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79화 (80/161)

79화. 레알을 이길 수 있는 방법

목표 혹은 동기부여가 생긴 인간은 한층 더 강해진다.

이순신은 팀의 승격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꿈FC가 연전연승을 거두며 B 그룹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4부 리그는 총 4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리그 경기를 모두 치르고 나면 각종 1위의 팀들이 플레이오프를 거친다.

승격 팀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이 중 2개의 팀은 자동으로 상위리그에 승격.

패배한 2팀은 다시 리그 2~4위와 플레이오프를 벌여서 2개 팀이 추가로 승격을 위한 혈전을 벌인다.

1번의 승리로 승격을 할 것인가? 다시 토너먼트의 늪에 빠질 것인가?

그렇기에 스페인의 승강제는 치열했다.

이러한 구조는 올라가기는 어렵고, 내려가기는 쉬웠다.

“휴- 내년엔 또 어떻게 바뀔지…”

강대범과 임청수는 신경을 바짝 세웠다.

라리가가 유수한 정통을 자랑하고 있지만, 리그의 규칙이 매번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꿈FC 맞춤형으로 내년도에 유럽인 쿼터가 생기는 거 아니겠죠?”

“그런 양아치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유럽인 쿼터는 유럽태생이 아닌 선수들을 팀에 3명까지 선발로 넣을 수 있는 제도였다.

그동안 꿈FC는 세미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에 있기 때문에 이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스페인 축구협회도 7부 리그 선수가 상위 팀에 이적하는 건 적극 권장해도, 7부 리그의 팀이 프로팀까지 올라오는 건 달갑지 않은 현상이었다.

“우리가 다른 팀들보단 자금적으로 여유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선수들이 열심히 한 걸 협회에서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맞아요.”

강대범이 거들었다.

하지만 임청수는 충분히 3부 리그로 진입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3부 리그도 엄연히 세미프로급이었고,

감독은 스페인의 전설이었던 이에로!

여기에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고려하면 협회가 딱히 막을 거 같진 않았다.

“일단 우승하고 생각합시다.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임청수의 말에 강대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건 성적.

다행히 2위와의 격차는 15점이나 차이 났다.

승점이 벌어진 덕분에 꿈 FC는 국왕컵에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었다.

컵대회가 리그보다 중요할 순 없지만,

유럽의 컵대회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64강전에서 3부 리그 팀을 잡은 꿈FC는 승격의 정당성을 스스로 증명했다.

“우리가 32강에 진출했다!”

“대박!”

32강전부터는 TV 중계가 확정됐다.

그 말인즉슨 협회로부터 중계권료를 받을 수 있기에 하위 리그에 속한 팀들한테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에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강대범과 임청수도 마찬가지였다.

“하필이면 이 순간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의 홈이라 티켓 수익은 발생한다는 것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선수들의 뜻에 따르고 싶군요.”

“그 말인즉슨?”

이에로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뭐 때문에 긴급 소집을 하시는 거지?”

“오늘 32강전 상대가 정해지잖아.”

“오… 할 만한 팀이 걸린 건가?”

“16강 진출하면 진짜 대박이겠다.”

윤광섭과 조문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경풍이 형은 어디랑 만났으면 좋겠어?”

오진성이 물었다.

보경풍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딱히. 누구든 상관없어.”

보경풍은 쿨하게 대답했다.

선수들이 회의실에 모두 모였다.

김혁규가 손을 들었다.

“감독님 갑자기 긴급 소집은 왜 하신 겁니까?”

이에로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했다.

“우리 팀 32강전 대전 상대가 발표됐다.”

“어디에요?”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팀만 아니면 될 듯!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구멍은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는 전년도 국왕컵 우승팀과 라리가 우승팀이 맞붙는 대회였다.

원래는 두 팀이었는데 준우승팀까지 규모를 늘렸고, 여기에 진출한 팀은 다음 대회에 32강전부터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지난 대회에서는 리그와 국왕컵 우승을 동시에 달성해서 더블을 기록한 바르셀로나, 리그에서 2위를 기록한 레알 마드리드, 리그 3위를 기록한 아틀레틱 클루브, 국왕컵 준우승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안타깝지만 이제 우리가 꿈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인 거 같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우리 팀의 32강전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다.”

레.알.마.드.리.드!

“컥컥!”

순간 구멍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야! 괜찮아!?”

주변에 있는 선수들이 재빨리 구멍을 부축했다.

“내가 잘못들은 게죠?”

이순신의 표정도 어두웠다.

그만큼 똑똑히 두 귀로 들었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최고로 강한 팀.

슈퍼스타 중의 스타만이 갈 수 있는 팀.

두 팀의 격차는 ‘지구리 판자촌’과 ‘뉴욕의 펜트하우스’의 높이와 가격.

그 이상이었다.

기껏 ‘돌풍의 팀’이라는 이미지가 현재 리그 1위 팀에게 무너지게 생긴 것이다.

“하- 여기까지네요.”

“32강전은 즐겜 모드로 가고, 리그에 집중하면 되겠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선수들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짐했다.

이왕 중계로 나가는 거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내년에는 상위리그로도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역시 예상된 반응이군.’

이에로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감독님.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습니까?”

이긴다?

그 말에 선수들은 기겁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이순신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순신아. 너 아무리 요즘 잘나간다고 해도 미친 거 아니냐?”

“그래. 상대는 레알이라고! 우리가 어떻게 비벼볼 수준이 아니란 말이야!”

외국계 선수들은 물론이고, 혁규조차도 이번엔 이순신의 편을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보경풍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다들 시작하기도 전에 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순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에로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

“이순신. 정말로 레알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32강전이라면 해볼 만합니다.”

이순신의 표정은 비장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 그에겐 있었다.

“그 이유는?”

“레알 마드리드는 국왕컵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자주 자이언트 킬링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레알 마드리드는 자주 하위 리그의 팀들에게 패배한 전적이 많았다.

그 시작은 4부 리그 샤티바 팀이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샤티바는 홈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무승부를 이뤄냈다.

“대승을 해도 모자라는데 무승부라니! 말도 안 돼!”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명문구단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홈에서 샤티바를 부른 레알은 2:0으로 잡았다.

그리고 그 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 뒤 레알과 국왕컵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샤티바 전을 교훈 삼아서 벤제마, 카카, 반니스텔루이, 라울, 구티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모두 뛰었다.

“믿을 수 없어. 차라리 꿈이라고 말해줘. 세이브…이건 축구 게임이 분명해! 다시 로드하면 돼!”

하지만 엄연히 기록으로 남은 잔혹사였다.

레알에게는 역사상 5번째 손가락 안에 꼽힐 졸전이었다.

무려 3부 리그 팀인 ‘알코르콘’에 4:0으로 패배했다.

4:0.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의 골수팬은 알코르콘이란 단어만 들어도 몸부림을 칠 정도였다.

하지만 레알은 자신 있었다.

샤티바처럼 홈으로 불러들여서 흠씬 두들겨 패줄 예정이었다.

알코르콘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적어도 3골을 내줘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철저한 수비축구!

화려한 공격진을 자랑하는 레알 마드리드가 고작 1골을 넣고 승리했다.

종합스코어는 4:1.

레알 마드리드는 그제야 자신들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리그의 선두 자리까지조차 라이벌인 바르셀로나한테 내어줬다.

라리가 2위, 국왕컵 32강, 챔피언스 리그 16강.

갈락티코 2기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 활약이었다.

심지어 훗날 단판전으로 펼쳐진 64강전에서도 3부 리그인 툴레도에게 1:2로 지면서 탈락했다.

이 정도면 불운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방심할 때 나오는 버릇.

이에로는 레알 마드리드의 심장을 가진 남자로서 레알의 흑역사를 관중석에서 모두 지켜봤다.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이 녀석 진심이구나.’

그는 이순신을 쳐다보았다.

“통계학적으론 바르셀로나보단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고작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닐 테지?”

이순신은 말을 이어갔다.

“물론입니다. 현재 그들은 연속으로 중요한 경기가 잡혀 있습니다.”

이에로는 핸드폰으로 레알마드리드의 일정을 검색했다.

그러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르셀로나와 엘 클라시코, 챔피언스 리그에서 토트넘과 만납니다. 그 사이에 저희의 경기가 끼어있고요.”

레알의 입장에서 꿈FC는 그저 새우일 뿐이었다.

당연히 강팀과의 경기에 더욱 총력을 기울일 것이고,

1.5군, 아니 2군을 내보내도 4부 리그 팀에게 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국왕컵은 그렇게 중요한 타이틀은 아니었다.

돈이 되는 챔피언스 리그, 리그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가 훨씬 중요했다.

‘대단하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파악했어.’

이순신은 말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경기는 저희의 홈경기에서 열립니다. 늘 최고의 환경에서 뛴 그들에게 우리의 경기장은 잡초 수준일 테니까요.”

이에로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했다.

‘틀린 말이 없군.’

그러나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합쳐봐야 이길 수 있는 확률은 10% 미만이었다.

자부심, 멘탈, 실력 그 무엇 하나도 꿈 FC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에로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나 역시 레알과의 대결은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니 감독으로서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나?”

이에로의 말에 선수들이 잔뜩 긴장했다.

그 말인즉슨 리그, 세계 최정상급인 팀과 진심으로 붙어볼 요량이었다.

“해보겠나?”

선수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들이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특히 그들에게는 불가능을 가능케 한 이순신이 있었다.

이순신은 지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경기를 잡으면서 기적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레알 마드리드와 언제 또 경기를 가져보겠는가?

심지어 중계방송이다!

“넵! 어차피 그 경기에서 져도 저희는 잃을 게 없습니다.”

정신무장이 완벽히 된 이에로는 그제야 씨익 웃었다.

이순신도 웃었다.

[충무공이 다가올 전쟁 준비로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카이로 코치가 경악을 합니다.]

[허준이 약재를 달이기 시작합니다.]

“꿈 FC! 가자!”

이순신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말 잘했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이 무서운 법이다.”

이에로의 말은 옳았다.

다만 그 역시 한 가지를 간과했다.

레알은 지킬 게 많은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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