심지어 페널티킥에

“독일 선수 찹니다!”

뻥!

주우현이 90분 내내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졌다.

“골입니다! 경기 막판에 독일의 극적인 페널티킥으로 1:1 무승부를 만들어냅니다.”

주우현은 안타까운지 주먹으로 땅을 후려쳤다.

“후-”

안태리도 눈을 감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의 킥오프를 했지만, 결과를 바꾸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이 독일과 통한의 무승부를 거둡니다.”

선수들의 얼굴에도 실망감이 가득했다.

예전에 독일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강호 독일과의 무승부는 분명히 좋은 성과였지만, 선수들의 기분은 이미 진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안태리는 괜찮다고 말해주진 않았다.

“얼른 털고 일어서라. 그래야 8강전 뛰지.”

안태리는 그를 책망하기보다는 그에게 기회를 주며 위로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앗.”

손민흥이 의료진으로부터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상태가 어때요?”

“심각하진 않지만, 다음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감독님. 이 정도는 뛸 수 있습니다.”

손민흥이 강력한 출전 의지를 드러냈다.

사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순간부터 손민흥은 소속팀과 대표 팀을 오가면서 혹사당했다.

체력 훈련을 게을리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 존재했다.

“다음 경기에서 민흥이는 쉰다.”

“감독님. 뛸 수 있습니다! 이집트는 만만치 않은 팀이라고요!”

“나도 안다. 하지만 8강 4강에서 만날 팀들은 더 강한 팀들이다. 그때 우리는 네가 필요하다. 그러니 동료들을 믿어봐라.”

으득.

손민흥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끌어가야 할 시점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벤치를 지키는 것뿐이란 사실이 분했다.

***

대한민국은 바누아투와 이집트 결과를 확인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지 않을까?

바누아투가 사상 첫 무승부나 승리를 지금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헛된 기대였다.

7:0.

이집트의 승리였다.

각 조 두 번째 경기가 끝났다.

대한민국 1승 1무 골 득실차+10 승점 4점,

이집트 1승 1무 골 득실차+7점 승점 4점,

독일 2무 골 득실차 0점, 승점 2점,

바누아투 2패 골 득실차 –17점, 승점 0점이었다.

한국이 조 1위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안심할 순 없었다.

언론은 또다시 경우의 수를 꺼내 들었다.

독일이 바누아투에게 비기거나 질리는 매우 희박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독일은 승점 5점을 확보하게 된다.

사실상 대한민국은 비기기만 해도 조 2위로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지게 된다면 대한민국과 이집트는 무조건 떨어지는 개 같은 상황이 됐다.

특히 대한민국으로서는 너무나 아까울 법도 했다.

조 1위에서 조3위로 추락하는 건 정신적 데미지를 넘어서 트라우마로 남을 가능성이 컸다.

안태리는 선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다.

“이집트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된다. 그래야 될까?”

“아닙니다!”

모두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이순신이 빠르게 대답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무조건 이기자. 독일이 바누아투를 20 : 0 으로 이기든 30 : 0으로 이기든 우리는 조 1위로 진출하자!”

안태리가 조용히 두 사람을 불렀다.

“이순신, 이광인 이집트전에 임하는 소감을 말해봐라.”

우선 이광인이 대답했다.

“골을 넣을 것입니다.”

대충 수비만 하자고 비기자는 뜻이 아니라 공격 축구를 해서 이기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들 이순신을 쳐다보았다.

“los que estén dispuestos a morir vivirán,

y los dispuestos a vivir,

morirá.”

갑작스러운 스페인어에 선수들은 당혹했다.

이광인, 임단결, 김혁규만이 가슴이 뭉클해졌다.

“뭐야? 뭔 말이야?”

안태리가 물었다.

“비기고자 하면 질 것이고, 이기고자 해야만 이길 것이란 뜻입니다.”

사실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는 말을 스페인어로 말했는데, 꽤 많은 의역이 들어갔다.

안태리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더니 주장 완장을 이순신의 팔에 채워줬다.

“이번 경기에서 주장은 이순신이다.”

[주장 완장 효과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잘 부탁한다.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은 네 손에 달렸다.”

손민흥이 이순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순신이 형. 잘 부탁해요!”

이광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순신이라면 믿고 따를 수 있었다.

임단결, 김혁규도 당연했다.

골키퍼인 주우현도 힘을 실어줬다.

단, 한 사람.

정대건은 이순신이 주장을 맡자 떨떠름했다.

‘공격 욕심을 너무 내는 거 같은데…’

현재 이순신은 4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정대건이 생각하기에는 수비수가 이렇게 골을 많이 넣어도 되나 싶었다.

***

이집트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모하메드는 각오가 남달랐다.

“이순신. 저번에 당한 빚을 갚아주마!”

이집트의 함대가 끊임없이 이순신이 지휘하는 함대를 향해 대포처럼 연신 슛을 쐈다.

“자리 지켜!”

이순신은 침착하게 수비를 지휘했다.

쉽사리 골을 내주지 않았다.

적어도 이집트의 공격력보다는 대한민국의 방어력이 훨씬 높았다.

초조하고 아쉬운 건 이집트였다.

이대로 비기면 탈락이 확정이었다.

“측면. 측면으로 가자!”

이집트 감독은 선수들에게 측면 공격을 지시했다.

‘나쁘진 않은 전략이야.’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측면에 공격적인 풀백들이 배치됐기에 수비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었다.

“이기지 선수. 따라붙지만 뚫립니다.”

“이집트의 크로스!”

“모하메드와 이순신의 공중 경합!”

“크흑!”

땅에 착지한 모하메드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이순신 선수. 달립니다!”

모하메드는 달려가는 이순신을 보고 자신의 진영으로 복귀했다.

‘저 자식 안 본 사이에 더 늘었어.’

모하메드는 절망했다.

이탈리아 1부 리그에서 항상 최고의 수준을 유지했다.

4부 리그 선수한테 털리는 건 도무지 자존심이 용납되지 않았다.

“거기서!”

모하메드는 엄청난 속도를 내며 전력 질주했다.

이순신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

‘조금만 더!’

하지만 하프 라인을 넘자 이순신과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멈춰!’

모하메드가 절망적으로 손을 뻗었다.

무심하게도 이순신은 그냥 지나쳤다.

[지자포를 사용했습니다.]

이순신은 페널티에어리어 직전에서 슛을 쐈다!

[도깨비 슛이 발동했습니다.]

휘리리릭!

이순신의 슛이 날아가다가 모습을 감췄다.

이집트의 수비수도, 골키퍼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한 박자 늦게 골망에 꽂힌 공을 바라만 봐야 했다.

“대한민국이 1: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관중들이 이순신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이순신이 멋진 세레머니를 하고 진영으로 돌아갔다.

분노에 찬 모하메드가 말했다.

“기다려라. 금방 따라갈 테니까.”

1:0은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스코어였다.

“얼마든지. 기다릴게.”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이집트의 공격이 아까보다 날카로웠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창이 더 날카로웠다.

정대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순신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임단결로 이어지는 패스는 매끄러웠고,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

“정대건 선수 슛!”

“들어갑니다! 독일에서 뛰는 정대건이 전반 40분. 추가 골을 넣습니다!”

이기지의 크로스를 받은 김혁규는 후반 10분에 오른발 인사이드 로 침착하게 넣었다.

이광인은 후반 15분에 자신이 얻은 왼발 프리킥으로 골을 넣었다.

“4:0!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이 눈앞입니다!”

4:0은 뒤집기에는 어려운 스코어였다.

모하메드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가 경기장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은 분함을 느끼는 것뿐이었다.

“한국 팀은 이순신 선수를 빼는군요.”

“아-”

최전방의 손민흥, 후방에 이순신이 빠졌다.

이순신은 주장 완장을 이광인에게 넘겼다.

그럼에도 한국 팀의 골문은 단단했다.

“모하메드의 슛!”

“주우현 선수가 잡아냅니다.”

주우현은 모하메드를 향해 씨익 웃었다.

“저 자식이!”

모하메드가 무너진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이순신의 원맨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결코 이순신의 원맨팀이 아니었다.

이순신이 아니어도 골문을 지킬 선수들이 있었고,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가 즐비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강했다.

오히려 수세에 몰린 건 이집트였다.

이집트의 수비수들이 이광인을 잡으려고 했으나 탈압박은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저 자식 신발 좀 확인해봐야 하는 거 아냐? 발바닥에 접착제를 붙인 거 같아!’

이광인은 씨익 웃으며 마음껏 개인기를 펼쳤다.

다만, 이집트를 수호하는 신이 고이 살피어 추가 실점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기 끝납니다! 대한민국이 조 1위로 8강에 진출합니다!”

“이제 단 한 걸음! 메달이 눈앞에 있습니다!”

언론이 또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설레발을 치자 안태리는 심히 불쾌했다.

하지만 최고의 경기를 펼친 선수들의 흥분을 조금도 가라앉히고 싶지는 않았다.

‘귀여운 녀석들 마음껏 즐겨라!’

안태리는 선수들이 이룬 값진 성과를 인정했다.

선수들은 그날 밤.

예선전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행복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야. 대진 운 실화냐?”

“그러게. 이거 잘하면 일본하고 결승전을 하겠는데?”

“주최 측의 농간인가?”

선수들은 8강전 조 편성을 보고 기겁했다.

조2위로 올라간 일본은 반대편에 있었다.

다만 8강전이 온두라스. 4강전이 멕시코와 독일의 승자였다.

대한민국이 속한 그룹에는 브라질, 영국, 그리고 스페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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