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이순신의 눈물
비격진천뢰의 성공률은 매우 낮았다.
고작 20%였다.
‘횟수를 몰아서 쓴다면…’
성공률은 70%까지 올라갔다.
‘70%라… 너무 애매한데.’
50%보단 높지만, 올인을 하기엔 부족한 확률.
하지만 여태껏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가장 높은 성공률이었기 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민을 끝냈다.
‘사용한다!’
이순신은 상대편 골대의 빈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한방에 동점을 걸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어차피 70%도 낮은 확률이 아니었다.
‘여기에 도깨비 슛까지 발동한다면 확률을 더 올라가겠지?’
심판이 프리킥을 차라고 신호를 줬다.
이순신은 침착하게 달려가서 발등으로 때렸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했습니다.]
[도깨비 슛이 발동했습니다.]
‘됐다. 이건 무조건 들어간다!’
이순신의 얼굴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이순신 선수의 프리킥이 레알 마드리드 골대를 향해 날아갑니다!”
“레알 수비진들도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설자도, 관중도, 꿈FC 선수들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날아가는 공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설령 들어가지 않아도 누군가가 분명히 넣을 거야.’
때마침 김혁규와 윤광섭이 좋은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들어가는 게 가장 깔끔하다고 이순신은 생각했다.
‘들어가라!’
이순신의 두 눈이 커졌다.
‘이…이럴 수가. 안 돼!’
공을 골대를 살짝 벗어났다.
“아- 안타깝습니다. 꿈FC한테는 굉장히 좋은 기회였는데 날아가 버리네요.”
“하-”
관중석에서도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몸에 힘이 쭉 빠져서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도 이 순간 가장 아쉬운 건 이순신이었다.
그는 회심의 슛이 예상과 다르게 빗나가버리자 망연자실했다.
허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결국, 이순신은 폭발했다!
“젠장!”
이순신이 급기야 잔디를 걷어찼다.
“순신이가 경기 중에 저렇게 화를 내는 거 처음 봐.”
“나도. 코피가 터져도 미친놈처럼 웃던 놈인데.”
오진성과 김혁규가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어설픈 위로는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할 뿐이었다.
오롯이 이순신이 극복해야 할 문제였다.
이순신이 실패감에서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갔다.
“순신 시주. 다 털고 복귀합시다.”
이순신이 고개를 들었다.
구멍이 합장을 하고 인자한 미소로 자신을 향해 웃고 있었다.
부처님의 자비로움 그 자체였다.
“하하. 알았어.”
이순신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실패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회는 분명히 또 온다.’
이순신이 의지를 굳게 다졌다.
[충무공이 매우 흡족해합니다.]
충무공도 그랬다.
그의 무패행진이 값진 이유는 항상 유리한 상황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불리한 상황을 뒤집었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포기해봤자 얻을 수 있는 건 패배감뿐이지만, 적어도 뭔가를 해보고자 노력했다면 그것은 경험이 됐다.
‘어쩌면 내가 너무 거만했을지도 몰라.’
자신이 골을 넣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압박감.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동료들을 믿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우리 팀이 가진 잠재력과 운을 믿어야 한다!’
이순신은 공격수도 수비수도 아닌 저격수 모드로 전환했다.
이순신은 수비에 집중했다.
간간히 임단결이 오버래핑을 치긴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가 워낙 두꺼웠다.
김혁규, 오진성, 윤광섭으로 이어지는 공격은 카세미루에게 막혀서 위력이 없었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끊임없이 공격을 시도했다.
젊은 유망주이자 윙백인 마블 박은 끊임없이 측면을 달렸다.
“마블 박, 엄청난 스피드입니다!”
“아, 안타깝게도 이순신에게 막히네요.”
“꿈FC 수비들의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이순신 선수의 지휘로 위험한 순간을 잘 넘기고 있어요.”
이순신은 임단결, 조문돈과 끊임없이 스위칭을 했다.
‘대한민국에도 생각보다 괜찮은 선수가 있었잖아?’
마블 박은 이순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대한민국, 나이지리아, 스페인에서 주목받는 선수였다.
무려 삼중 국적을 가졌다!
그래서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에서 그를 뽑으려고 했다.
그가 원하는 팀은 단호했다.
스.페.인!
대한민국은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이지리아나 스페인보다 선발은 쉽겠지만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이었다.
선수라면 누구나 트로피에 욕심이 있을 것이다.
그의 기준에서 한국과 나이지리아는 변방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국가도 중요하지만, 태어나서 자란 곳에서 뛰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했다.
‘어차피 스페인에서 떨어지면, 다른 곳에 가면 되니까.’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순신? 이런 선수가 고작 4부 리그에 있다고?’
마블 박은 이순신의 실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빨라…강해…4부 리그 선수한테도 막힌다면 난 1부 리그가 결코 될 수 없어!’
나름 19세 스페인 국가대표에도 뽑힌 경력이 있던 그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그에게 통곡의 벽이 됐다.
“마블 박 선수. 호기롭게 공격을 시도하지만, 점점 패턴이 읽히고 있어요.”
“이순신 선수 또 마블 박을 막아냅니다!”
마블 박은 변변찮은 모습을 계속 보였다.
초조함은 결국, 실수를 연발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교체가 있었다.
“끝났나…”
놀랍게도 교체는 측면 공격수였다.
그리고 마블 박이 그 자리로 올라갔다.
“좀 더 공격적으로 자신감 있게 해라.”
레알의 감독은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그러자 좋은 크로스 하나가 벤제마에게 도착했다.
하지만 벤제마도 이순신을 뚫지 못했다.
“이순신이 먼저 공을 걷어냅니다!”
“벤제마 선수와 이순신 선수의 몸싸움! 이순신이 먼저 공을 걷어냅니다!”
이순신이 공격을 포기하고 수비에 집중하고 우주 방어를 펼치니 벤제마도 어찌할 수 없었다.
“역시 내가 나서야 하는가?”
급기야 답답한 라모스가 올라와서 강력한 중거리 슛을 때렸다.
“흘러나온 공. 라모스 선수가 강력한 중거리 슛을 때립니다.”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이순신 선수! 몸을 날려서 다리를 뻗습니다!”
뻥!
“이순신 선수의 다리에 맞고 골라인 밖으로 넘어갑니다. 코너킥으로 이어집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코너킥! 라모스 선수 뛰어오릅니다!”
“이순신 선수도 같이 뛰어오릅니다. 동시에 헤딩!”
“떨어지는 공. 벤제마 선수가 찹니다!”
“이순신! 배로 막아냅니다! 경기가 잠시 중단됩니다!”
이순신이 배를 움켜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순신아. 괜찮아?”
김혁규가 재빨리 뛰어왔다.
“괜… 찮아…”
이순신이 손을 내저었다.
아주 잠시만 쉬면 호흡은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10분.
이순신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끝인가?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은데…”
이순신은 많이 지쳤다.
체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힘들어서 죽을 거 같은 표정을 짓는 선수들을 보면서도 미안했다.
이순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끝내고 싶지 않아…조금만 더…더 뛰고 싶어!”
그 순간이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가 발동했습니다.]
[선수들의 능력이 한계치까지 발동합니다.]
이순신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경기장에 우뚝 일어났다.
“순신이가…간만에 미쳤다.”
이순신이 웃고 있었다.
“포기하자. 뛰자. 우린 여기서 지지 않는다!”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꿈 FC 선수들의 가슴이 울컥했다.
이순신이 외치면서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신이 너…정말 지기 싫어하는구나.’
‘그러고 보니 어릴 땐 경기에서 지면 분해서 며칠 동안 울었는데…지금은…’
[이순신의 눈물로 팀원들이 초심을 되찾습니다.]
[초심과 잠재력이 만나서 팀원들의 능력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꿈FC 선수들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오진성은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카세미루가 오진성을 막아섭니다!”
오진성은 카세미루 같은 유형의 선수가 싫었다.
하지만 그와의 몸싸움을 주저하지 않았다.
카세미루가 착 달라붙어서 어떻게든 공을 빼앗으려고 했다.
“오진성이 카세미루를 떨어내고 탈압박에 성공했습니다!”
카세미루는 놀란 눈으로 오진성을 쳐다보았다.
1부 리그 선수들도 자신을 제치기 쉽지 않은데 고작 4부 리그 선수가 제치니 놀랄만했다.
오진성의 시야에는 손을 들고 달려오는 김혁규가 보였다.
슈웅!
김혁규를 향해 빈 공간으로 스루패스를 시도했다.
그는 가볍게 공을 받았다.
수비수가 달려오자 재빨리 슛을 날렸다!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가 몸을 날려서 막아냅니다!”
“흘러나온 공을 향해 윤광섭이 달려갑니다!”
“윤광섭!!!”
윤광섭이 때린 슛이 그대로 레알의 골문을 관통했다!
“으아아아!”
윤광섭도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잘했어. 광섭아!”
“우와와!”
하지만 흥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심판이 깃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린 것이다!
VAR은 없었다.
그렇기에 심판의 판정은 절대적이었다.
“아아아악!”
윤광섭은 매우 아쉬웠다.
언제 레알 마드리드한테 골을 넣어보겠는가?
이순신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괜찮아. 다음에 또 넣으면 돼.”
“다음이 있을까?”
“어. 우린 이대로 지지 않을 거니까.”
이순신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시간이 얼마 없자 꿈FC가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도저히 1명이 없는 팀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마치 좀비처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밀어붙였다.
“윤광섭 선수 슛!”
“골키퍼 펀칭!”
“코너킥으로 이어집니다!”
꿈FC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이제 1분. 꿈FC의 마지막 공격이 되겠는데요?”
오진성이 코너킥을 올릴 준비를 했다.
보경풍을 비롯한 꿈FC 전원이 레알 마드리드의 진영으로 올라왔다.
이대로 골을 못 넣으면 2:1로 지나 3:1로 지나 똑같았다.
“부탁한다!”
오진성이 공을 올렸다.
꿈FC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의 머리 위로 공이 날아갔다.
라모스가 궤적을 예측하고 먼저 뛰어올랐다.
이순신이 뒤이어 뛰어올랐다.
‘훗. 늦었…’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던 라모스는 깜짝 놀랐다.
이순신은 애초에 헤딩을 할 생각이 없었다.
몸을 띄운 후 바이시클 슛을 준비했다.
퍽!
발등에 제대로 맞은 공은 라모스의 얼굴 옆으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도깨비 슛이 발동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라모스는 똑똑히 보았고,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툭!
공이 바운드가 된 후 그대로 골대 윗그물에 제대로 감겼다!
“우와와!”
이순신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엄청난 슛을 성공시킨 세레머니치고는 다소 소박했다.
후반전이 종료됐다.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관중들은 이순신의 이름을 외쳤다.
경기장에서도,
카메라 밖에도 이순신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