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시작부터 범퍼카!
꿈 FC의 홈구장.
오전부터 많은 관중들로 북적거렸다.
이미 오늘의 경기 표는 진작에 매진됐다.
“오늘 경기를 고작 3천 명 밖에 못 본다는 게 아쉽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래선 레알의 기를 죽여 놓을 수가 없는데 말이죠.”
그 3천 명도 입석을 포함한 숫자였다.
임청수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총 관중은 3천 명이지만, 그중에서 꿈FC를 응원하는 관중들은 1500명 수준이었다.
“그래도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안방에서 보다니. 그건 기분이 좋네요.”
“저도 그래요. 임 단장.”
임청수와 강대범은 미어터지는 구장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다.
“만약 오늘 이기면 어쩌죠?”
“하하하. 임 단장님. 여태껏 스페인에서 들은 농담 중에 최고네요.”
“제가 개그가 늘었죠? 흐흐.”
너무나 긴장돼서 나온 임청수의 헛소리였다.
상황이 이런데 선수들이라고 괜찮을 리 없었다.
그들은 훈련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갑자기 조문돈이 급발진했다.
“레알이 뭐?”
“오늘 우리가 발라버리자!”
“그래! 똑같이 두 발 달린 사람에 불과해!”
경기 당일까지만 아주 약간의 자신감으로 불안감을 숨겼다.
그런데 저 멀리서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을 실은 버스가 왔다.
빵빵!
그들을 보기 위해 나온 팬들 때문에 입구에서 진입이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레알마드리드 선수들은 버스에서 내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선수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라모스다! 레알의 주장 라모스!”
“진공청소기 카세미루가 왔다! 오늘도 멋진 수비 보여줘!”
“모드리치다! 부상이라서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
“벤제마 몇 골이나 넣을 거냐!”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손은 흔들며 환호에 답했다.
반면, 꿈 FC 선수들을 꽁꽁 얼어버렸다.
“얘들아. 우리 지금 이거 현실 맞냐?”
“게임 캐릭터가 왜 현실에서 걸어 다니냐?”
“나 그냥 돈 내고 관중하고 싶다. 끝나고 꼭 사인받아야지.”
평소 게임과 TV로 접한 선수들을 보니 싸워야 할 적에서 팬 미팅 분위기로 급변했다.
이순신은 선수들을 다독였다.
“뭐해? 얼른 들어가서 몸 풀지 않고?”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그래! 가자! 오늘 이후로 라모스는 내 이름을 기억하게 될 거야!”
“그럼 난 벤제마!”
“인생 경기를 펼쳐보자!”
먼발치서 라모스와 이순신의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금세 시선을 회피했다.
라모스의 얼굴은 흡사 화난 것 같은 인상이었지만,
일일이 팬들과 악수를 해주고 심지어 사인까지 해줬다.
‘팬서비스 하나만큼은 확실하네.’
이순신은 씨익 웃은 후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라커룸에 들어온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젠장. 청소도구함에서 옷을 갈아입으라니!”
“거지 같네. 진짜! 난 오늘 데이트가 있었단 말이야! 왜 여기까지 와서 사서 고생을 해야 하냐고!”
“닥쳐!”
라모스는 묵묵히 신발 끈을 묶었다.
“주장이 가만히 있는데 너넨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팀의 간판 공격수인 벤제마가 거들었다.
“으윽.”
불만을 가진 선수들은 준주전급 선수들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지간한 국가대표 선수들보다 뛰어났으며,
몸값도 높았다.
“하지만 주장!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축구화 끈을 다 묶은 라모스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이겨.”
순간 불만을 가진 선수는 어이가 없었다.
“뭐?”
“일단 이기라고. 괜히 이런 것들 때문에 졌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와- 어이가 없네.”
퍽!
그는 근처에 있는 양동이를 걷어찼다.
데구르르 구른 양동이는 라모스의 발 앞에서 멈췄다.
긴장감과 불안감이 라커룸을 가득 메웠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라모스가 정색하며 물었다.
상대방은 살짝 움찔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 고작 4부 리그랑 치르는 경기라고, 우리가 질 리가 없잖아!”
라모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찌그러진 양동이를 들고,
자신에게 대든 선수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뭐…뭐야. 왜 그래?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그는 두려움에 뒷걸음질을 쳤다.
휘익!
라모스는 상대방을 향해 양동이를 던졌다!
“으윽!”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양동이는 굉음을 내며 땅바닥에서 뒹굴었다.
“네가 그래서 리그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컵대회나 나오는 거야. 이 멍청아! 내가 틀린 말 했어?”
“…”
불만을 가진 선수는 아무 말도 없었다.
라모스는 몸을 돌려서 선수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잘 들어! 여기서 지면 탈락이야. 레알 마드리드가 국왕컵 32강전에서 탈락이라고!”
무거운 분위기를 달래고자 모드리치가 웃으며 말했다.
“진정해.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 지겠어?”
부주장인 모드리치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다만, 라모스의 개 같은 성격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선수들을 달래줄 선수는 그가 유일했기에 원정에 참가했다.
라모스도 모드리치의 말은 잘 듣는 편이었다.
“저 자식들은 발렌시아도 잡은 녀석들이라고.”
라모스는 이미 꿈FC의 전력에 대해서 파악했다.
언더독은 강팀과 상대로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 가능성을 사전에 미리 차단하고 싶었다.
그때 벤제마가 거들었다.
“그건 그 녀석들이 멍청한 거고, 심지어 한 명 퇴장당해서 진 거잖아?”
“우리라고 그러지 말란 법 있어?”
라모스의 고집은 완고했다.
결국, 벤제마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선수들에게 말했다.
“지면 그냥 주급 다 반납해!”
벤제마의 주급은 현재 2억 6천만 원 수준이었다.
“좋아. 만약 오늘 지면 난 여기에 내 주급 기부한다.”
라모스의 주급은 무려 4억이었다.
레알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레알 팀 선수들은 불만을 가진 채 경기에 임했다.
***
경기장에 레알마드리드 선수들이 들어와서 몸을 풀었다.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의 모습을 보자 꿈 FC는 멍하니 지렸다.
심지어 조문돈의 다리는 덜덜 떨렸다.
“형 쫄?”
“누… 누가 쫄았어!”
“힘내요. 형.”
임단결은 조문돈의 어깨를 두드렸다.
“맞아. 문돈이 형답지 않게 왜 이렇게 쫄아 있어?”
이순신이 물었다.
“야! 나만 그런 게 아니야. 광섭이도 봐.”
아이돌이었던 윤광섭은 수많은 팬들 앞에서 공연을 했다.
무대공포증, 광장공포증을 겪지 않는다는 점. 즉 멘탈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여유로움을 가진 그였는데도 불구하고,
레알 선수들을 보자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벤제마의 팬이기도 했다.
“정신 차려!”
이순신이 윤광섭의 귀에 대고 소리 질렀다.
[호랑후가 발동합니다.]
“그래. 정신 차리자!”
“하지만 상대는 레알이라고!”
“그건 그래…”
하지만 금세 효과가 풀려버렸다.
이순신은 난감했다.
그럼에도 이들을 다독여서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것이 주장의 역할이었다.
“힘든 상대는 맞아. 하지만 초반부터 강하게 나가면 오히려 저쪽에서 당황할 거야!”
“아… 과연 그게 통할까? 금방 들통날 거 같은데?”
오진성이 걱정했다.
“그래. 이순신의 말이 맞다.”
“감독님!”
이에로가 레알측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눈 후 선수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슬쩍 이순신의 말에 힘을 실어줬다.
“우리는 잃을 게 없다. 그 누구도 우리의 승리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이 두렵나?”
“망신당할까 봐요.”
“자신감을 잃을까 봐요.”
“그냥 지금 현실감각이 없어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도망치고 싶습니다.”
“그게 우리들의 숙명이다.”
숙명이란 말에 눈빛이 달라졌다.
“선수는 그라운드에 있을 때 가치가 있는 법이다.”
“도망치는 겁쟁이를 기억해줄 정도로 축구계는 만만치 않아.”
“우리는 오늘 이길 것이다.”
급기야 이순신이 승리 선언을 했다.
“순신이가 이긴다고 했으면 이길 수 있어! 해보자!”
김혁규가 거들었다.
그 역시 이순신과 함께 수많은 기적을 만든 동료였다.
“난 무조건 순신이 형 믿어요!”
임단결도 거들었다.
“시주는 오래전부터 대장군. 아니 순신 시주와 뜻을 같이하기로 했소!”
구멍도 거들었다.
“나도.”
말은 안 해서 그렇지 보경풍도 마찬가지였다.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
이순신의 외침이 공허하게 퍼졌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필사즉생 필생즉사’ 가 발동되길 바랐다.
하지만 전혀 발동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발동하는 거야…’
그나마 다행인 건 시작부터 ‘배수의 진’은 발동했다.
덕분에 선수들의 능력치와 팀 사기가 올라갔다.
“가자! 16강!”
“가즈아!”
16강.
한국축구의 목표이자 애증의 숫자였다.
꿈 FC 선수들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겨볼 요량이었다.
삐이이익-
“꿈FC와 레알 마드리드의 국왕컵 32강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강력한 의지를 꺾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꿈FC는 이순신의 말대로 초반부터 강하게 치고 나갔다.
“이순신 패스.”
“오진성이 공을 잡아서 카세미루를 등 뒤에 두고 감각적인 힐패스를 선보입니다!”
“공을 잡은 윤광섭! 그대로 슛!”
“레알의 골키퍼 몸에 맞고 코너킥으로 이어집니다.”
첫 유효슈팅은 놀랍게도 꿈FC에서 나왔다.
“아깝다! 광섭아!”
“진성이 나이스패스!”
꿈FC의 사기가 한껏 올랐다.
그러나 레알은 명문 팀답게 침착했다.
고작 유효슈팅 하나로 동요되지 않는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로 발렌시아를 이겼다고? 참나.”
라모스는 코웃음을 쳤다.
“가자. 레알 마드리드가 왜 최고인지 보여주자.”
라모스로부터 빌드업이 시작됐다.
뻐엉!
엄청난 크로스를 날렸다.
레알의 측면 미드필더가 공을 잡았다.
4-3-3 전술을 쓰는 레알은 중앙보단 측면 돌파를 더 많이 시도했다.
1:1에서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전술이었다.
하지만 꿈FC의 학인진도 측면에 특화 전술이었다.
가운데에 수비를 비워두지만, 측면에서 확실하게 협력하여 상대를 제압했다.
설사 중앙으로 돌파를 시도해도이순신이 걷어냈다.
“이 자식 왜 이렇게 빨라?”
구멍과 김혁규가 협력 수비를 하니 레알 팀 선수는 당황했다.
“이 멍청한 새끼야! 뭐 하는 거야!”
등 뒤에서 라모스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움찔하며 라모스에게 백패스를 해버렸다.
“에라이. 못 배운 놈아!”
라모스는 공을 잡아서 그대로 크로스를 올렸다.
예비 동작도 없는 크로스에 꿈 FC는 당황했다.
하지만 레알에게 이건 익숙한 일이었다.
벤제마를 비롯한 선수들이 골문을 향해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멈춰!”
하비는 반칙이 아니면 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카드를 각오하고 태클을 시도했다.
삐이이익-
그의 생각대로 반칙으로 끊기는 했지만, 위치가 영 좋지 않았다.
“페널티킥!”
“아니. 선 안 넘었다고요. 눈깔이 삐었나?”
“하비! 그만해!”
“아니 좀 놔봐! 이건 인종차별이라고!”
이순신이 하비를 데리고 진정시키려던 찰나에 심판은 사형선고를 내렸다.
레드카드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