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이순신을 위한 축구화
이순신은 통화를 끊고 바로 잠이 들었다.
‘내일 자영이 누나 오랜만에 보겠네.’
축구화도 좋지만, 오랜만에 신자영을 볼 생각에 신이 났다.
일찍 잠들어야 한다.
그래야 아침이 빨리 온다!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똑똑똑.
누군가 이순신의 방을 두드렸다.
이순신이 눈을 번쩍 떴다.
기다란 햇살이 이순신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와- 개꿀잠 잤네.’
두근거려서 못 잘 것만 같았는데 의외로 금방 잠이 들었다.
똑똑똑.
재차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이순신이 이불을 정리하는 사이에,
신자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순신아.”
“누나!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는데요?”
이순신은 매우 반가웠다.
“응. 어디서 개수작질이야.”
신자영이 웃으며 되받아쳤다.
“아- 서운하네.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그런 건데.”
“나보다 축구화를 더 기다렸으면서!”
신자영이 살짝 삐친 투로 말했다.
그러면서 등 뒤에 숨긴 신발을 꺼냈다.
“많이 기다렸지?”
그 안에는 보랏빛 축구화가 빛을 뿜어댔다.
***
23세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후 신자영은 생각지도 못할 깜짝 선물을 가져왔다.
“와- 순신아. 부럽다.”
“누나. 우리는요?”
“우리도 광고 찍고 싶어요!”
“열심히 하도록!”
“아. 우리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좌절하는 선수들에게 임청수가 꿀밤을 먹였다.
“이 자식들아~ 축구 외적인 건 보너스라고 생각해. 축구를 잘 하다 보면 순신이처럼 기회는 오게 되어있어!”
선수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실력뿐만 아니라 주장으로서 팀을 관리했다.
무엇보다 외국계 선수들은 이순신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연습벌레. 우-”
그런 이순신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따라 하기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넵. 알겠습니다.”
선수들을 이순신처럼 부와 명예를 위해 더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신자영의 선물은 다름 아닌,
세계적인 스포츠 회사인 나이킹에서 이순신한테 해주는 개인 후원이었다.
그동안 이순신은 몇 개의 광고를 찍긴 했지만,
이건 전혀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진짜요?”
“그렇다니까!”
“그거 톱스타들만 받는 거 아니에요? 전 아직 국가대표도 아닌데…”
“원래 광고는 이미지와 가능성을 보고하는 거야! 넌 충분히 개인 후원을 받을 자격이 있어.”
신자영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나이킹은 스포츠업계에서 절대적인 갑!
신자영도 각오를 하고 최선을 다해서 어필했다.
준수한 외모와 선수가 가진 스토리텔링, 적어도 아시아에서 지금 이순신만큼 핫한 유망주는 없었다.
“이순신 선수는 국가대표를 넘어서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당사의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지요.”
오히려 지금 몸값이 쌀 때 계약해두는 것이 이득이었다.
나이킹 관계자는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업가.
수지타산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며, 확신에는 근거가 필요했다.
“그럼 한 가지 물어봅시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지금부터 나이킹이 왜 이순신 선수를 꽉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PT를 시작하겠습니다.”
나이킹 관계자 앞에서 신자영의 말이 아닌 자료로 설득했다.
아나운서 출신답게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딕션에 그들은 홀렸다.
심드렁하게 보던 관계자들도 어느새 자세를 바로잡고 경청했다.
마침내 황홀했던 PT가 끝났다.
“감사합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지요?”
PT를 끝낸 신자영이 웃으면서 관계자들에게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지?’
자신감 있던 신자영의 표정과는 다르게 마음이 조급해질 때쯤,
책임 권한이 있는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랑 지금 거절하면 당신은 경쟁사에 지금 했던 PT를 또 하겠죠?”
“아마도요?”
“경쟁사가 이 재미있는 걸 보게 하는 건 못 참죠. 무엇보다 그 녀석들하고 계약을 한다면 우리는 땅을 치고 후회할 거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그렇다면?”
관계자가 웃었다.
“재밌는 선수군요.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잘 맞고요. 적극 검토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신자영도 웃었다.
얼마 후,
이순신은 나이킹과 광고를 찍었다.
-그때 나는 최고인 줄 알았지.-
이순신은 19세 청소년대회에서 활약했던 자신의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어.-
다음 영상은 군대에서 뒹굴고,
세컨드 찬스에 참여했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깨달았지.-
이순신은 축구화 끈을 꽉 묶었다.
-노력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
-배신했던 건 나였을 뿐이야.-
많은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이순신은 경기장에 입장했다.
- 이제 다시는 너를 떠나지 않아-
- 기다려줘서 고마워.-
- 네가 함께한다는 걸 잊지 않을게.-
이순신 발이 클로즈업으로 잡히며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 Just do it!-
감성이 듬뿍 담긴 이 광고는 MZ세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대박이 터졌다.
ㄴ외쳐. 갓순신!
ㄴ내 속이 뻥 뚫리네.
ㄴ뭐냐. 왜 나 감동 받고 있냐?
ㄴ그 일을 겪고 다시 축구 한다는 거 쉽지 않을 텐데…
ㄴ응원한다. 이순신! 중거리 슛처럼 쭉쭉 국대까지 가자!
ㄴ우리도 함께 할게!
시원하게 날린 중거리 슛은 팬들의 마음을 뻥 뚫어줬다.
특히 거의 불가능이라고 할 수 있는 아마추어가 대표 팀에 선발된 스토리는 새로운 길, 가능성을 보여줬다.
덕분에 한국에서 나이킹의 점유율과 매출이 라이벌 회사들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축하합니다. 이순신 선수.”
나이킹 관계자는 이순신을 위한 영상편지도 만들어줬다.
이순신에 대한 투자는 이미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당신을 선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순신을 위한 축구화였다.
마이클 조던처럼 판매량의 일부를 받을 수 있는 로열티 계약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직 세상에 단 하나.
이순신의 발에 맞춰서 제작한 단 한 켤레였다!
“감사합니다.”
이순신 역시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공교롭게도 레알 마드리드와 대결에서 축구화는 데뷔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저렇게 좋을까?’
신자영이 씨익 웃었다.
마치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천진난만했다.
이순신이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 예쁜 디자인보다도 성능 때문이었다.
신자영의 눈에도,
운동화를 만든 사람들에게도 보이진 않지만,
이순신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축구화가 가진 미친 성능이!
[나이킹 축구화(a.k.a 거북선Ⅰ)]
[내구성 50/50 경기]
[축구화 착용 시 필드에서 슈팅력+1, 태클+1, 밸런스+1]
[나이킹에서 이순신을 위해 만든 축구화, 거북선을 모티브로 제작됐으며, 뛰어난 착용감과 강력한 슈팅 능력과 내구성을 갖춘 축구화입니다.]
[소켓 : 3개]
“소켓이 세 개?”
이전에 받은 축구화보다 소켓이 늘어났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능력치가 계승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좀 아쉬운데…’
하지만 이순신의 입은 웃고 있었다.
새로운 능력을 획득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흠흠. 순신아. 그렇게 좋아?”
신자영이 헛기침을 했다.
이순신은 신자영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걸 잊지 않았다.
덥석.
신자영을 감싸 안았다.
“누나! 고마워요. 덕분에 이런 큰 선물을 받았어요.”
이순신이 신자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어. 그래.”
신자영은 체온이 급격히 올라감을 느꼈다.
짧지만 꽉 찬 포옹을 끝낸 이순신은 신자영을 빤히 보았다.
“누나. 왜 이렇게 땀을?”
“갑자기 더워서.”
“아하!”
이순신은 창문을 열었다.
“어때요? 시원하죠?”
신자영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빤히 가만히 이순신을 쳐다보았다.
“누나 혹시 할 말 있어요?”
“아니. 그럼 푹 쉬어.”
“네. 누나도요!”
신자영은 방문을 닫고 나왔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얘. 뭐야?”
신자영이 저번에 이순신이 한 말이 떠올렸다.
‘분명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 같긴 한데… 그날 이후로 티를 내지 않는단 말이지. 오히려 관심을 끊은 것처럼 보이고, 혹시 밀당 하나?’
신자영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풉. 축구밖에 모르는 연애 바보가 밀당? 참나, 어이가 없네.’
신자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얼굴이 어두워졌다.
‘진짜 편집 점에 불과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
본능적인 이순신의 행동이 오히려 신자영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아냐. 정신 차려. 신자영. 넌 할 일이 많잖아? 순신이랑 나는 사적으론 친한 누나동생이고, 비즈니스적으로는 에이전트와 고객일 뿐이야. 헷갈리면 안 돼.’
마음을 다잡고자 했지만,
인간의 마음을 코딩으로 표현하자면, 버그투성이였다.
논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이해 안 되는 것투성이 그 자체였다.
‘그래도 아쉽긴 하네…’
신자영은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순신은 신자영이 나가자 축구화를 만지작거렸다.
[상점창이 열립니다.]
이순신은 오랜만에 상점 창을 열었다.
그동안 경기를 하면서 얻은 포인트가 꽤 두둑이 쌓여있었다.
“보자. 대략적으로 천 번은 뽑을 수 있겠는데?”
뽑기의 묘미는 모아뒀다가 한 방에 터트리는 것!
새 축구화, 다가올 강적과의 승부이기에 아낌없이 돌리고자 마음먹었다!
“가즈아!”
이순신은 마치 비트코인 떡상을 외치는 코인러의 심정으로 외쳤다.
상점창에서는 수많은 옵션들이 나왔다.
[슈팅력 강화를 획득했습니다.]
[날씨 특화(비)를 획득했습니다.]
[점프력 강화를 획득했습니다.]
[미끄럼방지를 획득했습니다.]
[날카로운 태클을 획득했습니다.]
[…]
“아오.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네.”
딱히 끌리는 옵션이 없었다.
이순신은 참고 참으며 계속 돌렸다.
흡사 도박중독자의 스멜을 풍겼다.
그 순간이었다.
“어? 왜 안 되지?”
꼬르르륵.
이순신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점심을 먹어야만 상점창 이용이 가능합니다.]
“무슨!”
감이 오고 있었는데, 흐름이 끊겼다.
하지만 카이저 코치와 허준의 의지는 단호했다.
“휴. 어쩔 수 없지.”
이순신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밥을 챙겨 먹었다.
그러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너무 완벽함을 추구했던 아닐까? 사실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하잖아?”
이순신은 남은 포인트를 계산해봤다.
대략 600번 정도 뽑을 수 있었다.
이순신은 마음가짐은 아까와 달랐다.
그중에 첫 번째 옵션이 나왔다.
“조금 아쉽긴 한데…”
이순신은 고민 끝에 첫 번째 옵션을 정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조합과 시너지니까.”
첫 번째 옵션을 염두에 두고 남은 자리에 들어갈 옵션을 골랐다.
“와- 이건 처음 보는 옵션인데? 새로운 슛이다!”
이순신은 800번쯤 돌렸을 때 처음 보는 옵션이 떴다.
“이거면 득점력이 더 올라가겠다!”
마지막 옵션을 위해 계속 상점창을 굴렸다.
이제 남은 횟수는 고작 4번!
고르고 고른 끝에 3번째 옵션도 정했다.
“됐어. 이거면 충분해.”
그리고 마침내 꿈 FC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가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