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국왕의 축포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AT가 일방적으로 골 폭격을 퍼부을 거 같았다.
하지만 꿈FC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소극적으로 수비만으로 맞서다가 역습, 페널티킥에서 승부를 볼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한 대를 맞으니 곧바로 주먹을 날려서 반격했고,
4부 리그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어느덧 스코어는 2:2가 됐다.
화끈한 골 폭죽!
팬들은 이미 흥분상태였다.
“누가 마드리드 더비가 아니라서 아쉽대?”
“그렇지! 이게 축구지!”
“타올라라. 꿈FC. 더! 더! 더!”
“꿈FC 그래픽은 사선, 천장 뚫기 직전!”
팬들의 응원을 받은 꿈FC는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흥.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주마.”
그리즐도 승부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순신 선수! 그리즐 선수와 맞붙습니다!”
그리즐이 수비를 벗어나기 위해 돌파를 시도했다.
“빈틈!”
그리즐이 재빠르게 빈 공간을 파고들었다.
촤아악!
하지만 이순신이 깔끔한 태클로 공을 빼앗아냈다.
“꿈FC! 빠르게 역습을 시도합니다!”
그리즐은 어이가 없었다.
‘한 번 정도는 우연. 하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아.’
이순신은 그리즐의 속마음을 들었는지 동료에게 주는 패스도,
빈 공간을 침투하는 돌파도 모두 막아냈다.
“그리즐 선수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이 그리즐을 묶어놓는 것만으로도 AT 마드리드의 공격력이 반 토막 났다.
‘이 노란 똥개 새끼가!’
그리즐은 경기가 안 풀리자 속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
예전에도 한 번 주의를 받은 적이 있어서 차마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즐의 기량이 하락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현재도 일류 공격수 중 하나였으며, 프랑스 대표 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다만 이순신이 자신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즐의 약점은 오른발이다!’
오른쪽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이렇게 불균형을 가진 선수는 쌍룡검 효과로 인해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이순신에게는 상대하기 훨씬 쉬웠다.
젊었을 때는 워낙 왼발의 스페셜리스트라 단점이 장점에 가렸지만, 세월을 속이진 못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리즐은 현재 자신이 이순신을 뚫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내겐 동료들이 있다.’
그리즐은 이순신이 따라붙기 전에 재빨리 패스를 돌렸다.
굳이 자기가 아니어도 팀에서 골을 넣어줄 선수가 둘이나 있었다.
공을 받은 꼬레아는 측면으로 빠진 후 크로스를 올렸다.
이순신과 아레스가 동시에 뛰어올랐다.
“아레스의 헤딩슛!”
“고오오올!”
이순신은 환호하는 아레스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걸 어떻게 막아.”
이순신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레스의 골로 다시 AT 마드리드가 앞서가나 싶었을 때,
세레머니를 하던 아레스가 멈추고, 도리어 심판에게 화를 냈다.
주심이 골을 인정하지 않았다.
“뭐야! 너 미쳤어?”
아레스는 심판에게 화를 냈다.
심판이 손을 툭툭 쳤다.
아레스가 헤딩이 아니라 손으로 넣었다는 뜻이었다.
리플레이를 봐도 명확한 아레스의 핸들링 반칙!
아레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인 뒤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아레스 선수가 경고를 받습니다. 역시 신의 손답군요!”
남미 선수의 특징일까? 아니면 아레스의 일탈일까?
아레스는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비 진영으로 복귀했다.
“우우우- 똑바로 해라.”
[자이언트 킬링의 효과가 일시적으로 증폭됩니다.]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변수였다!
‘기회다! 물살이 바뀌기 전에 한 골 넣고 오자!’
이순신은 역습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꿈FC 선수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측면을 이용한 돌파!
중앙에 있는 상대 수비수를 끌어낸 후 페널티에어리어 밖에서 이순신이 기회를 엿봤다.
“오진성 선수. 그대로 패스!”
“이순신 선수가 공을 잡습니다!”
[지자포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의 슛이 골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오브라 선수 펀칭!”
이순신의 슛은 안타깝게도 막혔지만,
흘러나온 공을 윤광섭이 그대로 때렸다!
“고오오올!”
“꿈FC의 윤광섭 선수가 역전 골을 성공합니다!”
“우와아!”
윤광섭은 기쁨의 세레머니를 펼쳤다.
음악방송 1등 할 때보다도 더더욱 기뻤다.
또한,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는 오프사이드로 골이 취소되었는데, 그 보상이라도 받은 듯 아쉬움을 단번에 날리는 골이었다.
“남은 경기는 10분!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꿈FC가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게 됩니다!”
남은 경기 시간은 10분.
이순신이 은근 기대하는 게 있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이순신이 분석한 바로는 ‘경기 종료 10분 전’에 발동한다는 것이다.
로스타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상관없었다.
그런데 발동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 발동을 안 한다?’
여기에 이순신은 한 가지 더 가설을 세웠다.
‘팀이 지고 있을 때 발동을 하는 거 같다.’
[충무공이 헛기침을 합니다.]
‘찾았다.’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그렇다면 오늘 경기에서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5분.
끝까지 집중력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AT 마드리드는 강팀이었다.
그리즐의 패스를 받은 아레스가 우직하게 슈팅을 때렸다.
철렁!
손으로 넣은 것도 아니고, 반칙으로 넣은 것도 아니었다.
“아레스 선수 골! 역시 월드 클라스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이순신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위치선정과 타이밍도 완벽했다.
아레스가 슛을 넣을 확률은 고작 5%.
그걸 뚫은 것이다!
어쨌든 스코어는 3:3이 됐다.
남은 시간은 3분.
추가시간을 포함하면 대충 5분 정도 남았을 것이다.
“하아-하아-”
꿈FC 선수들의 숨이 거칠어졌다.
한계에 도달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도 필사즉생을 발동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부러 한 골 더 먹히는 것도 이상하니…’
이순신은 깨달았다.
그 스킬은 이기기 위한 스킬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스킬이었음을.
강팀을 상대로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고 불사 지르는 나방 같은 스킬이었음을 말이다.
‘여기까지인가…’
경기를 지켜보던 이에로도 눈을 감았다.
현재 일정은 리그 막바지였다.
그동안 체력 훈련에 힘썼다고 해도 국왕컵의 활약으로 경기 수가 대폭 늘어났다.
솔직히 그조차도 결승전까지 오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결승전이 주는 압박감과 늘어난 경기 수로 꿈FC의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AT도 체력이 남아도는 건 아니었다.
리그전은 물론이고, 챔피언스리그를 치르고,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도 치렀다.
지금 시점에서는 체력적으로 양쪽 다 한계였다.
‘그래도 더블은 안 돼.’
이순신은 더블을 쓰지 않았다.
스팀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승전에 대한 아쉬움이 생길 수 있지만, 리그전도 치러야 했다.
그렇기에 이 경기에 모두 쏟아부을 수 있는 상황이 없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가 둘 다 놓칠 수 있으니.’
이순신의 마음은 승부차기로 기울었다.
그 순간이었다.
구오오오옹.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비가 오려나?”
“비 온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충무공이 엄청나게 화를 냅니다.]
천둥이 아니라 이순신이 화를 낸 소리였다.
‘뭐지? 갑자기 왜?’
충무공이 상대편 골대 뒤를 가리켰다.
마치 망원경을 낀 것처럼 눈앞에 생생했다.
“저건 아니지!”
이순신도 화가 났다.
아틀레티코 팬들이 몰래 욱일기를 꺼내는 걸 발견했다.
이순신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자 선수들이 쳐다봤다.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저걸 보고 화를 내지 않으면 대한민국사람이 아니지 않냐?”
“암! 그렇고말고.”
욱일기를 보자 꿈FC 선수들 중 한국계 선수들의 피가 끓어올랐다.
[일부 선수들의 투지가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신체적 능력치가 향상됩니다.]
갑자기 꿈 FC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지자 아레스가 당황했다.
“이 자식들 갑자기 왜 그래?”
아레스는 갑자기 약을 먹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약이 아니라 욱일기였다.
“우어엇!”
구멍은 지친 꼬레아를 날려버렸다.
하비는 전방에 있는 선수들에게 패스를 찔러줬고,
김혁규의 슈팅을 오브라가 가까스로 막아내면서 코너킥을 내줬다.
“오진성 서수. 코너킥을 올립니다!”
어차피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수비를 보던 임단결도 상대편 골대를 향해 달려왔다.
“임단결의 헤딩!”
퉁!
“아쉽게도 골이 튕겨져 나옵니다!”
[방패연을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골대를 맞고 나갈 뻔한 공을 방패연으로 살려냈다!
공은 이순신의 발에 정확히 맞았다.
[도깨비 슛이 발동했습니다.]
공을 잡기 위해 몸을 날린 오브라는 눈앞에서 공이 사라지자 당황했다.
철렁!
오브라의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간 공은 데구르르 굴러서 골망을 흔들었다.
“와! 이순신 선수가 마침내 역전 골을 넣었습니다!”
마침내 4:3 으로 꿈FC가 역전에 성공했다!
“조금만 버티자. 그럼 우리가 여기에 새로운 깃발을 꽂는다!”
“알았어!”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온 힘을 다해 버티고 버텼다.
아레스가 드리블을 치고 들어올 때 이순신이 태클을 했다.
[스페인 함대가 발동했습니다.]
이 경기의 백미는 최후의 1분이었다.
이순신이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태클 쇼를 펼쳤다.
과감하면서도 깔끔한 태클로, AT의 공격 기회를 모두 차단했다.
“이순신 선수. 저러다가 페널티킥을 허용하면 어쩌죠!”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멋지게 AT 마드리드의 공격을 차단했다.
삐이이익!
“끄…끝났다.”
관중들은 믿기지 않았다.
해설자도 믿기지 않았다.
경기를 본 사람들 전부가 믿기지 않았다.
“꾸… 꾸움 FC가 구단 역사상 최초로 코파 델 레이… 국왕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팡! 팡! 팡!
경기장에서 폭죽이 터졌다.
꿈FC는 여러모로 최초였다.
4부 리그 최초의 우승팀.
창단 후 최단기간 우승팀.
국왕컵 최초로 한국인 득점왕 이순신.
국왕컵 최초 MVP 이순신.
꿈FC 선수들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선수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네요.”
“그러게요.”
저 멀리서 지켜보던 임청수도 눈물을 흘렸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했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는데 노력은 결국 현실이 되어 보상으로 돌아왔다.
이순신은 트로피를 들고 관중들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트로피를 습득했습니다.]
[트로피 : 국왕의 축포]
[컵대회에서 강팀과 만났을 때 슛을 쏠 때마다 슛 성공률이 1% 증가합니다. (골 넣으면 초기화)]
‘1% 증가? 이 트로피의 핵심은 슈팅을 할수록 슈팅 성공률이 올라간다는 거구나!’
이렇게 되면 초반에 비격진천뢰의 확률이 낮을 때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보상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