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85화 (86/161)

85화. par una cabeza

플랜 C는 오진성이 골대 윗부분을 맞춰서 튕겨 나온 공을 이순신이 달려들어서 헤딩으로 밀어 넣는 전술이었다.

오진성이 물었다.

“먹힐까?”

연습 때 해봤는데 의외로 성공률이 괜찮았다.

하지만 실전에서 쓰기에는 다소 불안한 점이 많았다.

이순신은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넘쳤다.

“해봐야지. 준비한 게 아깝잖아!”

오진성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시도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오진성은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이순신이라면 골을 넣어 줄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감 있게 프리킥을 날렸다.

예상대로 공은 레알 마드리드의 골포스트 상단에 닿았다.

“오진성 선수의 슛! 안타깝게도 골대를 벗어납니다.”

“흘러나온 공을 향해 이순신이 달려듭니다!”

이순신이 공을 향해 머리를 날렸다.

쿵!

거대한 나무에 어깨를 부딪치는 기분이 들었다.

-par una cabeza-

머리 하나 차이였다.

라모스가 한 발을 먼저 공을 걷어냈다.

이순신이 재빨리 공을 잡으려고 했지만,

카세미루에 의해 진로가 막혔다.

‘큰일 났다!’

이순신은 이를 악물었다.

곧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반격이 시작됐다!

카세미루가 측면으로 공을 돌렸다.

측면 미드필더는 드리블로 꿈FC의 사이드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임단결의 수비를 벗어난 그는 중앙에 있는 벤제마에게 패스했다.

벤제마는 공을 받았다.

전방에는 꿈 FC의 수비수 딱 한 명만 있었다.

“이번엔 기필코 넣는다!‘

벤제마가 강렬한 의지를 드러냈다.

마치 불같은 의지를 뿜어댔다.

“됐어!”

라모스가 멀리서 내심 환호를 질렀다.

그런데 누군가가 벤제마를 빠르게 따라붙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야. 저 미친 속도는?”

벤제마도 중앙선을 넘을 때 느꼈다.

“공을 잡은 건 나야. 그런데 왜 내가 쫓기고 있는 느낌이지?”

벤제마가 힐끗 뒤를 돌아봤다.

이순신이 광기를 띄며 달려갔다.

‘다른 선수였다면, 한 골을 내줬을지도 몰라. 하지만 벤제마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축구화에 달린 세 번째 옵션.

자동 타겟팅이 발동됐다!

[자동 타겟팅]

[상대편 선수를 지정하면 체력 소모 없이 쫓아갈 수 있습니다.]

이순신은 다짐했다.

절대로 벤제마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거라고!

골 결정력이 떨어졌다 한들,

벤제마는 벤제마였다.

설령 그가 골을 못 넣더라도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준다면 그것 역시 골치 아팠다.

“이순신 선수! 미친 듯이 달려갑니다.”

“벤제마 선수 이대로 가다간 빼앗기겠는데요?”

그에겐 선택권이 있었다.

뺏기든가 슛을 하든가.

벤제마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젠장. 아무 생각이 안 나. 어떻게 해야 하지?’

산전수전 다 겪은 그도 당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벤제마의 선택은 이순신에게 공을 뺏기는 것이었다.

“우와! 이순신이 벤제마를 막았어!”

“미친. 저기서 지금 얼마나 빠른 속도로 뛴 거야?”

“벤제마가 1:1 찬스를 놓쳤다고? 미쳤어!”

골을 넣은 것도 아니고, 멋진 태클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상대보다 빨리 달려서 각을 좁히고, 공을 걷어냈을 뿐이었다.

골에 가려진 그의 수비력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벤제마는 당황했다.

‘내가 나이를 먹었나?’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벤제마는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고의 명문 팀에 12년이나 장기 근속했다는 것은 그가 월드클래스라는 걸 입증한다.

그런 그가 4부 리그의 이름도 모를 동양 선수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다.

“하아. 하아.”

벤제마가 거친 숨을 몰아쉴 때 이순신은 그저 손등으로 땀을 닦을 뿐이었다.

“뭐야? 너 괴물이냐?”

특급 칭찬이었다.

“칭찬 고마워.”

이순신은 씨익 웃으며 수비 위치로 돌아갔다.

벤제마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로 인해서 신체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평소에 얼마나 관리를 잘하느냐가 신체 능력의 노쇠화를 더디게 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의 경우로 30대에 오히려 더 좋아지는 선수가 있었다.

벤제마는 그런 유형의 선수였다.

-폼은 일시적일지라도 클라스는 영원하다.-

벤제마가 고개를 돌리자 우드득 소리가 났다.

그러면서 씨익 웃었다.

그는 30대가 넘어서부터 깨달았다.

‘골을 넣는 게 쉬워졌다.’

노련함은 경험이 되고, 그에게 자신감을 줬다.

하지만 그는 창의적인 플레이와 이타적인 플레이를 즐겼다.

발만 뻗으면 골을 넣을 수 있지만, 재미가 없었다.

설령 이제 자신의 시대가 저물어가도 즐거운 축구를 하고 싶었다.

‘오늘 경기에서 이순신을 제치고 기필코 골을 넣는다!’

벤제마는 육각형 공격수.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원하는 스타일로 자유자재로 변경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골을 넣고 싶다가 아니라 꼭 넣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스트라이커형 공격수로 변모시켰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은 쉼 없이 펼쳐졌다.

“침착하게 붙기만 해!”

이순신이 수비라인을 진두지휘했다.

그럼에도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꿈FC는 반칙 횟수가 많아졌다.

“역시 1명이 부족해서 그런가…”

동료 중 하나가 혹 나중에 패배의 책임을 은근슬쩍 하비에게 몰아가려고 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책임 전가를 하고 싶어 한다.

“아냐. 하비가 있었어도 힘든 건 똑같았어.”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팀원의 약해진 마음과 정신을 다독였다.

1명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 맞아. 상대는 레알이라고!”

팀원은 의지를 다졌다.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고개를 돌려서 전광판을 바라봤다.

‘15분만 더 버티자. 그러면 전반전이 끝난다.’

아직 전반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순신은 마치 90분을 뛴 느낌이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지쳐있었다.

하비가 빠진 중원을 이순신이 미친 활동량으로 커버했다.

이에로는 일본 감독이 했던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만약 공격수를 빼고 미드필더를 투입했다면,

90분 내내 샌드백이 되었다가 졌을지도 모른다.

‘이순신. 믿는다. 이번에도 너의 잠재력을 터트려다오.’

이순신이 그동안 보여준 기적이 이번에도 발휘되길 바랐다.

과연 염원이 기적을 낳을 수 있을 것인가?

팬들의 마음도 레알에서 꿈FC로 기울어갈 때쯤 한 남자가 폭발했다.

“휴. 아무래도 안 되겠어. 답답해서 내가 넣어야지!”

결국, 참다못한 라모스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라모스의 중거리 슛은 대단했다.

이순신의 파워보다는 못 미쳤지만,

라모스의 슛도 만만치 않은 위력을 가졌다.

‘방심하다간 한 골 내주겠어.’

보경풍은 머릿결이 쭈뼛쭈뼛 설 정도로 긴장했다.

“들어가라! 들어가라고!”

라모스가 화가 난 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전반전은 고작 5분 남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슈팅 숫자는 무려 20개.

그중의 유효슈팅은 10개나 됐다.

골을 넣을 수 있던 기회가 10번이나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승부욕이 타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라모스는 사고를 쳤다!

레알 마드리드의 프리킥 상황이었다.

이순신과 벤제마는 몸싸움을 하며 치열한 위치선정 중이었다.

‘이번만 막으면 전반전은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레알은 벤제마의 원맨팀이 아니었다.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혼전 상황 속에서 달려온 건 다름 아닌 라모스였다.

이순신의 시선이 라모스를 따라갔다.

‘벤제마는 훼이크다. 진짜는 라모스야!’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재빨리 라모스를 막았다.

보경풍이 넘어지면서 공을 막아냈다.

‘됐어!’

안심하긴 일렀다.

라모스가 온 몸을 던지며 날아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라모스의 외침은 마치 사자후 같았다.

꿈FC는 잠시나마 얼어붙었다.

‘저건 슛이 아니라 몸부림인데?’

이순신도 당황스러웠다.

쿵!

라모스와 보경풍이 그대로 충돌했다.

라모스의 어깨는 보경풍의 가슴을 강타했고,

머리는 얼굴을 가격했다.

삐이이익-

심판이 재빨리 경기를 중단시켰다.

관중들도 놀라서 일어났다.

누구보다도 이순신이 재빨리 뛰어갔다.

“경풍이 형! 괜찮아?”

“으-”

보경풍은 정신을 못 차렸다.

[허준이 보경풍의 상태를 살핍니다.]

[가슴에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호흡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약간의 어지러움을 호소합니다.]

[판단력과 반응속도가 감소합니다.]

허준이 알려준 반응을 보니 이순신은 걱정됐다.

‘생각보다 심각한데?’

현재 꿈 FC에서 보경풍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보경풍이 빠지면,

자신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한계가 분명했다.

‘여기까지인가…’

이순신이 포기하려고 할 때,

덥석!

보경풍이 이순신의 손을 잡았다.

‘난 계속 뛸 거야.’

보경풍의 눈빛은 의지로 활활 불탔다.

‘하지만 형. 이러다간…’

이순신 역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보경풍의 의지가 너무나 확고했다.

주전 선수가 부상으로 빠진다는 건 팀 전체의 분위기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

이순신은 그제야 왜 충무공이 과거에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이순신은 허준을 바라보았다.

[골절이 아니므로 응급처치가 가능합니다.]

[허준이 응급처치를 합니다.]

‘고마워요.’

허준이 보경풍의 머리에 침을 꽂았다.

잠시 후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침이 사라졌다.

[응급처치를 완료했습니다. 부상이 경미한 수준으로 내려갔습니다.]

‘됐다!’

이순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경풍 선수의 선수경력이 1년 단축됐습니다.]

‘뭐야? 미리 알려줬어야지!’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보경풍 선수의 의지라고 말해줍니다.]

이순신은 보경풍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순신처럼 허준이 보이거나 메시지가 들리는 건 아니었겠지만, 보경풍은 본능적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레프리는 보경풍의 상태를 살폈다.

그들은 상태를 확인하더니 벤치에 OK 사인을 보냈다.

보경풍의 호흡도 진정됐다.

“형. 괜찮아?”

윤광섭이 물었다.

“응. 생각보다 큰 부상은 아닌가 봐. 계속 뛰어야지. 경기를 지켜보는 것보다 직접 참여하는 게 더 재밌지 않겠어?”

그제야 이순신은 이해됐다.

사람은 포기할 땐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운동선수는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팀 운동은 자신의 오기로 팀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었다.

하지만 보경풍에게 오늘은 인생 경기였다.

선수경력과 맞바꿔서라도 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때로는 인생에서 피하지 말아야 할 순간이 있었는데 보경풍에게는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보경풍 선수가 일어났습니다. 대단한 투지입니다.”

보경풍은 머리끈으로 뒷머리를 꽉 묶어서 그대로 상투를 틀었다.

평소의 찰랑찰랑 거리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만큼 강렬한 의지를 드러냈다.

“야. 사과 안 해?”

이순신은 라모스를 불러 세웠다.

하지만 라모스는 대꾸도 하지 않고 수비 진영으로 돌아갔다.

심판은 그에게 옐로카드를 선언했다.

라모스가 심판을 째려봤다.

심판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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