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90화 (91/161)

90화. 레알 마드리드 회장의 선물

이순신에게 온 선물은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이었다.

“으윽! 눈부시오!”

구멍이 눈을 찡그렸다.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은 화려했다.

새하얀 유니폼 위에 황금색 로고와 등 번호가 포인트였다.

하지만 단순한 유니폼이 아니었다.

앞에는 기존의 유니폼과 똑같은 디자인이었다.

특별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휘릭.

이순신이 유니폼을 뒤로 돌렸다.

“와-”

등 쪽을 보자 깜짝 놀랐다.

뒤에는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한글로 새겨져 있었다.

등 번호는 ‘4’.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미친. 4번은 라모스 등 번호 아냐?”

선수들의 머리는 복잡했다.

이순신을 라모스의 후계자로 찍은 건가?

아니면 립 서비스?

“플레티스 회장의 편지도 있습니다!”

신자영이 이순신에게 편지를 건네줬다.

편지의 내용은 매우 심플했다.

-16강 진출을 축하한다.-

-플레티스.-

“미쳤다!”

“와- 순신아. 레알 가서도 날 잊으면 안 돼!”

“나도 1+1으로 데려가 주면 안 될까?”

꿈FC 선수들이 이순신의 목을 흔들었다.

흥분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무슨 소리야? 영입하겠다는 이야기도 없고 그냥 축하선물 보낸 거잖아.”

기대하다 보면 자꾸 마음이 쓰이는 법.

이순신은 괜한 설레발이 부담스러웠다.

“이 미친놈아! 이렇게 한글로 새긴 유니폼을 보냈는데 이게 스카우트 제의가 아니면 뭐야!”

조문돈이 부러워서 광분했다.

“오바하지 마. 이거 얼마나 한다고… 동대문 가면 다 만들어주는 거야! 그냥 대인배 놀이 같은 거겠지. 패배를 인정하는 척! 이런 거 아닐까?”

이순신은 계속 부정했다.

그러면서도 슬슬 기분이 좋아지긴 했다.

명문 팀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거 자체가 축구선수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신자영은 웃으면서 쐐기 골을 박았다.

“레알 측으로부터 바이아웃이 정말 천억이 맞는지 확인하는 문의도 왔어.”

꿈FC 선수들은 깜짝 놀라서 입을 틀어막는 모습이 귀여운 미어캣 무리들 같았다.

세계적인 클럽이 4부 리그에 있는 선수를 주목하고 있다고?

가장 놀란 건 이순신이었다.

“진짜요?”

“진짜라니까. 메일 보여줘?”

신자영은 급기야 메일도 오픈했다.

미어캣처럼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대박…”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김혁규가 물었다.

“순신아. 넌 어떻게 할 거야?”

“뭘?”

“아직 이적시장이 열리지 않아서 당장은 가지 못하겠지만 시즌 끝난 다음에 말이야.”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이순신은 진심이었다.

“당연히 생각해본 적 없겠지. 이런 제의를 받을 줄 몰랐으니까.”

“혁규야. 선 넘는다?”

“겁나 부러워서 그래. 씁.”

김혁규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축구선수라고 다르지 않다.

일반인들이 대기업, 고액연봉을 꿈꾸는 것처럼 그들도 명문 팀, 고액연봉의 꿈은 똑같다.

인간의 욕망은 다 그런 것이었다.

다들 이순신의 선택에 대해서 궁금했다.

“흠…”

막상 현실이 되고 나니 이순신도 고민에 빠졌다.

레알 마드리드가 나를 원한다?

진짜로?

그렇다면 나는 이적을 해야 하는 건가?

이적하고 난 뒤 꿈FC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잠시 고민 끝에 이순신은 선택했다.

“내 선택은…”

모두가 이순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60초 후에 공개할게.”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나가 죽어!!!”

선수들의 분노한 주먹들이 이순신의 등을 폭격했다.

***

다음 주.

꿈FC는 국왕컵 16강전 경기를 가졌다.

강한 팀은 올라오고, 약한 팀은 떨어지는 토너먼트라 어디 하나 만만한 팀이 없었다.

“그래도 3부 리그 팀하고 붙는 건 다행이란 말이지.”

꿈FC의 상대는 유일하게 16강에 올라온 3부 리그 팀인 ‘나발카르네로’였다.

이 팀 역시 국왕컵에서 돌풍과 이변을 일으키며 드라마를 썼다.

언론은 두 팀의 대결을 이렇게 칭했다.

“사이클론 vs 허리케인”

돌풍의 팀과 돌풍의 팀이 만난 것이었다.

“우리는 오늘 까다로운 팀을 만났다.”

이에로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감독님! 저희는 발렌시아와 레알 마드리드를 잡고 올라온 팀입니다. 설마 3부 리그 팀 따위한테 질 거라고 보십니까?”

조문돈이 거들먹거렸다.

사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강팀과의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넘치면 방심으로 이어진다.

모든 걸 쏟아부어서 운이 좋아 이긴 걸 자신들의 평소 실력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정신 차려라!”

이에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순간 선수들이 침묵했다.

“어느 쪽이 이기든 역사를 쓰는 상황이다. 그들이 올라온 데는 이유가 있고, 방심하다간 우리가 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발렌시아를 잡던,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고 올라오던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나발카르네로는 마드리드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진 작은 축구 클럽이었다.

국왕컵 16강 진출도 창단 이래 최고 성적이었다.

그렇다고 역사가 긴 것도 아니었고, 3부 리그에서 엄청난 두각을 나타낸 것도 아니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방심해도 되는 팀이었지?”

이순신의 말에 선수들은 식겁했다.

‘맞아.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는 4부 리그니까 아마추어 수준이야.’

‘비록 리그에서 우리가 잘 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3부 리그 팀이야. 우리보다 한 단계 위라고!’

찰싹찰싹!

급기야 자신의 뺨을 후려치며 정신을 차리고자 한 선수도 있었다.

“우리는 스페인에 온 순간부터 항상 도전자야. 명심하자!”

이순신의 말에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잠시 잊고 있었다.

“맞아! 심지어 이번엔 원정경기라고!”

이순신의 말에 선수들은 의지를 새롭게 다졌다.

그것은 이순신도 마찬가지였다.

저번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부르면 갈 거냐는 질문에 이순신은 이렇게 답했다.

“우선은 4부 리그 우승과 국왕컵 16강전, 그리고 올림픽이 우선이야.”

순서상으로는 국왕컵, 리그, 올림픽 순이었다.

이순신은 다 계획이 있었다.

‘돌풍의 팀 타이틀을 빼앗길 순 없지.’

이순신은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고 얻은 새로운 트로피를 장착하고 경기에 임했다.

[자이언트 킬링]

[1부 리그 우승팀을 이겼습니다. 전력이 강한 스페인 팀들에게 패배의 불안감을 심어줍니다.]

지난 경기에서 이순신은 MVP를 받았다.

그래서 트로피의 능력도 상향됐다.

[전력이 강한 모든 팀들에게 패배의 불안감을 심어줍니다.]

단순히 스페인에서 한정된 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팀에서 쓸 수 있었다.

꿈FC와 대한민국은 강팀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아가면서 만날 모든 팀에게 쓸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부 리그 팀을 상대로 발동한 트로피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그 결과 돌풍 매치에서 꿈FC는 5:0으로 승리했다.

“꿈FC가 사상 첫 8강에 진출했습니다. 이는 4부 리그 최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꿈 FC는 방심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하며 경기에 임했다.

오히려 방심한 쪽은 나발카르네로였다.

“꿈FC? 4부 리그 팀 따위 레알이 바보 같은 실수만 하지 않았으면 절대로 못 올라왔어!”

“맞아! 승부차기에서 이긴 건 레알이라고!”

“더군다나 그런 경기를 치르고 올라왔으니 체력이 남아지 않을걸?”

“맞아!”

그들이 크게 간과한 것이 있었다.

강팀을 이기고 올라온 경험치를 너무 무시했다.

꿈FC는 나발카르네로 선수들을 상대할 때 뭔가 아쉬웠다.

“레알 선수들은 이러지 않았는데?”

“레알에 비하면 이 친구들은 확실히 떨어져.”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자신감을 가지면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심지어 꿈FC는 10명이서 레알 마드리드와 대등하게 겨룬 팀이었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지고 난 뒤 각성한 것처럼, 꿈FC의 폼은 최고의 상태였다.

이 경기에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한 하비, 부상으로 쉬어가는 보경풍 등 주전이 둘이나 빠졌지만, 이순신이 있었다.

“이순신의 시원한 중거리 슛!”

“김혁규 선수의 빠른 드리블 후 그대로 슛!”

“윤광섭 선수! 측면에서 때립니다! 요즘 폼이 많이 올라왔어요!”

“임단결 선수의 크로스를 받은 이순신 선수가 그대로 헤딩 골을 꽂아 넣습니다. 1골만 더 넣으면 해트트릭입니다!”

“오진성 선수! 환상적인 힐 슛으로 쐐기 골을 박습니다!”

그야말로 압승이었다.

“임 단장님!”

“강 구단주님!”

임청수와 강대범은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꿈FC가 8강전에 진출하자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선 유일한 아마추어팀이다.

- 과연 그들의 돌풍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8강이 한계라고 봤다.

8강전 상대가 어디 하나 만만한 팀이 없었다.

꿈FC를 제외하곤 전부 1부 리그 팀이었다.

레알 베티스, 세비야, 비야레알, 오사수나, 셀타 비고, 알라베스, AT 마드리드였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바르셀로나는 16강에서 AT 마드리드와 치열한 경기를 펼치다가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다.

“AT만 안 만났으면 좋겠다.”

“나도!”

8강에 진출한 팀 중 네임 밸류가 가장 높은 팀이자, 옛날부터 공격수 사관학교였다.

즉 최소 1골은 내어줄 각오를 해야 했다.

“8강전 상대가 결정됐다.”

“어디에요?”

이에로가 한숨을 쉬었다.

선수들이 좌절했다.

“아- 설마 AT 마드리드인가요?”

이에로가 웃으며 말했다.

“알라베스다.”

“야호! 외쳐! 갓에로!”

꿈FC는 이 경기에서 알라베스를 1:0으로 이기고 올라갔다.

“자이언트 킬링이 아니었으면 힘들 뻔했어.”

이 경기에서 멋지게 프리킥 골을 넣은 이순신은 새로운 능력에 감탄했다.

어쨌거나 팀은 사상 최초로 4강에 진출했다!

이제 꿈FC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하지만 4강전의 상대는 노란 잠수함이라 불리는 명문 팀 비야레알이었다.

다들 힘든 경기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꿈FC는 이겼다!

이번에도 역시 1:0이었다.

전 후반 내내 0:0으로 공방을 이어가다가 연장전에서 이순신의 패스를 받은 임단결이 중앙으로 침투해서 골을 넣었다.

이순신만을 요주의 인물로 생각하다가 당한 일침이었다.

“꿈FC가 결승에 진출 합니다…”

해설자도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한국의 언론 역시 당연히 난리가 났다.

“꿈FC가 쟁쟁한 팀들을 제치고 국왕컵 결승에 진출했어!”

“미쳤네. 이게 가능함?”

“결승전 팀은 어디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래!”

“와! 창과 방패의 대결이잖아?”

“그래도 우승은 좀 힘들지 않을까?”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이순신이 있다! 외쳐!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

레알 마드리드 사무실에서 회의가 열렸다.

“회장님. 꿈FC가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플레티스는 씨익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아직도 이순신이 우리 팀에 오기에 부족한가?”

플레티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운영진은 인정하듯이 대답했다.

“확실히 이순신 선수는 4부 리그에 있기에는 굉장히 아쉽습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만.”

“무엇보다 그가 팀원들을 통솔하는 능력은 탁월합니다.”

플레티스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말인즉슨…”

“주장으로서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팀원으로서의 능력은 아직 미지수입니다.”

플레티스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뭐가 문제지?”

“네?”

“주장시키면 되잖아?”

운영진들이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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