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우리의 소원은 폭발!
신은 라모스를 빚을 때 특별히 신경 썼다.
재능, 실력, 운, 성실함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를 시기한 악마 새끼가 중간에 인성 한 스푼을 몰래 처먹었다.
그래서 악마의 재능을 가진 그는 경기 중에 흥분하면 피아식별이 불가능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레알 마드리드는 엘 클라시코에서 5:0이란 대참사를 당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골잡이들의 대결이라는 점과 ‘무리뉴’라는 명장을 데려온 레알 마드리드에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메시는 이 경기에서 골을 넣진 못했다.
하지만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리저리 잘도 빠져나갔다.
번번이 라모스를 농락했다.
“이 새끼가!”
전후반 90분이 모두 끝나고 2분의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라모스는 화산처럼 폭발했다!
퍽!
“으으윽.”
메시가 다리를 잡고 쓰러졌다.
연기가 살짝 어설프긴 했지만, 그대로 라모스가 악의를 가지고 태클을 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라모스 선수. 자신을 제친 메시 선수의 정강이를 걷어찹니다! 저건 당연히 레드카드! 즉시 퇴장감입니다!”
“왜! 어째서!”
라모스가 심판에게 버럭 화를 냈다.
“라모스 선수 거칠게 항의하는데요. 상대편의 푸욜 선수가 말리러 옵니다.”
푸욜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라모스. 좀 진정하는 게 어때?”
“어쩌라고!”
찰싹!
“세상에! 라모스 선수가 푸욜 선수의 뺨을 때렸습니다!”
푸욜은 그대로 얼굴을 잡고 땅바닥을 뒹굴었다.
지켜보던 관중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과도한 경쟁의식이 불러온 참사였다.
영국과 스페인 축구의 위계질서는 한국보다도 엄격했다.
푸욜은 스페인 축구계에서 대선배였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고, 인망도 두터운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상대 팀 선수들이 달려왔다.
“야. 나중에 대표 팀에 소집되면 푸욜 얼굴은 어떻게 보려고 그래!”
“닥쳐!”
라모스는 오히려 그 선수의 얼굴을 밀어버렸다.
그야말로 한 번 빡치면 눈에 물불을 안 가리는 미친개였다.
지금의 눈빛은 그때와 똑같아서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당황했다.
“야! 말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달려와서 심판에게 대신 빌었다.
“얘가 미친 새끼인 건 맞지만, 고의는 아닙니다.”
“라모스. 멈춰!”
“심판님. 꼭 이래야만 속이 시원합니까!”
이순신은 내심 라모스가 폭발하길 바랐다.
다른 선수들도, 이에로도, 임청수도 마찬가지였다.
꿈FC를 응원하던 관중들도 한마음이었다.
불리한 상황에서 저쪽에 라모스라도 빠져야 그나마 후반전을 기대해볼 만했다.
‘폭발해라. 라모스.’
‘너의 분노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이냐!’
‘타올라라. 훨훨!’
‘나와랏! 레드카드!’
모두의 염원이 닿을 수 있을까?
하지만 라모스는 그 이상의 항의는 없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겠다는 뜻이었다.
“심판을 한 대 갈길 줄 알았는데, 라모스 선수가 순순히 수비 진영으로 복귀합니다.”
“라모스도 이제는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니까요.”
“원래 애가 생기면 철이 드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라모스는 공격 본능을 최대한 자제했다.
김혁규, 오진성, 윤광섭 등 꿈FC의 공격수는 슈팅조차도 제대로 날리지도 못했다.
반면 벤제마는 간결한 움직임을 펼치며 끊임없이 꿈FC를 위협했다.
‘한순간이라도 놓치면 골이다.’
이순신이 바짝 긴장했다.
경기는 다소 느슨하게 흘러갔다.
꿈FC도 체력을 아끼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도 침착하게 기회를 엿봤다.
침묵의 시간이 계속됐다.
남은 시간은 1분.
참고 참은 레알 마드리드가 마침내 발톱을 드러냈다.
측면 돌파를 시도하더니, 그대로 크로스를 올렸다.
“라모스 선수가 달려옵니다!”
수비를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던 라모스가 헤딩을 시도했다.
“라모스 선수의 헤딩슛!”
이순신이 같이 뛰어오르면서 각을 좁혔다.
보경풍이 뛰어오르면서 공을 잡으려던 찰나에,
‘으윽.’
얼굴에 통증이 느껴졌다.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골이었음에도, 손바닥으로 쳐낼 수밖에 없었다.
“흘러나온 공!”
“벤제마 선수가 달려갑니다.”
벤제마는 침착하게 골문을 노려보더니 재빠르게 움직였다.
“벤제마 선수의 슛!”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자동 타겟팅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다리를 뻗었다.
현재 이순신이 가진 스킬로도 막을 수 없는 완벽한 찬스를 벤제마는 놓치지 않았다.
철렁!
벤제마의 슛이 골로 연결됐다!
“우와아! 내가 이순신을 뚫고 골을 넣었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를 뚫고 넣었다고!”
벤제마는 생각했다.
‘근래에 상대한 그 어떤 수비수보다 오늘 보여준 이순신의 퍼포먼스가 가장 뛰어났어.’
네덜란드의 반 다이크, 같은 팀인 라모스를 상대할 때보다도 훨씬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보경풍이 많이 위축됐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골을 막지 못했으니 더더욱 분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이순신이 보경풍의 어깨를 두드렸다.
“1:2라 쉽지 않겠어…”
레알 마드리드는 브라질 같았다.
화끈한 공격력에 가려져서 그렇지, 수비가 결코 약한 팀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 번은 기회가 올 것이다.’
이순신은 비장한 눈빛을 뿜으며 포기하지 않았다.
꿈FC가 공격을 시도했지만, 의미 있는 공격은 없었다.
결국, 전반전의 끝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렸다.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1:2로 레알 마드리드가 앞서갑니다.”
레알 마드리드도, 꿈FC도 웃으면서 라커룸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4부 리그 팀을 상대로 엄청난 고전을 하고 있었다.
“이제 잔디도 적응했겠다. 후반전에는 대량 득점을 노려보자.”
“우리는 레알 마드리드다. 이런 곳에서 발목 잡힐 팀이 결코 아니라고!”
“맞아! 전반전에는 솔직히 운이 안 따라서 그렇지, 후반에는 더 많은 기회가 올 거야!”
레알 마드리드는 라커룸에서 의지를 다졌다.
자만심이나 교만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라모스가 너희에게 원한 건 바로 그런 태도다. 이제야 하나의 팀이 된 거 같구나.”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은 매우 흡족했다.
“녀석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강팀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서 헝그리정신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이지.”
“그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내 생각은 다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살아남는 것이 국가대표가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특히 유망주들은 외부에서 영입되는 거액의 동일 포지션 선수들과 겨뤄야 한다.”
선수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감독은 한 어린 선수와 눈이 마주쳤다.
검은 피부에 또렷한 눈빛을 가진 흑인계 선수였다.
“마블 박. 후반전에 너의 기량을 보여줄 준비가 되었나?”
마블 박이 놀라서 일어났다.
“할 수 있습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말이죠.”
레알 마드리드 감독은 씨익 웃었다.
언더독이 가진 절박함이 강팀이라고 없을 순 없었다.
특히 세계적인 선수들에게 밀려서 나가지 못하는 유망주라면 단 한 경기에서라도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서 증명해야 했다.
자신이 유망주 딱지를 떼도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기회가 지금 마블 박에게 찾아왔다.
“좋다. 후반전에 내보내 줄 테니 마음껏 날뛰어봐라.”
“감사합니다!”
마블 박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한편, 꿈FC의 라커룸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윤광섭이었다.
“순신아 우리 이길 수 있을까?”
확신이 필요했다.
“당연하지!”
이순신의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당연히 골을 넣어야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딱 1골이야.”
김혁규는 자신이 없었다.
도무지 라모스를 비롯해서 카세미루를 뚫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미안해. 쟤네들 너무 빨라. 나도 평소보다 열심히 하고 있지만 뚫기 너무 힘들다.”
“나도 마찬가지야. 마치 내 머릿속에 패스 루트를 다 차단당한 느낌이야.”
그저 ‘잘할 수 있어.’,‘열심히 하다 보면 될 거야’ 같은 인문학적 감성은 필요 없었다.
지금은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이길 수 있다. 우리는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연습해왔던 것이다. 첫 골을 기억해라. 우리가 어떻게 골을 넣었는지를.”
이에로가 선수들에게 상기시켰다.
꿈 FC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세트피스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너희들에게 패배의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기회가 왔다면 쟁취하는 것이다. 가장 확률이 없다고 생각한 플랜 C가 성공했다. 우리에겐 적들이 예상하지 못할 다양한 세트피스 전술이 준비되어있지 않은가?”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우리가 약팀이고, 선수가 한 명이 없다고 생각해서 수비적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할 것이다.
우린 지금부터 그런 상대의 마음을 역이용한다.”
이에로가 공격수들을 향해 말했다.
“자신 있게 돌파해라. 내가 볼 땐 김혁규와 윤광섭의 드리블은 저들에게도 통한다. 너희에게 부족한 건 자신감이다!”
사실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에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감을 갖고 하다 보면, 한 번은 통하지 않을까?
축구는 그 한 번이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김혁규가 의지를 다졌다.
“오진성. 과감하게 상대와 붙어라. 몸싸움을 극복해라.”
오진성은 고개를 돌렸다.
보경풍은 아까의 충돌로 아파 보였고, 이순신은 미친 듯이 수비를 커버 하고 있었다.
만약 저 두 사람이 없었다면 대량실점을 하고도 남았을 상황.
“네. 열심히 해서 수비수들의 공격 부담을 줄이겠습니다.”
“좋다. 나가자. 우리의 목표는 적들을 이기는 것이다!”
“네!”
꿈FC는 강력하게 정신을 무장하고 후반전에 임했다.
확실히 당황한 건 레알 마드리드였다.
마블 박이 패기 있게 돌파를 시도했지만, 아직은 팀에 완전히 녹아나질 못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선배들의 위압감에 위축됐다.
반면, 김혁규는 과감하게 돌파를 시도했다.
“김혁규 선수. 여의치 않자 돌파를 시도합니다!”
“브라질에 배웠냐? 딱 기초수준이군.”
레알 마드리드의 풀백이 김혁규의 플레이를 보고 비웃었다.
“그럼 어디 기초수준한테 뚫려봐!”
김혁규는 자신감 있게 드리블을 쳤다!
“김혁규 선수 제쳤습니다!”
김혁규가 수비를 떨어냈다.
“진성아. 받아!”
김혁규가 패스하려던 순간 라모스가 태클로 걷어냈다!
삐이익!
“라모스 선수가 반칙으로 끊어냅니다! 꿈 FC의 프리킥을 얻습니다.”
이순신은 라모스를 보고 놀랐다.
‘카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칙을 한다고? 엄청난 배짱이다.’
자칫하면 퇴장당할 수 있는 상황. 그럼에도 라모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비를 묵묵히 했다.
‘멋지다. 라모스. 꼭 골로 보답해줄게!’
이순신은 기필코 프리킥 찬스를 살리고자 다짐했다.
직접 차기 좋은 위치였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하. 어떻게 한다…”
이순신은 확률을 보니 고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