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부활한 핵 이빨
운영진들은 얼음이 됐다.
“네? 농담이시죠?”
“당연하지!”
플레티스가 씨익 웃었다.
그는 이순신이 마음에 들었다.
그와는 별개로 동양에서 온 검증도 안 된 젊은 수비수에게 레알 마드리드라는 거대한 함선을 맡길 수 없었다.
“국왕컵이 끝나고 우리는 이순신에게 영입을 제안한다.”
이번엔 별다른 반대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 가치로 천억이면 오히려 싸게 영입한다고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곳에서 계속 왕 놀이에 심취해서 나오지 못한다면 딱 그 정도인 거지.”
플레티스 회장은 이순신을 다른 시점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
아틀레티코(AT) 마드리드.
엠블럼 디자인부터 강렬했다.
왼쪽에는 파란 삼각형이 있는데 그 안에 곰과 딸기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마드리드는 예부터 곰들이 자주 출몰하던 곰의 낙원이었다.
딸기는 곰들이 즐겨 먹던 간식이었다.
파란 삼각형 위로 하얀 별이 7개가 새겨졌다.
북두칠성을 표현한 것이었다.
파란색과 하얀색.
AT 마드리드의 초창기 유니폼 색이었다.
지금은 빨간색과 하얀색의 강렬한 줄무늬를 사용했다.
상징성을 가진 엠블럼.
그들이 명문 클럽이라는 걸 나타냈다.
관중들이 속속 경기장에 모였다.
압도적으로 AT 마드리드의 팬들이 많았다.
진심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결승에서 자신들의 팀이 이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음. 저 녀석들만 아니었어도 국왕컵이 마드리드 더비가 될 수 있었는데 말이지.”
AT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의 지역 라이벌이자, 오랜 역사를 가진 팀이었다.
엘 클라시코 못지않게 마드리드 더비 또한 인기가 많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언제나 레알 마드리드를 공식 경기에서 이기고 싶어 했다.
꿈 FC가 돌풍을 일으킨 팀이지만,
오랜 골수팬들은 아무래도 마드리드 더비를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화끈한 폭죽 쇼는 볼만하겠어.”
AT가 대량 득점을 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AT는 옛날부터 유명한 공격수를 배출한 팀이었다.
AT 출신 공격수라면 믿고 써도 충분했다.
타 팀으로 이적 후 슬럼프에 빠지면, 다시 되돌아와서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는 구단이었다.
그러다 보너 자연스럽게 골키퍼도 뛰어났다.
상대적으로 수비가 약해서 골키퍼에 대한 투자를 많이 했다.
현재 수문장인 오브라는 세계적인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불리었다.
여기에 새로 부임한 감독이 수비에도 신경 쓰면서 공수 밸런스가 상당히 좋아졌다.
하지만 예전 같은 화끈한 공격 축구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리그 탑 수준의 공격력을 갖추고 있었다.
현재 최전방을 책임지고 선수는 전 바르샤 듀오였다.
우루과이의 전설 투신 아레스와 프랑스의 그리즐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 바보 꼬레아가 잘 보좌했다.
두 팀의 경기가 마침내 시작됐다.
그리즐은 초반에 벤치에서 시작했다.
‘언더독은 한 번 기세를 타면 무섭다.’
그래서 AT 감독은 경기의 흐름을 보면서 그리즐을 투입시킬 생각이었다.
삐이이익-
AT의 선축으로 시작됐다.
그들은 파도처럼 꿈 FC를 밀어붙였다.
“경기 초반부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화끈하게 공격을 퍼붓습니다.”
AT의 전술은 3-5-2.
최전방에 아레스가 있고, 그 뒤를 꼬레아가 섀도 스트라이커 역할을 수행했다.
공을 받아서 연계시키는 아레스와 드리블이 뛰어난 꼬레아의 공격은 굉장히 날이 잘 다듬어진 칼과도 같았다.
이순신도 바짝 집중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놓치면 그대로 골로 연결될 게 분명했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0:0의 스코어가 유지됐다.
“꿈FC가 영리하게 막아내고 있습니다!”
‘휴-’
이순신이 깊게 날숨을 내쉬었다.
‘자이언트 킬링’ 효과로 AT 마드리드 선수들의 몸놀림은 다소 무거웠다.
“생각보다 꽤 잘 막는군. 어디 언제까지 막을 수 있는지 볼까?”
아레스가 웃었다.
그의 나이도 어느새 은퇴를 바라봐야 했다.
그럼에도 아레스는 아레스였다.
이순신조차도 두 번의 슈팅을 허용했다.
다행히 한번은 골대를 벗어나고, 두 번째는 보경풍의 슈퍼 세이브였다.
‘역시 아레스.’
이순신은 속으로 존경심을 표했다.
아레스는 다수의 명문 팀에서 전설이 됐다.
지금은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한 클라스를 보여줬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여유도 생겼다.
“동양 친구. 이름이 뭐지?”
“이순신.”
아레스가 이순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의 너스레에 이순신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아레스가 이토록 여유가 있는 이유가 있었다.
경기가 끝나면 결국 자신이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AT는 전반전 동안 끊임없이 꿈FC를 몰아치는 허리케인 같았다.
“AT 슛을 날립니다!”
“안타깝게 막힙니다!”
“오늘은 꿈FC가 잘한다기보단 전반적으로 AT가 골 운이 따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팬들이 염원하는 골은 터지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왜 4부 리그 따위한테 골을 못 넣는 거야?”
터질 듯 말 듯 터지지 않으니 팬들의 언성이 올라갔다.
아레스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그의 얼굴이 점점 험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해라.”
이순신에게 계속 공격이 막히자 투신의 본능이 되살아났다.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상대가 화가 난 걸 눈치채자 이순신이 깐족거리며 도발을 시전 했다.
“잘 부탁합니다.”
이순신은 바짝 붙었다.
슛할 틈도 패스할 틈도 주지 않았다.
“난 남자가 달라붙는 거 싫은데? 뒈지기 싫으면 알아서 꺼져.”
두 사람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오히려 먼저 백기를 내린 건 아레스 쪽이었다.
“아오! 끈질기네.”
공격이 번번이 막히니 아레스는 직접 골을 넣기보다는 동료와 연계를 통해서 기회를 엿봤다.
그는 단순히 골만 잘 넣는 선수가 아니었다.
골도 잘 넣고, 패스도 잘하는 선수였다!
레알의 벤제마보다도 이타적이었으면서도 매 시즌 최소 20골은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아레스의 패스를 받은 꼬레아. 스피드를 이용해서 달립니다!”
그를 보좌하는 꼬레아는 매우 빠른 스피드로 꿈FC를 괴롭혔다.
“꼬레아의 폭풍 질주!”
삐이이익-
구멍은 반칙으로 끊을 수밖에 없었다.
“아- 구멍 선수! 바지를 벗기는 반칙을 범합니다.”
“꼬레아! 튼튼하구나!”
“역시 남자는 하체지!”
꼬레아는 아무렇지 않게 바지를 올렸다.
정작 구멍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미안하오. 상대방이 하도 빠르니 저렇게밖에 막을 수 없었소.”
“순신!”
벤치에 있는 이에로가 순신에게 지시했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이 하비한테 막으라고 하시네.”
“알겠소.”
구멍은 살짝 시무룩했다.
“하비야.”
“응?”
“너 잘하는 걸로 꼬레아를 괴롭혀야 한다.”
하비가 잘하는 건 도발이었다.
“맡겨만 두라고!”
하비가 씨익 웃었다.
달리기도 빠르고, 볼 간수도 잘하는 꼬레아에도 약점이 있었다.
그가 축구 바보라 불리는 이유.
심리전에 당하고, 도발에 약하다는 점이었다.
공만 보면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이거 완전 우리 집 멍멍이네?”
하비의 도발이 시작됐다.
“난 너네 집 멍멍이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꼬레아는 공만 보면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하비의 거친 플레이에 꼬레아는 눈을 부라렸다.
거침없는 순간 가속으로 하비를 제쳤다.
하지만 그 뒤에는 구멍이 있었다.
하비가 먹잇감을 던져줬다면, 구멍이 채찍으로 제어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협력 수비로도 꼬레아를 막기가 버거웠다.
드리블 돌파에 있어서만큼은 바보가 아니라 괴물이었다.
“하아하아- 넌 지치지도 않냐?”
“꼬레아는 팀을 위해 열심히 뛴다.”
그가 부여받은 자신의 역할은 다음과 같았다.
1. 드리블을 친다.
2. 전방에 있는 공격수에게 패스한다.
3. 골문이 비어있다면 슛을 때린다.
그에게 내려진 역할은 매우 단순했기에 잘 수행했다.
‘흐음. 그렇다면…’
이순신은 꼬레아의 단순한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응했다.
“아. 꼬레아 선수. 머뭇거립니다!”
“구멍 선수가 깔끔한 태클로 걷어냅니다!”
이순신이 아레스를 막음으로써 교착상태에 빠졌다.
‘패스할 곳이 없다.’
‘골문이 비어있지 않다.’
이순신의 넓은 수비반경에 꼬레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꿈FC 반격합니다!”
AT가 공격적인 팀인 만큼 꿈FC에는 역습에 기회가 있었다.
“이순신 선수의 발끝에서 빌드업이 시작됩니다!”
이순신이 아레스와의 경합에서 볼을 뺏은 후 측면에 있는 임단결에게 공을 뿌렸다.
“임단결 선수의 오버래핑!”
임단결이 폭발적인 스피드로 골라인을 타며 달렸다.
AT 선수들은 자칫하면 밖으로 나갈까 봐 쉽사리 건드리지 못했다.
“임단결 선수. 전방에 있는 윤광섭 선수에게 패스!”
윤광섭은 가슴으로 트래핑을 한 후 공을 잡았다.
몸을 틀어서 돌파를 시도하려고 했는데 수비에게 걸렸다.
“뭐지? 공격에 비해선 수비가 약한 거 아니었어?”
그건 오래전 일이었다.
최근에 부임한 AT의 감독은 공수조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덕분에 공격력은 반감됐지만, 대신 안정감을 얻었다.
꿈FC의 최전방 공격수 두 명은 막혀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진성은 어떻게 공격을 풀어갈지 고민했다.
‘전방과 측면이 모두 막혔다. 이럴 땐 그거지.’
오진성은 뒤꿈치를 이용해서 공을 뒤로 찼다.
“오진성 선수의 노룩패스! 뒤에 아무도 없습니다.”
“아! 이순신 선수가 달려옵니다!”
오진성은 믿었다.
이순신이 달려올 것이라는 걸!
그리고 시원하게 상대 골키퍼를 향해서 멋진 슛을 쏴주리라는 것을!
[천자포가 발동합니다.]
이순신의 발끝에 걸린 슛은 엄청난 속도로 골문을 향해서 날아갔다!
[도깨비 슛이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이 주먹을 꽉 쥐었다.
“됐다!”
보이지 않는 천자포!
이건 100% 골이라고 확신해서 속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오브라 선수! 오른쪽 상단으로 몸을 날립니다!’
툭!
“와! 이순신 선수의 엄청난 중거리 슛! 그걸 오브라 선수가 손끝으로 걷어냅니다!”
“우와와아!”
팬들이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엄청난 순간이었다.
너무나도 잘 차고 잘 막았다.
팬들은 경기를 즐겼지만,
이순신은 경기를 즐길 수 없었다.
‘이럴 수가…’
확신에 찬 슛이 들어가지 않자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터벅터벅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꽈악.
이순신이 어깨에 통증을 느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관중들이 경악했다.
아레스가 이순신의 어깨를 콱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