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88화 (89/161)

88화. 승부차기

이순신은 골을 넣고 선수들과 어깨동무 했다.

“이렇게 된 거 이겨버릴까?”

이순신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골을 넣어서 다소 흥분한 상태에서 내뱉은 말이었다.

말은 씨앗이 되는 법.

믿음이라는 땅에 확신이라는 물을 부어준다면, 좋은 결과라는 열매로 보답을 받을 수 있었다.

“그거 매우 좋은 생각이오.”

구멍이 찬성했다.

“우리도 레알을 이기는 역사를 써봅시다.”

임단결이 말했다.

“자이언트 킬링 가자!”

김혁규도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꿈 FC! 할 수 있다!”

꿈FC는 너나 할 거 없이 하나가 되어 소리쳤다.

삐이익-

연장전이 시작됐다.

꿈 FC는 일기당천의 능력을 발휘했다!

“카세미루 선수! 오늘 집중력이 안 좋은 거 같습니다. 또 윤광섭 선수에게도 뚫렸습니다.”

“치잇”

카세미루가 재빨리 따라붙었다.

그전에 라모스가 달려 나와서 공을 걷어냈다.

“라모스 선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수비만 할 리가 없었다.

1부 리그 최강팀답게 선 굵은 축구를 펼쳤다.

1:1에서도 밀리지 않고, 과감하게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도 만만치 않습니다. 조문돈을 뚫어낸 마블 박이 그대로 드리블 돌파!”

꿈FC의 수비도 레알 마드리드에 뒤지지 않았다.

“아. 마블 박! 이순신 선수의 환상적인 태클에 막혀서 그대로 나뒹굽니다!”

이순신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블 박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른 일어나.”

이순신은 딱히 매너를 챙기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경기 흐름이 끊기지 않길 원했다.

마블 박은 이순신의 위엄에 쫄아서 그의 손을 잡았다.

“나이스! 이순신.”

“우린 지지 않는다!”

꿈FC의 기운이 하늘에 닿으니 그야말로 ‘일기당천’이었다!

때리고, 막는 난타전이 연장전 내내 이어졌다.

무기를 안 들고, 주먹만 안 휘둘렀지, 치열한 난투극이었다.

“하아. 하아.”

양 팀의 체력도 한계에 달했다.

더는 주먹을 휘두를 힘도 없어서, 물어뜯는 개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양 팀에서 더는 추가 골은 터지지 않았다.

양 팀 선수들은 그대로 운동장에 누워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작년 규칙이라면 홈&어웨이로 가리겠지만, 올해부터 바뀐 규정에서는 무조건 단판 승이었다.

“연장전·후반이 모두 끝났습니다. 승부차기를 통해서 국왕컵 16강에 진출할 팀을 가리겠습니다.”

선수들이 감독인 이에로 앞에 모였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난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이에로는 선수들이 굉장히 대견스러웠다.

레알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멋진 경기를 펼쳐 줄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하지만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럴 줄 알고 저희는 페널티킥도 연습했으니까요.”

이에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승부차기까지 온 이상 우리가 레알 마드리드를 이길 확률은 50%가 됐다.

이제 남은 건 누가 더 침착하느냐의 싸움이다!”

“넵!”

정신무장이 잘 되어있는 걸 본 이에로가 말했다.

“이제 페널티킥 순서를 발표하겠다.”

꿈FC 선수들은 명단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순신이 고개를 돌렸다.

“경풍이 형. 조금만 더 참아줘.”

“맡겨 둬.”

이순신과 보경풍은 가볍게 서로의 주먹을 툭 쳤다.

***

관중들도, 시청자들도 모두 지켜봤다.

한국시간으로는 이미 7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화성시에 사는 김 모 씨는 곧 출근을 해야 하지만, 졸린 눈을 비벼가며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고자 했다.

11M를 두고 잔인한 러시아 룰렛게임이 시작됐다.

첫 번째 키커는 꿈FC의 김혁규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공을 내려놨다.

“후-”

엄청난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

삐이이익-

김혁규는 공에서 다소곳이 멀리 떨어졌다.

“꿈FC의 김혁규 선수. 골키퍼와 심리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왼쪽? 오른쪽?’

김혁규는 고심 끝에 어디로 찰지 정했다.

“김혁규 선수 슛!”

김혁규가 빠르게 달리더니 그대로 공을 찼다.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는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철렁.

김혁규가 찬 슛은 가운데로 향했다.

상대편 골키퍼는 억울한지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아자!”

김혁규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혁규 최고!”

꿈FC가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1:0 꿈 FC가 앞서갔다.

레알 마드리드의 침울한 분위기를 깰 선수는 다름 아닌 벤제마였다.

꿈FC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보경풍을 응원했다.

벤제마도 공을 가지런히 내려두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일부러 골키퍼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벤제마 선수는 과연 어느 쪽으로 찰까요?”

벤제마가 공을 두고 몇 발자국 물러났다.

그 역시 심호흡을 하더니 발을 빠르게 굴리며 달려왔다.

보경풍이 호흡을 참으며 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벤제마는 오른발로 공을 감아 찼다!

공은 골대 왼쪽을 향해서 날아갔다.

‘왼쪽이다!’

보경풍도 공의 방향을 정확히 맞췄다.

다만, 벤제마의 슛 궤적이 너무나 예리했다.

그야말로 잘 감아 찬 슛이었다.

철렁.

벤제마가 찬 슛이 그물망을 흔들었다.

“벤제마 선수 골인!”

“보경풍 선수가 방향은 예측했지만, 아쉽게도 막지 못했어요!”

보경풍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아까웠어.”

선수들이 보경풍 쪽으로 와서 위로했다.

“다음엔 꼭 막아볼게.”

보경풍이 의지를 다졌다.

두 팀의 스코어는 1:1.

꿈FC의 두 번째 키커는 오진성이었다.

“믿는다. 오진성!”

“넣자!”

오진성은 오른쪽 구석을 계속 바라보았다.

상대편 골키퍼는 생각했다.

‘너무 노골적으로 오른쪽을 바라보는데?’

상대편 골키퍼는 헛웃음을 지었다.

‘일단 오른쪽은 버린다.’

그렇다면 남은 쪽은 왼쪽.

골키퍼가 뛰려고 무릎을 웅크렸다.

‘지금이다.’

오진성은 빠르게 달려갔다.

뻥!

정확히 발등에 맞았다.

“아. 오진성 선수 파넨카 킥을 날립니다!”

오진성이 찬 공은 공중에서 역회전이 걸리며 날아갔다.

그는 확신했다.

골키퍼가 왼쪽으로 몸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가운데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아. 오진성 선수! 읽혔습니다!”

상대편 골키퍼는 왼쪽으로 몸을 날리는 척하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

오진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진성아!”

꿈FC 선수들도 안타까운지 오진성의 이름을 외쳤다.

사실 오진성이 차기로 약속한 코스는 왼쪽이었다.

차기 직전 오진성은 생각을 바꿨다.

파넨카 킥은 골키퍼의 허를 찌르기 위해 가운데로 차는 것이 일반적이라 당한 쪽은 엄청난 굴욕감을 느낀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반동 효과가 엄청났다.

‘설마 또 가운데로 차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겠지?’

당연히 상대편 키퍼는 예측하지 못했다.

다만 슛 파워가 너무 약했다.

그리고 심리전에서 읽혀버렸다.

오진성의 실축으로 순식간에 분위기는 레알 마드리드 쪽으로 기울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카세미루는 깔끔하게 오른쪽으로 밀어 넣었다.

스코어는 1:2로 불리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꿈 FC의 남미계 최전방 공격수의 슛은 하늘을 훨훨 날았다.

“아. 꿈FC가 연속으로 실축을 합니다. 이건 대위기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가 슛을 쐈다.

공은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보경풍은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끝났어…”

이순신을 비롯한 꿈FC가 좌절했다.

하지만 철렁이 아닌 퉁! 소리가 들렸다.

“아 레알 마드리드의 3번째 키커의 슛이 골대를 맞고 나옵니다!”

구사일생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 분명했다.

스코어는 1:2.

4번째 키커인 윤광섭의 책임이 막중해졌다.

대기업에서 주관하는 파파 콘서트에 올라갔을 때보다도 더욱 떨리는 순간이었다.

“음-하. 음-하”

윤광섭이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서 내쉬었다.

‘넣는다! 꼭 넣는다!’

실패는 생각하지 않았다.

툭.

하지만 상대편 골키퍼의 손에 맞고 공은 골대를 벗어났다.

“아-”

윤광섭에게는 오늘 경기가 여러모로 아쉬웠다.

레알을 상대로 넣은 회심의 골은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고, 중요한 승부차기에서는 실패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윤광섭을 동료들이 일으켜 세워서 데려갔다.

“스코어는 아직 1:2로 레알 마드리드가 앞서갑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4번째 키커는 마블 박이었다.

마블 박은 엄청난 긴장감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골을 넣으면 경기는 끝나. 내가 쐐기 골을 꼭 넣겠어.’

모든 밥상이 다 차려졌다.

이제 떠서 먹기만 하는 되는데, 마블 박이 스스로 밥상을 걷어찼다.

마블 박이 왼쪽 구석을 향해서 슛을 날렸다.

보경풍이 몸을 날리고자 했으나 멈칫했다.

‘저거 안 들어간다.’

데굴데굴 구른 볼은 그의 예상대로 골대를 벗어났다.

마블 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기회를 마블 박이 놓칩니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은 심기가 불편했다.

충분한 기회를 줬다.

하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건 본인이었다.

유망주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실수였다.

“꿈FC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꿈FC의 다섯 번째 키커는 이순신이었다.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관중들의 함성이 엄청났다.

그만큼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뜻이었다.

[노이즈 캔슬링을 발동합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됐다.

두근두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심장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저 멀리서 양팔을 벌리고 있는 골키퍼와 눈싸움을 했다.

‘비격진천뢰가 하나 있으면 좋았을 것을…’

무엇보다 성공률을 알 수 있었고, 일반 슛이 아닌 스킬을 사용하면 무조건 성공률이 90% 이상은 나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은 공을 차기 위해 달려갔다.

‘천자포나 지자포를 쓸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을’

이 순간 쓸 수 있는 슛은 딱하나.

50% 확률로 발동하는 도깨비 슛이었다.

이순신의 발등에 맞은 공은 대지를 가르며 빠르게 날아갔다.

아무런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도깨비 슛은 발동하지 않았어…’

하지만 코스가 워낙 예리했다.

상대편 골키퍼는 무릎을 꿇고 공을 감싸고자 했다.

그 순간이었다.

공이 그의 앞에서 바운드가 된 후 크게 뛰어올랐다.

재빨리 골키퍼가 손으로 막아냈지만, 공은 손바닥을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순신 선수! 골을 성공시킵니다!”

이순신이 팀원들과 얼싸안고 기뻐했다.

하지만 운명은 레알의 마지막 키커에게 달렸다.

스코어는 2:2.

다섯 번째 키커는 라모스였다.

꿈FC의 운명은 라모스의 발끝에 달려있었다.

“라모스 선수. 찹니다!”

“깔끔하게 성공시킵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그러나 꿈 FC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승부차기는 실력보다는 운.

그렇기에 자신들이 패배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우린 잘했어!”

“그래. 순신아!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그토록 원하던 자이언트 킬링은 실패했지만…

[레알 마드리드를 이겼습니다.]

[보상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졌는데 이겼다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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